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화의 성지 기림사
경주 기림사는 이름이 주는 묘한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함월산 깊숙한 계곡에 자리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신비스러운 이야기들이 묻혀 있는 것이다. 1천500여년이나 되는 기림사의 오랜 역사에 걸맞게 신비스런 이야기 거리도 많다. 기림사 사적기에 전하는 기림사 창건설화는 전생과 현생을 드러내 신화와 같이 신비스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불교에서 전하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의 윤회설을 믿게 하는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경주 기림사는 우리나라 차문화의 시발점으로 해석되는 헌다벽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헌다벽화로 알려지고 있는 그림이다. 약수전 오른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다. 이 헌다벽화는 중국에서 차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100여 년이나 앞서는 기록으로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차씨를 가져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기림사 헌다벽화에서 우리나라 차문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역사기행이 될 듯싶다.
기림사 차문화의 역사는 우리나라 차문화의 역사적 신기원을 찾아가는 놀랄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중국에서 전해져 온 것으로 공부한 우리나라 불교문화와 차문화의 기원이 뒤집어지는 단초를 볼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하는 기림사의 차문화에 대한 신비스런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오종수와 오색화
기림사에는 오종수(五種水) 또는 오정수(五井水)라고 하는 다섯 개의 우물에서 솟아나는 신기한 약수가 있었다고 전한다. 오정수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다섯 가지의 물이라는 뜻을 가진 오종수라는 기록으로 통일한다. 오종수로 재배한 한 나무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오색화가 기림사를 가득 메웠다는 이야기도 기림사사적기에 전하고 있다.
오종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은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 차맛이 으뜸이라는 북암의 감로수(甘露水).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후원의 화정수(和精水), 마시면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이 된다는 나한전 삼층석탑 아래의 장군수(將軍水), 마시기만 하면 눈이 맑아진다는 천왕문 앞의 명안수(明眼水),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동편 산마루의 오탁수(烏啄水)가 다섯 우물에서 솟아났던 다섯 가지의 기능과 맛을 가진 오종수다. 이름 그대로 오종수는 탁월한 효능을 가진 기능성 물인 것이다.
장군수는 조선시대에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역모를 꾀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샘을 메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장군수를 마시고 힘센 장군이 태어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석탑으로 샘을 막아버렸다는 설이 다수설로 전하고 있다. 대적광전 오른쪽 앞에 세워진 오백나한전을 모신 응진전 건물 처마에 닿을 듯한 위치에 삼층석탑을 세워 둔 것이 의문스럽다. 샘을 막기 위해 석탑을 옮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수긍이 간다.
기림사의 영송 부주지 조차 “60여년생 석탑 옆의 소나무가 보기에 200년이나 된 듯한 모습으로 자라있는 것을 보면 장군수를 먹고 컸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며 장군수의 효험을 은근히 강조한다.
기림사는 기림사사적기 등에서 기록으로 전해내려 오는 사실들을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오종수의 복원을 위해 기록을 통해 위치를 찾아내고 샘의 원줄기가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단다. 오색화는 목단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곳곳에 한두뿌리씩 남아 있는 목단을 대규모 군락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자세한 기록들을 확인해 위치와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복원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오종수와 오색화를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해 기원정사, 임정사에서 기림사로 이어져 내려온 사적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물을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림사, 한모금만 마셔도 피곤이 싹 사라지는 장군수가 샘솟는 기림사, 차의 향기가 계곡을 메우는 기림사, 오색화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기림사의 신비경이 벌써 상상된다. 약사전 헌다벽화처럼 깊은 맛이 우러나는 차맛을 즐기며 수행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대중들의 기림사 템플스테이 예약이 1년씩 밀리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신문들을 읽는 상상을 하게 한다.
◆헌다벽화
기림사 대적광전 동쪽에 약사전 건물이 작은 요사채로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효종 5년, 1654년 기림사 중창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약사전으로 들어가면서 왼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윗쪽 벽에 마치 투명한 수채화처럼 푸른 기운이 감도는 그림을 볼 수 있다. 물을 길어 차를 바치는 이른바 급수봉다(汲水奉茶 : 물을 길어 차를 달여 부처에게 공양함)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풍경화 같은, 벽면에 직접 그림이 그려진 벽화다. 경북도문화재자료 제252호로 지정된 헌다벽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헌다벽화로 추정된다. 기림사는 이 벽화에 대해 왼쪽의 사라수왕이 물을 길어 차를 우려낸 뒤 가운데 있는 광유성인에게 바치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벽화를 통해 기림사에서 오래전부터 차나무를 재배했다는 사실과 차를 달인 오종수가 있었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차를 끓여 부처님에게 공양했던 급수봉다의 당시 수행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기림사는 사적기의 창건설화 내용과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석보상절 등의 기록, 차를 공양하는 기림사 약사전의 벽화 등은 기림사가 한국차문화의 시원지이자 중국에 차를 전했다는 역설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설명한다.
기림사는 또 기원 전후 인도의 정토불교신앙이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닷길을 통해 신라로 바로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당시 김해지역에 허황옥과 장유화상이 방문했다는 역사와 혜초 스님이 바닷길로 인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이 벽화는 1천500여년 전에 인도 범마라국의 광유성인이 함월산에 들어와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국 위에 임정사란 절을 짓고, 오종수를 길어 차를 다려 공양하는 급수봉다와 오종수를 길어 오색화를 키운 급수양화를 수행법으로 삼아 불교에 정진했다는 사적기의 내용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우리나라 차문화의 시원으로 여기게 했다. 그러나 중국의 ‘송고승전 구화산지’는 653년 지장 김교각 스님이 신라에서 금지차 씨를 가져와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 금지차가 인도에서 건너와 기림사를 창건한 광유성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전래된 차 문화로 기림사 약사전 헌다벽화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전래 역사와 차문화의 시원, 많은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 하는 등의 가치를 미루어 이 헌다벽화는 보물로 지정 관리되어야 할 중요한 문화재라는 것이 기림사의 주장이다.
◆차의 성지
기림사의 유물을 살펴보면 기림사가 한국 차문화의 시원이라는 말에 이해가 간다. 차나무의 국내 재배지는 제주도와 한반도 남쪽지역이 대부분이고 북위 36도를 북방한계선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기림사 초입에는 지금도 대나무밭 속에 자생하는 차나무 군락지가 있고 기림사 북쪽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토함산 자락 넓게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지역이 북방한계선에 위치하고 있으니 지리적으로도 차나무의 재배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차는 무엇보다 좋은 물로 우려내어야 그 효능과 맛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정신”이라면서 물이 차의 맛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차맛을 좌우하는 훌륭한 물을 가진 기림사는 차의 성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다인들은 오대산 우통수, 속리산 삼타수와 더불어 기림사의 전단정과 오종수를 좋은 물이 나는 곳으로 소개한다.
기림사의 창건 설화도 기원 전후 인도로부터 정토불교문화가 유입됐고, 이와 함께 급수봉다의 차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됐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 차 문화의 전래 시기는 2천 여년 전으로 자연스럽게 거슬러 올라가 중국에서 차문화가 유입됐다는 말을 뒤집는다. 기림사에는 차와 관련된 유적으로 오종수 외에도 약사전에 국내 최고(最古)의 헌다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1654년 효종 5년 사찰 중창 당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기림사 창건기에 따라 급수봉다를 수행하는 사라수왕이 급수유나의 소임을 맡아 기림사를 창건한 광유 스님에게 헌다하는 모습을 담았다.
기림사는 한국불교의 차 문화는 신라의 원효 스님, 고려의 각유 스님, 조선의 매월당 김시습과 초의 스님, 현재 기림사 주지인 일해 덕민 스님에 이어 영송 스님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림사 부주지 영송 스님은 차의 유적과 차문화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기림사를 한국의 차 성지로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송 부주지는 “신라차와 말차 문화 복원, 신라차 국제문화센터 건립, 국제 차 문화제 개최,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폐막식 유치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경주시와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는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기다림
“이제 불교도 생산불교, 체험적 불교로 바뀌어야 합니다”라는 것이 영송 부주지의 기림사 경내의 찻집 ‘기다림(祇茶林)’ 설립 취지다.
기림사는 사찰 주변과 인근 3만여㎡ 부지에 차밭을 조성하고 있다. 농민들이 재배한 차를 통해 기림사가 다양한 차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절에서 수익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자생력을 가진다는 의미다. 수익을 창출해 사회에 환원하면서 건강을 보급한다는 것이다.
기림사의 차밭은 신라 때부터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3만㎡ 규모의 차밭이 있으며 더 넓히고 있는 중이다. 기림사 주변에는 자생적으로 죽로차가 자라고 있다. 뽕잎차, 뽕말차, 화정차 등의 차를 기림사가 직접 제조한다. 기림사의 찻집 ‘기다림’을 설립해 차를 판매하고 차를 직접 마실 수 있게 한다. 사람을 기다리며, 지혜를 기다리며 차를 마시기도, 차를 구매하기도 하는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기림사 창건설화가 이야기하는 급수봉다의 체험적 수행법을 국민들에게 보급하려는 ‘기다림’을 설립한 기림사의 뜻이 헤아려진다.
(2016.07 .25)
첫댓글 기림사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캐어내자
인도에서 바로 들어온 불교
중국으로 가져간 차씨, 차문화....
오종수 오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