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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철학, 가치관, 관점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철학(哲學)’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이나 세계관이다. 가치관(價値觀)은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물과 현상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나 중요성에 관한 근본적 태도이다. 그리고 관점(觀點)은 인간이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이나 생각하는 입장이다. 사람이 어떤 철학과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이 정해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이 다르면, 그 사람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점도 다르고 그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도 다르다.
예를 들어, 기독교적 관점을 지닌 사람과 불교적 관점을 지닌 사람의 차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기독교는 인간의 영혼 불멸과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 눈앞에 보이는 현재 세계가 다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을 믿는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성령 안에 있는 의(義, 올바름)와 평강(平康, 평화)과 희락(喜樂, 기쁨, 즐거움)의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 이 땅에서 이루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친 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에 대한 무지(無知)와 불신앙(不信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不順從)은 삶에 고통을 불러온다.
불교는 영원한 존재와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우주 만물이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며”(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는 것으로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실재(實在, reality)는 존재하지 않는다”(제법무아, 諸法無我)고 하였다. 이러한 이치와 만물이 서로 관계를 주고받는 가운데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연기(緣起)의 도리를 알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 때 고통과 번뇌가 없는 , 열반(涅槃nirvāna)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무상(無常), 무아(無我), 연기(緣起)의 도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과 거기서 나오는 집착과 어리석은 행위는 삶에 고통을 불러온다.
이렇듯 기독교가 영원한 세계와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에, 불교는 영원한 세계,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절대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인 반면에, 불교적 관점에서는 절대자는 없으며 절대자가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고통에 이르는 길이다. 이처럼 기독교적 관점과 불교적 관점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와 불교 신자의 사고(思考)방식과 삶의 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독교적 관점과 불교적 관점의 예에서 보듯, 사람이 어떤 가치관,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이 정해지고, 그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어떠한 철학, 가치관, 관점을 지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난 1월 말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말했고, 그 이후 이런저런 실용주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참여연대는 2월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중도층 포용을 명분으로 친기업·감세·규제 완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집권을 고려한 정치 전략에 불과하다”며 “민주당과 이 대표는 즉각 우클릭 행보를 멈추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위기 해법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2월 5일 MBN 유튜브에 출연하여 이재명 대표의 실용주의적 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진보의 가치와 철학을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해 푸는 것은 충분히 필요하지만, 가치와 철학이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과 바뀔 순 없다”고 말했다.
‘가치체계’(철학, 가치관, 관점)와 ‘실천체계’(사고방식과 삶의 양식)는 함께 가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이 따르지 않는 가치체계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처럼 공허하다. 그리고 가치체계가 분명하지 않은 실천 방안은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즉흥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측면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가치체계와 실천체계가 함께 가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고 수시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치체계는 개인이나 단체의 경험, 상황, 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실천체계도 수정될 수 있다. 하지만 가치체계와 실천 체계가 바뀔 땐 바뀌더라도 그 과정이나 내용이 분명해야 한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출처 : 아산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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