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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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다봉마을은 첩첩산중에 임진왜란 피란의 역사를 안고 있는 동네다. 23개의 봉우리가 울처럼 둘러쳐진 마을이다. 들꽃향기 그득하고, 차향이 인정을 담아 넘쳐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불렀던 노래가 다봉마을 야생화를 두고 했던 말인가 싶다.
경주 건천IC에서 청도 방향으로 단석산 옆구리 고개를 넘어 감산마을 표지석에서 북쪽 골짜기로 10리를 들어가야 나오는 마을이다. 송선저수지를 지나는 땅고개 넘는 길은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건천과 산내면의 경계가 땅고개 정상이다. 고개를 내려서면 폐교가 나오고 이어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다봉마을의 입구가 된다.
산들이 길게 둘러 누운 뱀과 같다고 하여 장사(長蛇)마을로 산내면 감산2리의 자연부락이다.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온 영산신씨(靈山辛氏) 성을 가진 사람이 개척했다. 조선말기 벼슬에 오른 사람이 있어 장사(長仕)마을로 부르다가 모래가 귀하다 하여 장사(長沙)마을로 부른다. 최근에는 산봉우리가 굽이굽이 접시꽃 형상을 하여 다봉마을로 부른다.
다봉마을은 해발 500m 위치에 있는 산중마을로 집들은 꽃길로 연결이 되어 있고, 산 속에는 온갖 약초와 희귀한 나무들이 울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야생화심기, 꽃차만들기, 된장만들기, 김치담그기 등등의 다양한 체험을 즐기려는 방문객들로 줄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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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가까워 아름다운 다봉마을
다봉마을은 10여 년 전만 해도 13가구가 여기저기 울을 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지금은 공기 맑고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몰려든 사람들이 별장 같은 집을 지으며 24가구로 늘었다. 최근에 들어선 집들은 모두가 자연 속에 묻힌 동화의 집처럼 꾸며졌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자연수로 폭포를 만들고 작은 못을 조성하기도 하면서 마을이 저절로 선경을 이룬다.
다봉마을은 산 중턱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높은 곳이지만 지하수의 흐름에 따라 곳곳에 맑은 샘이 솟는다. 마을 입구 쉼터에는 예부터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이 솟아 빨래터가 조성돼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다봉마을이 본격적으로 야생화마을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김인영 김말순 부부가 13년 전 마을로 이사해 오면서부터다. 김김부부는 꽃을 좋아해 처음부터 집과 뜨락에 야생화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매년 야생화 전시회를 열어 올해 열 번째 전시회를 진행했다. 봄철에 전시회가 매년 열리면서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인근의 포항과 대구, 울산은 물론 대전, 부산, 서울에서도 체험객들이 몰려온다.
전시회에서 김김부부는 그들이 직접 가꾸는 700여 종 3천 점에 이르는 야생화 가운데 300여 점을 뜨락과 정원에 전시해 선보인다. 부부는 “야생화가 아름답게 꽃피우는 모습을 우리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전시회를 열게됐다”면서 “이제는 힘이 들어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열 번을 채웠으니 전시회는 이제 그만하게 될 것”이라 말해 내년부터는 전시회 구경은 못하지 싶다.
다봉마을 야생화 전시장에는 희귀한 들꽃들이 수두룩하다. 멸종위기식물로 분류된 개불알꽃, 점잖은 선비학자들이 복주머니 난으로 이름 지은 꽃과 백두산에 자생하며 보기 어려운 백두산 골담초, 솔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씨방이 아름다운 부채를 닮은 미선나무, 한 포기가 거의 10m²에 이르는 목단도 있다. 공조팝, 해당화와 3종 세트를 이루는 생열기와 인가목, 깨치미로 불리는 고비 등 공부할 야생화들이 줄을 잇는다.
김씨 부부가 전시하고 있는 야생화는 대부분 순수 우리나라 꽃이다. 그러나 30% 정도는 외래종이다. 일본과 중국 등의 동아시아에서 동시에 자라는 꽃을 두고 순수 우리나라 꽃으로 분류하기 곤란한 것들도 많다는 설명이다.
다봉마을에서 야생화심기체험을 하고 싶다면 민박집이 꽃집으로 꾸며진 심산유곡으로 차를 몰고 오면 될 일이다. 예약은 풀꽃아지매 김말순 010-3541-4257번이나 경주다봉휴양마을 김인영 위원장 010-3811-6875번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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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차 만들기 체험
다봉마을에서는 산골에서나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이 있다. 일단 울이 없는 민박집에서 밤낮 뻐꾸기 울음, 풀국새 우는 소리 들으면서 숙박해 보는 체험이 좋다. 앞을 보아도 산, 돌아보아도 봉우리가 둘러쳐진 첩첩산중이다. “물이 좋다. 공기가 좋다”는 말은 말할 필요가 없이 그냥 저절로 느껴진다. 헐렁한 고무바지를 걸치고 마루에 턱 걸터앉으면 맞은편에서 푸르름이 눈 안으로 쏙 들어온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다. 머릿속으로 시원하게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저절로 힐링이 된다.
마을 전체가 민박촌처럼 보인다. 산골동네 풀꽃이야기민박, 수하네민박, 꽃내풀네민박, 범골민박 등의 간판들이 야생화처럼 이름을 걸고 있다. 민박을 하는 집들은 물론 마을의 집들이 대부분 아담한 규모지만 뜨락이 야생화로 꾸며져 마을이 공원 같다. 장미덩쿨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장미는 오히려 촌스럽다 할 것이다. 흔하게 보이지 않던 나무, 풀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듯 소담소담 피어 눈을 호강하게 한다. 산골이라 인심이 후하다. 가격도 착하다. 마당에서 야생화를 즐기며 바비큐 파티는 언제든 가능하다. 황토집, 온돌방이 대부분이다. 식사 주문도 가능하고, 스스로 해먹는 것도 좋다. 꽃차를 즐기거나 도시풍의 아메리카노를 음미할 수 있는 찻집도 있다.
풀꽃 아지매 김말순 꽃순이와 함께하는 야생화 심기와 야생화 공부하기 체험은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다봉휴양마을의 대표적인 체험이다. 구수한 재래식 된장담그기 체험, 가을의 김치담그기 체험, 꽃차 만들기 등의 체험은 풀꽃아지매나 김인영 촌장과 상담하면 다 된다. 봄나물 체취 체험은 산딸기를 만날 수도 있어 더 신난다. 머루와 다래도 계절이 맞으면 쉽게 맛볼 수 있는 다봉마을의 선물이다.
구전되어 전해지는 구수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한지 뜨기 싫어하는 처녀가 시집와서 다시 한지를 뜨게 된 사연, 지네로부터 목숨 걸고 처녀를 지킨 의리의 두꺼비 이야기, 횟골 어깨동무 나무, 샘물과 빨래터 등의 이야기들은 밤 새워 들어도 재미있는 다봉마을의 전설이자 현실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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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다봉마을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로 둘레길을 꼽을 수 있다. 처음 둘레길로 소개되던 마을을 순환하는 도로는 이제 풀이 우거져 다니기가 곤란하다. 대신 마을 뒤로 이어진 무명봉의 임도를 마을사람들은 둘레길로 추천하고 안내한다. 흔한 이름 하나 얻지 못해 무명봉이 된 산이지만 왕복 4㎞, 또는 조금 확산해서 6㎞를 걷다보면 충분하게 힐링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무명봉으로 자박자박 오르다보면 장사마을로 불렸던 연유도 깨닫게 된다. 큼직한 돌들이 축대처럼 짜여 돌산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숲이 우거지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치 챌 수도 없지만 자갈을 뚫고 나무와 풀들이 돋아났다. 모래를 보기 어려운 지역이다.
무명봉은 해발 740m로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경사가 은근히 급하게 형성돼 쉽사리 정상을 보려면 가쁘게 호흡을 몰아쉬어야 된다. 마을을 벗어나기 바쁘게 바위산의 특징을 알려주는 곰바위가 있다. 곰바위는 어린 곰이 산 정상으로 기어오르는 모습인데 머리부위에 월계관인양 담쟁이 넝쿨이 둘러져 있어 신비롭다. 높이 오르면 숲이 우거져 마을 전경을 감상하기 어렵지만 등산을 시작하면서 돌아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속에 마을이 고요하게 잠겨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갈 때는 마주하는 야생화들을 반기기에도 바쁘다. 마을 전경 감상은 돌아올 때 하는 것이 좋다. 일부러 고개를 들지 않아도 시원하게 조망되는 봉우리들의 물결쇼를 보게 된다. 봄에는 층층나무들이 층층별로 노란색 꽃을 피워 지나는 바람에 파도춤을 추는 모습을 연출한다, 얼핏보면 이팝나무처럼 하얗게 팝콘들이 열린 것 같지만 자세하게 뜯어보면 잎들이 다르고, 층층마다 가지를 벌려 꽃을 피우는 모습이 다르다. 가을은 단풍으로 온 마을이 불탄다.
둘레길은 새로운 숲 체험으로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잎이 둥글고 꽃이 초롱처럼 달리는 쪽동백을 비롯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둘레길을 따라 둘레둘레 피어나 연신 렌즈를 들이대게 한다. 요즘 흔하게 볼 수 없는 엉겅퀴는 마을은 물론 길섶 어디에서든 보라색 꽃을 피우며 엉성한 가시를 세우고 있다.
다봉마을의 단풍은 특이하다. 한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올라와 무성하게 잎이 달려 화려하게 흔들린다. 다봉마을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자생한다. 자작나무와 헛개나무가 대표적으로 소개된다. 자작나무는 둘레길 끝부분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무명봉 정상에서 1㎞ 남짓 서쪽 내리막길을 걸으면 줄기가 흰 색 갑옷처럼 두른 자작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서 눈을 시원하게 한다. 보통 마을사람들은 무명봉 정상까지만 둘러보기를 권한다. 살짝 용기를 내어 내리막으로 더 전진해야 이채로운 모습들을 감상하게 된다. 먼저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풍경이 층층나무들이다. 가지가 층을 이루며 풍성하게 꽃을 피워 양편에서 손을 잡아 아취를 이루며 그늘길을 만들어 시원하게 한다. 자작나무 숲은 그 끝에 있다. 자작나무는 줄기의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명함으로도 만들고,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하는 낭만적인 나무다. 껍질은 거의 기름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썩지 않아 신라시대 고분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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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깊어 멧돼지와 같은 녀석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어 주의해야 된다.
야생 천마를 비롯한 약초들이 지천으로 서식한다. 약초나 야생화를 잘 아는 탐방객이라면 귀한 약초를 만나는 횡재를 할 수도 있다. 곳곳에 오동나무가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개두릅도 지천이다. 산골에 살다 도시로 나간 도시민이라면 진한 향수를 느끼기에도 좋은 곳이다.
다봉마을 주변에도 볼거리가 많다. OK목장과 단석산국립공원, 편백나무숲, 청룡폭포 등의 국보급 체험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10여분 움직이면 닿을 수 있는 다봉마을은 힐링의 보물섬 같은 곳이다.
첫댓글 올해는 벼르다 기어이 다봉마을에 가는 시간을 놓쳤다.
봄이면 꼭 가보고 싶어지는 마을이다.
내년 봄에는 가보리라......................
올 여름 다봉마을 야생화 체험하러 몇번 들렀다가 야생화 가족이 여럿 늘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구절초꽃도 보는 행복한 가을을 맞이했었죠.
체험하는 순간부터 너무나 힐링되어 발걸음 돌리기가 못내 아쉬웠어요.
또 가고 싶어집니다.
샘 다봉마을 다녀오셨군요. ^^ 꼭꼭 숨겨두고 매년 봄오면 혼자 살짝 다녀오고싶은 마을 ㅎㅎ
역시.......... 많이 다니시는군요.
다봉마을을 아시다뉘. ㅎㅎㅎ
내년부터는 모디가 같이 가보시더, 봄 마중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