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와 호두 / 조영안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두 녀석이 반겨 준다.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 입구에서부터 호두를 선두로 코코까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때쯤에는 어머니만 계시기에 집은 조용하지만 이 두 강아지가 고요를 깨운다.
코코와 호두는 수컷이다. 코코는 막내 시누이가 갖다 주었고, 호두는 3년 전에 김해에서 데려왔다. 먼저 온 코코가 외롭게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보기가 딱해서, 한 마리를 더 거둔 것이다. 두 녀석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둘의 관계가 묘했다. 처음에는 텃세를 부리는지 코코의 기세가 대단했다. 차츰 늦게 온 호두가 코코를 꼼짝못하게 했다. 누나 방에서 쫓겨난 코코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미적미적 눈치만 보기 일쑤다. 그야말로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었다. 호두가 오기 전만 해도 누나 껌딱지였던 코코는 싸워볼 엄두도 못 내고 꼬리를 내렸다. 서열 경쟁에서 호두가 이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의형제다.
코코는 하얀색 털을 가진 말티즈 종류다. 다리와 발이 통통하고 짧다.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토종이라 체구가 적다. 유난히 눈이 동그랗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화가 나서 째려보려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그냥 웃음이 나오고 만다. 성격도 우리 식구를 닮아 무뚝뚝하고 표정이 없다. 종종 화가 나면 무서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데 그게 매력이다. 발을 핥는 걸 못하게 하면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중성화 수술을 해서 오줌도 암컷처럼 먼 산을 보듯이 앉아서 누는데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호두는 애교가 많고 활기차다. 노란색과 갈색의 털을 가진 포메라니안이다. 다리가 유난히 길다. 얼굴이 작고 귀여워 만나는 사람마다 예쁘다며 눈길을 준다. 김해시 유기견 센타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남편과 딸이 직접 가서 데려왔다. 안락사 직전이었단다. 그래서인지 첫날부터 딸한테만 곁을 주고 경계가 심했다.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고, 먹을 것도 거부했다. 차츰 다른 식구들과도 친해져서 이제는 우리 집 애교쟁이가 되었다. 미용하러 가면 가게에 오는 아이들 중 두상이 제일 예쁘다는 칭찬을 듣는다. 사람으로 치면 ‘멋진 상남자’가 아닐까. 걷기와 달리기를 좋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천변을 걷고 달린다. 자기만의 산책로를 고집하여 가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앉아 버린다. 여자친구 아롱이도 생겨 목하 열애 중이다.
호두와 코코는 동갑내기다. 여섯 살이니까 사람 나이로는 마흔두 살의 중년인 셈이다. 그런데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는 모른다. 이제는 서로가 없으면 찾는다. 한 마리가 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기다린다. 가끔 호두의 애교 작전에 온 식구가 웃음 꽃이 만발하지만 그래도 나는 처음 정을 들인 코코가 더 좋다.
사실 우리 가족은 개 키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강아지를 안고 가면 ‘개를 왜 키울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간간이 남의 강아지를 보면 그때나 귀엽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어느 날 친구가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했다. 호피견이었는데 자랄수록 호랑이 무늬가 선명했다. 호랑이가 연상되어 이름을 호동이라고 지었다. 딸은 강아지를 동생처럼 보살피며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호동이가 자라듯 딸도 우울증을 스스로 극복하며 무사히 사춘기를 벗어났다.
호동이가 한지붕 아래 살면서부터 딸도 활기를 되찾았다. 농장, 낚시터, 해병대에 복무 중인 아들 면회 갈 때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다. 한 번 짖으면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덩치가 너무 커지자,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고심 끝에 지인의 농장으로 보냈다. 가까운 곳이라 가족들은 자주 들러 만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지나가도 기척이 없어 주인에게 전화했더니 탈출했다고 했다. 바로 인터넷에 올렸다. 다행히 우리집 근처에서 발견되어 동물 구조 단체에서 마취총으로 잡아 보호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 우리집에 오는 길에 길을 잃고 헤매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농장으로 돌아갔는데 주인이 상한 음식을 먹였는지 결국 장염으로 죽었다. 호동이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그즈음 시누이가 키우던 몽실이가 새끼를 낳았고 꼬물이 한 마리를 선물했다. 바로 코코였다. 코코는 호동이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 줬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탓인지 웬만한 말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알아듣는 거 같다. 물그릇에 물이 떨어지면 그릇을 딸랑딸랑 흔들며 신호도 보낸다. 집을 방문하는 반가운 이가 들어오면 짖지도 않고 문 앞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반겨준다. 집도 잘 지켜 코코가 먼저 짖으면서 호두를 쳐다보면 그때야 같이 짖는다.
식구를 좋아하는 그들만의 순서가 있다. 코코는 딸, 남편, 나, 시어머니 순이다. 호두는 딸, 남편, 시어머니 순이다. 호두에겐 내가 꼴등인 것이다. 역시 모든 것을 책임지는 딸과 남편이 두 녀석의 보호자가 확실하다. 두 녀석의 미용값은 각각 4만 원이다. 3만 원짜리 퍼머하는 나보다 나은 셈이다. 간식, 사료, 미용, 청소, 병원 다니기 등은 남편과 딸이 책임진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단정하고 털은 윤기가 흐른다.
아기를 키우는 정성으로 두 마리를 돌본다. 처음에 지녔던 반려견 선입견에서도 탈출했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 공존한다. "왜 개를 키우냐?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키워 보니 알겠다. 생각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집에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께는 말동무가 되어 준다. 남편은 호두 덕분에 하루 만 보 이상을 걸어 덤으로 건강을 챙긴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친 나 역시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아 기다리다 꼬리를 흔들며 빙빙 돌며 신나게 반겨 주는 두 녀석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은 가족 그 이상으로 힘이 된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가족 간의 대화를 이어주는 소중한 귀염둥이들이다. 오래오래 함께하며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하하! 우리 집 보물이를 보는 듯합니다. 우리는 말티즈와 시추의 믹스견인 아가씨 말티츄이예요.
사랑스러운 강아지들과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물도, 사람도 정 들면 소중해 지더라고요.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스런 보물들, 무척 궁금하네요. 글에서도 애정이 듬뿍 느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코코와 호두 강아지 이름이 예쁩니다.
팬클럽을 가지셨군요.
선생님만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귀여운 강아지들.
저도 반려견 생각하다가 유튜브 보는 것으로만 대신합니다. 정말 귀엽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름이 예쁘네요, 코코와 호두.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 보면 그렇게 행복해 하더라고요. 저는 게을러서 키울 생각도 못하는데 존경스럽습니다.
딸이 엄청 키우고 싶어 했지만 제가 주변머리가 없어 그리는 못하는데요,
사람 말귀 다 알아듣고 재롱 떠는 강아지들 볼 때마다 신통해서 가끔은 갈등하기도 한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