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하고 부자 되지 않아도 행복한 마을,
힘겨운 세상에서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
보통 공동체라고 하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안적 삶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마을을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땅 값이 비싼 현실을 고려해 새로운 형태의 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국내의 마을과 공동체 18곳부터 소개했다. 기존 마을을 좀 더 사이좋고 재미있는 마을로 변화시킨 ‘전환 마을’과 도시에서 열 집 정도가 함께 집을 지어 사는 ‘공유 주택’, 그리고 뜻 맞는 사람들이 시골로 내려가 만든 공동체를 두루 살펴본다. 서울의 ‘은혜공동체’ ‘소행주 1호’ ‘은평 전환마을’ ‘밝은누리공동체’, 경기의 ‘마을 카페 다락’ ‘논골마을’ ‘공방골목’ ‘더불어숲동산교회’, 경남의 ‘민들레공동체’ ‘성모울타리공동체’ ‘오두막공동체’, 충남의 ‘시온교회’ ‘갓골’, 충북의 ‘산 위의 마을’ ‘선애빌’, 인천의 ‘창문카페’, 광주의 ‘신흥마을’, 전북의 ‘실상사’ 등 공동체의 삶과 특징,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이어 실험적인 해외 공동체 5곳, 즉 태국의 5개 아속, 인도의 오로빌, 미국의 브루더호프 4곳, 일본의 야마기시 2곳과 애즈원을 순례하면서 그들이 행복한 이유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추적해보았다. 특히 아속은 저자가 자신의 지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고자 떠난 곳이기도 하다. 아속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아유르베딕 자연 치유법으로 유명한 인도 오로빌까지 방문했다. 치유 순례가 공동체 순례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해외 대안 공동체 대부분이 새로운 가치와 삶을 추구하면서 인간?사회 실험을 하고 있기에 자칫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들 덕분에 우리가 시행착오를 덜 겪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욕망과 집착을 놓아버리고 삶의 가치관을 달리한 그들의 삶에서 우리는 물질의 힘이 아닌 마음의 힘을 엿볼 수 있다.
공동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삶의 여유와 재미를 주고, 실직이나 힘든 일을 당했을 때도 내 일처럼 해결해주며, 적게 쓰면서도 몇 배의 효과를 누리는 경제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무엇보다 어디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치유와 살맛을 줘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도를 경험케 한다고 말이다.
앞으로 수십 년의 노년을 홀로 살아가고, 고독사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것이다. 이 책은 고립되어 살아가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지,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많은 이로움이 있고 행복해지는 길인지, 얼마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길인지 깨닫게 한다. 출세하고 부자 되지 않아도 행복한 마을(공동체), 힘겨운 세상에서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한 번쯤 ‘다른 삶’을 꿈꾸게 한다. 또 우리는 주거, 비혼, 출산, 육아, 교육 등 우리 사회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간디는 ‘마을공동체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생생한 모습과 증언이 이 난제 해결에 영감을 줄 것이다.
“이 책은 혼자나 둘, 혹은 가족들끼리만의 울타리를 낮추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이야기다.
행복의 길은 ‘돌봄’과 ‘친밀’에 있었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우리나라에서 도시 지역 거주 비율은 1960년대엔 40퍼센트 미만이었으나 1990년에는 81.95퍼센트, 2017년엔 91.82퍼센트로 늘었다. 농촌 마을에서는 부모가 농사일이나 다른 일을 하더라도 많은 형제자매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친척,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형, 누나 등 제2, 제3의 안전망이 있었다. 엄마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지켜보는 대가족과 마당이라는 천연의 안전망이 있었다. 이 안전망이 엄마의 육아 부담을 덜게 했다. 그러나 엄마와 대가족을 빼앗긴 채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이들은 분리공포를 느끼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 관계를 회피하고, 이로 인해 타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괴로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만약 어른이 되어서라도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공동체를 안전기지 삼는다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을 열고 관계 맺기에 나설 수 있고, 결혼과 출산할 용기 및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사는 것이 국가가 사는 길인 셈이다. 직장맘과 아이를 위해서라도 사회적 엄마인 마을공동체가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늘 함께하니 외롭지 않은 ‘혼삶족’
서울시가 1인 가구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혼삶에 만족하지만, 10명 가운데 6명이 경제적 문제로 고민했다. 26.2퍼센트는 건강을, 25.8퍼센트는 노후 생활을 걱정했다. 젊은 시절엔 건강하고 활동력이 있어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화려한 싱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꿈과는 멀어져가는 게 싱글의 현실이다.
요새 싱글과 돌싱 등 이른바 다양한 사람을 껴안는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 혼삶족도 친구나 이웃의 필요가 절실한 만큼 공유 주택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싱글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해서도, 공동체에서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소행주에는 여자 싱글들끼리 모여 사는 집이 있는가 하면, 성소수자들끼리 살아가는 집도 있다. 요즘은 이혼율이 높아 한부모가정도 많다. 은혜공동체는 남성 싱글 넷, 여성 싱글 넷, 돌싱 가족 등 15명이 집 세 채를 얻어 공동체 가정을 꾸렸다. 이후 도봉동 은혜공동체 공유 주택에 2017년 입주하여 50명가량의 대식구와 한 집에서 공동체살이를 한다. 다수의 싱글과 동거 커플, 이혼 가정 등 다양한 사람이 공동체 품에서 함께한다. 밝은누리공동체는 멤버 150명 가운데 35명이 싱글이다. 싱글 서너 명이 한 방에서 한몸살이한다. 남은 방은 서재나 휴식 방, 옷 방으로 공유한다. 거실과 부엌은 말할 것도 없다.
독박 육아가 없고
삶의 여백을 가르치는 공동체 교육
공동체는 온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 부모의 욕망으로 자식을 괴롭히지 않는다. 삶을 즐길 줄 알고,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알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해나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은혜공동체는 아이들의 천국이다. 부모들이 당번제로 공동 육아를 하면서부터 자신의 삶을 즐기게 되었다. 아이들은 홈스쿨로 공부하고 스스로 많은 것을 결정한다. 누구에게나 ‘삶의 멘토’인 목자가 있어 든든함도 더한다. 밝은누리공동체엔 독박 육아가 없다. 아빠도 엄마와 동등한 부모로서 육아의 주체자다. 당번이 아닌 부모는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독서, 음악을 즐긴다. 모두 육아 품앗이 덕분이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살구나무배움터, 감나무배움터, 생동중학교, 삼일학림 등 비인가학교에서 배운다. 이곳 학생들에게 학문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 집짓기, 농사, 태극권, 철학과 수신, 마음 닦기 등 실제적이다. 소행주는 ‘우리어린이집’을 만들어 공동 육아를 시작했고, 아이들을 거의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배울수록 오히려 불안은 증폭될 뿐이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가치관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문화가 살아 숨 쉬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골살이
전북 산내면은 귀촌자들이 만든 별난 시골 마을이다. 공부와 책읽기, 명상과 요리, 여러 운동, 술 만들기, 목공 등 모임이 50여 개나 있다. 모든 것이 그물방처럼 연결돼 있다는 ‘인드라망’ 사상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다. 충남 천북면에는 폐교될 뻔한 낙동초등학교 어린이 26명 전원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고, 어부와 할머니들이 바리스타가 되었다. 먹거리를 퍼주는 축제가 열리며, 이 희한한 마을들을 돌아보려는 여행객이 생겨났다. 충남 홍성 갓골에선 사람들이 서넛만 모여도 우리 마을에서 ‘이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협동조합을 만들어낸다. 흙건축얼렁뚱땅조합, 목공실, 빵집 등 협동조합만 30여 개다. 이곳은 친환경농업의 메카로 자리 잡은 풀무학교 덕에 귀촌자들이 늘었고, 사시사철 좋은 강좌와 공연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 밝맑도서관 덕분에 시골에 살아도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골로 가면 돈벌이는 줄지만 소비에서 벗어나 적은 돈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타인과 살아낼 품성과 태도만 갖추고 적절한 노동력이 있다면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선애빌은 별로 가진 게 없더라도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곳이다. 생태적인 삶으로 비용을 아낄 뿐 아니라 공동체원들 모두 함께 식사하여 생활비도 줄이고 즐거움은 더한다.
노후 불안이 없고
상처마저 치유되는 마음의 유토피아
노후 준비에 목매다가 현재를 살아보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공동체가 주는 큰 혜택이다.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미국인 45만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연봉 7만 5000달러(약 8천만 원)까지는 소득 증가만큼 행복도도 증가하지만, 그 이상은 연봉이 높아진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인간의 행복엔 돈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못했지만 공동체의 삶은 좀 더 분명히 이를 실증한다. ‘늘 함께 공유하며 산다면’ 7만 5천 달러의 절반이나 3분의 1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공동체원들은 말한다.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주요 기능의 하나로 치유를 꼽는다. 자신을 꽁꽁 닫아둔 채로는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없기에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해결된 거나 다름없다. 또 자기 역할과 쓰임새를 찾을 수 있다. 공동체가 치유력을 지니는 것은 사랑이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동체 자체가 소통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 힘든 속내를 꺼내놓으면 서로 공감하고 지지하며 조언도 해주고, 소그룹 토론과 심리 상담을 통해 관계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나 갈등을 해결한다. 개인은 타인과 관계를 어렵게 하는 심리 문제들을 안고 있게 마련이고, 이를 넘어서야 유토피아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컬트’로 비난할 수 없는 세상의 치유자들
외국에서 공동체라고 할 때는 자연 마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을 말한다.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자본주의 삶의 잔인성과 파괴성을 보고 대안을 선택해 사는 마을이다. 대부분 남다른 가치하에 모여 사유재산도 가지지 않은 채 한 가족처럼 살아간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한 태국의 아속이나 미국의 브루더호프 같은 공동체는 매우 이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시작한 이들은 우리가 결단하지 못할 때 결단했고, 인간?사회 실험을 앞장서 행한 선구자이므로 ‘컬트’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경애의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아무 대가 없이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태국의 아속,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체 마을 인도의 오로빌, 사랑과 헌신 그리고 노동이 함께하는 천국 미국의 브루더호프, 진정한 소통으로 삶을 엮어나가는 일본의 야마기시, 눈치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일본의 애즈원까지 그들의 혁명적이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외 공동체들은 정서적 좌절감을 채워줄 만큼 화려해 이상향이 아니라, 그런 욕망과 집착조차 놓아버리고 삶의 가치관을 달리 했기에 이상향이 되었다. 이상향은 장소라기보다 ‘삶의 목표를 어디다 두느냐’ 그 가치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