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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강 영광의 서막
26.03.08(일)
믿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거예요.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얘기는 나사로 살아난 거 다 봤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해요. 믿는 사람들만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거예요.
두 번째 믿는 자만이 자신의 삶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봐요.
믿음의 렌즈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임재를 경험하고 축복을 경험하는 거예요. 믿는 자만이
세 번째 하나님의 부재의 축복 고난의 축복 있어요.
놓치지 마세요 지금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있어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 선하심으로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되는 본문은 요한복음 12장이고요. 제목은 영광의 서막입니다.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보게 되는 포인트가 세 가지가 있어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요한복음 12장 이후의 주제다
11장까지가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대략 한 3년 정도의 기록을 하고 있다면 1장부터 11장이요. 12장부터는 마지막 고난주간 한 주간을 다루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시간 배열이라는 게 놀랍죠 이제 이 일주일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자세한 것보다도 얼마나 핵심적인 사건들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가 하는 걸 보게 되는데 영광의 서막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 주제는 영광이에요.
이상하잖아요.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는 얘기예요. 일주일 내내 근데 이게 영광의 서막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영광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것이고 드디어 때가 온 것이어요.
그 때가 왔다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시게 되는 거예요.
그때 어떤 때예요. 영광의 때죠 고난주간의 기록 12장부터 19장까지가 고난주간의 기록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시작을 하는가?
유월절 엿세 전에 1절에 이렇게 시작해요.
유월절 엿세 전에 주님이 죽으시는 건 언제예요.
유월절 양 잡는 시간에 죽으신다고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을 굉장히 놀랍게 일치시키면서 설명을 하고 있어요.
엿새 동안의 기록이죠. 주님의 고난 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고요. 영광의 서막 빵빠레라도 울려야 할 것 같은 우리는 침울해지는 분위기로 가기가 쉬워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고난을 볼 때 그러나 요한복음의 관점을 가지고 우리가 이것을 보기 시작해야 돼요.
요한복음만의 관점은 아니에요.
전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거는 너무너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그 관점 십자가를 바라보는 영광의 관점이 있어야 우리 삶 속에서 때로는 실패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뭐가 안 되고 그 속에서 그냥 세상적 관점으로 나는 패자야가 아니라 영광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거여요.
마리아가 예수님한테 향유를 붓는 사건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해요.
영광의 서막은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요.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그곳은 베다니여요. 베다니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에요.
나사로 죽은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는 곳이에요. 근데 그 집이 어딘가 하는 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마태 마가복음에서 설명하기를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다. 아마 이 사람도 예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던 사람 같아요.
이 사람이 이제 대접을 하면서 동시에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도 그 자매들 마르다와 마리아도 함께 참석한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같이 기념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본문에 보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나사로를 볼려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막 몰려와요 마당에도 바깥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여기서 마리아의 행동이 나타나죠.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이거는 북 인디아에서 수입하는 거예요.
우리말로 소위 수입 명품 수입 명품을 가져다가 깨뜨린 거예요. 어디에 부었어요. 원래 머리에 붙는 건데 예수님의 발에 부어요.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줬어요.
향유 냄새가 어느 정도 났겠어요.
향수를 몇 방울만 뿌려도 냄새가 나는데 이게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가룟 유다의 행동이 주목할 만해요.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머리가 좋은 사람이에요.
보통 그 당시 노동자들이 1년 벌이에요.
1년 연봉이에요. 어마어마한 돈이에요. 짐작컨대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서 이것을 그동안 준비해 왔던 것 같아요. 가룟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라고 얘기했을 때 틀린 말 아니에요.
그 자체는 근데 성경은 가룟 유다를 이렇게 평가하죠.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오. 그는 도둑이라 돈 괘를 맞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이 사람이 회계를 맡았어요. 그런데 도둑놈이에요. 여기서도 야 네가 헌금하면 우리가 여기서 내가 좀 껴먹을 게 있는데,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게 아니다.
주님이 마리아를 변호하시죠.
가만두어 그를 가만두어 그녀를 놔둬 건드리지 마 뭐라고 그러지 마 말씀하는 거예요.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한 여기서 중요한 단어예요.
이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그러니까 그것을 더 놔둬 가지고 간직하라 이런 말씀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녀를 그냥 그대로 놔둬라 나의 장례를 준비하는 거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난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지금 중요한 건 구제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에요.
구제가 중요하지 않다가 아니라 지금 초점은 예수님의 죽음이에요. 장례할 날을 위하여 마리아를 소개할 때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를 하면서 이거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알고 있는 얘기라고 그랬죠 왜 주님이 마리아의 얘기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다 전해지게 하라고 그랬잖아요.
그 이유를 여기서 우리는 좀 보게 되는데 오직 마리아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테복음에서 가이사랴 빌립보로 갈 때 거기서 예수님이 사람들이 날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면서 주님이 당신이 이제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처음으로 말씀하세요. 자 이러면 제자들이 좀 알아들어야 되잖아요. 못 알아들어요.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께서 이제 죽으시는 그 마지막 주간에도 제자들은 다퉈요 누가 크냐 지금 관심이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그런데 마리아는 열두 제자도 아니여요.
여자여요. 마리아는 알고 있어요.
마태복음 26장에서도 주님은 이 여자가 내 몸의 향유를 본 것은 내 장례를 위함이다
주님의 장례에 대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죽음에 대해서 아무도 개념이 없어요. 그런데 이 여인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여러분 마리아가 등장하는 몇 되지 않는 장면들 속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공통적으로 보게 되는 거는 여러분 이야기 아시잖아요.
마르다가 화가 났어요. 동생한테 예수님한테 달려와서 아니 지금 잔치를 예수님 위에서 음식 만들어야 그런데 마리아는 주님 앞에 앉아서 그냥 말씀만 가만히 듣고 주님 발치해서 얄미워요 얄밉죠
근데 주님이 놔두라 좋은 걸 하면 된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어요. 예수님의 죽으심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준비했다는 것이어요. 참된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몇 가지 싸인들 나사로 표적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많이 믿었어요. 많이 믿게 됐어요.
그리고 예수님과 부활한 나사로를 보려고 이 잔치 그러니까 나사로를 보며는 이게 신기한 거예요. 저 사람이 진짜 죽었었던 게 맞아 예수님이 저 사람 살렸다매
말하자면 나사로는 돌아다니는 증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증거예요. 산헤드린 공의회가 어떻게 하겠어요. 예수님만 죽이려고 하다가 아니 안되겠어 이 증거를 인멸해야 되겠어 나사로도 죽이겠다고 해요. 때가 온 거죠.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님의 태도가 좀 바뀌어요. 어떻게 바뀌냐 하면 그 전에는 병자들을 고쳐주고도 야 이거 내가 고쳤다고 말하고 어디 돌아다니지 마라 그렇게 하셨죠. 스스로를 숨기셨어요.
그런데 순례객들이 막 환호하잖아요. 호산나 노래하면서 그것을 다 받으세요. 그대로 다 받으세요. 주님이 왕으로 들어오는 거거든요.
왕이 나귀를 탔어요. 다른 나라에서 보통 뭘 타겠어요. 말 타죠 멋있게 마차를 타거나 근데 말을 많이 두지 말라 율법에서 말씀하셨고 그러니까 나귀를 타고 들어가는 이게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도 자기의 아들들을 축복하고 예언하면서 유다를 축복하면서 나귀를 얘기해요.
근데 이제 이런 것들이 바로 예수님이 나귀로 왕을 타고 오는 것에 대한 하나의 그림인데 이렇게 겸손한 왕으로 오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는 왕으로 입성한다. 그 얘기를 지금 하는 거죠. 그래서 호산나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왕이요. 그렇게 얘기하는 거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다고 그랬어요.
종려나무가지는 기쁨의 상징이고 특별히 초막절에 사람들이 많이 흔들었어요.
그런데 주전 141년에 마카비우스가 시리아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승리의 퍼레이드를 할 때 사람들이 막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었으니까 이스라엘의 독립 이스라엘의 승리 이런 개념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이 메시아가 사람들의 기대는 다 이분이 메시아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보니까 이분이 메시아다 죽은 자까지 살리지 않았느냐 이분이 메시아다
이제 남은 거는 뭐예요? 로마로부터 우리를 독립시키는 거다 이런 개념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호산나 찬송아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곳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얘기한 거예요.
자 이 뒷 부분을 좀 읽어볼 필요가 있어요.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나귀 새끼니라
말씀하세요. 예언을 성취하는 거예요.
근데 나귀를 타고 오신 분인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왕은 백마를 타고 오세요.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심판하러 오실 거예요.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때가 찼기 때문에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하시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 우리를 위한 메시아 그러나 주님은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이제 때가 차매 드러내시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건이 있나요? 12장 20절에 보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순례자들이죠. 유월절이니까. 헬라인 몇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뭐예요? 헬라인인데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하는 칭호를 받는 사람들이에요. 이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찾아와요.
예수님을 보려고 그러니까 이 사건은 여러분 우리가 쭉 읽어보면 알지만 주님이 우리가 그 유명한 말씀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하나로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은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이 사람들을 만났다 안 만났다 하는 기록은 없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주님이 이 이야기를 하세요.
헬라인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유대인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시다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했던 것과 마찬가지예요. 니고데모가 나왔고 3장에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이 나왔고 그다음에는 이제 헬라인들이 또 찾아와요.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헬라인들이 주님을 찾아요.
그러니까 주님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구나 왔도다 이제 현재 시제로 말씀하는 거 왔다 지금이다. 말씀하시는 거죠. 그리고 하신 말씀이 밀알의 얘기예요.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게 누구 얘기예요. 나사로 얘기 아니죠. 주님 자신 얘기를 하시는 거죠.
이제 때가 왔어 내가 십자가에 죽을 때 그 죽음의 성격이 뭐야? 많은 열매를 맺는 거야. 말하자면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사실은 이게 주님이 죽으시게 되는 공회의 결정을 만들어내는 도화선이 되잖아요.
주님의 죽음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이 얻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양을 생명을 얻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는 건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여요
한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는 죽음 목적을 가진 죽음이라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이지요
근데 이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영생하도록 그러니까 영생을 얻도록 이라고 할 때는 다른 단어를 써요 조에라고 하는 거예요.
너희가 얻어야 하는 거는 조에라고 그리고 그건 내가 너희한테 주는 거라고 그래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알아야 된다. 근데 이게 주님의 죽음과 관계 있는 거예요. 주님이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거라고요.
요한복음 11강 영광의 서막 2
이 전체 대목에서 아버지의 영광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보다 더 큰 거는 존재하지 않아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는 것이어요
모든 것은 나를 보내신 이의 영광이에요.
그것이 곧 예수님 자신의 영광이기도 해요.
주님이 고뇌에 섞인 말씀을 하세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생각나게 하는 바로 그런 말씀이에요.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이를 위하여 이때 때 이를 위하여 뭐 하나님의 영광 우리는 예수님이 이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하는 이 기도를 생각할 때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쉬워요
예수님이 죽음을 무서워하셨구나
근데 여러분 교회 역사의 순교자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순교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했나요? 두려웠겠죠.
그러나 그들은 너무 영광스럽게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순교자들만도 못한 것입니까?
주님께서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은 그런 개념이 아니어요
마틴 루터가 정확히 얘기했어요.
이 사람보다 더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는 없다.
역사상 없다. 왜 주님은 죽음의 의미가 뭔지를 아셨고 주님이 죽으셔야 하는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는 인류가 맛보지 못한 진자 죽음이에요.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는 죽음이에요.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저주예요. 그것을 영원하신 영광 가운데 계시던 주님께서 그것을 다 실제로 받으시는 거예요.
하나님에게서 저주받고 끊어지는 거죠.
이것을 두려워하실 것이죠.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과 고난이 아니에요.
아들의 소원이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항상 하나님의 영광 아버지의 영광이에요. 날 보내신이의 영광이에요. 그게 예수님의 삶의 모든 초점이고 목적이었어요.
십자가를 위해서 오셨어요.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서 오셨어요. 사명을 인식하시는 거죠.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을 항상 인식하는 거예요. 십자가를 져서 어떻게 해요.
십자가를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제자들이 왔을 때 마태복음 6장에 뭐라고 그러셨어요. 제일 먼저 하신 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 역임을 받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때 저와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기도의 제 1번 기도 제목 가장 우선적인 것 우리의 기도의 궁극적 목적 뭐예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가 아니라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예수님이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으신 공생애의 삶 속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투영하여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그 삶을 살도록 주께서 그 길을 가신 것이에요.
고난 받으시는 인자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한테 질문을 하죠.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이제 들려야 한다는 말을 자꾸 들으니까 사람들이 아 이게 죽는다는 소리인가 자결하려고 그러나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왜 자꾸 죽는다는 소리를 하십니까?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가 알기로는 성경에는 메시아는 죽지 않는 건데 왜 자꾸 죽는다고합니까? 사람들이 알았던 것이 있어요. 구약의 예언들을 좀 알았어요.
메시아의 권세가 영원하고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나라라는 건 알았어요. 그러나 몰랐던 게 있죠. 고난받는 종의 노래 제가 하나만 그냥 가지고 나온 거죠.
이사야서에서 얘기하는 그는 흠모할 만한 풍채나 모든 외향이 흠모할 만한 게 없어요. 그리고 채찍에 맞아요. 그리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고난을 당해요.
이런 모습의 메시아는 그들은 기대할 수가 없었고 그게 메시아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거는 인정하기 싫었어요. 메시아가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거라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 나는이라고 말씀하시기보다는 인자는이라고 말씀하세요.
인자 무슨 뜻이에요. 사람의 아들이에요.
근데 이 사람의 아들이라고 이 말은 굉장히 모호하면서도 함축적인 게 있어요.
그걸 잠깐 살펴보죠.
이 히브리 말이 속해 있는 세모 세모의 관용적인 표현 어 맨 영어로 말하면 사람 그냥 사람이에요.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한 개별적인 사람 나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진짜로 사람의 아들로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어요.
사람이 되신 것을 기뻐하셨어요.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대속제물이 되시는 것이죠. 그러나 인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거는 The Man이에요. 더 맨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 세계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다니엘이 예언했던 게 바로 그런 시대죠
결정권을 가진 주권자 한 분이 나타나는데 그가 하나님 곧 옛적부터 계신 자로부터 패하지 않을 멸망되지 않을 영원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실 거다 근데 그때 표현되는 게 바로 인자여요.
성경을 보죠.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그랬죠 인자 같은 이가 사람 같은 사람이라는 얘기예요. 사람같이 보이는 사람이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구름을 타고 와요. 천상적 존재예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메 하나님께 나아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천상적인 존재 이게 메시아라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알았어요. 메시아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누구예요? 인자여요. 인자로 오시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은 의도적으로 이 인자라는 말을 쓰셨어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쓰셨어요. 첫째, 왜 주님이 예를 들어서 나는 메시아다
주님이 처음부터 나는 메시아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다 얘기하고 다니셨으면은 예수님은 사람들로 사람들에 의해서 오해를 받으셨을까? 왜냐하면, 사람들이 메시아를 생각하는 것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는 거거든요.
대속의 죽음으로 죽으시는 게 아니에요.
왕삼으려고 했죠. 오병 이어 먹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주님은 이렇게 모호한 인자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그러나 동시에 오해를 주시려고 쓰시기도 했어요. 인자라는 표현을 왜냐하면 인자는 모호한 표현이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헷갈리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물어본 거예요. 인자가 도대체 뭐야? 누구를 얘기하는가? 무슨 뜻이야 그래서 우리가 인자를 생각할 때에는 언제나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선언하시는 것이면서 동시에 당신이 사람이신 것을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중의적인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라 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다니엘서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죠.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전에 인자가 어디 있었어요. 하늘에 서셨잖아요.
고난과 수치 죽음을 당하시는 분 동시에 인자는 이런 의미가 또 있다는 거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땅에서 죽으시는 거 십자가에 들리시는 걸 얘기하는 거죠.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그 다음에 주님이 구주이시고 주님이신 것을 알게 되겠죠.
세 번째 최후의 심판자로서의 인자 이것은 요한복음 5장에서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에요. 하반절에 뒤에 보면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내가 인자가 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권한을 아들에게 다 맡기셨다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제 주님의 마지막 대중 설교가 나와요.
예수님이 이 설교를 마치시고 나면 이제 다음 우리가 다음 주에 살펴볼 말씀 13장부터는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얘기하시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는 거죠.
그 내용이 35절 36절이고 그리고 사실 뒤에 보며는 44절부터 50절까지도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설교하셨던 내용의 그 결론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말씀하고 계세요.
그 결론은 뭔가 하면 한마디로 말하면 빛이 너희 중에 있다. 예수님 계시다는 거죠. 빛이 있을 때 믿어라 나를 믿어라 하는 얘기예요.
어떻게 믿어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판단 빛에 대한 판단 이게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예수님을 믿어라 그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죠. 이 얘기는 지금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어두움이 가득했던 이 세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세상에 빛이 오메 그랬잖아요.
요한복음 1장에서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이제는 드디어 보기 시작했어요.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아 주님께서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일어나는 일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하나님 없는 세상과 사람의 이 상태가 어떤 거예요. 세상의 교만함 우리의 빛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사람들은 지식 과학 문명의 발달 상식 교양 기타 많은 것들을 우리가 할 수 있어 내가 내가 꼬마들 자라면서 말 배우기 시작하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뭐예요?
내가 내가 내가 그러잖아요. 인간이에요.
그게 딜레마가 있죠. 끝을 몰라요. 알고 싶지가 않아요. 종착지를 모르고 자기를 믿고 살아요.
그래서 주님이 오셨어요. 좋은 소식이죠.
아직 잠시 동안 빛은 너희 중에 있으니 내가 왔어 내가 왔잖아. 빛이 왔잖아. 말씀하시는 거 좋은 소식의 복음이에요. 여기서 명제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말씀하셨죠. 주의가 있어요. 기회는 잠깐이다.
예수님이 빛이 있을 동안이라고 얘기했죠.
그거를 우리 관점에서 본다면 언제까지나 마냥 우리에게 이 기회가 주어지는 거 아니라는 거죠.
때는 하나님의 소관이여요.
경고 어두움에 붙잡히지 마라 이게 주님의 마지막 설교의 내용들이란 말이에요.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라 그러시죠.
여러분 이거를 여러분 초청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보통 이런 말 쓰잖아요. 아주 잘못됐고 부정한다. 그러는 건 아닌데 복음에 초청을 한다. 근데 사실 이미테이션 한다
근데 그게 아니고 사실은 주님은 명령하세요. 빛이신 그리스도를 믿어라 비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의지해라 그리고 자신만만함 너를 믿고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것 포기하고 내려놔라
복음의 약속이 있죠. 그러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빛의 아들 아까 아들 얘기했잖아요. 이건 우리가 빛을 반사하는 그런 하나의 빛이 되는 거예요. 하나의 빛이 되는 거예요.
메시아의 사역은 실패한 사역일까요?
왜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셨잖아요. 연약함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이 뒤집어지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그 상태에서 마무리한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의 사역은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슬픈 말이 나와요. 실패하셨나요?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십이다.
어떤 말씀을 이루려는 거죠.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이사야 말씀 6장 9절 10절 말씀인데 이사야가 부름을 받는 장면이 이사야의 6장이에요.
선지자로 여기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하나님께서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제가 갈게요 라고 그러는데 하나님이 너 가도 실패할 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게 이 말씀을 예수님의 사역에 그대로 적용하여 예수님이 이 말씀이 성취된다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반응하는 거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설계 하나님이 막으시는 거예요.
못 믿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너무 이상하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근데 여기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또 있어요. 이거는 뭔가 하면 그들이 믿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어요. 완악해요.
그 완악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거예요.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그들의 주권적인 주님의 사역 하나님의 사역이기도 한 거예요.
연약한 믿음인가 거짓 믿음인가 여기 마지막에 보면 우리가 잠깐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게 관리 중에 믿는 자가 많은데 바리세인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고 출교를 당할까 봐 두려워서 말을 못 한다는 게 믿기는 하는데 근데 이 사람들을 성경이 설명하기를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다. 그래요.
그들의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로마서 10장에서 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내 마음에 믿으면 시인한다는 말이 나오죠.
오늘날 우리가 이걸 잘못 이해하면 그냥 시인하면 다 예수 믿는 것이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이거는 내가 시인하면 내 주는 로마 황제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되는데 시인하면 당장에 불 이익이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라고 고백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거는 성령이 아니면 할 수 없어요.
그린도서에서 말한 거죠. 진짜 믿음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고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진자 믿음은 진자 믿음은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죠
적용점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고 있는가 우리는 요한복음을 옛날에 읽었던 성경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읽으면서 정말 나는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 믿음은 제대로 된 지식 위에 기초한 것인가? 제대로 주님을 내가 알고 있는가 점검해야 하고
두 번째 인자의 영광에서 낮아짐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낮아짐의 영광이에요. 인자라고 말씀하실 때 겸손함을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오늘 강좌를 마치고 13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다락방 강화가 시작이 돼요. 그래서 예수님이 발 닦아주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는 이야기죠 이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관련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고.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건인지를 우리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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