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5
류인혜
* 몽마르트르 언덕
점심 식사 후 우리 일행은 파리의 어느 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가서 보기를 기대했던 곳으로 향하고 있다. 내가 상상했던 몽마르트르 언덕은 낮은 구릉의 긴 거리였다. 그런데 언덕이라는 작은 범위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 있어선지 이곳이 정말 몽마르트르 언덕이라는, 화가들의 고향인가 싶을 정도로 번화하다.
오래전에는 방세가 싼 이곳에 무명의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낭만을 느끼기보다 그들의 신세가 가여워서 가슴 아팠다. 내가 갈 것이다 기다려라, 가서 초상화를 여러 장 그린 후 많은 수고비를 줄 것이다, 허세가 가득한 의기를 세웠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 설레면서 천천히 언덕이 아닌 구릉으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 저렴한 물건을 파는 가게가 많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첫인상부터 구질구질하다.
저 멀리에 흰색의 건물인 성심성당(샤크레 쾨르 성당)은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시내 어디서나 잘 보인다.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19세기 말 보블 전쟁 후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1914년 완성되었다.
성당의 구역인지 철망이 처진 데까지 올라가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높이 쳐다보이는 저 많은 계단을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을 했는데 그곳에서는 중간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있어 그것을 타고 편하게 올랐다.
언덕의 높이에 따라 구역이 나누어진 계단에 사람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다. 전망이 탁 트여 시야가 넓은 곳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옛날 고향의 앞산에 올라 읍내를 내려다보며 마음의 소원을 빌었는데 이제는 무엇을 해보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사라져 버린 나이에 이르렀다.
그때는 마음속으로 세계 일주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그림을 그릴 때는 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꼭 가볼 것이다. 그곳에서 화가들 사이에 앉아 나도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대신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으로 이곳에 왔다. 잡상인들도 많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라고 권하고 있다.
일행들은 벌써 지쳤는지 오른편으로 높이 보이는 성당으로는 올라가지 않고 왼편의 마을로 들어갔다. 테르트르 광장이다. 주변의 낮은 집들의 모양이 아름답다. 두리번거리며 소문에 듣던 그림쟁이들부터 찾는다. 광장 중앙에 식탁이 놓였고 둘레에는 화가들이 모여 있다.
우선 이곳에 왔다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자세를 잡고 있는데 지나가던 종업원 차림의 남자가 곁에 와서 선다. 흘낏 쳐다본 그의 얼굴이 딱 전형적인 파리인이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곳을 한 바퀴를 돌면서 진열된 그림을 구경했다. 화가들은 좁은 공간에서 각기 특색이 있는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흡사 엽서에서 보는 것처럼 예쁜 그림도 많았지만, 너무 비싸다. 이곳이 널리 알려진 만큼 상업적으로 변해 순수한 예술가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한 분위기다. 그래도 자신의 그림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겠다고 믿는다. 어쩌거나 뜨내기손님인 관광객들을 상대하여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도 많으니 보는 사람도 기대 없이 건성이 된다.
카페 옆의 작은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정선휘 선생이 부탁한 편지 칼을 사려고 더듬더듬 외마디 영어로 말했더니 나이든 가게 아줌마는 없다며, 다른 가게를 알려 주는데 매력적인 불어 발음이다.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어딘지 몰라서 포기했다. 멀끔히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음식점 벽에 기대어 나란히 앉은 아이들을 발견했다. 비슷한 모습의 이국적인 얼굴이 마냥 귀여웠다. 동양에서 온 아줌마와 프랑스 어린이들이 서로 웃으며 쳐다본다.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후에 길거리에 서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 사진을 찍었다. 일행들은 모두 무엇을 눈여겨보는지 광장을 서성거리고 있다.
백화점 쇼핑 - 쇼핑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일본인 백화점에 들렀다. 한글로 된 안내도가 있었지만 40분의 정해진 시간이라서 두루 다녀 볼 생각을 접고 근처에서 집에서 당장 필요한 것만 골랐다. 질레트 면도기, 비누 4개, 치약 2개, 전동 칫솔 2개, 향수 2세트, 클립 세트를 사고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향수를 계산하는데 여자 점원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한다. 한국이라니 많이 반가워한다.
세일 품목이었던 비누 중에 향기가 좋은 것은 아내가 사용하는 것이라고 큰아이가 더 많이 사서 왔으면… 아쉬워했다. 한국에서는 그 비누를 판매하는 가게가 한두 곳뿐이라고 한다. 제 식구를 위하는 마음에 흐뭇했다.
향수는 정 선생과 신 선생께, 황 집사에게는 치약을 나누었다. 다음 여행에는 무리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꼭 드는 한 가지 품목을 여러 개 사서 나누는 것이 더 경제적일 듯하다.
* 한국수필가협회 제9회 해외심포지엄
일시 : 2003년 10월 17일 18:00
장소 : 파리 한국문화원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심포지엄을 진행하기 위해서 한국문화원으로 향했다. 예정된 시간이 촉박했지만, 문화원 문패 앞에서 기념촬영을 빼놓을 수가 없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곳곳에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지하의 소강당에 마련된 행사장에 들어갔다. 머리 모양이 우주인처럼 이상한 차림의 여자를 눈여겨보았는데 그 사람이 강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준비된 자료집이 나누어졌다. 주제는 <수필 글쓰기의 어제와 오늘>이다. 한글과 불어로 표기되었다. 네 사람의 강사가 모두 여성이다.
다시쓰기 형태로서의 에세이: 식수스의 몽테뉴 다시쓰기 – 미레이유 깔그뤼베르
20세기 프랑스의 여성 글쓰기 – 베아트리스 디디에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소고 - 박영혜
한국수필의 현황과 그 방향 – 서정남
박영혜 교수의 재치 있는 사회로 시종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불어로 발표를 하기에 그저 웃고 쳐다만 보다가 박 교수가 한국말로 설명을 해주면 늦게야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심포지엄의 재미가 바로 이런 점인가 보다.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발표 내용을 몰라도 현지에 사는 우리 국민이나 외국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파리에 있는 유학생들과 한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모였다. 수필 쓰기에 대한 질문도 활발했다. 행사가 끝이 나고 기념촬영을 했다.
로비에 눈에 익은 한국 음식을 차려 놓았다. 그러나 옵션으로 센강 유람선 관광을 예약했기에 우리는 쫓기듯 나왔다. 손님들에게 미안하고 좋은 토론장이 될 기회를 놓쳐 아쉬웠다. 우리가 파리에 온 목적은 심포지엄인데 주최 측에서 많은 손님을 그대로 두고 음식까지 싸 들고 나왔다는 것이 무척 못마땅했다.
미국에 오래 거주한 김 선생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외국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공식적인 것은 끝이 났으니 먹고 안 먹고는 자유로운 선택임에는 사실이다.
유람선을 타는 곳에서 관광을 신청한 일행이 내리고, 지사장과 임 선생님,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파리 시내의 길을 모르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에게 “택시를 타고 가지”라며 불평을 하는 버스 기사에게 데려다주어 고맙다고 10유로를 팁으로 주었다. 한국 사람은 염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운전기사는 관광할 동안 버스를 운전하면서도 계속 한국 사람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몸에는 마늘 냄새나 김치 냄새가 깊이 스며 있는 것인가? 그래도 그렇지, 10유로면 얼마야? 5유로만 줄 것을… 큰돈은 아니라도 버스 기사의 불친절에 갑자기 과용했다는 생각이 들어 잠들기 전까지 내내 찜찜해 있었다. 예상대로 다음 날은 버스가 바뀌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룸메이트 허 선생이 들어왔다. 내가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김밥을 가져 왔단다. 감사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잠에 취해서 금세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일부러 갖고 온 성의가 고마워서 맛있게 먹었다. 파리 중심가의 호텔에서 김밥을 먹다니…!
첫댓글 뜻 깊은 해외 심포지엄이었군요.
프랑스사람들도 우리처럼 수필에 관심많고 열정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