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여행기(5)****
루마니아(3):브라쇼브와 브란 성
68/가정 김 숙 자
10월 13일(월)
오전에 최고의 휴양지 시나이아를 관광하고 (펠레슈 성, 펠리쇼르 성,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 우리 일행은
'브라쇼브'로 이동한다. 시나이아에서 버스로 약 1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이다. '카르파티아' 산 계곡으로 가는
도중 떡갈나무, 참나무 등의 고운 단풍잎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꼭 우리나라 한계령을 넘어가듯 깊은 계곡을
돌고 돌아 넘어 갔다.
점심때가 지나서 '브라쇼브'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이곳의 유적지를 관광한다. 다시 '브라쇼브'의 근교
30분 거리에 있는 '브란 성'의 내부의 관광을 끝으로 늦은 저녁 부쿠레슈티로 돌아왔다. 루마니아의 관광은
모두 끝나고 내일 이른 아침에 '불가리아'로 떠날 것이다. 저녁 늦게까지 남편과 짐 정리를 하였다.
(브라쇼브)
13세기 독일 이주민에 의해 건설된 브라쇼브는 몰다비아, 왈라키아. 트란실바니아의 세 지방을 잇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이다.
지리적인 특수성에 위해 오랫동안 헝가리와 루마니아 사이에 분쟁의 씨앗이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루마니아 땅이 되었단다.
이곳 인구의 구성원은 루마니아인 50%, 헝가리어인 25%, 독일인 12%로 조합되어 세 나라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중세 시대의 건물과 거리 등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근교에 '브란 성'과 '블란드 째빼쉬 2세'
고향인 '시기쇼아라'가 있어서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 온다고 한다.
또 '남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어서 여름과 겨울엔 하이킹. 스키 등 스포츠를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란다.
(스파툴루이 광장)
'스파툴루이'광장은 브라쇼브의 구시가 최고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으로 13세기에 독일인이 브라쇼브
도시를 건설한 것과 같이 함께 역사를 이어온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1420년에 지어진 시청사 건물이 있으며 광장 주변에는 레스토랑, 기념품점, 카페 등 다양한
상점이 있다. 시청사 건물은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스파툴루이 광장
결혼식 전 기념 촬영같은데 남자 도우미가 돋보인다.
스파툴루이 광장에서 성업 중인 레토랑에서 점심을 먹음
우리 일행은 돼지고기 스테이크 같은 싼 음식을 먹기 때문에 식당 안에서 먹는다.
야외서 식사는 비싼 음식을 주문한 손님만 올 수 있다고.......,
여자 보조 가이드와 이야기하는 저 남자는 누구지(?). 남편같기도 하고......
흑색교회
전형적인 독일식 고딕양식인 흑색교회는 브라쇼브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1383~1477년에 지어졌다.
1689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습격 때 발생한 화재로 교회 외관이 검게 그을린 후 흑색교회로
불리게 되었단다.
교회 내부에는 15~16세기에 주교나 성직자들이 터키, 아랍, 이탈리아 등을 방문하고 귀국할 때에
선물용으로 가져온 벽걸이 양탄자가 100여 개 이상 걸려 있다.
무게가 7톤 되는 종, 400여 개의 파이프, 74개의 음역. 4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파이프 오르간도 있다.
이곳은 매년 음악 콘서트장으로도 활용된단다. 역사가 말하듯 시설물은 낡고 교회 안은 어둠침침하다.
우리 일행은 오래된 의자에 앉아서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벽걸이 양탄자를 보며
가이드의 흑색교회의 역사에 관한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
교회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횡설수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종교가 없었다면 유럽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이 지구 위의 역사를 이끌어온 종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브란 성
브란 성은 브라쇼브에서 남서쪽으로 32Km 떨어진 마을인 '브란'에 있다. 이 성은 중세시대의 상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일명 '드라큘라 성'이라고 불리지만 실제 주인공인 '블라드 째빼쉬'( Vlad Tepes) 3세가
머무른 적은 없단다. 단지 절벽 위에 음산하게 우뚝 선 성의 분위기가 소설 속의 주인공인 드라큘라 백작과
닮아서 지어진 별명이다. 돌로 지어서 성이라기 보다는 꼭 요새 같다.
블라드 째빼쉬((Vlad Tepes) 3세
블라드 째빼쉬 3세는(1427~1476) 루마니아 역사상 오스만 트르크군과 용감하게
싸운 전쟁 영웅이자 성군으로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는 용의 아들이란 의미로 드라귤라(Dracula)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했단다.
그가 소설의 주인공이 된 계기는 적의 포로나 범법자 등에 잔인한 처형 방법 때문이란다.
예를 들면 살아있는 사람에게 뾰족하게 깎은 장대를 항문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관통시켰으며(위에 사진) 못 빅힌 큰 바퀴를 산 사람 위로 지나가게 하여 온몸에 구멍을
내는 등 잔인한 방법을 서슴지 않았단다. 당시 그의 잔인함은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고, 마침내 세계적인 소설 '드라큘라'에서 주인공의 모델이 된 것이다.
드라큘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드라큘라'는 1897년 아이랜드의 작가 '브람 스토커'가 쓴 소설이다.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영웅 '블라드 째빼쉬 3세'를 모델로 쓴 작품이라 더 유명한 것 같다.
가격 표지판도 피가 줄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