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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지蓮池에서
신 일 수
시내에서 남쪽으로 8킬로쯤을 벗어나면 예하리(禮下里)라는 작은 마을에 연못 하나가 있다. 연못이라면 농경지 수리이용 때문에 마을 뒤편엔 하나쯤 엎드려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찾아간 곳은 이와 품격이 다르다. 제방에 들어섰을 때 늙은 팽나무와 움츠린 노송들이 찬바람에 수군거리고 못은 가슴속을 드러낸 채 허탈한 눈만을 뜨고 있었다. 바로 이 못이 내가 찾는 연지이다.
3천여 평은 실히 넘을 것이다. 못가엔 서걱이는 갈댓잎 소리가 일어서고 말라빠진 연꽃 대궁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청둥오리 몇 마리가 쏜살같이 날개를 턴다. 하늘빛이 고웁다. 꽃을 피워 맺은 연방이 이미 식용, 약용으로 꺾이고 지금은 얼음 위에 누워 버린 연잎과 줄기들이 파수병처럼 서서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나는 버릇대로 제방의 끝에 있는 연당(蓮堂)으로 발길을 옮겼다. 내가 이곳 연지를 처음 본 것은 이미 오래전 초여름이었다. 수면 위에 물안개가 쓸려가고 그 사이사이로 방패만한 초록 잎새가 넓죽이 퍼져 온통 연못을 덮어가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들른 연못에서 연잎이 들어찬 광경을 보고 나는 수천수만의 연꽃 송이가 가슴 안에 피어나는 꿈을 매일 밤 가질 수 있었다.
그 뒤로 찾은 연못은 나의 가슴이었고 나의 가슴은 바로 연못이었다. 못은 오래된 진흙의 늪이었다. 오래전 수리용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복토가 채이고, 농경지가 늘어나 그 본래의 구실을 잃어갈 즈음, 새로운 저수지가 생기는 바람에 이 못은 이무기나 사는 전설 속의 못으로 변모하고, 마을 노인네들의 휴식처로나 이용하자는 의견이 앞섰을 것이다.
이때 한두 뿌리의 연근(蓮根)이 번지고 또 번지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못 전체가 연을 품고 말았을 것이다. 늦여름이 기울 때, 연못의 아침은 햇살이 피워내는 꽃송이로 황홀한 장관을 이루었다. 연초록 대궁에 가는 가시들을 밟고 올라와 하늘보다 더 넓은 연잎을 펼쳐보고 그 틈 사이로 긴 목을 학처럼 눈부시게 들이고서 수천 송이의 연꽃을 사방천지에 널려 놓는 것이야말로 어찌 황홀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분홍빛과 흰빛, 자색빛과 노란빛이 어우러져 잎과 물빛으로 사위를 물들여 놓곤 배시시 번져 은은한 윤곽, 아, 이곳이 서방정토가 아닐까?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 연지가 어느덧 나의 내부에 이르면 나는 석가모니의 미소에 진리를 깨닫는 듯도 하고 심청이의 환생 된 모습에 감격하기도 하면서 알지 못할 불심에 저절로 손을 모으는 것이다.
무엇보다 속세의 온갖 잡념이 맑게 씻기우고 새로운 내 자아의 탄생을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다. 살아온 날이 부끄럽고 오욕칠정이 내게만 넘친 듯하여 연지에 앉은 채로 무심의 복판이 흔들리게 된다. 이때쯤이면 연당의 사방은 탱화로 가득 차고 법당에 앉은 선사(禪師)로 변신 되는 듯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연잎 속에 고인 수정빛 이슬은 눈 속까지 굴러들고 마악 터지려는 또 다른 수천 개의 연꽃 봉오리 들은 숨이 막힐 듯이 안으로 고요함을 다스리고 있다. 이때 가만히 흔들리는 꽃잎의 둘레 눈썹이 흔들리운다. 바람이 연지에 흐르고 내가 또한 연꽃 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아침이면 나는 내내 연지를 돌며 번지는 반성과 회오의 번뇌에 돌아설 줄 모른다. 진흙 묻은 내 삶의 꽃봉오리를 또다시 씻기 전에는, 예부터 우리 선인들은 이 연꽃을 불심의 바탕으로 삼아 가장 고귀하게 가슴 속에서 피워냈던 것일까.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이 연밥을 이용하여 연밥죽을 쑤었고 뿌리로는 연밥장아찌, 연화누룩 등 귀한 식품을 만들었다. 어찌 그 뿐이랴. 잎은 연인(蓮仁)이라하여 쌈도 싸 먹었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만다라화(曼陀羅華)라 일컫고, 부용(芙蓉) 이라하여 그 우아하고 은근한 자태를 그려내고 있다.
불상 아래엔 연화대(蓮花臺)를 받쳤고 법당은 연화로 채색했으며 지붕엔 연와(煉瓦)를 얹었고 젊은 벼슬아치에겐 연관(蓮冠)을 씌웠으며 왕실까지도 부용막(芙蓉幕)을 드리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와 선인의 생활속에 연꽃은 예술미와 얼이 깃들여 전통의 미를 피워 냈던 것이다.
보은의 상징으로 수많은 연꽃의 소재는 물론이려니와 옛 가사에도 많은 문인들은 이 꽃을 노래했다. 연꽃은 찬란한 불교예술만큼이나 우리 문화와 접맥되었으며 불심의 향기만큼 소중하고 그윽한 우리만의 향기였던 것이다.
초가을이면 꽃가게엔 시투룩한 연실들이 다섯 개씩 묶이어 수십 뭉치가 옮겨온다. 언뜻 보면 징그럽게도 못생긴 듯한 모양들을 하고 두루주머니 같은 머리를 휘두른다. 가을철 꽃꽂이용으로 팔려 온 것이다.
어쩌다 시장 거리를 지나다 보면, 곱게 늙으신 할머니들이 연밥 뭉치를 수북이 담아 놓고 파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커멓게 쭈그러진 주먹만 한 뭉치는 물뿌리개 주둥이 같기도 하고 벌집 모양 같기도 한데, 그 노파들은 지루함에 못 이겨 연실 뭉치의 잣톨 만한 연밥을 빼내어 까먹고 있다.
그리고선 지나는 이들을 보고 이가 빠진 허한 웃음을 보일 때 노파의 얼굴과 연싱의 모양이 너무도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은은한 미소에 번지는 삶의 달관이 아닐까. 그리하여 장미, 백합, 안개꽃 등 화려한 꽃 더미 속의 무리에 쫓겨 울퉁불퉁하게 못생긴 연실들을 보노라면 더한 뜨거운 애정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날의 그 눈부신 사랑을 대한 것 같아 나는 슬픔의 껍질을 벗는 것이다. 그것은 세진에 찌든 나를 다시 이 연지 앞에 세우게 하기에 충분하다. 참으로 연은 뿌리와 줄기, 잎과 꽃, 꽃 수술과 열매까지도 모든 이에게 베풀며 남김없이 주는 것이다. 진흙 깊숙이 태어나서 무심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보은의 사상만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연당을 나와 연꽃이 떠나버린 연지를 바라본다. 새봄과 함께 다시 가득히 채울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깊이쯤에서 어떠한 욕망도 허세도, 미움까지도 버리고 새로운 사계의 내 소중한 욕망을 꿈꾸어 보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지명에 이르러 이제 연의 일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진흙 속의 세태 속에서도 내 삶의 기쁨을 연꽃처럼 피워낼 수 있을 것인지, 겨울 연지를 떠나오면서 자꾸자꾸 뒤돌아보는 것이다. 청둥오리 몇 마리 날개 접는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필을 잘 쓰는 방법 중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는 교훈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겨울 연지에서
지금쯤 아무것도 없는 무의 깊이쯤에서 필사 한 번 해봤습니다.
와 엄청 길어요 혼쭐났습니다.
쉬엄쉬엄하시구 랴. 빨리 걷는다고 빨리 도착하는 건 아니더이다. 조금씩 푼수껏 가다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는 것이 인생아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