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박병환 지음, 뿌쉬낀하우스 2023.
중국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최근 북한이 전례 없는 빈도로 도발을 지속하며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중국이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시주석은 “한중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공동이익을 가지며 평화를 수호해야 하며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북한의 도발과 핵 위협에 대해 한국이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요청하는 것은 한국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관계없이 지속되어 왔는데 입버릇처럼 중국에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중국은 한반도 및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따라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기저에는 어떤 요소가 있는지 추론해 본다.
첫째, 중국에 이른바 ‘건설적 역할’을 굳이 요청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6⋅25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는 판단에 따라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중국 경제가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중국의 국익에 긴요하다. 물론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조장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중국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아도 북한이 선을 넘는 것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놔두어도 될 일을 부탁하여 중국이 생색을 내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다.
둘째,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한국이 생각하는 만큼의 수준인가? 중국과의 교역이 북한의 대외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북한은 수많은 주민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을 이겨냈다. 또한, 북한은 중국의 경제적 침투를 북한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평소 김정일은 “일본은 100년의 원수이고 중국은 1000년의 원수”라고 하였다고 한다. 김정은은 친중파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헝하였고 중국의 관리 대상이었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하였다. 북한은 중국의 내정간섭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주권국가의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김정은이 핵실험 위협과 미사일 도발로 미국을 한반도로 바짝 끌어들이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시진핑에게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당근’을 줄 수밖에 없는데 중국이 대규모 지원을 한다고 해도 북한을 통제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원천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외부에서 기대하는 만큼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중국은 과연 북한의 비핵화를 바랄까? 물론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함에 따라 북한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 지역의 완충지대로서의 잠재력을 강화시켜 주므로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무장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트럼프와 김정은은 싱가포르, 하노이 및 판문점에서 총 3차례 만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 매우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사실 시진핑은 김정은이 집권한 이래 무려 7년이 지나도록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시진핑의 주도로 북⋅중 정상이 5차례나 회동한 것이다. 과연 시진핑은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을 기뻐하며 김정은에게 트럼프와 잘 해보라고 하였을까? 시진핑은 중국이 배제된 채 김정은이 트럼프와 ‘깜짝 딜’을 할까 봐 초조한 나머지 가만히 바라만 볼 수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 북미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중국에 있어 완충지대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 핵 문제 해결책으로 일관되게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 추진)과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대규모 훈련의 동시 중단)을 주장하고 있는 데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방안들이다. 중국의 속내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넷째, 중국은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남북관계에 어떻게 임하고 있나? 중국은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북한이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의 대한반도 인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시진핑은 2017년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사실 과거에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Actually Korea used to be part of China)”라고 했다. 조선의 임금이 명의 책봉을 받았고 청에 항복한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에게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 아마도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역사적 연고가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미국의 양해를 구하려 한 것 같다. 2015년 8월 놀라운 보도가 있었는데 중국이 미국에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경우 북한 지역을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4개국이 분할 통제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중국은 안보리 결정에 관계없이 북한에 진주하여 북한에 반중 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저지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군 북부전구(만주, 내몽골, 산동반도) 사령부가 압록강 도하훈련 그리고 요동반도 상륙훈련을 했다는 보도를 가끔 접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한반도 상황은 무엇일까? 남북한 간에 전쟁으로까지 비화되지는 않을 정도로 긴장이 유지되고 그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 힘이 빠지는 상태일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현상유지를 선호하며 통일을 견제하는 이한제한(以韓制韓) 정책을 펴고 있다. 남북한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로 통일되면 8천만에 육박하는 인구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통일한국 자체가 중국에는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한족이 한 번도 지배한 적이 없는 만주에 대해 통일 한국의 감상적 민족주의가 ‘고토회복’을 외치는 것은 악몽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중국의 ‘선한 역할’은 한국 좌파 진영의 환상 또는 의도를 갖고 만든 신화일 뿐이다.
결국, 중국과 한국은 제2의 한반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만 이해가 일치한다. 시진핑이 말했듯이 “한반도 문제에 공동이익”을 가진다. 즉 한반도 안정이 유지되는데 중국의 이익이 걸려 있다. 중국이 자신의 국익을 위해 남북한 간 긴장 완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왜 우리는 중국에 매달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가? 최근 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주한 중국 대사를 만나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였다고 하는데 필요한 주문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 외국 대사를 만나는 것이 적절한가의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상하이밍 중국 대사는 부임 직후부터 오만불손한 행태를 보이는데 바로 잡아주진 못할망정 그의 기를 살려 줘서야 되겠는가? <2022-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