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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1963) 판단 편
<본문>
제2부 개인들과 공권력 간의 관계
19. 권력이란 무엇인가
인간 사회가 질서 있게 번영하려면, 정당한 권력자들이 국민이 제정한 규정들을 준수하고 만인의 공익을 위하여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도 바오로의 말과 같이, 모든 권력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아니한 권력은 하나도 없다."(로마 13,1-6) 성 요한 크리스소토모는 이 말을 해석하기를,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모든 위정자가 하느님께로부터 임명받았다는 것인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이 말씀은 각 위정자에 대해서가 아니라 권력 자체에 대하여 논한다. 권력이 있음으로써 명령하는 자들도 있고 복종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니 이 모든 질서는 우연한 기회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 지혜의 안배라고 생각해야 한다."(In Epist. ad Rom, c.13, vv.1-2, homil. XXIII; PG. 60,615)
그뿐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본래 사회적인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어떠한 사회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을 통치하는 자가 있어서 효과적이고 일치된 방법으로 공통된 목적을 목표로 선도하지 아니하면 사회는 성립될 수 없으며, 실제 사람들의 문명 사회는 통치하는 주권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은 사회 자체와 마찬가지로 본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레오 13세, 회칙 Immortale Dei, Acta Leonis XIII, V.1885, p.120)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권력의 필연성과 권력 자체가 지니는 신적 기원에 대한 것일 뿐,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에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된 그 신적 기원에 의해서 올바른 지성에 따라 명령할 권한만 있기 때문에, 그 권력은 마땅히 도덕적 질서에서 나오는 힘으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권력에게 주어진 도덕적 질서의 최초의 근원이자 최종적인 목적은 하느님 자신이시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교황 비오 12세는, "피조물들의 절대적인 질서와 피조물들의 존재 목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이러하다: 인간은 자율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과, 침범당할 수 없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는 사실과, 사회의 기반인 동시에 사회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권력을 지닌 사회로서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포함한다. 이런 권력 없이는 국가가 출현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 그리스도 신앙에서 나오는 올바른 이성으로 판단하건대 이러한 절대적인 질서는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고, 국가 통치권의 존엄성은 하느님의 통치권을 분유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4년 성탄절)
그러므로 위정자들이 공권력을 처벌의 공포로 위협하거나 보상을 약속하는 방법으로만 사용한다면, 효과적으로 모든 이들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데에 사람들을 결코 이끌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틀림없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사람들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권력은 주로 도덕적인 힘이기 때문에 국가의 지도자들은 국민 개인들의 양심에 호소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이들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도록 기여해야 하는 그들의 의무감을 뜻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본래 인간 존엄성에 있어서 동등하므로 아무도 타인에게 무엇을 강요할 수 없으며, 그 힘은 오로지 마음의 은밀한 뜻을 보시고 또 판단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힘뿐이다. 국가의 통치자들이 지닌 권한이 내적으로 하느님의 통치권에 근거하고 또 분유하는 한에서만 그들은 사람들에게 양심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레오 13세, 회칙 Diuturnum Illud, Acta Leonis XIII, II, 1881, p. 274).
국민들 각자의 인간 존엄성이 보호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통치권을 공권력이 대행하는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이다. 실상 국가 지도자들에게 순명하는 것은 그 개인에게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로서 개인들의 질서 있는 상호 관계를 제정하신 하느님께 대해 순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우리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곧 세상을 다스리는 것"(같은 문헌, p.278 참조; 또한 레오 13세, 회칙 Immortale Dei, Acta Leonis XIII, V.1885, p,.130)이기 때문이다.
무릇 지배의 권한은 도덕적 질서에서 요구되고 하느님께로부터 유래되는 것이므로, 만일 국가의 지도자들이 그러한 질서와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게 입법하거나 혹은 명령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여 제정된 법률은 정당한 법률도 아니고 그러한 공권력은 국민의 양심을 구속할 힘을 상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순명하기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순명하여야 하기 때문"(사도 5,29)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권력도 무너지고 수치스러운 모욕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르치기를, "사람의 법은 올바른 이성에 합치되는 한, 법으로서의 정당성을 가지므로 영원법에서 유래함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올바른 이성에서 벗어나는 법은 악법이며, 이미 그런 법은 법으로서의 의미는 없고 폭력의 한 형태라고 보아야 할 것"(신학대전, Ia-IIa, q.93, a.3 ad 2;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4년 성탄절 참조)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권력이 하느님께로부터 기원한다고 해서, 국가의 위정자들을 선출하고 국가의 형태를 정하며 권한 행사의 조건들과 한계들을 설정할 권리가 국민에게 없다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권력이 하느님께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에 권한을 행사하는 조건과 한계는 위정자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 설정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민주주의 제도가 아닌가!(레오 13세, 회칙 Diuturnum Illud, Acta Leonis XIIIm 1881, pp.271-272 참조;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4년 성탄절 참조)
20. 공권력의 존재 이유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모인 단체들은 공동선을 위하여 자기 몫의 공헌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 따르는 주요한 과제는 자신들의 권익을 타인들의 요구와 조화시켜야 하고, 이러한 목적으로 자신의 재물과 봉사를 제공하되, 정치 공동체의 위정자들이 정의의 기준에 의하여 정당한 형식과 권한 안에서 제정한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정치 공동체의 위정자들은 완전한 행위의 방법에 의하여 행사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선을 목표로 해야 하며 적어도 선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 공동체의 존재 이유는 공동선의 실현에 있으므로, 이를 실현함에 있어서 공동선의 본질적 요소를 존중하고, 역사적인 현실에 맞도록 입법해야 한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2년 성탄절; 레오 13세, 회칙 Immortale Dei, Acta Leonis xiii, v.1885, p.120 참조)
21. 공동선의 본질적 요소
다양한 집단의 인종적 특성은 공동선의 구성요소로 보아야 함이 확실하다.(비오 12세, 회칙 Sumni Pontificavus, 1937 참조)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이나 특성들만이 공동선의 전체 내용을 채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공동선은 사람의 본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또 그대로 되도록 실현하지 않는다면 공동선은 충분하고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비오 12세, 회칙 Mit brennender Sorge, 1937; 회칙 Divini Redemptoris, 1937 참조)
다음으로, 각자의 직책과 공헌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공동선의 본질상 정치 공동체의 모든 국민은 공동선을 나누어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당국자들은 특정한 집단에 대해 치우침이 없이 모든 이들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 이에 대해 레오 13세도, "공권력은 모든 이들의 공동선을 위하여 세워졌으므로 어떠한 형식으로도 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편익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레오 13세, 회칙 Immortale Dei, 1885, p.121)고 가르친 바 있다. 그러나 때로는 공권력이 그 공동체에서 더 어려운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정의와 공평의 원칙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할 능력이 미약할 뿐 아니라 권리가 침해되어도 이를 구제할 합법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 51-54항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공동선이란 육체와 영혼의 요구를 모두 포함한 사람의 전인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공권력은 공동선을 적합한 수단 방법으로 실현하되, 가치들의 단계를 존중하며, 육체적이고 영적인 선을 증진시켜야 한다.(비오 12세, 회칙 Summi Pontificavus, 1939 참조)
이 원칙은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 선언한 교리와 확실히 합치되는 것이다.(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65항: "공동선이란 모든 사람들이 더 원만하고 용이하게 인격의 발전과 완성을 이루게 하는 사회 생활의 모든 조건들을 뜻한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와 불멸하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이므로 언젠가는 멸망할 현세 생활에서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고 또 완전한 행복을 누리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노력을 다 하여 공동선을 증진시키되, 영원한 구원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공동선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비오 11세, 회칙 '사십 주년', 62항 참조)
22. 공권력의 책임과 개인의 권리와 의무
우리 시대에 있어서 공동선의 증진은 주로 개인들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데 있으므로, 국가 위정자들의 주요한 책임은 이 권리들을 인정하고 서로 조정하며 옹호하고 촉진시킴으로써 각자 자기 의무들을 용이하게 이행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기본 권리들을 보호하고 각자 자기 직책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하는 것은 모든 공권력의 근본적인 책임이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1년 성령강림대축일, 1941.6.1. 참조)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공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침범하는 경우에는 자기 책임을 배반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은 법적 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비오 11세, 회칙 Mit brennender Sorge, 1937참조)
23.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고 보호하는 일
공권력이 짊어져야 할 근본적인 책임 중의 하나는 개인들 사이에 작용하는 사회적 관계를 적절하고 적합하게 조정하고 지도하되 일부 개인들의 권리 행사가 타인들의 권리 행사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다음은 자기 권리들을 보호하면서도 타인들에게 대한 의무들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모든 이들의 권리들이 효과적으로 보호되고 만일에 침해되면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비오 11세, 회칙 Divini Redemptoris;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2년 성탄절, 1943 참조)
24. 개인의 권리를 촉진해야 할 의무
역시 공동선이 요구하는 것은 공권력이 각 개인들로 하여금 용이하게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공권력이 경제, 정치 및 문화 문제들에 관하여 적절하게 활약하지 아니하면 특히 오늘날에 와서는 개인들 사이에 불균형이 생기고 이 불균형이 광범위하게 확산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의 권리들과 의무들은 무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행정관들은 경제 및 사회가 반드시 균등하게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이러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생산 조직의 발전과 더불어 요구되는 근본적인 봉사들은 도로의 건설, 운수 교통, 상하수도, 주택, 공중 위생, 종교 생활의 적합한 협조, 휴식의 편의 등이다. 여기에 정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할 점은 시민들에게 보험 제도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불운을 당하든지, 가정의 부담이 증가하는 경우에도 품위있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것들이 결핍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점이다. 더불어 국가 지도자들이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점은, 노동이 가능한 이들에게는 그들의 재능에 적합한 직업을 알선해 주고, 노동의 보수가 정의와 공정의 기준에 의해서 지불되게 하고, 그들의 사회 생활을 더욱 부유하고 효과있게 하는 중간 단체 설립에 편의를 보아 주고, 끝으로 모든 시민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문화의 혜택을 고루 입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25. 공권력이 잡아야 할 균형
그러나 모든 이들의 공동선이 요구하는 것은 국가의 위정자들이 두 가지의 활동, 즉 한편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조정하고 보호함에 있어서나 또는 촉진함에 있어서 최고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개인들이나 일부 사회 단체들의 권리에 치중하여 그들에게만 편의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촉진함에 있어서도 원만하게 권리들을 행사하며, 무리하게 지장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 국가의 조정 활동이 아무리 광범위하고 사회 각 부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다 할지라도, 국민 각자의 창의성에 대한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도리어 각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보장하도록 전력을 다 해야 한다."(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52항) 이 원칙은 항상 지켜져야 한다. 같은 원칙으로 정치 공동체의 위정자들이 여러 가지 형식으로 노력해야 할 일은 시민들이 사회 생활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용이하게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도록 촉진하는 일이다.
26. 공권력의 구조
어떠한 국체(國體)가 가장 적합한지 혹은 정치 공동체의 위정자들이 입법, 행정, 사법의 직책들을 완수하는 데 어떠한 권력 구조가 가장 적합한 것인지를 단 한 번에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더구나 한 번 내려진 그 결정이 변경됨이 없이 영구하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로서 가져야 할 정부 기구와 권력 구조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그 정치 사회의 역사적 정세를 참작해야 한다.
하여간 국가의 권력 구조가 공권력의 세 가지 기본적 기능에 해당되는 삼권분립의 형태를 취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하는 요구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국가에 있어서는 공권력의 한계와 시행 절차뿐이 아니라 일반 국민과 공직자들 간에 맺어야 할 상호 관계들까지 법적 기준에 따라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국가의 이러한 정치적이고 법률적인 기구들은 기구 자체가 요구하는 복리를 달성해야 한다. 즉, 국가 공직자들은 부닥치는 문제들을 자신들의 직무는 물론 국가의 현 정세에 있어서 가장 적절하고 합치되는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대의 상황은 계속 변천하기 마련이므로, 국가의 입법자들은 직무상 도덕의 기준들, 헌법상의 기준들, 혹은 공동선의 실제 필요들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국가의 행정관들은 법률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관계되는 사실들을 현명하게 조사하여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법관들은 공정하게 어느 편의 압력에도 좌우됨이 없이 정의를 시행해야 한다. 역시 사회의 질서가 요구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나 중간 단체들이 권리 행사 및 의무 이행에 있어서 효과적인 법적 보호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니, 이는 국민들 상호 간이나 국가 공직자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나 동일하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2년 성탄절 참조)
27. 법과 양심
국가의 법률상의 기구가 도덕적 질서와 정치 사회의 발전과 그 수준을 같이 할 때에 공동선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 생활은 변화가 많고 복잡하고 역동적이므로 법적 조치를 아무리 현명하게 숙고해서 규정한다 하더라도 사회의 모든 요구를 위해서는 대개 불충분하다.
여기에서 우선 시민들과 다른 시민들 사이에, 또 다른 시민들과 중간 단체들과 정치 공동체 사이에, 끝으로 같은 정치 공동체의 한 당국과 다른 당국 사이에 개재하는 관계들이 때로는 극히 복잡하고 위험하므로 법률의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만 조정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에 사실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국가의 위정자들이 국가의 규율을 그 자체나 사건들을 위하여 안전하게 수호한다든지, 사회 생활의 근본적인 요구에 봉사한다든지, 현대 생활의 관습에 따라 법률들을 적응시키고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자기 직책의 본질과 공적 의무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하고, 공평무사한 마음과 총명함 그리고 항구한 의지를 갖추어야 하며, 해석한 것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적당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실천해야 한다.(참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4년 성탄절 참조)
이렇듯 법률을 입법하고 집행하며 적용하는 위정자와 공직자들의 양심과 공동선 의식이 살아 있을 때만이 법이 그 자신의 존재 이유인 정치 공동체의 공동선에 봉사할 수 있으며 이를 보호해 줄 것이다.
28. 국가 행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국민 개인들이 국가 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인간 존엄성 본연의 특징에 속한다. 그러나 국가 행정에 참여하는 방법은 각 정치 사회의 발전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행정에 참여함으로써 국민 개개인들에게 새롭고 극히 광범위한 복리의 분야들이 제공된다. 국민들이 국가 공직자들과 빈번하게 접촉함으로써 공직자들은 공동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더 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 공직자들은 한 자리에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복무하게 되므로 그들의 권위가 고루해지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진보에 따라서 교체할 수 있는 방법도 된다.(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2년 성탄절 참조)
29. 현대 사회의 특징 ⓶
이상 말한 사실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바와 같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정치 사회를 법적으로 조직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의 헌장을 간결하고 명확한 용어들로 작성하여 각 국가 헌법에 삽입하거나 보완하는 경향이 있다. 이 국가 헌법에 의하여 국가의 위정자들이 선정되고 그들의 상호 관계들, 그들의 권한 한계 그리고 그들이 직무상 수행해야 할 양식과 방법들이 규정되어야 한다. 끝으로 요구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들 간의 관계들을 권리와 의무의 용어로 표시하는 것이다. 그들 국가 공직자들이 수행해야 할 직책상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보호하고 촉진하는 데 있다.(레오 13세, 사도적 서한 Annum ingressi, 1902=1903, pp 52-80 참조) 오로지 국민 전체의 의사만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할 수 있고 헌법의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통치권이 유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 말한 경향들이 각성된 개인들의 요구라는 것은 뚜렷이 증명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한층 더 자신의 존엄성을 의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 행정에 참여하기를 요청함과 동시에 양도할 수 없고 침해될 수도 없는 자신들의 권리가 국가의 법에 의해서 보호받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국민 개개인들은 국가 공직자들이 헌법의 기준에 따라 선정될 것과 같은 헌법의 한계 안에서 해당되는 직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3부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
30. 국제적 차원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
선임 교황들은 자연법과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 국가 운영의 도덕성 원리에 대하여 가르쳐 왔다. 나는 이제 '국가'라는 용어 대신 더욱 폭넓은 의미로 '정치 공동체'라고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국가들의 수보다 더 많은 민족들이 있으며, 한 국가 안에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는 경우에 다수 민족들이 억압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아직 주권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정치적 단위를 엄연히 이루고 있는 소수 민족들의 정치 공동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국가 안에서 개인들이 서로 평등한 것처럼 인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국제 사회 안에서 정치 공동체들도 서로 평등하다. 그런데 '국가'를 중심으로 한 현실 국제 사회는 대당히 불평등하다. 그래서 나는 정치적으로 평등한 인류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국가' 대신 '정치 공동체'라고 쓰고자 하는 것이다.
선임 교황들이 가르친 국가 운영의 도덕성 원리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서로 작용하는 권리들과 의무들이 엄연히 있으며, 그 국가들 사이의 관계는 진리, 정의, 자유와 활동적 연대 책임의 기준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법이 한 국가 안에서 국민들의 생활 질서를 다스리는 것처럼 국가들 사이의 상호 관계들에 대해서도 자연법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
자연법 사상에 따르면, 한 정치 공동체 안에서나 또는 정치 공동체들의 국제 관계에서나 무릇 권력은 도덕적 질서를 필요로 한다. 권력은 도덕적 힘이다. 만일 국제 사회를 다스리는 권력이 도덕적 질서를 거슬러 행사된다면 이는 권력의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권력이 도덕적 질서를 거스른다면 그 권력은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린 폭력이 되고 만다.(지혜 6,1-6 참조) 그런데 국가를 단위로 한 현실 국제 정치에서는 도덕성을 저버린 폭력적인 권력 행사를 다반사로 하고 있다.
끝으로,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상호 관계들을 조정함에 있어서 권력 존재 이유의 첫 번째인 공동선을 촉진하도록 권력이 행사되어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공동선의 가장 중대한 명령 가운데에는 도덕적 질서를 인정하고 그 질서의 명령들을 위반함이 없이 준수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질서는 창조주 자신이 자연의 질서를 통하여 발표하시고 소멸될 수 없는 문서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기신 도덕법의 확고불변한 반석 위에 확립되어야 한다. 항해하는 이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등대와 같이 도덕법의 원리들은 개인들과 국가들의 항로를 인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새로운 조직을 확립하기 위한 모든 활동과 노력에 있어서 폭풍과 난파로 실패하기를 원치 아니한다면 실천해야 할 종교적이고 안전하며 효과적인 신호들을 그 도덕법의 원리들로부터 반드시 받아야 한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1년 성탄절 참조)
31. 진리 안에서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상호 관계들은 진리에 의하여 조정되어야 함이 원칙이다. 진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인종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모든 정치 공동체들은 자연의 존엄성상으로 서로 평등함을 거룩하고 확고하게 인정해야 한다. 비록 인종이 다르고 소수 민족들로 구성되었다 해도, 어느 정치 공동체든지 존립하고 발전할 권리가 있음은 물론이요, 발전할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방법들도 가질 권리가 있으며, 그리고 그 권리를 획득하고 행사함에 있어서 첫째가는 책임에 대한 권리가 있다. 그 책임이란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자연법에 의거한 도덕 질서를 지키고 공동선을 수호하는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 책임을 준수하는 한, 어느 정치 공동체든지 정당한 권리에 의하여 좋은 명성을 누리고 그에 해당되는 존경을 요구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식, 능력, 총명한 지능, 물질적 자원 등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경험이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많거나 능력이 크거나 지능이 총명하거나 또는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서 타인들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요 타인들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그 사람은 그 뛰어난 능력으로 각자와 모든 이에게 상호 향상을 위하여 협조해야 할 더 중대한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정치 공동체들은 다른 공동체들보다 과학, 문화 및 경제 등이 더 발달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탁월성으로 해서 다른 후진 정치 공동체들을 불의하게 지배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그들은 도리어 민족들의 공동 발전을 위하여 크게 공헌할 의무가 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자연적 존엄성으로 볼 때 동등하므로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존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들도 그 자연적 존엄성을 고려하면 우월하거나 열등한 차별이 있을 수 없으니, 각 국가들은 유사한 조직체로서 그 지체들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편 경험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의미의 존엄성이 조금이라도 침해되는 경우에는 민족들이 부당하게가 아니라 극히 정당하게 민감하다.
최근에 발달되고 있는 사회적 언론 매체에 있어서도 진리는 그 이상의 것을 요청한다. 즉, 이러한 매체들은 각 민족들이 상호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는 이들 매체들이 엄정한 객관성을 지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 정보 질서의 도덕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민족들에게 자기 재능을 발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 언론을 이용하여 진리와 정의를 어겨가면서, 다른 민족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일은 반드시 배격해야 한다.(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0년 성탄절 참조)
32. 정의 안에서
그뿐만 아니라,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들은 정의의 기준에 의하여 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상호 권리들을 인정하고, 또한 동시에 상호 해당되는 의무들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치 공동체들은 존립하고 발전할 권리와 이에 필요한 수단을 얻을 권리가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마땅히 종속적이 아니라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으며 명성과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들은 동시에 다른 정치 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다른 정치 공동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폭력 행위들을 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마치 개인들의 사사로운 관계에 있어서 타인들에게 불의한 손해를 끼쳐가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도모할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정치 공동체들도 다른 정치 공동체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든지 혹은 불의하게 억압하면서까지 자신들의 발전을 기하는 것은 부당하다.(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이 적절하다: "왕국이 정의를 포기한다면 큰 강도단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신국론(De Civitas Dei), lib. IV.c. P.L. 41, 115;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39년 성탄절 참조) 확실히 정치 공동체들 사이에 이해 관계가 상반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은 폭력이나 사기, 기만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경심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마치 개인들 사이에서도 충돌이 있을 때 사실들을 진리대로 숙고하고 상반되는 의견들을 균등하게 조정함으로써 해결하는 이치와 같다.
33. 소수 민족들의 문제
정의의 가치 안에서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문제를 판단해 보자면 소수 민족들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이래로 특별히 나타난 역사적 경향은 정치 공동체들이 단일 민족으로서 한 국가를 구성하려는 경향이다. 이는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지리적 경계와 민족적 경계가 동일하지 못하므로, 여기에 소수 민족 문제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여기서부터 중대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소수 민족의 생활력이나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정책은 정의에 배치되는 중대한 과오라는 것을 명백하게 선언하는 바이다. 만일에 이러한 민족을 전멸시키려고 괴악하게 노력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정자들이 소수 민족들의 언어, 문화, 전통적 풍습, 경제적 지원이나 기업 발전에 효과적으로 공헌하는 일은 확실히 정의로운 일이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1년 성탄절 참조)
여기에 주의할 점은 이러한 소수 민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고심스러운 상태나 혹은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인해서 자기 민족의 특수한 요소들의 중대성을 가끔 과장하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가치들을 소홀히 하고, 마치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은 자기 민족의 공동선을 위하여 이용되어야 한다는 식의 집단 이기주의적인 태도라 할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소수 민족들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공동선을 도모하는 일은 합리적이다. 다른 문화의 전통을 지닌 민족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신적 총명함과 인격 완성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며,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민족에 속하는 가치들이 자기 자신들의 살과 피로 점차적으로 변화되어 서로 유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 민족들이 주변 민족들과 생명의 순환과 같은 유대를 지속하고 이들의 전통들과 문화에 참여하기로 노력하는 한편, 수많은 손해를 초래하면서 여러 국가들의 문화 발전에 지장이 되어 온 불화를 제거하는 경우에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34. 연대 안에서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상호 관계들은 진리와 정의의 기준에 의해서 조정되어야 하므로 생산적 연대 책임과 이에 따른 활동을 통하여 발전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언대 책임은 도처에서 여러 가지 형식의 활동들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보건,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연대 활동이 이루어짐으로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공권력의 존재 이유가 국민들을 자기 나라 안에만 가두어 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들의 공동선을 보호하는 데에도 있으며 이 공동선은 전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 공동체들이 자신의 공권력을 통하여 자기 국민들의 공동선을 도모함에 있어서 적어도 다른 정치 공동체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인류 공동체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서도 상호 간 계획과 수단을 공동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각 정치 공동체의 개별적인 노력으로써는 그 바라는 바 성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극히 주의를 요하는 점은 어떤 정치 공동체들에게만 이익이 되고 다른 정치 공동체들에게는 손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선의 요구를 채우기 위해서 각 국가는 시민들과 중단 단체들이 모든 분야에 있어서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이 지구상에는 인종적 배경이 조금씩 다른 민족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소수 민족의 특성이 다수 민족에 의해서 함부로 동화됨으로써 변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민족들 사이의 거리가 거의 제거된 오늘날에 있어서는 확실히 불합리한 일이다.
그러므로 다수 민족들 간의 교류가 소수 민족들에게 지장이 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여기에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어떤 민족의 사람들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수한 특징들 이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 요소들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으므로, 점차적으로 서로 비슷하게 발전하는 것, 특히 정신적 가치에 속하는 것들은 서로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타인들과 공동으로 일치하여 살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똑같이 인정해야 한다.
35. 인구, 토지 및 자본 간의 균형 문제
우리가 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경작지는 넓은데 주민이 적은 지역이 있고, 경작지는 좁으나 풍부한 천연 자원과 발달된 농업 도구가 구비되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그렇지 못한 지역도 있다. 이러한 불균형 때문에 자본과 인구를 이동하기 쉽게 해 주는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가능한 한 일할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져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큰 고통을 받으면서 자기 지방에서 타지방으로 갈 필요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불편도 겪을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시킬 수 있다.
36. 정치 망명자들의 문제
우리 시대에 고국에서 추방된 정치 망명자들은 대단히 많으며 항상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다. 불행히도 어떤 정부들은 이들 정치 망명자들에게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며, 또한 정책적으로 자유의 권리 자체를 의심하거나 심지어는 완전히 박탈하기도 한다. 이는 올바른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권력의 존재 이유는 공동선의 혜택을 안전하게 누릴 수 있게 하고 자유의 정당한 한계를 인정하며 그 권리들을 완전무결하게 보호하는 것이기 주요 책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망명자들에게도 인격자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자기 나라의 시민권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만으로 망명자로서의 인격적 권리까지 박탈할 수는 없다.
망명자의 인격적 권리들 가운데에서 더 적합하게 자기와 가족들의 장래를 보살필 수 있겠다고 희망하는 나라에 망명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 국민의 참된 공동선이 허락하는 한, 타국 망명자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정부의 의무에 속한다. 인간으로서의 형제적 연대 책임과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원칙에 바탕하여 정치적 망명자들을 돕는 모든 노력들에 대하여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의와 찬사를 표하는 바이니,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 고향에서 타지방으로 이주를 강요당하는 이들의 어려움이 줄어들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이 중요한 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국제 기관들을 통하여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모든 성실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심과 찬사를 보낸다.
37. 군비 축소 문제
이와는 반대로, 경제적으로 더욱 발달한 정치 공동체들에 있어서 최대의 정신적 열정과 물질적 자원들을 동원하여 무서운 전쟁 무기들을 준비해 왔고, 지금도 준비 과정에 있는 현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로 인해서 이러한 국가들의 시민들은 군비 증강으로 인한 과중한 부담을 감당해야 하고,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사회가 발전해야 할 다른 정치 공동체들은 이에 필요한 원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무기 생산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흔히 말하기를, 지금과 같은 정세에 있어서 동등한 무장에 의거해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국가가 군비를 증강하면 이는 계속해서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게도 공연히 군비를 증강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면 이는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게도 동등한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결과로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서든지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는 무서운 폭풍이 압박하는 것과 같은 전쟁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으니, 그것은 전쟁 무기들이 언제든지 가동되어 건물을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면 생기게 될 수많은 살육과 무서운 파괴에 대하여 책임을 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돌발 사건으로도 얼마든지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무서운 전쟁 무기의 위력 때문에 사람들이 전쟁 일으키기를 단념한다 하더라도,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핵무기 실험을 중지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종류의 중대한 위협을 유발시키므로 공포의 원인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비 경쟁을 중지할 것, 이미 준비된 무기들을 서로 동시에 축소할 것, 핵무기들을 금지할 것, 모든 이들이 조약과 상호 효과적인 감시를 이용하여 군비 축소를 달성할 것 등은 정의와 지성과 인간성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비오 12세도, "경제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고 수많은 잘못들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으며 도덕의 혼란을 일으키게 될 세계 대전이 세 번째로 인류 공동체를 전복시키지 않도록 전력을 다 하여 방지해야 한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1년 성탄절 참조)고 충고한 바 있다. 군비를 제거하는 과정이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또한 이러한 과정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인 확신에 입각하지 않는 한, 그리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전쟁 공포와 무서운 전쟁 기대감을 성실하게 협력하여 없애지 않는 한, 군비 증강을 종식시키고 군비를 축소하며 더구나 동시에 군비를 없애는 일은 불가능ㄴ하고 희망이 없다는 점을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최고의 법칙은, 군비 균형이 아니라 오로지 상호 신뢰에 의해서만 민족들 간에 명실공히 참된 평화가 확고하게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모든 법칙은이에 종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목표는 이성이 요구하는 것이고 또한 이는 분명히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일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상호 신뢰에 의한 평화의 목표는 이성이 요구하는 목표이다. 개인들 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들 간의 관계도 역시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과 규칙에 의하여 진리와 정의와 행동적이고도 진지한 협력에 의해서만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가능한 현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러한 평화의 목표는 그 자체로 극히 바람직한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보전되며 나아가 일상적으로도 확고하게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끝으로 이러한 평화는 도처에서 모든 이들에게 즉 개인들, 가정들, 민족들 그리고 전체 인류에게 유식한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 틀림없다. 이에 관한 비오 12세의 충고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 평화로 없어질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이 멸망할 것이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39.8.24. 참조) 그러므로 사회 문제들이 인간의 지성과 존엄성에 합치되어 해결되기까지, 특히 위정자들에게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말도록 촉구하는 일은 우리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혜와 권위로 출중한 인사들이 회합할 때, 정치 공동체들 간의 상호 관계가 국제적으로 더 인간적인 균형을 이루도록 연구하기를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규형은 상호 신뢰, 평화적 목표에 성실한 조약들 그리고 그 조약들을 충실히 준수하는 태도에 입각한 균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는 모든 면에서 검토하고 요점을 명확히 한 다음, 여기서부터 친미하고 확고하고 효과적인 조약들이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활동들이 발전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자 한다.
38. 자유 안에서
국가들 간의 상호 관계들은 자유의 기준에 의하여 정리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듫에 대하여 불의하게 압박하는 행동을 한다든지 혹은 그들 국가들의 내정에 부당하게 간선할 권리가 없음을 뜻한다. 오히려 모든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에게 협조함으로써 각국이 인류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 의식을 더욱 향상시키고 새로운 창안들을 촉진시키며 모든 분야에 있어서 자신들의 자주적이고 협동적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국가들 간의 상호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39. 저발전국들의 발전 문제
모든 사람들은 역사 현상으로 밝혀진 그 역사적 기원으로 보거나 계시로 드러난 구원 목적의 공동체성에 의해 보거나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인류 공동체를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 더 부유한 정치 공동체들은 경제 발전 과정에 있는 정치 공동체들에게 여러 가지 형식으로 협조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157-184항)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러한 권고들이 광범위하게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을 만족스럽게 확인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광범위하에 환영받음으로써 즉 더 빈곤한 정치 공동체들이 가능한 한 빨리 경제를 성장시켜서 그 시민들이 인간 존엄성에 있어서 더욱 품위 있는 생활 수준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들에 대한 원조가 그들의 자유 독립을 해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강조하는 바이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원조를 받는다 하더라도 원조 받는 나라들 자신이 자주적으로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첫째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이 자주성이 과연 지켜지느냐의 여부가 원조와 발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고 인류 공동선까지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비오 12세는 가르치기를, "도덕적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질서는 다른 국가들의 자유 보전, 안전, 영토의 범위 혹은 방위력 등 이 모든 요소를 해치는 것을 절대로 금지한다. 강대한 정치 공동체들이 풍부한 자원과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이 다른 약소 정치 공동체들에게 협력하는 경우에 강대한 정치 공동체들이 기준들을 제정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 약소 정치 공동체들에게 다른 정치 공동체들과 다름없이 모든 이들의 공동선을 제외하고서는 국제적 분쟁이 생겨날 때에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수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민족들의 자연적인 권리이다. 오로지 이러한 권리들이 안전하게 보호되어야만 이들 약소 국가들도 경제를 성장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킴을써 자기 시민들의 공동선과 번영을 적절하게 달성할 수 있다."( 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메시지, 1941년 성탄절 참조)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발달한 정치 공동체들이 저개발 국가들에게 여러 가지 형식으로 원조를 하되, 각 민족의 고유한 도덕적 가치들과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유래되는 특성들을 지극히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그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어떠한 유혹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의식하고,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인류의 보편적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국가들의 한 공동체, 즉 인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 크게 공헌할 것이다."(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174항)
40. 시대의 징표 ⓵
민족들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분쟁이 무력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이다. 이는 대개 현대 무기들의 가공할 파괴력과, 이러한 종류의 파괴적인 무기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재난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시작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미 원자력을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분쟁 해결 수단으로 전쟁에 호소한다는 것은 핵 전쟁을 일으켜 모두를 멸망시키는 일이 될 것이므로 도무지 적합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흔히 무제한한 군비 증강으로 경쟁 국가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만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법칙이라는 듯이 군비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음을 보고 있다. 공포에 의한 막대한 군비 증강은 단순히 경쟁 국가를 압박하려는 계획에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경쟁 국가의 공격 의지를 단념시키기 위함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한 쪽의 군비 증강은 당연히 다른 쪽의 군비 증강을 압박하기 마련이다. 상대방 국가를 믿지 못할 이유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제한적인 군비 경쟁이 벌어짐으로써 경쟁 국가 모두가 군비 증강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인 평화에 어긋나는 명백한 현상이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사람의 본성이 공통적으로 선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적 위기 상황에서도 민족들이 상호 연락하고 협상을 통하여 각 개인들이나 민족들 사이의 관계들이 공포가 아니라 사랑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더욱 완전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특징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성실한 마음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협조에서부터 수많은 선익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4부 인류 공동체
41. 정치 공동체들의 상호 의존
최근에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서로 일치하려는 사람들의 심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세계 방방곡곡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상호 간의 협조를 강화하고 더욱 친밀하게 상호 일치하는 일이 수월해졌다. 이에 따라서 오늘날 재화의 교환, 사상의 교류, 사람들의 왕래가 대단히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 가정들과 여러 국가에 속하는 중간 단체들 간의 상호 관계가 뚜렷하게 증가하였으며, 정치 공동체의 위정자들도 서로 빈번하게 만나고 있다.
이러한 동안에 정치 공동체들 간의 경제 관계도 점차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게 되어, 이제와서는 각 국가 경제들이 하나의 세계 경제를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 가고 있다. 한 정치 공동체의 사회적 발전, 질서, 안전 그리고 평화 역시 반드시 다른 정치 공동체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현상들을 감안하면 각 정치 공동체들이 다른 공동체들과 고립된 채로 이익을 도모한다거나 발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것은 이미 한 정치 공동체의 번영과 발전은 다른 모든 정치 공동체들의 번영과 발전의 결과이거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42. 현재 국제 공권력 질서의 한계
어떤 시대에서도 인류 공동체의 단일성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인류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평등하게 존엄성을 누리는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본성에 기인하는 필요성으로서 인류의 공동선, 즉 인류 공동체에 관련된 공동선이 충분히 보장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몇몇 국가의 고위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인류 공동선을 충분하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기 사절들의 외교 활동, 고위층 인사들의 회담, 혹은 자연법과 민족법과 국제법에 의해 규정되는 법적 수단과 기관들, 즉 협의회와 조약을 이용하여 노력해 왔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와서는 정치 공동체들의 상호 관계들이 크게 변화되었다. 그 이유로서는 우선 모든 민족들의 세계 공동선이 극도로 증대된 데다가 또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제시되고 있는 바, 이는 특히 세계 평화와 안전의 보장과 관련되고 있다. 또한 각 국가들의 위정자들이 법적으로 서로 동등한 입장에 서서 더 적합한 법적 기관들을 창출해 내기 위해서 많은 회합을 열면서 노력하고 있으나 충분하게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선의나 열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권위가 적합한 조직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국제 사회의 현실 속에서는 국가들의 조직과 형태가 발휘할 수 있는 운영력이나 세계 각국들의 공권력이 발휘할 수 있는 운영력이 모든 민족들의 세계 공동선을 촉진시키는 데에 균등하다고 할 수 없다.
43. 새로운 공권력의 필요성
여기에 다시 공동선의 본질적 개념과 공권력의 조직 및 직능을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일치 화합되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도덕적 질서가 인간 사회에서 공동선을 촉진시키기 위한 공권력의 존재를 요청하듯이, 동시에 같은 도덕 질서가 국제 사회에서도 공권력이 공동선을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인류의 공동선은 전 세계적인 규모의 문제들을 제시하므로, 역시 전 세계적인 규모의 역량과 조직과 기관들을 구비하고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약할 수 있는 공권력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도덕적 질서 자체가 새로운 세계적 공권력이 세워져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44. 강제 없이 공동 합의로 세워야 할 공권력
이러한 인류 공동체의 공권력은 전 세계 국가들에 대하여 명령권을 장악하고 인류 공동선을 는히 촉진시킬 수 있는 적합한 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물론 모든 국민들의 전적인 합의에 의하여 실행되어야 하며 강압적으로 추진할 것은 아니다. 여기에 뒤따르는 조건은 이러한 공권력이 효과적으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모든 국가들에 대하여 공평하고 편파심은 절대로 없어야 하며 인류 공동선이 요구하는 바에 대하여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에 이러한 초국가적인 세계 권력이 강대 국가들에 의하여 강제로 지배된다면, 그러한 권력은 인류 공동선을 촉진시키지 못하고 그 활동의 가치나 효력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비록 각 국가들이 경제 성장이나 군비 규모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인류 공동체의 공권력은 각국의 법적 평등성과 도덕적 존엄성을 보호하기에 최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국제 공권력이 이렇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 공동체들이 그 질서에 순응하기를 꺼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반강제로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 결의 사항에서 이탈하여 기권하거나 혹은 결의하더라도 이를 자진해서 실현하지는 않으려는 경향이 그래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45. 인류 공동선과 인간의 권리
각 젇치 공동체들 내부의 공동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인류 공동선에 대해서도 인간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은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임무를 기본적인 임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임무 목표는 인류 공동체 공권력의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서나 혹은 개별 정치 공동체들을 연합시켜 세계적인 범위의 협정들을 제정하고 이용하거나 혹은 각 정치 공동체들의 위정자들이 자기 직책들을 용이하게 완수할 수 있도록 협조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46. 보조성의 원리
각 정치 공동체들 안에서 공권력이 시민들, 가정들 그리고 중간 단체들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는 보조성의 원리에 의하여 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류 공동체 안에서 세계 공권력이 각 국가들의 공권력과 맺는 관계도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 지당하다. 이러한 공권력의 임무는 인류 공동선의 존재 이유상 생기는 문제들, 또는 경제, 사회, 정치 및 문화와 관련된 문제들을 검토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이른바 최고로 중대한 문제들이 극히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더욱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각 정치 공동체들의 위정자들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기에는 극히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 공권력의 임무는 다른 정치 공동체들이 자기 권한으로 실행하는 활동들을 제한하거나 더군다나 대리하는 데 있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서는 보조적인 그런 활동들이 자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촉진함으로써 전 세계에 있어서 각 국가의 공권력뿐 아니라 각 개인들과 중간 단체들이 더 안전하게 자기 직무들을 완수하고 자기 의무들을 이행하며 자기 권리들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 있다.(비오 12세, 가톨릭 액션 젊은이들에게 행한 훈화, 1848.9.12. 참조) 이것이 인류 공동체에서 세계 공권력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할 보조성의 원리이다.
47. 시대의 징표 ⓶
모든 이들이 아는 바와 같이, 1945년 6월 26일에 국제 연합이 창설되었다. 그 산하에는 여러 국가들에 의하여 임명된 성원들로 구성된 국제 기관들도 설립되어 전 세계적으로 수행해야 할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및 의료에 관한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 연합의 기본 목적은 국민들 간의 평화를 유지하고 확립하며 그들 간에 평등, 상호 존경, 인간 활동 그리고 모든 분야에 있어서 광범위한 협조의 원칙에 입각한 우호 관계들을 촉진시키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국제 연합을 통하여 수행된 가장 중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1948년 12월 10일에 총회에서 승인한 세계 인권 선언이었다. 그 선언의 서론에서 모든 국민들과 국가들에게 요청한 것은 그 선언에 기록된 인간의 모든 권리들과 자유들을 실제로 인정하고 안전하게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 선언의 어떤 조항들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찬동하기에 덜 적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럴지라도 이 선언은 인류 공동체의 합법적인 정치 조직을 향하여 한 단계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선언도 사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성대하게 인정하고, 각 사람들에게 진리를 자유로이 탐구할 수 있는 권리, 도덕의 기준을 따르고 정의의 의무를 이행하며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생활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른 권리들도 시인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국제 연합이 더욱 발전하여 산하 조직들과 기관들이 그 광범위하고 숭고한 임무에 적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한 조속히 국제 연합이 인간의 권리들을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리들은 직접 인간의 자연적 존엄성에서부터 유래하므로 보편적이고 불가침적이며 양도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자기 국가의 공적이고 사적인 모든 일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의 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문제까지를 더욱 열성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세계 인류 공동체에 속하는 엄연한 한 구성원임을 더욱 의식하고 있어서 국제 연합의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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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 개인들과 공권력의 관계
건전한 사회 질서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개인들 상호 간의 질서를 관찰한 요한 23세 교황은 이제 이에 바탕하여 정부 공권력과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판단한다. 이 정치 윤리에 있어서 개인들은 누구나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아 인간의 존엄성을 이룩해야 한다는 인격적 책임은 공리에 속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 하는 계시 진리를 믿는 신앙에서 직접 파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의무와 권리가 개인들에게 주어져 있다. 정부 공권력은 개인들이 이 의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가. 권력이란 무엇인가(19항)
권력 자체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모든 사회가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권력이 반드시 요청된다. 권력의 이러한 신적 기원에 따라서 권력은 도덕적 권위를 가지는 한편, 그게 걸맞게 도덕성에 입각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각성한 현대 이전까지는 그 신적 기원을 주장했던 왕정은 권력 행사의 도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 왔다. 이 같은 왕권신수설에 반대하여 생겨난 사회계약설은 권력 행사의 도덕성을 앞세운 나머지 권력의 신적 기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권력의 신적 기원과 도덕적 행사의 당위성을 균형있게 가르친다.
신적 기원에 바탕하여 도덕적 행사를 요건으로 하는 공권력은 사회의 각 개인들이 인격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려는 이 봉사야말로 공권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데, 이를 공동선이라 한다. 이렇게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에 대한 봉사야말로 권력을 설정하신 하느님의 뜻이요 권력이 반드시 견지해야 할 도덕성이다. 그래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에게만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위정자는 권력에 관한 헌법 규정에 따른 권한만 행사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위정자들이 그 권한을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한 봉사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처벌 공포로 위협하거나 보상 수단으로 악용한다면 이는 정당한 권한이라 볼 수 없고 그저 강도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공권력이 정도를 벗어나서 폭력을 행사한다면 국민은 하느님의 뜻과 양심에 입각해서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가톨릭 정치 윤리에서는 국민 저항권을 인정한다.
나. 권력의 목적: 공동선 구현(20-25항)
요한 교황이 거듭 강조하듯이, 권력의 존재 이유는 인간 존엄성을 위한 공동선을 구현하는 데 있고, 권력이 봉사해야 할 공동선의 본질은 사람들의 본성적 질서를 충족시켜 주는 데 있다. 그리하여 개인들이 본성에 따라 살아가며 인간의 존엄성을 이룩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 안에서 자기 본성을 충족시키려는 개인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을 이룩해야 할 개인들과 책임과 의무를 촉진시키는 것이 공동선의 본질이다.
공권력은 공동선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하여 세 가지 의무를 진다. 첫째, 각 개인들의 권리를 조정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둘째, 각 개인들이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촉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셋째, 모든 이들의 권리가 외적인 요인에 의하여 침범될 경우 완전하게 회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하여 공권력은 개인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고 이는 정치사법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도로 건설, 운수 교통, 상하수도 건설, 주택, 공중 위생, 종교 생활의 적합한 협조, 휴식의 편이 등과 함께, 보험 제도의 운영, 직업의 안정과 적정 임금 보장, 중간 단체 설립의 편이와 문화적 혜택을 도모하는 일 등도 공권력의 의무에 속한다.
공권력이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한 봉사를 하는 데 있어서 취해야 할 균형이 있다. 그것은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 창의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또한 개인들의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도록 촉진하는 것 가이에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다. 공권력의 구조와 공직자의 책임(26-28항
공권력의 책임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 어떤 구조가 적합한지는 각 국가의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행정과 입법과 사법의 기능이 상호 간에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형태가 사람의 본성에 가장 합치되는 것이라고 요한 교황은 판단하고 있다. 이를 민주적 정치 질서라고 한다.
국가의 공직자들은 공권력이 공동선 구현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본연의 직무이다. 특히 입법부의 공직자들은 공동선의 필요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행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사법부의 공직자들은 공정하게 정의를 시행해야 한다. 모든 국가 공직자들은 양심과 법 질서에 따라서 자신이 맡은 직책의 본질과 공적 의무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공정무사한 마음과 총명함 그리고 항구한 의지를 갖추어야 하며, 직책상 의무라고 해석된 것을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라. 현대의 특징(29항)
요한 교황은 국가 공권력이 국민들의 공동선을 구현하는 봉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현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관찰하고 있다. 그 첫째는 기본적인 인권을 인권 선언 등의 형식으로 명시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다. 둘째는 헌법이 제정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국가 보장해야 하는 국민 개인들의 기본 권리를 명시함은 물론, 위정자의 선출 방식, 권력 구조, 권한의 한계 그리고 권한을 발동하는 양식을 규정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셋째는 헌법과 법률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공직자들의 책임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통해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의식하고 있으며 이것이 공권력에 의해서 보호받기를 요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가 공직자들이 헌법의 기준에 의하여 선출될 것과 헌법의 한계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현대의 뚜렷한 특징이다.
2. 정치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
국제 사회에서 수립되어야 할 국가 간의 관계에 관하여, 이는 마치 국가 안에서 개인들이 이루는 질서와 비슷하다고 요한 교황은 30항에서 가르친다. 한 국가는 국제 사회 안에서 자연법적 존엄성인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주권에 바탕한 도덕적 질서에 따라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 존재한다.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권리도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주어져 있는 것이며,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의무는 국제 사회에서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요한 교황은 이를 진리와 정의와 자유의 질서로 요약한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 교황이 '국가'라는 용어 대신에 '정치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금의 국제 사회가 평등한 인류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지향하면서 이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권을 보유한 국가들보다 더 많은 민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소수 민족이라고 불리우는 이 정치 공동체들은 한 국가 안에 공존하거나 또는 여러 국가들 속에 흩어져 살면서 국가를 이루고 있는 다수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정치 공동체들은 동일한 민족성에 입각하여 현실적인 정치 단위를 형성하고 있다.
소수 민족들의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고 있는 요한 교황은, 국제 사회가 평등한 인류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가 존중되고 국제적인 공동선을 구현하도록 강조하는 한편, 더욱 근본적으로는 아직 주권 국가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현실적으로 정치적 단위를 형성하고 있는 정치 공동체들의 기본적인 평등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평등한 정치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인류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아직도 국제 사회의 정치적 현실에서는 국제적인 공동선보다 국가 이익을 앞세우는 일이 압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이 같은 국제적인 공동선과 인류 공동체를 향한 평등 질서가 요한 23세가 이 회칙을 통해 가르치려는 정치 윤리의 골자이다. 이제 이 골자를 진리, 정의, 자유라는 가치에 따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가. 진리의 질서(31항)
인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하여 지금의 국제 사회에서 수립해야 할 진리의 질서는 평등을 구현하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어떠한 인종 차별도 없어야 한다. 또한 모든 국가는 평등해야 마르로 국력의 차이에 의해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국제적인 언론 매체들도 이 점에 유의하여 민족 상호 간의 이해 증진에 노력해야 하며 지배와 차별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 정의의 질서(32-37항)
인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하여 지금의 국제 사회에서 수립해야 할 정의의 질서는 상호 존중하고 평화를 애호하며 서로 연대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서 국가 간에 발생하는 권리와 의무를 존중해야 하며 다른 국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피해야 한다. 특히 군사력에 의한 분쟁 해결 방식은 배격해야 한다. 요한 교황은 특별히 소수 민족들과의 문제에 있어서 정의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 공동체들의 평등 원리에 입각하여 인류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사회의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하여 국가들은 여러 분야에서 연대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보건, 스포츠 분야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있어서도 다른 국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토지와 인구의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연대 활동이 공동선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한 국가 안에서 그 나라 정부의 위정자와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망명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국제 사회의 공동선에 입각하여 보호해 주어야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군사력의 균형이다. 군비 경쟁은 국제 사회의 공동선에 어긋나는 해악이다. 군비 경쟁은 시급히 종식되어야 하며, 동시에 조약과 상호 감시 기능으로써 군비 축소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 사회의 공동선은 평화를 요구하며 이 평화는 군비 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호 신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 자유의 질서(38-39항)
인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하여 지금의 국제 사회에서 수립해야 할 자유의 질서는 국제적인 공동선을 구현하는 책임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있다. 모든 국가와 정치 공동체는 지금의 국제 사회가 인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제 공동선을 구현해야 할 책임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어느 국가도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 오히려 국제 협력을 늘려야 하며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국가들에 대한 원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 원조가 원조 받는 나라의 자주성을 해치는 지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원조를 받는 해당 국가 자신이 국가 발전의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라. 시대의 징표(40항)
현재의 국제 현실은 아직도 국가 간에 상호 신뢰가 구축되지 못하고 공포에 입각한 군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신은 국제 사회의 분쟁이 무기로써가 아니라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인류 공동체(41-47항)
국제 사회에서 국가들이 이루어야 하는 관계와 질서는 국가 이기주의의 현실을 탈피하여 인류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요한 교황이 판단하기에 이것이 자연법의 정신이요 공동선의 요구이다. 실제로 국가들은 세계 안에서 상호 의존하고 있고 서로 연대하여 국제적인 공동선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 간에 그리고 더욱 소수 민족들로 이루어진 정치 공동체들에 대해서까지도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가의 권리도 의무 때문에 주어져 있는 것이요 의무의 본질은 국제 사회의 공동선과 평화를 이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의 국제 조직인 국제 연합은 국제 공동선과 인류 공동체를 보장하기에 충분치 못하다고 요한 교황은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각국의 법적 평등성과 도덕적 존엄성을 보호해야 할 국제 연합의 각 기관들이 강대국들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세계 공권력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제 연합을 세계 공권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들 사이에 보조성의 원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비록 아직 세계 정부는 아닐지라도 장차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을 수행할 공권력으로서 요청되는 국제 연합이 국제 공동선과 인류 공동체 건설의 책임을 독차지해서는 안 되고 국가들에게도 보조적인 책임을 인정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연합을 비롯한 국제 기관들의 책임은 국제 공동선 구현에 있어서는 보조적인 국가들의 국제적 연대 활동을 촉진하고 그에 필요한 환경을 조정하는 데 있다. 사실 강대국들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감안하면 요한 교황이 가르치는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보조성 실현 요구는, 아직 세계 공권력으로서 불충분하다고 보여지는 국제 연합에 대한 격려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강대국들과 소수 민족들의 정치 공동체들에게도 강대국들의 이기주의에 맞서서 국제 공동선과 인류 공동체를 위한 책임을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뚜렷한 시대의 징표는 국제 연합이 세계 인권 선언을 제정한 것이다. 요한 교황은 국제 연합이 더욱 발전하여 국제 사회의 공동선을 구현함으로써 인류 공동체를 앞당기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러한 희망이 국제 사회에서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이것이 인류 역사가 하느님 나라에로 진보하고 있다는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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