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양산의 물동이와 해서풍 : 계양산 상상봉이 물동이(구름이 많이 끼거나 안개가 낀다는 의미)를 이면 비가 자주 내리고, 해서풍(海西風)이 몰아치면 날이 개인다고 한다.
⇒ 해설 : 계양산의 높이는 395m로 고도가 낮아 정상에 구름이 끼었을 경우에는 층운 또는 적난운 등의 낮은 구름이 끼어 비가 올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한편 서쪽으로는 장애물이 없어 건조한 서풍이 들어 올 경우에 구름이 걷히고 맑아진다.
[구전과 관련된 지형지세] 한강 서쪽의 계양산(395m)은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동국여지승람)이다. 우리나라 산맥은 백두산에서 태백산맥 이남으로 뻗어 내렸는데 인천지방은 남에서 북으로 뻗어 올라간 것이 특이하다. 경기도 광주산맥의 한줄기가 화성 광교산, 안산 수리산을 이루고 다시 소래산을 이루었다. 소래산의 한줄기는 북쪽으로 주안산과 계양산맥과 일치한다. 계양산맥은 북으로 뻗어 김포 가현산을 거쳐 서쪽으로 뻗어 강화해협을 통과하여 고려산과 혈구산에서 남쪽으로 마니산에 이르고, 소래산의 한줄기가 서남으로 뻗어 오봉산을 이루며, 또 한줄기는 문학산에서 학익산과 청량산을 이룬다. 계양산 주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허암산과 경서동 해안 호두산에서 끝맺었다.
高麗時代 부평부사로 온 이규보(李奎報)의 망해지(望海誌)에서 계양산에 올라가 보면 삼면이 모두 물이라 하였는데, 서쪽은 서해바다, 동쪽은 한강이 산 주위를 감싸고 흘러 부평평야는 바닷물과 한강 물이 드나들던 습지로 계양산은 물위에 있는 산이라 하였다.
○ 기러기의 이동방향에 따른 날씨변화 : 기러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면 서풍이 불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면 북풍이 불며, 남쪽으로 이동하면 날씨가 추워지고, 북쪽으로 날아가면 비가 온다.
⇒ 해설 : 기러기는 지역적 기후 조건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이다. 따라서 시베리아에서 북서풍의 바람을 타고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을 찾게 되는데, 이러한 시기는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인 것이다. 또한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즉 대기가 불안정하고 습윤한 남풍계열의 바람이 불어 자주 비가 오고 기러기는 기후 조건에 맞는 북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나. 중구
○ 백운산(白雲山) : 육지에서 보면 긴 산이 인천시내를 둘러싸고 있는데 섬에 위치한 산이라서 항상 해무(海霧)에 의해 흰구름(白雲)에 쌓여있어 <백운산>이라 한다.
⇒ 해설 : 바닷가의 산에 주로 발생하는 안개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 덩어리가 찬 해수면 또는 지표면 위를 이동할 때 그 아랫부분이 냉각되어 발생하는 이류안개다. 이것은 복사안개와 마찬가지로 기온 역전층이 형성되면서 발생하며 안개 낀 범위가 넓고 지속시간이 긴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해상에서 발생하는 안개의 대부분이 이류안개이며 이를 해무(海霧)라고 한다.
[영종도]
○ 영종도 바다의 그림자와 날씨 : 영종도 바다에 산이 비치면, 날씨가 흐리던가 3일 안에 비가 온다.
⇒ 해설 : 영종도 바다에 산이 비칠 정도이면 바람이 약하여 파도가 없어 잔잔한 상태로 기압골 통과 전에 고요함과 삼한사온의 패턴과 같이 주기적인 기압패턴을 표현한다.
다. 강화군
○ 손돌풍과 손돌이 추위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광성진 돌풍부 손돌목에는 매년 음력 10월 20일에 관례적으로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돌풍이 불고, 매서운 추위가 다가온다. 일명 <손돌이 추위> 또는 <손돌풍>이라 한다.
⇒ 해설 : 강화와 김포간의 험난한 수로인 손돌목을 인천쪽에서 염하(鹽河)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광성보의 심한 돌출부가 있고 부근바다는 잔잔하나, 그곳은 유난히 물살이 빠르고 강한 소용돌이가 친다. 구전의 내용대로 매년 음력 10월 20일(양력 11월 하순경)에는 시베리아 대륙고기압이 본격적으로 확장하여 강한 북서계절풍이 활성화되고 겨울 추위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기상특성으로 손돌추위를 예고하며, 해로(海路)의 위험성을 알리고 본격적인 겨울준비를 하는 선인들의 지혜로운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2. 고양시
가. 덕양구
[대덕동(大德洞)]
○ 음지말과 양지말 : 마을의 위치가 햇볕이 잘 안 드는 음지(陰地)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양지말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陽地)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삼송 2리]
○ 냉대벌 : 창릉천 주변에 있던 벌판의 이름으로 겨울이면 응달이 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매우 춥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 듯 하다.
[신도동(神道洞)]
○ 달맞이 산 : 달맞이 산은 약정산(백토산, 도당산)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옛날 정월보름날이면 마을 농악대와 같이 이 산꼭대기에 올라 달맞이를 했다고 하며, 달맞이는 짚에다가 나이 수만큼 매듭을 지어 달이 뜰 때 불로 태우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산 쪽에서 뜨는 보름달이 너무 처져도 안 좋고, 나무 위로 솟아서 떠도 안 좋다고 한다. 달이 처져서 뜰 때면 그 해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 삼막골 느티나무 : 삼막골에 서있는 나무로 둘레가 5.3m이고 높이가 15m정도인데 이 나무를 처음 심은 것은 이 곳 선조께서 삼막골에 처음 와서 마을을 개척할 때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한다. 옛부터 느티나무가 단풍들 때 나뭇잎이 한꺼번에 곱게 물들고 낙엽이 한꺼번에 떨어지면 그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이쪽 가지에 조금, 저쪽 가지에 조금씩 단풍들어 단풍드는 시간이 길면, 그 다음해엔 반드시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은 지금도 이 나무에 단풍드는 모습을 신중히 쳐다본다고 한다.
[운하리(울아리)] : 운하리는 망월산에서 원당읍 도내리 즉, 창릉천 방향에 있는 마을의 자연촌락 명칭으로 이곳을 운하리라 부르는 것은 옛날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이 곳으로 피난 온 후 계속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안개가 끼고 하루도 맑을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 후 이 곳을 <운하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신동(元新洞)]
○ 이안자골 우물 : 이안자골에 가면 지금도 샘물이 계속 나오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에 사는 이안자라는 큰 부자가 나라에 난리가 나서 피난을 가는데, 큰 안반(구리로 만든 떡 만드는 판)을 가져갈 수 없어서 집 앞 큰 우물에 빠뜨려 숨기고 피난을 떠났다 한다. 그리고 난리가 끝난 후 다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이 우물을 건드리거나 손을 대면 나라에서도 어찌 못하는 가뭄에도 천둥과 함께 단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되었다 하며, 또 큰 홍수가 날 때 이 우물을 만지면 비가 멈추고 맑은 하늘과 햇빛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근래에 이러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동리 유지들과 관공서에서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우물 안에는 구리 안반은 없었고 맑던 우물물이 갑자기 혼탁해지더니 그 후로는 신기함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한다.
[주교동]
○ 독곳이 : 한강제방이 조성되기 이전, 장마나 홍수가 날 때면 한강과 가까운 이곳의 하천이 범람하여 마을을 자주 침수시키곤 하였다 한다. 그 때 이 마을로 흘러 들어온 물에 독(毒)이 많아서 독관이란 명칭이 붙었다가 <독곳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 수논(水沓) : 하박자궁촌 앞에 있는 논의 이름으로 이 논의 위치가 아래쪽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논에 물이 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창릉동(昌陵洞)]
○ 걱정머리 : 걱정머리는 동산리에서 원당읍 원흥리 방향에 있는 자연지명으로 여름에 자주 발생하는 홍수의 불안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창릉천의 제방이 약해서 항상 비만 오면 제방이 무너질까 걱정했기 때문에 <걱정머리>라 부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곳은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아 예로부터 조금만 비가와도 논․밭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 방아다리 : 방아다리는 동산 1리 새말에서 동산 2리로 가는 방향에 있는 자연지명으로 옛부터 이곳에 습기가 많고 여름에 비가 조금만 와도 창릉천의 물이 넘쳐 동산리 전체를 잠기게 하곤 하였다. 그래서 홍수를 막기 위해 물레방아를 만들었는데 이곳에 다리가 있어서 <방아다리>라고 불렀다.
○ 샘취 : 샘취는 동산 1리 사무소에서 동산 2리 방향에 있는 자연지명으로 옛날에 샘이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마을의 집과 농토보다 주위의 개울들이 더 높아 홍수가 나면 항상 물에 잠겼다고 한다.
○ 응달말(陰地村) : 용두리로 이어진 60번 군도로에서 방송국촌 방향에 있는 자연촌락의 명칭으로 동산리 동쪽 대동산에 가려 다른 마을과는 달리 햇빛 드는 시간이 적고 응달 지는 시간이 많아서 예로부터 마을 이름을 <응달말>이라고 불렀다.
나. 일산구
[식사동]
○ 찬우물골 : 오룡동마을에서 능안골로 들어가는 군사도로를 따라 약 200m가서 우측에 있는 골짜기로 영글이산 기슭에 이어져 있다. 본래 이 골짜기에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어 이 골짜기를 <찬우물골>이라 하였다.
[풍동(楓洞)] : 풍동은 마두동과 식사동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일산 신시가지의 동쪽에 소재하고 있다. 풍동은 옛부터 이곳에 큰산이 없고 벌판이 많아 바람이 심하게 불자 이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단풍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3. 광주시
가. 도척면
[유정리(柳井里)]
○ 운정동(雲井洞굴우물) : 이 마을에는 옛부터 유명한 영천(靈泉)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언제나 안개와 구름이 끼어 있어 <운정동>이라 하였고 우리말로는 <구름우물>이라 했는데 이 말이 변하여 <굴우물>이라 한다.
나. 실촌면
[설월리(雪月里)] : 이 마을은 산에 가려진 음지이기 때문에 겨울에 눈이 오면 늦은 봄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해서 <설월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다. 오포읍
[문형리]
○ 되치미 : 장마철만 되면 땀흘려 지어놓은 농사가 둑이 무너져 물에 떠내려가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힘들여 둑을 쌓으면 또 떠내려가고 해서 다시 친다는 뜻으로 <되치미>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라. 초월면
[광지원리(光池院里)]
○ 광복동(光復洞) : 이 마을은 풍광(風光)이 아름답고 항상 햇볕이 가득한 마을이라고 해서 <광복동>이라 하였다.
○ 설월(雪月) : 경상도에 사는 어느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이곳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눈이 내리고 눈이 그치자 그 위에 달빛이 비치는 것이 마치 선경(仙境)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마을을 <설월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원당리(元堂里원댕이) : 예전에 이 마을에는 날씨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원지>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해서 <원댕이>라 하였다고 한다.
[서하리(西霞里)] : 이 마을 옆을 흐르는 경안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며, 이 물줄기로 인하여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해서 <서하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해설 : 증기안개는 쉽게 생각해서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해무와는 반대로 차갑고 건조한 공기 덩어리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수면 위를 이동할 때 급격한 증발에 의하여 생기는 안개를 말한다.
겨울철 맑은 날 새벽녘에 호수면이나 하천면으로부터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데 이것이 증기안개다. 겨울철뿐만 아니라 바람이 없는 맑은 날 밤에 냉각이 잘 되고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냉기의 침강으로 호수나 하천에서 여름철에도 종종 발생한다. 일출 후 기온이 올라가면 역전층이 해소되어 증기안개는 소산된다.
[용수리]
○ 장담(長潭) : 이 마을 뒷산이 용머리처럼 생겼는데 이곳에서 물이 흘러 내를 이루었는데 장마만 지면 이 마을이 물에 잠긴다고 해서 <장담>이라 부르게 되었다.
4. 동두천시
[무수동(無愁洞)] : 물이 귀하여 무수동(無水洞)이라 하였으나 조선시대 중엽 평해 황씨가 매년 물 때문에 근심하는 것을 없애기 위하여 방축을 만들어 물 근심 없는 마을을 만든다고 수(水;물)를 수(愁;근심)로 고치었다고 한다. 방축을 막으면서 단단히 막기 위하여 둑 위에다 동전을 뿌려 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둑을 밟으며 동전을 주워 가도록 했다 한다. 그러나 물을 채워 두면 홍수가 나 방축이 터져 일곱 번이나 다시 쌓았으나 매번 터져 재산이 다 없어져 끝내 못 막았다 한다. 지금도 논에 수리시설이 없어 천수답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무수동(無愁洞) 마을이다.
⇒ 해설 : 해안 또는 호수가 주변에 없는 동두천지방은 주변에 높고 낮은 산들로 둘러 쌓여 있는데 북쪽으로는 해발 526m의 소요산이, 남으로는 해발 441m의 수락산이, 서쪽으로는 해발 490m의 파평산이, 동쪽으로는 730m의 왕방산이 위치하고 있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작은 분지에 시가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크고 작은 저수지와 논들이 있다. 동두천지방의 서부에 "추가령지구대"라고 부르는 저지대가 있는데 이를 따라 신천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전형적인 분지형태인 동두천지방은 여름철 고온, 겨울철 저온 현상이 뚜렷한 연교차가 비교적 큰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여름철에 집중호우가 잦은 동두천 지방은 수리시설이 튼튼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더 큰 재산 피해가 있었다.
5. 수원시
가. 권선구
[세류 1동]
○ 치사골 : 수원시 권선구 세류 1동 232, 270번지 일대 즉, 전 대한방직 자리를 치사골 또는 기사골이라고 불렀다. 이 곳은 세류동과 매산동의 접경지역으로 지형상 깊은 골짜기여서 물이 많이 괴어 있었다. 또, 찬바람이 많이 불어 매우 추운 곳으로 죽을 듯이 춥다는 의미에서 <치사골>이라 하였고, 기를 쓰고 건넌다는 의미에서 <기사골>이라고도 하였다한다.
나. 장안구
[북수동]
○ 북수문(北水門)․화홍문(華虹門) : 수원시 장안구 북수동에 있는 북수문은 방화수류정의 서쪽 44보 거리에 있으며 편액을 화홍문(華虹門)이라 하였다. 화(華)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은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인데 용의 수컷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이 수문을 통과하면서 무지개 현상을 빚어내고 또 수문 밖의 용연과 관련하여 화홍문이라고 이름을 붙인 듯 하다. 화홍문의 양쪽 가장자리에 이무기를 새긴 돌기둥을 세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량문은 윤숙(尹塾 : 1734~1797)이 지었는데, “무지개는 여기 특별한 땅에 표범처럼 높이 일어난다. … 빠른 물결 밤낮으로 홍문에 흘러드니 모든 샘에서 피어나는 연기 하얗게 씻겼구나.“ 라고 화홍문과 그 경관을 표현하였다.
⇒ 해설 : 무지개를 보려면 하늘 한 쪽에 태양이 빛나고 있어야 하고 그 반대 쪽 하늘에는 비로 인해 생긴 물방울이나 구름 속의 물방울들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태양을 등지고 서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무지개는 반원이다. 하지만 무지개의 원래 모양은 원이다. 평상시에는 땅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원 모양의 무지개를 볼 수 없는 것이다.
6. 성시
가. 일죽면
○ 雲田 마을(구름밭) : 이 마을의 모양이 마치 구름 위에 뜬 밭(田)과 같다고 해서 <구름 밭>이라 하였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면 주변은 물에 잠기고 이 마을만이 물위에 나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밭처럼 보인다고 하여 <구름밭>이라 하였다.
○ 방초리(芳草里, 舟坪 : 배뚜리, 배뚜기) : 조선 중기에 江華崔氏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인근 五芳마을은 배(舟)모양을 하고 있고 이 마을은 홍수가 나면 들이 물에 잠겨 바다처럼 되어서 배를 매는 부두 같다고 해서 <배두기>, <배뚜리>라 하였다.
○ 신동마을(산막다람물) : 약 530여 년 전에 함평 윤씨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났다가 이곳에 들러 주위가 아늑하고 경관이 좋은 것을 보고 후일 가족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장미천에 둑을 쌓기 전까지는 홍수만 지면 마을이 물에 잠기는 탓으로 주민들이 뒷산으로 다람쥐처럼 기어오른다고 해서 <산막다람물>이라 하였다.
○ 천순리(내뚠이) : 마을에 장마가 지면 물이 들어차는 것은 보아도 물이 빠지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물만 보이는 동네라 하여 <내둔이>이라 한다.
7. 안양시
가. 동안구
[달안동]
○ 달안이(達安洞) : 비가 오면 가릴 것이 없어 삿갓을 쓰고 달아나야 비를 피할 수 있다 하여, <삿갓들> 또는 <다라니>라 불렀는데, 일명 섬마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달안이는 허허벌판이라 겨울이면 추워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라 하여 농경지 외에 민가가 없었다가 1940년대 초에 외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졌다.
8. 의정부시
○ 고래당 : 고래당은 두루봉 아래에 있는 논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더운 우물 : 너머마을 안에 있는 더운 우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운물이 나와서 겨울에 빨래를 할 수 있었다고 하며 수량이 많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 벼락바위 : 벼락바위는 절터 골 입구 오른쪽에 있으며 벼락을 맞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바위가 쪼개져 있다.
○ 연무골(煙霧谷) : 연무골은 항상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연우골>이라고 한다.
○ 온두막골(溫逗幕谷) : 온두막골은 거문돌 입구 왼쪽의 논에서 더운물이 솟아올라서 사람들이 막을 세워 놓고 목욕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모두 논으로 개간되어 온두막이 있었던 자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도 수온이 따뜻해서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 해창위논 : 이 곳에는 햇볕이 잘 들어 이삭이 제일 먼저 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조산(朝山) : 조산은 아침에 해가 제일 먼저 이 곳에 비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최최골 : 최최골은 작은 도장굴의 양지쪽에 있어서 봄이 오면 꽃이 제일 먼저 핀다고 하여 최화골(催花谷)이라고 부르다가 변음되어 <최최골>이 되었다.
○ 해동창 : 해동창은 의정부에서 안쇳골로 들어오는 다리 윗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해가 아침에 제일 먼저 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햇재(햇거리) : 햇재는 동무봉 남쪽의 양지쪽을 말하며 <햇거리>라고도 부른다. 햇빛이 잘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9. 이천시
○ 오음산(五音山) - 마국산의 옛이름 : 오음산(五音山)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개국 후 계룡산에 新都안을 정하러 갈 때 마국산 밑에 다다르니 산 위에 오색 구름이 서리고 그 구름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 오음산이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 문헌비고, 이천군읍지 등에는 모두 오음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천에서는 날이 몹시 가물면 마국산에 강철(이무기)이 지나갔다고 하는 말이 있다. 마국산에 비구름이 끼는 것을 보고 비가 오나 안 오나를 점치고 있으니 이는 이천뿐만 아니라 여주 가남면 일대에서도 날이 가물면 마국산 꼭대기만 쳐다보며 비 오기를 빌어 왔다. 날이 가물면 날을 택하여 저녁에 여자들이 키를 들고 보(珤)머리에 모여 키로 봇물을 까부르며 기우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10. 평택시
가. 오성면
[안화리(安化里)] : 비가 많이 오고 특히 홍수가 잦다고 해서 우다내(雨多川)라고도 하고, 옛부터 바닷가 조수가 드나들은 갯벌이어서 썰물 밀물이 심하여 그때 산턱이 씻겨 무너져 내려와 흙이 쌓여 축적토(蓄積土)를 이루어 마을의 터가 되었고 처음으로 安氏네가 定着하여 興盛하자는 뜻에서 <안화리>라고 불렀다.
11. 하남시
○ 더너물(溫泉) : 마을 앞의 우물이 겨울에도 얼지 않고 김이 무럭무럭 난다. 그래서 이곳을 더운 우물이라 하였는데 이 말이 변하여 <더너물>이 되었고 한문으로 의역하여 온천이라 한 것이다.
○ 춘장(春長) : 이 부락은 햇살이 일찍 들어 봄이 일찍 오고 늦게 간다하여 <춘장>이라 불리었다. 항상 아늑한 곳으로 봄의 느낌을 갖는다.
12. 화성시
○ 고온리(古溫里) : 조선조 말 행정구역은 압정면 古溫里浦로서, 옛부터 마을의 인심이 좋고 이웃과 화목한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지형적으로 해안에 위치하여 기후가 따뜻한 관계로 <고온포> 또는 <고온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구름내(雲川村) :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가 맑고 깨끗하여 은하수 같고, 자욱한 구름이 서린 듯 하다 하여 <구름내, 운천촌>으로 불렀다.
○ 돌모루 : 이 마을의 위치가 오산천과 합류하는 야동천 하류에 있는데 홍수가 질 때마다 돌(石)이 모이는(合) 곳이란 뜻으로 <돌모루>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13. 파주시
가. 문산읍
[당동 3리]
○ 적운이(赤雲洞․赤串里) : 옛 조선 후기 대원군이 세상을 뜨자 이 마을 平度公묘지에 대원군 봉분을 책정하려고 할 때 별안간 묘지 상공에 붉은 구름이 뜨고 도사가 나타나 '붉은 구름 뜨는 곳에 묘를 써서는 안된다'하고 사라져 대원군의 묘를 인조의 옛 능자리에 쓰게 되었고 그 후 붉은 구름이 뜨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마을에 항상 구름이 끼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나. 조리읍
[봉일천리(奉日川里)] : 조선시대 조리면 지역으로, 이 지역은 곡릉천 하상보다 낮은 지역으로 매년 홍수로 물난리를 겪게 되자 비는 적게 오고 해가 뜨게 해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14. 가평군
가. 가평읍
[복장리]
○ 햇골 : 이 곳은 복장리 마을회관이 있는 지역의 지명인데 옛부터 이 곳을 아침해가 일찍 돋는 해돋이 마을 또는 <햇골>이라 부른다.
[상색리] : 행정개편 전 군내면(가평읍)과 외서면 사이의 내서면 6개동 중 한 마을로 경춘 국도에서 두 개의 큰 고개 중 하나인 빛고개(또 하나는 마치고개)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아침나절 불기산 줄기인 빛 고개에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햇빛의 색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빛고개(上色峴)라 하고 그 아랫마을을 <상색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빛(色)고개라고 하기보다는, 비가 상색에는 오는데 상천은 오지 않는 일이 많고, 상색에는 눈이 오는데 상천에는 비가 오며, 안개도 고개의 동서가 완연히 구별되는 등 고개를 사이에 두고 일기가 크게 엇갈리기 때문에 비(雨)고개로 불렀다고도 한다.
나. 북면
[승안리]
○ 무지골 : 무지골은 빛고개를 오르는 북쪽에 있는 골로서, 이곳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가 항상 무지개 빛을 낸다하여 무지개골이라 하던 것이 줄여서 <무지골>이 된 것이다.
[이곡리]
○ 세나드리 : 지금은 다리가 놓이고 구부러진 준용하천이지만, 옛날 을축년 대홍수때 방일천이 범람하여 세 갈래로 갈라졌었다 하여 <세나드리>라고 한다.
○ 계량내 : 홍수때 앞개울(계량천:서남 경계)이 먼저 범람하면 장마가 계속 되고, 뒷개울(가평천:동북 경계)이 먼저 넘으면 장마가 그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5. 양평군
가. 강하면
[운심 1리]
○ 사래갈 : 나루터 위에 있으며 한강과 접하여 있는 곳으로 홍수로 인하여 강물에 침수가 되었을 때에는 모래가 물에 밀려 쌓인다 하여 <사래갈>이라 한다.
[운심 2리]
○ 구름개 : 이곳에는 남한강변에 있는 마을이라서 홍수를 맞게 되면 마을 앞들에 안개가 끼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구름과 같은 모양이라 하여 <구름개>라고 한다.
[전수 2리]
○ 바람넘어 고개 : 이 마을 뒷산이 백병산인데 이 산을 넘어 다니는 고개를 바람넘어 고개라 함은 고개가 가파르고 산이 높아서 넘어가려면 힘이 몹시 드는데 서풍이 불때는 바람에 밀려 쉽게 넘을 수 있다하여 <바람넘어 고개>라고 한다.
나. 단월면
[노무리]
○ 분설담 : 벽계마을 오른쪽에 있고, 냇물이 좁은 바위틈으로 흘러가면서 급류를 이루어 내뿜는 광경이 마치 눈발이 서는 것과 같아서 이같이 이름이 붙여졌다.
다. 서종면
[명달리]
○ 명달 : 부락이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제일 먼저 해가 뜬다고 하여 <명달>이라고 부른다.
[문호 5리]
○ 무네미 : 북한강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홍수가 나면 물이 넘나든다 하여 <무너미, 무네미>라고 한다.
라. 양서면
[용담 1리]
○ 파람 : 파람 마을은 마을 앞이 남한강과 접하고 있어 바람이 불면 언제나 파도를 바라볼 수 있다 하여 <파람>이라 하였으며, 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보인다 하여 <바람논>이라고도 한다.
마. 옥천면
[용천 3리]
○ 백운봉(白雲峯) : 용문산 주봉으로 봉우리 정상에 항상 흰 구름이 걸쳐 감돈다 하여 <백운봉>이라고 한다.
바. 용문면
[덕촌 1리]
○ 운계(雲溪) : 퇴촌에 조욱(趙昱)선생께서 士友들과 詩歌를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였다는 洗心亭에서 경관을 보니 계곡에 자욱한 안개가 마치 구름과 같다고 하는 조공의 詩句 가운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 지제면
[옥현리]
○ 고양(高陽) : 옥현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서 1900년 전에는 괭이(高)라고 불렀는데 이는 마을 사방에 산이 높아서 해가 높이 떠올라야 햇빛이 든다 하여 <고양>이라고 한다.
○ 부일(浮日) : 부일은 뒤에 있는 추읍산 지맥에 있는 마을로서 동쪽을 향해 위치하고 있으므로 해가 일찍 뜬다고 하여 <부일>이라 한다.
[옥현 2리]
○ 사일(斜日) : 사일은 부일 뒤에 있는 마을로서 서쪽을 향하여 위치하고 있으므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고 하여 <사일>이라 한다.
아. 양평읍
[오빈 3리]
○ 떠드랑산(부래산) : 양근과 오빈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 장마에 충주에서 떠내려 왔다고 하여 <부래산>이라 부른다.
자. 청운면
[갈운 3리]
○ 몰운 : 마을 양쪽 산이 높고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구름이 많이 끼어서 마을이 구름에 숨어 버린다 하여 <몰운>이라고 한다.
16. 여주군
가. 북내면
[운촌리] : 본래 강원도 원주군 지내면의 지역으로서 보금산 서쪽 골짜기로 늘 구름이 끼고 어두우므로 어두운, 어득운 또는 운촌, 운천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 북내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숲말을 병합하여 <운촌리>라 하였다.
17. 연천군
가 . 문산읍
[운천리(雲泉里)] : 골짜기에는 구름이 돌아가며 여러 곳에서 많은 샘이 솟아나 붙여진 이름이다.
나. 연천읍
[동막리]
○ 풍혈(風穴) : 동막동 남쪽에 있는 전체 깊이 6m, 높이 2.2m의 천연 바위굴로써 무더운 여름철에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찬 공기가 흘러나오고, 반대로 겨울철에는 그 주위에 얼음이 얼지 않고 따뜻한 김이 솟아오르는 기현상을 보이는 곳이라 한다.
18. 포천군
○ 가마안(터) : 산의 형태가 가마와 같이 생겨서 그 밑 부분은 그늘이 져 4월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 일대를 말한다.
○ 야단골 : 벼락이 야단스럽게 많이 친다고 해서 <야단골>이라 한다.
가. 포천읍
[설운리(雪雲里)]
○ 우시동(雨時洞) : 강구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마을은 늘 구름이 끼어 있고 자주 비가 왔다고 해서 처음에는 우소동이라 하다가 지금의 우시동이라 부르며, 속칭으로는 <비시락골>이라 한다.
○ 설운 : 운산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지대가 높아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여 <설운>이라 하였다고 한다.
○ 한성골(霞城洞) : 이 마을 뒤로는 竹葉山이 둘러싸고 있는데 노을(霞)이나 안개(霧)가 마치 성(城)을 둘러싼 듯이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을 <하성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고, 이 하성동이 다시 변한 것이 <한성동>이다.
첫댓글 안산도 좀 찾아서 올려주지 그러나^^
대전 기상청에서 퍼온 거라...^^; [거긴 왜들어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