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날씨가 더울듯 싶습니다.
물난리가 난 중부지방에 비해선 이곳 남쪽은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오늘 야근하면 내일은 윗쪽으로 올라갑니다.
처가쪽의 모임이 있기 때문이지요.
월요일엔 또 비가 온다는데....좀 찝찝합니다.
2년에 한번씩 모이는데 이번에는 충북 제천 쪽이랍니다.
둘째 동서 고향이 그 곳이지요.
구미에 들러 아내를 태우고 올라갈 예정입니다.
내가 심근경색으로 입원을 했을 때 사표를 내고 구미로 올라오지 않는다고
아내가 많이 토라졌었어요.
나도 한동안 구미에 가지도 않았었고.....참 속 좁은 남편입니다, 제가.
병원에서 퇴원한 지 한달 정도 되었나요.
스크린골플 한 게임 하고 있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더군요.
"컴퓨터가 시원찮아서 집에서 학교 잡무를 처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에효......
나이가 한 살 차이인 아내는 화가 나면 경어를 씁니다.
보통 때는 친구처럼 말을 트고 편하게 사는데....
아직도 화가 안풀렸다는 거지요.
"알았어, 전자상가에 가서 조립컴퓨터 한 대 사서 올라갈게."
그날과 다음날이 휴무라서 그렇잖아도 구미로 올라갈까 어쩔까 했는데
올라갈 구실을 만들어주더군요.
그래서 스크린골프는 나인홀로 중간에서 끝내고 명륜동 컴퓨터도매상가로 갔습니다.
쓸만한 사양으로 33만원에 컴퓨터를 한대 샀습니다.
조립하는데는 30분도 안걸리지요, 소프트웨어 까는 것까지.
그렇게 불통이던 오고가고를 해금하고 벌써 석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한달에 한두번씩 구미를 갔었지요.
그런데......내가 뭘 쓸려고 하다가 이런 신변잡담으로 흘렀더라.....아 참 나도 치매가 오는지, 원.
음....그렇지 제천....이란 동네 이름에 아득한 시절의 배형(裵兄)이 생각나서
군대시절의 이야길 한번 하려다가 옆길로 빠졌네요.
이러니 제 졸문이 만연체로 흐르고 양만 많아지나 봅니다.
1976년 정도 되었나요....그 때가.
DMZ안의 GP에서 근무하다가 휴가를 다녀오는 바람에 교육대대의 의무실에 근무할 때였어요.
그땐 지대라고 불렀는데...의무대 지대.....
그기서 배상병을 만났지요.
나인 나보다 서너살 위의 제천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시립대를 졸업하고 입대한 사람인데 유들유들한 성격이었지요.
왜....그냥 실실 잘 웃는 타입있잖아요.
군 입대도 나보다 한 석달 고참인데 내가 자기를 배형으로 불러주면 되게 좋아했어요.
그런데 배형은 장교도 아니면서 부대에 출퇴근을 하더군요.
부대 인근에 방을 하나 얻어놓고 술집아가씨와 동거생활을 하는 거지요.
위생병은 교육대 소속이 아니고 의무대의 파견병이니까 통제가 거의 없었어요.
더구나 최전방의 교육대는 곧 전방부대와 교대할 입장이라 자기들 업무에 바빴지요.
거기다가 배상병이 보통 요령꾼이 아니라서 부대에선 안 통하는데 없더군요.
나도 그 아가씰 두어번 봤는데...꽤 괜찮게 생긴 여자였어요.
흠....
그 술집의 다른 아가씨와 나를 연애 한번 시켜주겠노라고....배상병이 은근히 말하더군요.
헉....난 그때까지 숫총각이었는데...그래서 고사를 했지요.
실은 그 여자가 배상병에게 제의를 했다나....어쨌다나....
아마도 배상병 지말이었겠지요.
아니면 그 여자가 나도 돈많은 집 아들인 줄 알고 같은 술집여잘 연결시켜주려고 했거나.
마음이 통해야지 그냥 수컷으로의 그건 좀 그랬어요.
더구나 제가 술을 마시지 않는 체질이라서 술집에 갈 일도 없고요.
눈 질끈 감고 한번 해버릴까 하다가 휴가갔다 와서 성병으로 의무대를 찾는 청춘들이 생각났습니다.
근화제약의 군납 항생제 주사 참 많이 놓았었지요.
그런데 배상병은 여자와 동거생활 하는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집에서 돈을 송금해주는 듯 싶었는데...어느 날 그 현장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부대 앞에 모란상회란 잡화점이 있었습니다.
그집 딸이 이름이 모란이었어요.
고등학교를 다니던, 이름처럼 예쁘장한 소녀였지요.
그 모란이라면 내가 마음이 혹했을텐데.....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 집 아저씨는 명찰도 새기고 이것저것 못하는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말투는 이북 사투리를 쓰는 분이었어요.
그 가게에서 배상병이 제천으로 전화를 하는 겁니다.
"엄마, 돈이 다 떨어졌어요."
"........................."
"아껴 쓴다니까...."
"........................."
"글쎄 이번에도 내가 잘못하는 바람에 민간인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니까요."
중간에 저쪽에서 하는 말은 하나도 안들렸는데
아마도 자기가 의무대에서 실수를 해서 민간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려니 돈이 필요하다....뭐 그런 통화.
언제는 군의관 롤렉스 시계를 지가 차고 간성읍에 나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하고...
그렇게 뭔가 구실를 엮어서 집에서 돈을 송금하게 하는 거지요.
요즘도 그런 애들이 있다더군요.
포병인데 포신을 잃어버려서 물어내야한다고 5백만원 보내라고 하고.
정말인지 아닌진 모르지만 집에선 또 돈을 보내준다네요....허 참.
그런데 그게 한 두번이 아니고 돈도 수월찮으니 집에서 당연히 껄끄러운 반응이 있을 수 밖에요.
배상병이 뭐라뭐라 중얼중얼 하더니 갑자기 고함을 꽥 지릅니다.
"통장에 있는 그 돈 다 뭐할거요??!!.....아들이 지금 힘든다는데..."
이러면서 전화길 꽝 놓더군요.
신기하게도 며칠 후에 돈이 송금되어 왔고
배상병은 또 한달 그 아가씨와의 동거생활을 연장하더군요.
며칠 후 나는 GP로 다시 복귀하고 그 후론 그 쪽 부대엔 가 보질 못하고 제대를 했습니다.
내일 제천엘 가면 둘째 동서에게 한번 물어볼랍니다.
혹시 누구누구를 아느냐고....
그 시절에 제천에서 자동차운전학원을 한다고 했으니 혹시 알지 모르잖아요.
나이가 엇비슷하니 작은 소도시엔 이름만 들먹이면 대충 아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혹시라도 지금 만난다면.....엄청 반갑겠지요?
그 씩 웃는 웃음은 아직도 여전한지....
내 젊은 날, 그리운 그 시절의 사람들입니다.
이제 늦둥이 아들이 머잖아 군대를 가겠지요....
세월이 유수처럼 흘렀습니다.
돌아보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내 아들은 군대에서 어떤 추억을 엮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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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비교적 오래 되지 않은 글입니다.
그래도 수년이군요.....계절도 안맞고.....아들 녀석 제대하고 복학한 지도 2년이니까....
첫댓글 ㅎㅎ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열리고 동공이 커집니다.
ㅎㅎㅎ
제천에서 꼭 배형을 만나
묵은 정을 나눌수 있기 바랍니다.
꼭 만나지시길 저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