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비는 이른 아침 심학산 텃밭에 도착하도록 부슬부슬 내려, 오늘은 비와 함께 활동을 해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도 반가운 손님이 되네요.
오늘 캘 마른 땅콩 밭을 흙먼지 날리지 않게 적셔주는 손님, 지난달에 심고 뿌린 배추와 무의 키를 키우고 살을 오르게 하는 손님,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꽃을 피워 열매 맺은 콩알의 살을 토실토실 오르게 하는 손님.
비는 가랑비로 잦아들고 잠자리들 무 밭으로 갑니다.
지난달 뿌린 무 씨앗이 저 혼자 싹이 트고 자라서 밭을 초록으로 덮고 아이들 주먹만큼 자랐네요.
하얗게 살이 오른 무를 본 도윤잠자리, 수확 본능이 발동하여 무를 냉큼 뽑아 치켜듭니다.
아! 탄식은 잠깐, 너도나도 뽑고 싶은 마음을 눈에 담아 쏘아 보내네요. 잠자리들 머리만큼 자라면 그 때 뽑자고 달래봅니다.
무도 보고 무 잎에 앉은 벼룩잎벌레와 방아깨비도 관찰하며 무 밭은 자연학습장이 되었습니다.
“우리 배추밭 찾아보자.”
잠자리들을 앞세우고 배추밭으로 갑니다.
이런! 배추밭에 도착해보니 배추 잎에 구멍이 뽕뽕 뚫린 게 마치 그물 같습니다. 애벌레들에게 자기 살을 나눠주고도 꿋꿋이 살아 제법 크게 자란 보습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잠자리들? 배추 잎이 왜 이렇게 구멍이 뚫렸을까?”, “벌레가 먹어서요.” 대답도 척척….
“우리 배추에 있는 애벌레 찾아볼까?” 하고 말이 떨어지자, 작고 동글 통통 까만 애벌레를 발견한 시연 잠자리 “이 건 무슨 벌레예요?”라고 묻네요.
돼지벌레라고 하니 잠자리들 낄낄낄….
드디어 배추흰나비애벌레 발견.
또르르 떨어져 있는 초록 똥 주변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잎 위에 바짝 엎드려 붙어 있는 배추애벌레의 눈속임이 귀엽기만 합니다.
“왜 배추흰나비애벌레 색깔은 초록색일까?”, “음! 뭐더라. 보색이요. 자기를 보호하려고요.”라고 대답하는 대현잠자리. 역시 잠자리반의 맏형입니다.
이어지는 대현잠자리의 질문 “그럼 이 애벌레가 정말 배추흰나비가 되나요?”, “ 그럼. 배추 잎을 먹고 통통하게 자라면 번데기가 되어 일주일 후쯤 배추흰나비가 되는 거야.” 라며 곤충의 한 살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봅니다.
배추흰나비애벌레가 쌓아 놓은 초록 똥도 신기한지 톡톡 건드려 보기도 하고요.
잠자리들, 배추흰나비애벌레를 보겠다며 여기서 폴짝 저기서 폴짝 밭 두둑을 뛰어넘는 바람에 배추 잎이 뚝뚝 꺾이고 말았네요.
배추밭에 풀도 뽑아 주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풀지팡이 짚고 배추밭 사이사이를 누볐지요.
처음 왔을 때 흙 만지는 것도 꺼리던 수빈 잠자리, 배추밭 풀을 혼자 다 뽑은 둣하네요. 양손에 가득 풀을 뽑아 건네는 수빈 잠자리 때문에 제 손도 덩달아 바빴답니다.
하하! 농부 다 됐죠?
저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워 봅니다. "아! 시큼해."
'무슨 맛을 보고 저러나.' 두리번 거리니, 수빈잠자리 못지 않게 부지런히 풀을 뽑던 태연잠자리, 괭이밥을 뽑아들고 있지 않겠어요. 괭이밥 풀 맛을 본 모양입니다.
어! 그런데 태연이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괭이밥 또 찾아보자."라는 소리도 들리네요. 풀 이름은 어찌 알았는지….
태연잠자리 괭이밥을 내밀며 "예쁘죠? 꼭 크로버 같다."라고 말하는 표정이 꼭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잠시 후, 배추밭에서 뽑은 쇠비름을 보며 도윤잠자리 “어! 우리 할머니는 이거 삶아 먹는데.”라고 하네요.
순간 ‘잡초는 없다.’는 윤구병 선생님의 글이 떠오릅니다.
“잠자리들? 땅콩 캐러 가자.”
신 바람난 잠자리들, 샛길을 내달려 땅콩 밭으로 갑니다.
“땅콩 줄기를 잡고 이렇게 쑥 뽑아 보세요.”라고 시범을 보이며 뽑아 든 땅콩 줄기 아래 주렁주렁 달려 있는 땅콩을 본 잠자리들, 우르르 몰려들어 땅콩 줄기를 붙들고 뽑아 올립니다.
여기서 야! 저기서 야! 이어지는 탄성.
줄기 째 뽑은 땅콩을 밭 위에 눕혀 놓고 옹기종기 쭈그리고 앉아서 “야! 왕 땅콩이다. 얘기 땅콩이네. 이건 할머니 땅콩.”이라고 쫑알대며 따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땅콩은 꽃이 지고 난 후 자란 이 줄기가 땅 속으로 들어가서 땅콩이 열리는 거야.” 땅콩을 따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땅속으로 들어간 긴 줄기를 가리키며 “이 줄기로 영양분을 보내서 땅콩이 자라는 거지.”라고 하자
신영잠자리 왈! “탯줄 같네요.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아기에게 영양을 주잖아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 신영아?
오늘 처음 어린농부학교에 온 소희, 흐뭇한 표정으로 제대로 여문 땅콩만 골라 따는 모습이 야무지기만 합니다.
묵묵히 그러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땅콩을 따는 호연잠자리, 느긋하게 땅콩 따는 것을 즐기는 혜린잠자리와 태연잠자리, 신바람 나서 하나라도 더 따려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시연잠자리, “어휴! 힘들어.” 쭈그리고 앉아서 따는 것이 힘들었던지 다현잠자리는 푸념을 하면서도 손은 여전히 땅콩에서 떼지 못하네요.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진지하게 따는 예나잠자리,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땅콩을 따는 똘똘한 잠자리반의 가장 어린 인성잠자리, 양푼 한 가득 딴 수빈잠자리는 반을 뚝 떼서 친구에게 나누어 줍니다.
흥얼흥얼 땅콩을 따며 “나는 농사꾼 체질인가 봐.”라고 말하는 신영잠자리의 말에 풋! 웃음이 나와 “나도 농사꾼 체질인가 봐.”라고 맞장구칩니다.
땅콩보다 동물에 관심이 더 많은 잠자리들도 있습니다.
양푼 가득 흙을 담아 그 안에 지렁이를 잡아 넣느라 여념이 없는 정준 잠자리, 곤충을 관찰하느라 바쁜 세영잠자리는 애벌레를 키우겠다며 상자 안에 담기도 하고요.
땅강아지를 찾아 나선 유성잠자리, 귀뚜라미보고 땅강아지 아니냐고 하네요. 유성아? 다음에 고구마 캘 때 땅강아지 찾아보자꾸나.
집게벌레를 잡고 싶어 하면서도 차마 손바닥에 올려놓지 못하고 살짝 만져보기만 하는 지호잠자리, 다음에는 곤충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요?
방아깨비에 푹 빠져 방아 찧느라 바쁜 도윤잠자리, 유유자적 산을 누비고 때로는 잠자리를 쫒아 뛰어다니며 자연과 얘기를 나누는 준희잠자리.
모두들 자기만의 우주를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잠자리들 오솔길을 따라 땅콩 담은 양푼을 들고 약수터로 갑니다.
도란도란 씻는 모습이 마치 땅콩처럼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땅콩을 씻으면서 껍질을 까서 날 땅콩 맛을 보며 호연잠자리 입에 한 조각 넣어주니, 오물오물 씹던 호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못 먹겠다고 하네요.
땅콩 맛도 여러 가지.
날 땅콩 맛, 찐 땅콩 맛, 구운 땅콩 맛.
잠자리들아? 이것이 자연의 맛이란다.
약수터 가는 길 옆 웅덩이.
지난달 올챙이 잡느라 풍덩거리던 생각이 났던지 지호, 인성, 유성, 다현, 도윤잠자리 웅덩이 주변에 빙 둘러서서 커다란 나뭇가지로 웅덩이를 휘휘 젓습니다. 올챙이를 찾고 있는 중이랍니다.
“애들아? 이제 올챙이는 개구리가 돼서 숲으로 갔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선생님, 얼마나 깊어요?”, “막대기를 꽂아봐.”라고 하니 “안 깊네.”하며 살금살금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어요.
웅덩이 안에 들어간 잠자리들, 올챙이가 되어 이리저리 거닙니다. 장화 안에 물이 들어갈세라 조심조심하면서….
이 때,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한 인성잠자리, 냅다 웅덩이를 휘젓고 풍덩거리더니 발이 쭈르륵 미끌어져 휘청하면서 장화 안에 물이 넘치고 말았습니다. '풍덩'하고 진짜 올챙이가 될 뻔 했죠.
웅덩이에서 더 놀겠다며 버티는 잠자리들을 기다리다 지쳐 신영잠자리에게 임무를 살짝 떠 넘깁니다.
“신영아, 얘들한테 땅콩 먹으러 가자고 할래?”
때로는 아이들 세계에서 선생님 말보다 형이나 언니 말이 더 먹히는 법.
잠자리들 쪼르르 뛰어옵니다. 땅콩 먹으러.
땅콩 먹으로 가는 길.
제법 큰 무를 발견한 지호잠자리, 잽싸게 뛰어가 뽑아 오네요.
에고! "여기는 우리 밭이 아닌데." 라고 하니 "헤!"하며 멋쩍어 합니다.
옆에 있던 유성잠자리, "그럼 이렇게 하면 되죠"라면서 지호 손에서 무를 가지고 가서 뽑은 자리에 다시 세워 놓지 뭐예요.
흐흐! 유성아? 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밭 주인님? 지호, 조금 더 자라면 내 밭, 네 밭 구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우스 안으로 오니 찐 땅콩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야! 맛있겠다.”, “생각보다 고소하네.”라며 다들 잘도 먹네요. 날 땅콩은 거부하더니.
땅콩 까는 모습도 가지가지. 반을 뚝 잘라서 땅콩 알을 꺼내느라 애쓰는 모습, 통째로 껍질을 벗기느라 입을 씰룩거리는 모습,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데 아기곰샘, “땅콩 쉽게 까는 방법 있는데.”라며 지나가십니다.
“어떻게 까면 쉬울까?” (끝부분에 일자로 줄이 있는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를 눌러봐.” 하니, “저는 알아요.”라며 쉬지 않고 까먹는 정준잠자리.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잠자리들 활동하는데 불편 할세라 비는 개어 있고, 하늘 저편에 햇님이 구름 사이로 나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네요.
잠자리들도 저희들도 즐겁고 맛난 하루 였답니다.
재원아? 민수야? 은우야? 10월에는 꼭 만나서 고구마도 캐고, 고구마 줄기로 줄넘기도 하며 신나게 놀아보자꾸나.
첫댓글 현장 리포트처럼 생생하네요~잠자리들 표정, 말씨, 행동거지가 떠올라 홀로 저절로 웃게됩니다~ㅎㅎㅎ`
정말 생생하게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자연과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맘이 그대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