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의 달'에
해담 조남승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입하(立夏)가 지나자 연못가의 창포가 꽃대를 올려 환한 미소로 눈길을 끌고, 탐스럽도록 활짝 핀 부귀(富貴)의 모란꽃이 송춘영하(送春迎夏)의 오월을 더욱 아름답고 향기롭게 한다. 또한 색색의 장미화가 만발한 정원엔 사랑을 속삭이며 거니는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어 꽃보다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였던가! 신록이 창창(蒼蒼)한 오월이 되면 온 천지에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이렇게 생기(生氣)가 충만한 오월이 되면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들이 모여 있어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게 된다.
한 가정을 이루는 가족관계의 구성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남녀가 결혼을 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음으로서 시작된다. 이렇게 가정을 이룬 두 부부사이에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두 사람은 부부인 동시에 부모라고 하는 막중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간다. 이렇게 한 가족을 이루는 부부와 자녀와 어버이를 상징하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오월에 모두 이어져있다. 이래서 오월을 가정의 달이요, 청소년의 달이라 일컫는다.
가정은 어머니란 이름 못지않게 포근하고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함을 풀 수 있는 안식처이자, 사랑과 행복의 보금자리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도 급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삶이란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잡다한 일들을 처리해내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바쁘고 힘겹기만 하다. 때로는 어려운 일들과 복잡한 난관을 극복하고 헤쳐 나가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해결책을 찾느라 고심에 고심을 하기도 한다. 이토록 자신의 희망과 꿈을 향하여 하루하루를 분투(奮鬪)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을 편히 쉬면서 힐링(healing)할 수 있는 일상적공간이 바로 가족들이 있는 가정이기에 가정이란 생각만 해도 마음의 위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하루하루의 삶을 되돌아보고 또 내일을 내다보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삶의 가치실현을 위해 희망의 꿈을 아름답게 그려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곳이다. 그래서 가정은 인생에 대하여 사색해 볼 수 있는 안정되고 고요한 공간이어야 한다. 또 가정은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갖가지 근심과 걱정스러움이 눈 녹듯 사라지고 기쁨으로 전환될 수 있는 안락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애정과 신뢰의 공동체인 가족들끼리 서로의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주고, 마음이 아플 땐 서로 위로해 주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랑이 충만한 위안의 터전이어야 한다. 따라서 가정은 항상 포근하고 따뜻해야 하며 사랑의 향기가 가득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가정은 조상의 얼과 혼이 자손에게 계승되어 가족의 역사가 창조되고 지속되어지는 가족사(家族史)의 현장으로서 숭조효친정신(崇祖孝親精神)이 깃들어 있어야한다.
그럼에도 매년 가정의 달이 되면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가족 간에 발생되고 있는 슬프고도 충격적인 뉴스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느 가정이나 가족들끼리 다정하고 위트(wit)있는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어지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일상적인 말투가 퉁명스럽거나 상대의 말꼬투리를 잡아 트집을 잡게 되면 가족 간에 대화가 단절되어갈 수밖에 없다. 가족 간에 진솔한 대화가 없으면 오해가 깊어지게 되어, 서로가 서로의 눈길을 피하는 그야말로 사랑과 정이란 하나도 없는 호적법상의 가족이요, 생물학적 가족이 되고 만다. 이렇게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무정(無情)하고 냉랭한 가정 분위기가 장기간 지속되어 점점 악화되어 가다보면, 안타깝게도 가정이 해체되어버리는 극한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화초도 정성의 손길로 물을 주며 가꾸지 않고 사랑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향기를 잃고 시들어버리게 되고 만다. 가정역시 가족 간에 따뜻한 정과 사랑이 없다면 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가정에 어린자녀들이 있다면,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할 어린 자녀들을 심한 학대에 의해 생명까지 위급하게 만드는 반인륜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비정한 부모들이 있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부모들의 이혼과 재혼에 의한 의붓아버지나 의붓어머니의 가정, 외부모인 결손가정, 부모들의 건전하지 못하고 비틀어진 사고에 의하여 불화가 상존하고 있는 가정, 부부간의 성격과 이상이 전혀 맞질 않아 의견충돌이 끊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처럼 가정이 화평해야 모든 일이 잘 된다. 한가정이 평온하려면 제일먼저 부부의관계가 원만해야 하고 화목해야만 한다. 부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두 사람의 자의적인 선택과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애와 결혼은 엄연히 다르다. 연애는 다분히 감성적일 수 있겠지만, 결혼에 의한 부부는 장차 어린 자녀의 부모가 되어 가족을 보살피고 이끌어가야 할 갖가지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는 엄중한 관계이다. 따라서 순수한 이성간의 친구나 단순한 연애의 상대가 아닌 결혼의 상대자를 선택할 때는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그래서 배우자를 결정할 때는 사전에 인생의 경험이 많고 배우자와 한 가족이 될 부모의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창 연애를 할 때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나중에 문제가 될지도 모를 단점을 찾아보지 못하고 모든 면에 있어서 그저 좋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자손만대(子孫萬代)를 이어갈 가정의 역사가 시작되는 부부의 만남이 잘 이루어져야 사회적 기초집단인 가정이 건강하고 화평해질 수 있다. 건전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유지되어나갈 때만이 국가의 발전과 인류사회의 번영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는 선량한 아내를 만나야 하고 아내는 건실한 남편을 만나야하며, 시어머니는 착한 며느리를 만나고 며느리는 어진 시어머니를 만나야 한다. 또 가정이 평안화락(平安和樂)하려면 무엇보다도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야 한다. 부부가 그냥 단순히 사랑만 한다고 하여 금실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금실지락(琴瑟之樂)을 누리려면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이상과 가치가 한결같아야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한 방향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곳을 향하여 근면의 손길을 맞잡고 성실히 걸어가야 한다. 만약 서로의 이상과 취미가 다르다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뜻을 뒤로하고, 상대의 뜻에 따르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남녀가 정열적인 사랑으로 처음 만났을 땐,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부부의 인연이 맺어지고 나면 자녀의 출산과 교육 등으로 바쁜 나머지, 그 꿈같은 신혼의 달콤함은 그리 길게 향유되지 못한다. 오히려 두 사람 앞에 펼쳐지는 복잡한 일들로 인하여 의견충돌과 다툼이 생기게 된다. 그럴 땐 마음의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서로가 지혜롭게 인내할 줄 알아야 하며, 다툼이 있은 후엔 화를 쉽게 풀어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그렁저렁 해를 거듭하여 부부생활을 이어가다보면,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와인이 숙성되어가고 김치가 익어가듯 부부의 정도 더욱 깊게 맛이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부부는 그저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도 잠간일 뿐,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고 기운이 없어지게 되면 오직 서로가 의지하고 위안을 받으며, 노년의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빠르게 닥쳐오고 마는 게 인생이다. 결국 서로가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부부라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부부와 가족들 간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하여 건강한 가정을 유지되게 하고, 건전한 사회문화조성을 위하여 예로부터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윤리강령이 존중되어 왔다. 이는 중국 전한(前漢)때의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란 사람이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교리를 기본으로 한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정리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대하여 임금과 신하를 논하는 봉건시대의 덕목에 불과한 것으로서, 현시대에 부합되지 않는 고리타분하고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폄훼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군신(君臣)관계를 국가와 국민의 관계로 대체하여 해석을 새롭게 해본다면, 현대사회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사회윤리의 강령으로서 아주 좋은 덕목(德目)이란 것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 노인소외화현상이 심화되어가면서, 효(孝)를 바탕으로 하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기본으로 한 경로사상(敬老思想)의 실천적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삼강오륜과 같은 전통적인 윤리강령을 봉건적 잔재라고 쉽게 무시해 버리기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생활윤리의 덕목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 그 내용을 지키고 실천하는데 힘써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대하여 잘 알고 있겠지만 다시금 그 뜻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서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여기서 강(綱)자는 벼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벼리란 그물 위쪽의 코를 꿰어 오므렸다 폈다하는 줄로서 벼릿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벼릿줄이 끊어진다면 그물의 존재가치이자 목적인 고기를 잡는데 필요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그리고 오륜은 오상(五常) 또는 오전(五典)이라고도 하며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서,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父子有親/부자유친),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가 있어야(君臣有義/군신유의)하고, 남편과 아내는 분별 있게 각기 자기의 본분을 다하여야(夫婦有別/부부유별)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長幼有序/장유유서)하고, 친구 사이에는 신의를 지켜야(朋友有信/붕우유신)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장유유서(長幼有序)는 가정과 사회생활에 모두 적용된다. 집안에서는 형제간에 위아래를 지키는 우애를 말하고, 일반사회에서는 연장자와 연소자, 그리고 직장에서의 상위직과 하위직에 있는 사람 사이에 지켜야할 질서와 예(禮)를 말한다.
건전한 가정과사회를 위한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윤리강령을 생각하다보니, 관자(管子)라는 책의 맨 처음에 있는 목민편(牧民篇)의 사유(四維)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사유(四維)에 대하여 논하기 전에 관자(管子)라는 사람의 자신에 대하여 대강 살펴보고자한다. 관자는 그 유명한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성어의 주인공으로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각국의 정세를 꿰뚫어 보면서, 주역에서 말하는 수시변통(隨時變通)을 기본으로 그때그때 국제적 정세변화에 적절히 대응을 잘하였던 사람이다. 이렇게 국제외교에 능숙하고 경제를 중시한 대단한 실용주의적 정치가였던 관자(管子)는 당시 왕도정치론을 내세우며 부민(富民)을 중시한 유가(儒家)와, 법치주의를 주장하며 부국(富國)을 우선시하였던 법가(法家)와는 결을 좀 달리하였다.
우선 정치적으로 법치(法治)를 기본으로 하되, 무엇보다도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였고, 경제적으론 부민(富民)과 부국(富國)을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생각지 않고 부민(富民)을 통한 부국(富國)을 추구하였다. 관자의 이러한 정치와 경제의 사상은 정치가이면서 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인 아담스미스(Adam Smith)가 “개인의 이익추구행위는 자기 자신의 이익은 물론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켜 결국 국부(國富)를 이루게 된다.”는 국부론(國富論)과, 근대 일본경제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한때 일본경제계의 거장이었으며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이란 저자로 유명한 ‘시부사와 에이치’가 “개인의 부(富)에 대한 열망이 국가적 부(富)의 축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관자는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마치 목자(牧者)가 가축을 기르는 것에 비유하여 정치의 근본원리를 목민(牧民)이라 하였다. 방대한 관자의 사상 중에서 맨 앞의 목민편(牧民篇)에 사유(四維)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관자는 사회적 윤리를 지키기 위한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이라는 강령(綱領)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가존립에 필요한 네 가지의 사유(四維)라고 하는 강령이 있다고 말하였다.
관자는 사유(四維)에 대하여 말하기를 “나라에는 네 가지 강령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가지가 끊어지면 위태로워지며, 세 가지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가지가 끊어지면 망한다. 기우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으며, 뒤집어지는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으나, 망한 것은 다시 일으킬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네 가지 강령이라고 부르는가? 첫째로 예(禮), 둘째는 의(義), 셋째는 염(廉), 넷째는 치(恥)이다. 예(禮)란 절도를 넘지 않음이고, 의(義)란 스스로 나아가기(自進/자진 : 스스로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벼슬에 나아가려고 하는 것)를 구하지 않음이며, 염(廉)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이고, 치(恥)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음이다.”라고 하였다.
또 관자는 같은 목민편의 사순(四順)이란 글에서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고 하였다. 관자의 학문이 이렇다 보니 실용주의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도 관중의 사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래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란 책의이름도 관자의 첫 번째 편명(篇名)인 목민(牧民)을 인용(引用)하기에 이른 것이다.
누구든 사람이라면 예(禮)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되겠지만,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게 인간이고 보니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결례(缺禮)와 무례(無禮)를 일삼는 상식 없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 의(義)와 불의(不義)가 상존하는가 하면 염치(廉恥)없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禮)와 의(義)를 기본으로 하여 염(廉)을 지키고 치(恥)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도태되어 결국 밀려나고 말았기에 인류의 문화가 발전되어 올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예의염치가 없는 무도(無道)한 사람들이 세상을 판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나라는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인간이란 기본적인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결백하고 정직한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모름지기 결백하고 정직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곧 염치(廉恥)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 세태를 살펴보면 염치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개탄스럽기만 하다. 특히 국가조직에 몸담고 있는 고위층 인사들이 예(禮)와 의(義)를 지키지 않고 염(廉)과 치(恥)까지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까지 염치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실을 지켜보노라면 관자(管子)가 말한 대로 나라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의 강령 중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몇 가지가 끊어진 것일까라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진정 이 나라가 일으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네 가지의 강령이 모두 다 끊어져버려 결국 망하게 되고 만다면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한낱 필부(匹夫)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까지 나라의 걱정스러움으로 밤잠을 편히 이룰 수가 없으니, 국가의 고위층이나 정치에 몸담고 있으면서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고심이 크고 많을까?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혼탁한 세태에도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니, 아직 이 나라가 완전히 망하진 않을 것 같다는 위안을 갖게 되기도 한다. 4선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3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한 김영환(金榮煥) 전 국회의원이 “작금에 민주화의 퇴행, 부패의 만연, 특권과 반칙의 부활을 지켜보면서 과거의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위선과 변신에 대해 깊은 분노와 연민의 마음도 갖게 되었다.” "민주화가 후퇴를 넘어 깡그리 무너진 지금,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자들이 벌이는 위선과 후안무치를 어찌해야 하나."라며 비판과 함께 탄식을 하였다.
또한 "부끄럽고 부끄럽다. 이러려고 민주화운동을 했나."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예우나 지원이 국민의 짐이 되고 있다”면서 본인과 부인의 ‘광주민주유공자증서’를 반납하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다. 그야말로 정의로운 결단과 실천하는 양심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신선한 충격과 큰 울림으로서 불의(不義)에 맞서 의(義)로움을 택한 역사적인 일대 사건이라 할 것이다.
난 올 초봄에 큰손녀의 이빨진찰을 위해 성북구에 있는 ‘이 해박는집’이란 치과의원을 찾았다가 대표원장으로 있는 김영환 전 국회의원을 처음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김영환 대표원장에게 관향(貫鄕)이 어떻게 되시느냐고 물으니, 선산(善山)이라고 하면서 은연중 자신의 성씨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몇 마디의 대화 속에서 조선의 진정한 청백리(淸白吏)인 문충공(文忠公)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선생의 후손이라는 것에 대하여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종직 선생은 조선의 정신적가치인 성리철학을 발전시키고 완성될 수 있도록 한 사림(士林)의 영수(領袖)이며 거유(巨儒)가 아니던가! 조선조 전체에 걸쳐 진정한 선비들의 학문을 이어온 사림파(士林派)의 계보를 보면, 여말선초에 고려의 충신인 포은(圃隱)정몽주를 태두(泰斗)로 하여 야은(冶隱)길재로 이어졌고, 길재에서 김숙자(김종직의 부친)와 김종직으로 이어졌으며, 김종직은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이라고 하는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들의 학문은 김안국, 이언적, 조광조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이언적은 퇴계 이황으로, 이황은 유성룡과 김성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와, 조광조는 이이 율곡으로, 율곡은 정엽과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를 이루었다. 특히 김종직 선생은 항우에게 억울하게 살해되어 물에 던져졌으며 왕위를 찬탈당한 초나라의 회왕(懷王)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내용인 명문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다. 이는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참혹하게 찬탈한 세조를 항우에게 비유한 글로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충의(忠義)를 표현해낸 것이었다.
손녀는 그날 대표원장으로부터 ‘똥 먹는 아빠’라는 동시집과 파이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난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손녀에게 대표원장이 조선시대 큰 선비의 자손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손녀가 ‘그러면 치과는 여기로 와야겠네요, 제 보약을 질 때면 진성이씨 퇴계선생의 후손이라며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이태형 한의원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 예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난 손녀에게 ‘그럼 훌륭한 선비의 후손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대표원장인 김영환 전 국회의원이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증’을 반납하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하고 올바른 처신을 보면서, 정치인들과 국가의 지도층은 물론 각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분들도 대오각성(大悟覺醒)하는 게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부도덕한 행위들이 만연되어가고 있는 세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릴 적부터 교육이 잘못되어 온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릴 정도로 뿌리 깊은 도덕성을 지니고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로의 급격한 변화와 급속도로 발전해온 경제사회는 전통문화의 퇴색과 함께, 목적달성을 위해선 과정을 무시해버리는 경쟁사회로 변모되어오고 말았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함께 교육의 현실 또한 수요자의 조급한 욕심에 따라, 윤리도덕에 관한 인성교육과 공동체사회에서 지켜야 할 질서와 준법정신, 그리고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삶에 대한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류대학에 입학하여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단순 지식전달교육에만 치중되고 있으니 백년대계인 교육의 현실이 실로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교육과 관련하여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도 어린학생들에게 사람다운 인간의 본성을 지키게 해주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도리(道理)를 깨우쳐 주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학교교육에만 의존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통하여 스스로 본받을 수 있는 가정교육이 인간의 기본정신으로 이어져야한다. 그 기본정신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의 뿌리인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단(四端)인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인간본연지성인 사단(四端)만 온전히 가슴에 지니고 생활화할 수 있게 한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제일먼저 남의 딱한 사정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仁)에서 스스로 우러나와야 한다. 남의 어려움이나 슬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자(仁慈)함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인하여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남을 돕고 세상을 향하여 베풀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이 길러지게 된다.
또 의(義)에서 우러나와 자신의 잘못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가져야 한다. 국가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잘못하였다고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뉘우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국가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의(義)로운 정신이 어릴 적부터 가슴에 자리 잡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한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습관화되어 마음에 젖어 있어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이 예의 기본인 것이다. 항상 남에게 나를 낮추고 양보할 줄 아는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성공을 위한 길이다. 상대보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길과 자리를 양보할 줄 알며, 순서에 따라 줄을 서서 질서를 지키고, 웃는 모습과 공손한 말씨로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이 바로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공동체의식의 기본자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곧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할 말과 해서는 아니 될 말을 가려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판단하여 행동할 줄 아는 분별심이 있어야 한다.
어린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은 이러한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라고 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 성장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살피면서 사랑과 정성으로 철저히 지도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사단(四端)의 마음을 굳건히 지키면서 그대로 생활에 실천해나가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여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청소년들이 본인의 힘으로 뚜렷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올바른 가치관을 통하여 세상을 객관적이고 균형적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며, 옳은 것과 그른 것,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훌륭한 청소년으로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올곧게 자란 사람이라면 어른이 되어 무슨 일을 하든 국가사회에 누를 끼치거나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의 달인 오월의 달력을 펼치면 제일먼저 어린이날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는 오월의 연둣빛 신록과 같은 희망의 새싹이요, 미래에 대한 꿈의 새싹이며, 기쁨과 행복의 새싹이다. 어른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발전해가는 어린이의 두 손에 용기를 쥐어주고, 가슴에 벅찬 자신감을 안겨주어야 하며, 푸르른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무엇이든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자 한다. 바로 모방심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어른들은 모든 언행을 조심하고 바르게 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 일상생활을 통하여 공정과 정의, 거짓 없는 정직과 진실, 침착함과 근면 성실한 자세, 예절과 질서를 지키는 습관, 자신감과 패기, 무슨 일이든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실패에 무너지지 않으며 끝까지 노력하는 포기 없는 끈기, 따뜻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모습, 잘못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줌으로서 산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의 실수와 잘못에 무조건 비평하고 화를 내면서 가르치려만 들지 말고, 매사에 모범을 보여 스스로 따르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모는 어린이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최초의 스승이요, 가정은 어린이에게 있어 최초의 학교나 다름없는 교육장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난 아내와 함께 두 외손녀를 돌보고 있다. 맏손녀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둘째 손녀는 유치원생이다. 방과 후에 손녀들을 데리고 집에 올 때면 학교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곧잘 말해준다. 그럴 때마다 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때론 친구들이 질서나 예의를 지키지 않아 언짢았다는 얘기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손녀에게 “여러 사람이 길을 같이 가다보면 나의 스승이 있게 된다. 좋은 점은 가려서 좇고, 좋지 않은 점은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기불선자이개지)”는 공자의 말과 함께 ‘남의 잘하는 점이 당연히 나의 스승이 되는 것과 같이, 남이 잘못하는 것도 역시 나의 스승으로 삼아야 되는 거야.’라고 일러준다. 이젠 아예 친구들의 잘못한 점을 이야기하고는 스스로 ‘난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먼저 말해버린다.
학생이라면 학교에 가서 지식전달을 전수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공중도덕과 지혜를 넓혀가는 것도 지식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고로 학문이란 먼저 예(禮)를 배우고 도(道)를 터득하여 덕(德)을 밝히고 성(性)을 인식하게 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천명(天命)을 깨닫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예(禮)는 도(道)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동양식이고, 도(道)는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의 바른길이다.
이 도(道)는 부자간에는 친(親)이요, 군신(君臣)관계에선 의(義)이며, 부부간에는 별(別)이요, 장유(長幼)관계에선 서(序)이며, 친구 간에서는 신(信)으로 구체화 되는 것이니 이게 바로 맹자가 말한 삼강(三綱)을 뒷받침하는 오륜(五倫)인 것이다.
유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仁)과 예(禮)의 정신적 가치는 맨 먼저 효(孝)의 사상으로 발현되어 우리의 생활 속에 전해져왔으며, 오늘날까지 면면히 지켜져 오고 있다.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孔子)는 제자들이 효(孝)에 대하여 물을 때마다, 묻는 사람의 성격과 생활상에 따라 그에 맞는 답변으로 효(孝)를 설명하고 있다. 맹의자(孟懿子)란 제자가 효(孝)에 대하여 묻자 “부모의 뜻에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고, 그의 아들인 맹무백(孟武伯)에게는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의 질병만을 근심하시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 자유(子游)에게는 “지금의 효라는 것은 몸을 봉양할 수 있음을 말하지만,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다 기름이 있을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아니하면 무엇으로써 구별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자하(子夏)를 보고는 “얼굴빛을 보고도 뜻을 헤아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일이 있을 때 동생이나 아들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을 때 아버지나 형에게 잡숫게 하는 것이 일찍이 효(孝)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또한 어떤 사람이 “어찌하여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서경(書經)에 ‘효(孝)로다. 오직 효(孝)하며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사(政事)에 베푼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찌 그 정치한다는 것만을 일삼겠는가?”라고 답변을 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효(孝)에 대한 여러 답변들을 정리해보면, 우선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시는 일이 없도록 다치거나 아프지 않도록 해야 하고, 부모님의 뜻에 거스르지 않고 순종해야하며, 부모님에 대한 단순한 공양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봉양이 효의 다가 아니고, 공경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고 자신이 직접 부모님을 뵙고 안색(顔色)을 살펴 부모님의 속마음을 헤아리어 뜻을 받드는데 소홀함이 없어야한다고 하였다. 즉 자식은 부모의 입장에서 진정한 효의 참뜻을 살피고 헤아려 부모님을 공경과 정성으로 극진히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는 국가사회를 이루는 기초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이를 지도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정치(政治)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므로, 우선 사람의 마음을 먼저 바르게 하여 경쟁사회를 조화로운 사회로 바꾸어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효(孝)사상에 대하여 한권의 책으로 엮어진 것이 바로 효경(孝經)인데 효경에서 공자는 그 유명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인 것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요. 입신행도(立身行道)하고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하여, 이현부모(以顯父母)함이 효지종야(孝之終也)라“고 정리하였다. 즉 나 자신의 신체와 관련된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이를 감히 훼손하거나 다치게 하여 큰 상처를 입지 않도록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하여,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함은 물론 올바른 도리를 행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후세에까지 이름을 떨침으로서 부모의 공덕과 명성을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라고 하였다.
물론 크게 성공을 함으로서 후세에까지 자신과 부모님의 명성을 길이 빛나게 한다면 더 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까지 효도를 다하는 것일까? 오늘날의 사회현실이 옛날 농경사회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전통의 형식에 치우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즉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부모님의 장례나 제사의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형제간에 우애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야 하고, 국가사회에 부끄러운 짓을 하여 자신과 부모님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고 패가망신하는 일이 없도록 바르게 사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첫 번째 효(孝)일 것이다. 두 번째는 부모님이 생전에 당부하신 사항이나 유훈을 어기지 말고 받들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남기신 글이나 책이 있다면 종종 읽어보면서 그 뜻에 따라야 하며, 생전에 사용하시던 유품들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여 대를 물리는 것이 세 번째의 효(孝)라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살고 어찌되기를 원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항상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하여 지켜야 할 진정한 효(孝)라고 할 것이다.
모름지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나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정성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바로 효(孝)의 시작이요, 그런 부모님을 탄생시켜 길러주신 조부모님의 은공을 생각하면서 숭조(崇祖)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자손으로서 최소한의 예(禮)일 것이다.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감은(感恩)이고 사은(謝恩)이며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보은(報恩)이다.
은혜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것은 망은(忘恩)이며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배은(背恩)인 것이다. 사람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삶에서 복이 들어오고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은혜야말로 부모님의 은혜가 아니던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잘못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으며, 부모에게 불효하고 조상을 홀대하면서 잘되는 사람 또한 찾아볼 수 없으니, 이러한 변할 수 없는 진리(眞理)와 천리(天理)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물질적으론 만족스러울 만큼 풍요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진 몰라도,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拜金主義)사상이 팽배해짐에 따라 도덕성의 상실과 건전한 가정의 붕괴등 사회적 혼란이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적정신문명이 쇠퇴해가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우리민족의 자랑인 효(孝)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정신문명을 되찾고 지켜나가는 일이 시대적 사명으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우선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올바로 살아야 함은 물론, 사후(死後)에 조상님들을 당당히 뵈올 수 있도록 집집마다 아버지는 의(義)로운 정신과 어머니는 자비로운(父義母慈/부의모자)마음으로 대를 이어갈 자녀들을 올바로 지도육성 하는데 정성을 다하여야한다.
가정의 달을 맞아 이 나라의 모든 가정들이 어버이는 자식들을 도타운 사랑으로 가르쳐 기르고, 자식들은 부모님께 공경과 정성으로 효도를 다하며(父慈子孝/부자자효), 형은 아우를 우애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함(兄友弟恭/형우제공)을 생활화하여 온 가족이 화목한 가운데,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덕(德)의 향기 천리만리에 짙게 퍼지는, 그야말로 대대손손(代代孫孫) 서광이 찬란히 빛나는 다행다복(多幸多福)한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