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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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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8. 사람살이의 어려움
무진당 추천 0 조회 64 09.08.14 07:00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8. 사람살이의 어려움

 -『좋은 생각 』2009년 8월호

                            이함(1633-?), <백로도>, 종이에 수묵담채, 37.0×22.4cm, 순천대학교 박물관

 

 

 

냇가에 나갔다.

엊그제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냇가의 풀과 나무들이 짙은 녹색빛을 띄고 있었다.

 빗물에 맑게 닦인 대기사이로 오후의 태양이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다지 맑지 않은 냇물조차 눈부신 빛으로 뒤덮여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온 세상이 빛 속에서 절정을 향해 치닫는 중이었다.

 

냇가 옆, 도로와 접한 경사면은 노랗고 빨갛고 흰 꽃들로 점령당해 있었다.

양귀비가 진 자리에는 금계국과 패랭이와 개망초와 루드베키아가 격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2km가 넘는 산책로에 온통 꽃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냇가의 변신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3년 전, 내가 이 곳에 이사올 때만 해도 냇가는 그야말로 악취가 풍기고 스티로폴과 건축 폐자재들이 버려져 있는 황폐한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든 곳을 떠나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자괴감 때문에 새로 이사 온 집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참에 유일하게 산책할 수 있는 냇가마저 그 모양이었으니 새 동네가 정이 들 리 만무했다. 말끔하게 단장된 신도시에 살다 온 나한테 이곳은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달동네처럼 어지럽고 난삽해 보였다.

 

그런데 3년 만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신했다.

검은 비닐과 술병과 플라스틱 병들이 쑤셔 박혀 있던 하천은 말끔하게 걷어내졌고 냇가에는 심은 지 얼마 안된 버드나무가 한창 뿌리를 내리는 중이었다.

물 위에는 오리들이 몇 마리 헤엄치고 있었고 가끔씩 물고기가 물 위로 튀어 올랐다.

도저히 생명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물에 어느 새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기적 같은 사실이 믿기지 않아 냇가를 따라 걷는 내내 꽃과 냇물을 번갈아 보며 두리번거렸다.

 

감탄하고 감동받으며 걷다 보니 오래 전에 정비된 냇가에 도착했다.

말하자면 이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하천과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었다.

새로 정리된 우리 동네의 하천은 키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자전거길과 사람이 걷는 길에는 페인트 색이 선명했다.

반면에 옆 동네의 냇가는 물길을 따라 심어진 버드나무의 크기부터 달랐다.

우람하게 자라 그늘을 만들고 있는 옆 동네의 버드나무들은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동네의 나무들을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버드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비가 온 뒤라 냇가의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시멘트블록으로 막아놓은 물막이는 징검다리처럼 일정하게 구멍이 뚫려 있어 위아래의 수량이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물막이 위쪽의 수중보에는 고기가 많은 듯 팔뚝만한 고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물회오리가 생겼다.

맑은 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오염되지도 않는 물이었다.

지금 우리 동네 하천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속도를 감안한다면 이 곳이 시골 냇가처럼 맑아질 날도 머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며 찰찰 흘러내리는 하천 아래쪽을 보니 그 곳에 백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싱싱하게 뻗어 오르는 수초 사이로 다리 하나를 들고 외발로 서 있는 백로는 움직임이 전혀 없어 그림처럼 고요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부들과 갈대보다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백로가 오히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을 막아놓은 수중보 아래에는 가끔씩 새들이 기다리고 서서 물과 함께 떠내려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곤 한다.

그래서 수중보 아래쪽은 찰랑거리는 물소리만큼이나 부산스럽다.

역시 오리 몇 마리가 뒤뚱거리면서 주둥이로 물 속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목이 길어 유난히 허약해 보이는 백로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통통한 오리와 대비되면서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부장님은 승냥이처럼 서로 뜯어먹으려고 하는 이 아사리판에 어울리지 않으니 늦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셔서 교수나 하시죠.”

 

늦은 밤, 지친 어깨 위로 짙은 어둠을 짊어지고 들어온 남편이 동료 직원이 자신에게 했던 충고를 탄식처럼 내뱉었다.

쉴 새 없이 물 속을 뒤적거려도 먹이를 건질까 말까 한 상황에서 넋 놓고 서 있는 백로를 보고 350여년 전에 살았던 이함(李涵:1633-?)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사람살이가 힘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진가 보다. 쓰레기장이 변해 꽃밭이 되고 폐수가 변해 맑은 물이 흘러도 사람살이의 조건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다.

 

탐욕이 아니라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물 속을 뒤적거려야 하는 백로의 고독한 모습을 보면서

350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먹고 사는 것의 어려움을 고민했을 두 사람을 생각한다.

백로 같은 사람한테 딸린 식구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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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8.14 09:48

    첫댓글 가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ㅎㅎ무진당님 사시는데는 우리같은 가마귀는 피해 갑니다 우리 공주에는 비단강이 흐르걸랑요 ()()()

  • 09.08.14 12:35

    우리의 마음도 무진당 님께서 보신 시냇물 처럼 깨끗하게 정화되여 물고기도 있고 오리도 있고 고고한 백로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던지 "隨住作處 立處皆眞" 일념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겠죠...

  • 09.08.14 15:22

    ()()()

  • 09.08.14 22:19

    무진당님 글속에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봅니다 아름답고 은은한 그림을요~^^* 고맙습니다..()

  • 09.08.15 00:52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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