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합니다.
1.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움(1~8절)
1) 여호수아에게 이양된 지독권(1~6절)
(1) 모세는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합니다(1,2절)
”[1]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 70인역(LXX)은 본절을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끝마쳤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사실상 본서의 주부분이 끝났음을 강하게 시사해 줍니다.
실제로 본장부터 마지막 34장까지는 본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마치 본서의 부록과 같은 성격을 지닙니다.
가서(옐레크). - 이 말은 마음에 먹은 생각을 의지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뜻합니다(창 35:22;출 2:1).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행동에 옮기기 전 그 일을 준비하고 계획했던 일련의 시간적 간격(interval)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 모세는 최악의 시련기에 히브리인의 남아로 태어나(출 2:1,2)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로 애굽의 왕자로서 40년, 이름 없는 미디안의 목자로서 40년,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도자로서 40년, 도합 120년간의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행 7:23,30,36).
그런데 그러한 그가 그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이제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요단동편까지 왔으나, 정작 자신은 약속의 땅을 밟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32:48-52;34:1-8).
그러므로 이러한 때 모세가 자신의 나이를 밝히고 있는 까닭은 120세를 끝으로 자신의 삶이 마감될 뿐 아니라, 그로써 그의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끝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 여기서 '출입하다'라는 말은 '정상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다'또는 '왕성하게 일하다'란 의미의 히브리적 관용어입니다(수 14:11;삼상 12:2).
이는 곧 모세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여 목전에 닥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할 왕성한 기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34:7의 서술과 모순되지 아니하는데, 그곳에서는 단지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모세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 직접적인 이유는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반석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나타내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민 20:10-13;신 32:51).
그러나 모세가 그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 데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었습니다(민 20:2-5).
따라서 모세가 그의 나이와 함께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을 고(告)할 때 분명 백성들은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0:12;신 3:27 참조하라.
(2) 백성을 실질적으로 진두 지휘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3절).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 갈지라“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 모세의 뒤를 이어 장차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3:28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9:3에서 이미 각각 언급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 건장하고도 전추에 능한 여호수아(출 17:8-16)가 앞으로 이스라엘을 인솔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지도자를 잃고서 실의에 빠지게 될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명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언급을 보면,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인도자는 역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자(창 22:14), 그들 모든 대적을 파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십니다(출 17:15).
이 민족들. – 당시(B.C.1400년경) 가나안 땅에 이미 살고 있던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등과 같은 가나안의 후기 7족속을 가리킵니다(7:1).
”[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군을 방해한 아모리 왕 시혼(sihon)과 바산 왕 옥(Og)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강한 손을 펴시사 그들을 여지없이 격파시킨 사건을 가리킵니다<민 21:21-35;신 2:24-3:11;29:7>.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 즉 요단 서편 가나안 족속의 운명도 아모리 족속의 운명과 같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을 감히 대적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한편 이 말은 오늘날 하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여로(旅路)에서 온갖 사단의 세력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같은 위로와 영기를 북돋워 줍니다(요 16:33).
(4)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모든 명령대로 행하라 합니다(5절).
”[5]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 하나님께서 이미 7:1-5에서 명하셨던 가나안 족속에 관한 특별 명령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곧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 할 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철저히 수행한다는 정신으로 그곳 거민들을 반드시 진멸시킬 것과 우상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것 등입니다.
(5) 그러므로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6절)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 '강하다'에 해당하는 '하자크'의 원뜻은 '꽉 잡다','달라붙다'입니다.
이것은 맹수가 먹이를 공격할 때의 완강한 모습을 연상시켜 줍니다.
담대히 하라. – 이에 해당하는 '아마츠'의 원뜻은 '방심하지 않다'입니다.
영어 성경 Living Bible은 전자와 후자를 묶어'강하여라! 용감하여라!'(Be strong! Be courageou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 이스라엘 구세대가 그토록 겁을 집어 먹고 떨었던(민 13:31-14:4;신 1:26-28) 가나안 본토 족속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신세대에게 혹시라도 같은 전철을 밟을까 염려하여 이처럼 중언법(重言法)적 표현을 사용하여 단단히 정신 무장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버리지도 아니하며 포기하지도 않으시겠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Lange).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아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조성(造成)하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사 43:1).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귀하고 보배로운 소유이자(출 19:5;신 26:18), 또한 그분의 영광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사 43:7).
물론 이상과 같은 사실은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자손이 된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고후 1:20).
2) 모세가 여호수아를 격려하다(7,8절).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 여호수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군대의 장(長)으로서 활약하였으며(출 17:9), 당시에는 어느 정도 모세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었습니다(민 27:18-23).
그러나 아직 그가 모세의 지도자적 권한을 정식으로 위임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앞둔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의 총회(總會) 앞에서 여호수아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로 위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본문에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한 후 뒤이어 회막에서 정식 위임식을 거행한 것입니다(14절;34:9).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 이제 자신의 뒤를 이어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할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전한 격려의 말은 바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백성들을 격려했던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6절).
실로 모세의 이 말은 자신의 광야 40년간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자, 지금 상황에서 그가 여호수아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의 핵심이요 전부였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 결단코 가나안 족속을 겁내거나 행여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음을 강조한 중언법적 표현이다. 그러나 굳이 세분하자면 '두려워하다'에 해당하는 '야레'는 상대방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위압감을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놀라다'에 해당하는 '하타트'는 파괴나 패망 따위(사 8:9;렘 48:1)를 두려워하여 '낙담하는 상태'를 가리킨다(왕하 19:26;사 30:31). 그러나 여호수아는 40여년 전 그의 정탐꾼 시절에 갈렙과 더불어 가나안 정복을 주장했던 믿음의 용사였다(민 14:6-9). 따라서 이제는 지도자가 되어 다시금 맞은 가나안 본토 정복 기회를 그는 기필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2. 율법을 낭독하는 절기(9~13절).
1) 모세는 율법을 써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위탁합니다(9절)
”[9]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군사적 무장보다 더 중요한 말씀 무장을 강조합니다.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 여기서 '율법'(토라)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여러 법조문 및 교훈들로서 그들의 종교 생활, 개인 생활 그리고 사회 생활에 직접 관련된 모든 규례들을 가리킵니다<28:58>.
즉 율법은 하나님과 언약관계 하에 있는 이스라엘이 그분의 백성답게 거룩히 살아갈 수 있도록 주어진 제(諸) 규범입니다.
따라서 율법은결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얻은 데 대한 징표로서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모세의 율법을 그 내용상의 규례에 따라 크게 3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분 류
내 용
도 덕 법
M o r a l L a w
10계명을 가리킨다. 이것은 시대를 통하여 영원불변한 것으로서, 크게 대신(對神) 계명과 대인(對人) 계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 5:7-21).
당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른 사회 생활을 영위 하는데 필요했던 구체적인 법조문들이다.
시 민 법
C i v i l L a w
십계명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 시민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과 공의의 정신이다. 이 법은 물론 시대와 지리적 제한을 받기 때문에 여자적(如字的)으로 영원성을 띤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오늘날 그 법 정신을 따라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고전 9:9,10)
의 식 법
Ceremonial Law
특별히 레위기에서 많이 취급된 제사 및 성결 그리고 절기에 관련된 법이다. 이 법들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 의식들이었는데 마침내 그리스도의 성육신 및 대속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여자적(如字的) 구속력은 오늘날 폐기 되었다. 그러나 그 법속에 담긴 근본 정신만은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 율법책을 안전하게 언약궤 곁에 보관할 뿐 아니라(26절),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10-13절)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J.H.Michaelis).
2) 모세는 매칠년 끝해 면제년의 초막절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하라 합니다(10,11절)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매 칠년 끝해 곧 정기 면제년. - '안식년'을 가리킵니다(출 23:10,11;레 25:1-7).
이때에는 경작(耕作)을 멈추고,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며 빚진 자에 대한 빚 독촉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15:1-3참조).
초막절– 히브리 종교력으로 7월(디스리 월) 15일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로서, 일명 '장막절'또는 '수장절'(출 23:16;34:22)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을 기념하며, 또한 1년간의 모든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16:13-15>.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 – 언약궤(법궤)가 보관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유일 중앙 성소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최초로 정착하였을 때에는 실로(Shiloh)가 중앙 성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였으나 그 규모는 대단치 않았습니다(수 18:1;삿 18:31;삼상 1:3). 그러다가 훗날 다윗이 예루살렘을 종교의 중심지로 삼고(삼하 6,7장),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건축함으로(왕하 6장) 인해 예루살렘이 완전한 이스라엘의 유일 중앙 성소가 되었습니다. 12:5참조.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 이처럼 안식년의 초막절에 온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여 들려주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항상 가정에서도 율법을 교육하였을 뿐 아니라(6:7) 제사장, 장로, 선지자, 랍비(Rabbi) 등에 의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온 회중 앞에서 엄숙히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라고 명령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지난 40년간 광야에서 고생하였던 것을 다시금 깊이 회상케 하기 위함입니다.
(2) 그로써 현재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고 있는 복된 생활에 대하여 하나님께 충심으로 감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3) 또한 그들이 그동안 얼마만큼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는지를 철저히 점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식이 역사상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지켜졌는지 아니면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졌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자마자 계속 전쟁을 치뤄야 했으므로, 여호수아 시대에는 면제년을 지킨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후 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을 받았었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고 자녀들에게 배우게 하라고 하십니다(12,13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 받는 일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거하는 자 중 그 누구도 제외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의 최종 목적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려는 데 있음을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실상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비롯되며(롬 10:17), 그 결과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게 되기 마련입니다.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 - '타국인'에 해당하는 '게르'는 이스라엘 사회에 동화(同化)되어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28:43>.
말씀을 맺겠습니다.
모세가 나이 120세가 되자 여호수아를 자신을 잇는 지도자로 세우고 퇴장합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서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직접 책임을 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여 그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하면 됩니다.
지도자 여호수아가 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는 가나안 사람들을 이기는 길은 말씀을 아는 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내가 먼저 율법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기쁘게하고 삶이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가서 대적을 멸하십니다(3~6절).
전쟁의 승패는 이스라엘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기에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믿음입니다.
싸워보기도 전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하거나, 그들 앞에 내어주신 대적을 진멸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승리도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모세는 비록 자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갈 백성을 위한 자신의 역할에 충성합니다(1~3절).
그의 마지막 사명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빈자리에 낙심하지 않도록 백성의 마음을 단단히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장래에도 그들 곁에 계실 것이며, 자신의 빈자리는 신실한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채워줄 것이라고 일러둡니다.
모세는 현재에 충성할 뿐 아니라, 자신이 부재한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하는 참 지도자였습니다.
2) 지도자의 믿음의 행동이 백성의 믿음을 이끌어내고 하나님의 동행을 성사시킵니다(7,8절).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합니다.
만일 지도자가 불신하고, 두려워한다면 백성이 그 지도자를 따를 리 만무합니다. 지도자가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앞서 행하면, 백성들도 믿음이 생기고 용기를 얻어 담대하게 따를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그 지도자 앞에(8절) 가시며 그 백성과 함께(6절) 가실 것입니다.
3) 모세는 약속의 땅에서 칠 년마다 율법을 선포하는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합니다(9~13절).
그 땅에서의 복된 삶은 율법 순종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남녀노소 그들의 후손, 심지어 타국인까지 율법을 들을 수 있게 주기적으로 낭독하라고 명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