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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국토 최남단섬/바람의 섬 마라도 가는 항구는 두 군데가 있다. 송악산 여객 터미널과 운진항이다 우리는 운진항에서 출발/왕복17.000원 마라도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영세농어민 4,5세대가 당시 제주목사로부터 개간허가를 얻어 화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이 이주했다 '탐라순력도(1702)'의 麻羅島(마라도 : 칡넝쿨이 우거진 섬)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라도는 본래 원시림이 울창한 숲이었는데, 화전민 개간으로 숲이 모두 불태워져 지금은 섬 전체가 낮은 풀로 덮여 있다 대정읍 운진항에서 남쪽으로 11㎞ 해상에 자리하며 원래 가파리에 속했으나 1981년 4월 1일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형태는 고구마 모양이며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해식동굴과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약 9만 평, 최장 길이 약 1.3km,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11km 지점 해상에 위치해 있는 제주도 섬 속의 섬 다양한 난대성 해양생태계와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곳 제주도에서는 배를 타고 약 30분 정도 소요되며 정기여객선과 관광유람선이 하루 수차례씩 왕복 운항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토 최남단비/1985년 설립 2000년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 멀리 삼방산과 형제섬이 보인다 자리덕 선착장 4계절 자리(물고기)가 많이 나기때문에 붙여졌다 영화의 한장면을 연상케하는 마라도 바삐용 절벽이기도 하다 ㅋ 고빼기쌍굴/자리덕 선착장 해안가 살레덕 선착장 마라도는 제주도에서도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곳이라 오랜 세월 거친 파도에 의해 해식동굴이 많이 발달했다
마라도를 오고 갈 수 있는 살레덕 선착장 아래로 가파른 절벽과 기암, 해식동굴을 만날 수 있다 마라분교/1958년에 설립 최남단 마라도 교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교단 소속 제주 기독교 100주년 기념비와 기독교 순교자 기념비 등이 어우러져 있다. 백년손님에 나왔던 박서방 장모집 기원정사 초코렛박물관 신선바위=장군바위 마라도 성당 마라도에서 많이 잡히는 전복,문어.소라를 디자인 했다 마라도 등대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는 마라도 등대는 전 세계 해도에 표시되어 있는 등대 이 지역을 항해하는 국제 선박 및 어선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1915년에 무인 등대로 처음 빛을 발했으며, 1955년에 유인등대로 변경했고, 1986에 재건축되었다 등대 주변으로는 태양광 발전시설과 전세계 유명 등대 모형도 만나볼 수 있다 대문바위 무덤
마라도 주민들은 전복, 톳, 소라, 미역 등을 채취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민박과 향토음식, 짜장면을 팔아 소득을 올린다 마라도 블랙로드라고 불리는 짜장면 거리도 있다 작은섬에 짜장면식당이 9개나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섬 마라도) (대한민국 최남단 암초이자 해양기지인 이어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할 무렵에는 조선시대 고종20년(1883) 모슬포에서 김씨· 라씨· 한씨· 이씨 등이 입도시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였으나, 이주민들이 농경에 필요한 경작지를 마련하고자 숲을 태워없애고 탄자리를 일구어 농지로 바꾸어 나갔으며,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중 한사람이 환한 달밤에 퉁소를부는데,많은 뱀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 이에 놀란 주민은 뱀들을 제거하기 위여 숲에 불을 질렀는데,타기 시작한 나무는 석달열흘이 지나서야 불 길이 멎었고, 뱀들은 꼬리를 물고 바다건너 제주의 동쪽지방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뱀과 개구리가 없다. 또한 해안선은 기암절벽을 이루어 절벽밑은 해식동굴이 형성돼있고 섬 전체가 현무암석 덩어리이며, 이러한 암석은 해저에도 깔려 있어서 이 지역의 해안에는 패류· 해조류·연체류 등 해산물이 풍부하여 전복·소라·해삼·성게·미역·톳 등이 적지이고 예로부터 여름철 벵어돔과 자리돔은 유명하다.
# 이어도 종합 해양과학기지 중국이 이어도 관할권을 주장한 가운데 이어도의 역사와 영유권을 둘러싼 쟁점 등을 조명한 《이어도 바로알기》(선인 펴냄)가 출간됐다. 이어도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어도연구회 이사장인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은 발간사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국민이 인식하고 있지만 이어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정부의 너무 조용한 외교로 인해 국민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출간 배경을 밝혔다. 이어도의 상징과 이미지, 이어도 영유권을 둘러싼 쟁점까지 입체적으로 살핀다.
제주도민들은 오랜 역사적 체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고, 여러 역사서와 고문헌들은 이를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이런 사료의 기록을 보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해로는 제주섬을 기점으로 제주도민에 의해 개척되었고 이를 주변 국가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또 “이어도는 남방으로 가던 바닷길 중간쯤에 있다는 제주 사람들의 노래, 뱃사람들의 노동요, 해녀들의 노동요에 단골로 나오던 명사요, 후렴구였다”며 “해녀들의 노래가 이어도를 우리나라 섬으로, 암초로 확정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선원이었던 하멜은 17세기 중엽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떠내려왔다가 13년 남짓 조선에 살았다. 출처: https://historykorea.tistory.com/46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알고 세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