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公 전환 묘비명(參奉公 諱 瓛 墓碑銘)
[중종17년 임오(1522년)- 선조20년 정해(1587년)]
공(公)의 휘(諱)는 환(瓛)이요. 자(字)는 중옥(仲玉)이고 호(號)를 죽포(竹圃)이다. 정선군(旌善君) 휘(諱) 선(愃)의 후손(後孫)이라.
선조(先祖) 휘(諱) 우(佑)가 본도(本道) 안찰사(按察使)로 도임(到任)해 보니 산천(山川)이 아름다움과 풍속(風俗)이 인후(仁厚)한 것을 보고 이곳이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생각하여 거주(居住)하게 되었다.
고조(高祖)는 휘(諱) 륜(崙)이니 문과급제(文科及第)하여 통훈대부 행 구례현감(通訓大夫 行 求禮縣監)을 지냈고 증조(曾祖)의 휘(諱)는 민행(敏行)이니 단종 갑술(甲戌)에 등문과(登文科)하여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지냈고 조(祖)의 휘(諱)는 성명(性命)이니 조산대부 행 동몽교관(朝散大夫 行 童蒙敎官) 간성훈도(杆城訓導), 봉직랑(奉直郎) 강원도학관(江原道學官)을 지냈고 아버지의 휘(諱)는 공신(公信)이니 성균생원진사(成均生員進士)요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며 성균생원(成均生員) 지전(之殿)의 따님이시다.
3남을 두시니
장남(長男)은 찬(瓚)이니 문과급제(文科 及第)하여 함경도사(咸鏡 都事)를 지냈고 차남(次男) 즉 공(公)이니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여 장사랑(將仕郎) 기자전(箕子殿) 참봉(參奉)을 지냈고 삼남(三男)은 우(瑀)이니 계공랑(啟功郎)이라.
중종 임오(壬午)년 9월 10일생이고 선조 정해(丁亥)년 10월 6일에 돌아가시니 향년(享年) 66세이라.
배(配)는 공인(恭人) 안동권씨(安東權氏)니 진사(進士) 대내(大匂)의 따님이다. 중종 경진(庚辰)년 정월 21일에 나시고 1남3녀를 두시니 장남(長男)은 문서(文緖)이요 성균 학정(成均 學正)을 지냈고, 배(配)는 강릉최씨(江陵崔氏) 운경(雲慶)의 따님이라. 맏딸은 강릉최씨(江陵崔氏) 봉명(崔鳳鳴)에 출가(出嫁)하였고, 둘째 딸은 삼척심씨(三陟沈氏) 원택(沈元澤)에 출가하였고 셋째 딸은 강릉김씨(江陵金氏) 세종(金世宗)에게 출가(出嫁)하셨다.
선조 경인(庚寅)년 4월 5일에 돌아가시니 향년(享年) 71세이라
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 서록(西麓) 해좌원(亥坐原)에 쌍봉합장(雙峯合葬)하고 후손(後孫)이 비명입석(碑銘立石)하였다.
고종(高宗) 무인(戊寅) 10월
8대손 영복(永復) 시형(始亨) 근기(謹記)
9대손 석경(錫慶) 대영(大英) 대현(大顯) 수(竪)
◎ 동천복지 [ 洞天福地 ]
산으로 싸이고 내에 둘린 경치 좋은 곳[동천]과 복된 땅. 천하의 명산 승지(名山勝地). 신선이 사는 36동천과 72복지.
神魚人不見 福地語眞傳
(신어인불견 복지어진전 ; 신기로운 고기를 사람이 보지 못하나니, 복지라는 말이 진실로 전해 오네.)
<두보杜甫 진주잡시17수秦州雜詩十七首>
春滿洞天花似錦 不堪回望舊丹丘
(춘만동천화사금 불감회망구단구 ; 동천에 봄 한창이니 꽃은 비단 같아, 이리저리 둘러보며 신선이 사는 옛 단구를 그려보네.)
<김수흥金壽興 구담도중龜潭道中>
[네이버 지식백과] 동천복지 [洞天福地] (한시어사전, 2007. 7. 9., 전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