[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스승들]
“인생의 실현은 거룩한 계명이 지시해주는 목적에 대해 자기를 온전히 바침으로 되는 것이다. 결코 무한한 가능성들을 무턱대고 추구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 어떤 정신으로 행동하고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 바가바드기타
길 위에서 길을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디로 가고 있느냐. 바람을 만나면 바람이 되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길 위에서 묻고 배우고 깨달으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순례길에서 마중했던 그 때 그 순간들이, 그 때 그 일들이, 그 때 그 사건들이, 그 때 그 사람들이 모두가 나의 성장을 돕기 위한 교훈이었고 스승이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제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제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마음속의 여유와 유연함이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로 출발하기 전에는 산티아고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치유의 길’이자, ‘성 야보고처럼 순례자의 마음으로 걸어볼 수 있는 최고의 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국경도시인 '생 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de-port)에서 출발하여, 피레네산맥을 거쳐, 스페인의 여러지역을 지나고,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장장 800 여 km의 길. 일명 '순례자의 길'이라고 하는 이 길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바램은 아이들마다 타고난, 내면의 신성한 존재를 느끼고, 그 신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유한 재능이나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에, 그 잠재력을 불러 일으키고 훈련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푸는 삶의 자세는 인과 관계에 따라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진정한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그런 마음의 페턴이 습관처럼 길들여지길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중압감이 오히려 욕심이 되어 나의 맘을 내내 짓눌렀습니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임감과 이상(理想)은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 정신적인 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현장에서의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연속, 그 상황의 난처함에 적응하기까지 며칠간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면서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가짐과 성품, 저마다의 고유한 여건과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순전히 아이들 입장에서 눈높이를 맞추어보니 편해졌고 모든게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일방적인 교육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보살피고 섬기고 품어안는 것이 더욱 필요했던 것입니다. 순례의 거창한 의미를 강조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일상적인 생활지도를 통해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건강하고 무탈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다독이고 품어안고 화해시키고, 상황에 맞춰 조정해 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변화가 일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아이들 안에 깃든 그 믿지못할 자기생존력과 적응력이 스스로를 보살피고 살려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견뎌내고, 인내의 시간조차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너무 든든하고 대견하고 기특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 모두 사랑스런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지나와 생각해보니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산티아고 순례는 하루하루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저는 오히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동행에 초대된 나는 축복의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희망으로 서로를 마중하다보니,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었습니다.
청정한 마음 하나 바로세우면 천국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유외강(內柔外剛), 아이들은 침착하고 부드러웠지만 강했습니다. 그 안에 깃든 거룩한 신성(神聖), 그 씨앗의 힘을 느꼈던 것입니다. 어린 스승들과의 여정은 그래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녀를 둔 축복의 부모님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들은 결코 주는대로 되돌려 주는 방식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나누는 사랑의 댓가는 다시 희망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인과관계입니다.
제19회 지구여행학교(산티아고편)의 작품은 그렇게 무사히 완성되었습니다. 함께했던 선생님들과 지구여행 학생들, 그리고 자녀에게 아주 아주 큰 선물을 안겨준 부모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본 작품을 이끌어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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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3일 조태경(삼촌샘) 두손 모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