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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노래한 漢詩들
가을에 쓰여진 시가 유독 많은 것을 보면 가을은 정녕 시인의 계절인가 보다. 가을 단풍이 봄에 피는 꽃보다 곱다고 읊은 이가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떠나는 임을 아쉬워하는 이가 있고, 기러기 울고 가는 서리친 가을에 멀리 간 임의 편지를 기다리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타관 땅 비내리는 객창에서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는 나그네도 있다. 여기 가을을 읊은 옛 시인들의 漢詩 몇수와 우리말 새김을 붙이니 감상하시기 바람(우리말 새김에 다소 어설픈 감이 있더라도 너그러히 봐 주시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댓글이나 전화로라도 귀뜸해 주시길 ...)
서리맞은 단풍 봄에 핀 꽃보다 붉고
山居秋暝-王維
산속의 가을 저녁 무렵 / 왕유
空山新雨後(공산신우후) 텅빈 산에 갓 비 내린 후
天氣晩來秋(천기만래추)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 되었구나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추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맑은 샘물은 돌 위로 흐르네
竹喧歸浣女(죽훤귀완녀) 대숲이 부스럭, 빨래하고 가는 여인
蓮動下漁舟(연동하어주) 흔들리는 연꽃 아래 고깃배 지나가네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 봄날의 꽃향기 없은들 어떠하리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왕손(나) 이제부터 여기에 머무르리라
왕유(王維, 699~759 唐)은 50에 벼슬을 사직하고 장안 밖 망천(輞川)에 집을 지어 은거하는데, 그의 주옥같은 시들이 이 시기에 많이 쓰여졌다고 한다. 宋代의 대시인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시를 일컬어 '詩中有畵' 즉 시 속에 그림이 있다고 평하였는데, 특히 이 시는 왕유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중에서도 竹喧歸浣女(대숲이 부스럭, 빨래하고 가는 여인)은 이 시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맨 마지막 句에 스스로를 왕손이라 말한 것도 재미있다.
山行 / 杜牧
산나들이 / 두목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멀리 한기 도는 산을 오르니 돌길은 가파른데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흰구름 피어 오르는 곳에 인가가 있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를 세우고 앉아 늦은 단풍숲을 즐기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 내려앉은 단풍 2월 봄 꽃보다 붉어라
가을을 노래한 시 중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는 두목(杜牧, 803~852 唐)의 山行이란 제목의 시이다. 두목은 이백과 두보의 적통을 잇는 당나라의 문필가로 이상은(李商隱, 812~858)과 더불어 작은 이백, 두보라는 뜻의 소이두(小李杜)라는 별칭까지 있는 서정시인이다. 마지막 구절 霜葉紅於二月花 (서리맞은 단풍잎이 2월 봄 꽃보다 붉어라)은 이 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訪金居士野居 / 鄭道傳
김거사의 집을 방문하고
秋雲漠漠四山空 (추운막막사산고)
가을 구름 아득하고 산은 텅 비었는데
落葉無聲滿地紅(낙엽무성만지홍)
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구나
立馬溪橋問歸路(입마계교문귀로)
개천 위 다리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묻는데
不知身在畵圖中(부지신재화도중)
이 내 몸이 그림 속에 든 줄을 몰랐었네.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은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다진 대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詩書에도 능해 많은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이 시는 성당시절에 쓰여진 서정시를 연상케 하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문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 중앙무대에서 나라를 호령하다 잠시 산야에 뭍혀사는 지인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중에 문득 자연 속의 일부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리라. 여기서 落葉無聲滿地紅(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구나)는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인데, 보통 낙엽은 밟는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비 온 뒤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비바람에 떨어진 붉은 낙엽들은 혹시 조선 건국 전후 회몰아친 피바람에 스러진 아까운 인재들을 암시하는 건 아닐지...).
花石亭 / 李栗谷
화석정에서-이율곡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 숲 속 정자에 가을은 이미 깊고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 근심깊은 나그네의 생각 끝이 없어라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과 맞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 서리 맞은 단풍 햇빛을 향해 붉어라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 산은 외로운 둥근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 강은 만리 긴 강바람을 머금었구나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 변방의 기러기 어디로 날아가는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 울음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화석정(花石亭)은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정자로 경기도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어 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곳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의 고향으로 당시에는 서원도 있었으나 지금은 정자만 남아 있다. 시는 전체적으로 대학자 율곡답게 단아하고 군더덕이 하나 없는 문장으로 되어 깊어가는 가을의 고향산천을 노래한 것인데 아마도 난리 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2번째 구의 騷客, 즉 근심깊은 나그네라는 표현과 7번째 구의 塞 즉 변방이라는 말인데, 조선시대에 경기도 파주가 변방이라면 난리중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인가
南浦別 / 白居易
남포의 이별
南浦凄凄別(남포처처별) : 처연한 남포의 이별
西風嫋嫋秋(서풍뇨뇨추) : 서풍 솔솔 부는 가을날
一看腸一斷(일간장일단) : 보면 애간장이 끊어지니
好去莫回頭(호거막회두) : 돌아보지 말고 그냥 가오
남포(南浦)는 이별의 나루인지 우리나라 대동강에도 남포가 있어, 고려시대의 서정시인 정지상의 대동강(大東江)과 아래 소개하는 임을 보내며(送人) 또한 남포에서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장한가(長恨歌)로 유명한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백낙천(樂天)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백거이는 재능이 뛰어나 한림학사 등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문학적으로는 고체시(古體詩), 금체시(今體詩)는 물론 악부(樂府)·가행(歌行)·부(賦)의 시가에서부터, 지명(誌銘)·제문(祭文)·찬(贊)·기(記)·게(偈)·서(序)·제고(制誥)·조칙·주장(奏狀)·책(策)·판(判)·서간(書簡)의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형식을 망라했다. 唐代의 대시인 4인에 이백(李白)·두보(杜甫)·한유(韓愈) 등과 함께 백거이를 넣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送 人 / 鄭 知 常
임을 보내며 / 정지상
庭前一落葉(정전일엽락) 뜰앞 하나 남은 잎마저 떨어지고
床下百蟲悲(상하백충비) 마루밑엔 온갖 벌레 슬피우네
忽忽不可止(홀홀불가지) 홀연히 떠나는 임 붙잡을 수 없는데
悠悠何所之(유유하소지) 유유히 어디로 떠나 가시는가
片心山盡處(편심산진처) 마음은 임 가신 산 모퉁이에 가 있는데
孤夢月明時(고몽월명시) 외로운 꿈 깨어보니 달만 밝구나
南浦春波綠(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이 푸르거든
君休負後期(군휴부후기) 그대 부디 잊지마오 온다는 약속을
정지상(鄭知常, ?~1135 고려 중기)은 서경(지금의 평양) 사람으로 묘청의 난에 연좌되어 죽임을 당했으나 계속 격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절구(絶句:4행시)에 능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율시(律詩:8행시)가 더 많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표현에 뛰어났으며, 세속의 번거로움과 갈등을 초월한 맑고 깨끗한 세계를 그렸다. 감각을 통해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그의 시세계를 두고 후세에 홍만종은 특히 '送人'을 지칭하여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했다. 신라의 최치원 이후 고려 전기 한시문학을 주도했던 시인으로 문집에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고 20수 가량의 시와 7편의 문장이 동문선, 파한집, 백운소설, 고려사 등에 실려 전한다.
이 '送人'의 후편인 듯한 시가 그의 '大同江'인데, 가을 노래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 있기에 여기 붙여 본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강둑에 풀 색 짙어 가는데
送君南浦動悲歌 임 보내는 남포엔 구슬픈 노래 소리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고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파도에 보태니
奉別蘇判書世讓 / 黃眞伊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 황진이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달빛 아래 마당엔 오동잎 다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루고천일척) 누각은 하늘로 한 자나 높아지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사람들(소세양과 본인)은 천잔의 술에 취했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흐르는 물소리는 싸늘한 거문고 가락과 어울리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 피리소리에 젖은듯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우리 서로 이별한 뒤에도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정일랑 저 푸른 파도처럼 끝이 없으리.
한달간 동숙하고 떠나는 소세양(蘇世讓)을 보내며 읊은 황진이(黃眞伊 : 생몰년대 미상, 조선 중종대)의 애틋한 이별의 노래다. '오동잎 다 지고(梧盡)', '서리 맞은 들국화(霜中野菊)' 그리고 '싸늘한 거문고 가락(琴冷)' 등의 표현에서 황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송도(개성) 기생으로 많은 염문을 뿌렸던 황진이지만 오로지 사랑했던 사람은 소세양 뿐이었다고 한다.
過松江墓有感 / 權韠
송강의 산소를 지나면서 / 권필
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
텅빈 산에 나뭇잎 비에 우수수 떨어지니
相國風流此寂寥(상국풍류차적료)
정승의 풍류 이토록 쓸쓸해질 줄이야
怊悵一杯難更進(초창일배난갱진)
술 한잔 다시 올리기 어려우니 정말 슬프도다
昔年歌曲卽今朝(석년가곡즉금조)
지난 날 그 노래가 바로 오늘 아침을 위한 것일 줄이야
여기서 송강의 그 노래, 장진주사(將進酒詞)를 잠간 일별해 보기로 하자.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묶여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
회오리바람이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 때엔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권필(權韠, 1569~1612)는 송강의 문하생으로. 선조 때 한문학계의 뛰어난 존재였으며 과거와 벼슬에는 뜻이 없어 산수를 찾아 방랑과 시주(詩酒)로 낙을 삼았다. 광해군 비 문성군부인의 아우 유희분(柳希奮)의 부패와 권력남용이 자행되자 이를 풍자한 궁류시(宮柳詩)를 지었다고 귀양가서 객사한다. 작품에는 한문소설 주생전 등과 유저에 석주집(石洲集)이 있다.
깊어가는 가을 임은 오시지 않고
閨怨 / 허난설헌
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달 비친 누각에 가을은 깊고 옥병풍은 비었는데
霜打蘆洲下暮鴻(상타노주하모홍)
서리 친 갈대밭 물가 저물게 기러기 내려앉는다
瑤瑟一彈人不見(요금일탄인불견)
비파 한 곡 다 타도록 아무도 보이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
연꽃은 들판 연못 속으로 시나브로 지누나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명종18년)~1589(선조22년))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천재 여류 시인이다. 동생 허균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 중의 한 사람으로 서얼인 불우한 시인 손곡 이달(蓀谷 李達)에게 사사한다. 그녀는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도는 남편, 시어머니와의 갈등 그리고 연이어 두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다.
秋思 / 梅窓
가을 심사 / 매창
昨夜秋霜雁叫秋(작야추상안규추)
어재밤 찬 서리에 기러기 울고 가니
擣衣征婦隱登樓(도의정부은등루)
다듬질하던 아낙 남몰래 다락에 올랐네
天涯尺素*無緣見(천애척소무연견)
하늘 끝에 가 계신 임 편지 한장 없어
獨倚危欗暗結愁(독의위란암결수)
높은 난간에 홀로 기댄채 시름만 깊어라
*尺素(척소) : 尺牘(척독)이라고도 하며 편지를 뜻함
기러기 편에 편지를 전한다 하여 기러기 雁자를 써 雁書란 말이 있지 않은가. 서리친 가을 밤 기러기 울움소리에 다듬이질을 멈추고 다락에 올라 기대선 여인의 모습이 참 쓸쓸해 보인다. 매창(梅窓, 1573~? 선조 시대)은 전라도 부안의 기생으로 계생(桂生) 또는 계랑(桂娘)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무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한시, 가사 , 시조 등에 다재다능했던 여인이다.
映月樓 / 洪娘
영월루에서 / 홍랑
玉檻秋來露氣淸(옥함추래로기청)
고운 난간에 가을 드니 이슬 기운 맑아지고
수정발은 차가운데 계수나무 꽃만 환하네
鸞驂一去銀橋斷(난삼일거은교단)
*난새 타고 한 번 떠나 은하수 다리 끊긴 뒤로
怊悵仙郞白髮生(추창선랑백발생)
서글퍼라 서방님 흰머리만 생겨나네
*난새는 봉황의 일종으로 짝이 없으면 평생 울지 않는다고 한다
唐詩 풍의 시를 잘 지어 조선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유명한 고죽(孤竹) 최경창을 사랑한 함경도 변방 경성의 관기 홍랑(洪娘, 생몰연대 미상 선조 시대), 고죽을 보내며 지은 시조 '묏버들 가려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홍랑은 최경창이 죽은 후 그의 묘에서 10년간이나 떠나지 못하고 시묘살이를 한다. 그녀가 죽은 후에는 먼 발치에서나 그의 묘를 볼 수 있는 곳에 뭍혔다고 한다.
쓸쓸히 낙엽 지면 고향 그리워
靜夜思 / 李白
고요한 밤에 생각한다 / 이백
牀前看月光(상전간월광) 침실로 스며드는 달 그리매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어찌 보면 서리가 내린 듯도 하이
擧頭望山月(거두망월산)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는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노라
(신석정은 이 절구를 따로 '야곡'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백(李白, 701~762 唐)은 너무 잘 알려진 시인이라 별도의 언급은 피함.
夜雨寄內 / 李商隱
밤에 빗소리 들으며/ 이상은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
그대는 올 기약을 묻건만 돌아갈 기약 없어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유창추지)
파산에 밤비는 가을 못에 넘치누나
何當共剪西窗燭(하처공전서창촉)
언제나 서창 등불 함께 심지 자르며
却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파산 밤비 내리던 때 그때 얘길 해보나.
낯선 땅 파산(巴山)의 객점에서 한밤중에 가을 빗소리 들으며 고향의 아내에게 부치는 시다. 이상은(李商隱, 812-858 唐)은 머나 먼 파산 땅에서 아내의 편지를 받는데, 그녀는 언제 고향에 돌아오느냐 묻는데 돌아갈 기약은 없고 무심한 가을 비는 못물이 넘치도록 내리고... 그의 시는 아름답고 신비한 색채를 띄고 있어 신비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앞에 언급한 두목(杜牧)과 함께 작은 이백, 두보라는 뜻의 소이두(小李杜)라는 별칭을 지닌 시인이다.
秋夜雨中 / 崔致遠
가을 밤 비는 내리는데 / 최치원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애써 지은 시
擧世少知音(거세소지음) 세상에 알아 주는 이 드물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 깊은 밤 삼경 비는 오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잔 앞에 마음은 만리 고향으로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통일신라)의 최고의 걸작품.
(그의 작품과 상세한 설명은 필자의 '당과 신라를 떠 돈 외로운 구름(孤雲)'을 참고 하시길...)
秋雨 / 慧定
가을비 / 혜정
九月金剛蕭瑟雨(구월금강소슬우)
구월의 금강산 쓸쓸히 비는 내리는데
雨中無葉不鳴秋(우중무엽불명추)
빗속에 나뭇닢도 없어 소리도 나지 않는 가을
十年獨下無聲淚(십년독하무성루)
십년을 남몰래 소리없이 눈물짓고
淚濕袈衣空自愁(누습가의공자수)
헛된 시름에 가사만 젖었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가사를 걸친 갸날픈 여승이 비오는 가을날 홀로 눈물 짓는 모습이 선하다. 지은이는 혜정(慧定). 여승으로 생몰년대는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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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파르라니.... 이런 표현 영어로 전혀 표현 불가함다. 가을 의 끝자락에서 붉은 단풍의 멋을 아주 아름답게 주석을 잘달아 아무공로없이 넙죽넙죽 잘 받아먹엇섬다
花石亭은 소생 일산에서 자전거타고 무시로 가던 곳......
일설에 의하면 이 율곡 선생이 임진강터에 放火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하인에게 매일 기름 걸레질을 하게하며 이르기를
" 어느 땐가 임금께서 피난길에 반드시 이 곳을 지날 것인 즉
그 때 정자에 불을 질러 가시는 길 밝혀 드려라...." 는......
이 율곡의 충심과 혜안에 깊이 감동한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