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못 떠나는 배》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시절 사망하였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2008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박경리 연보 |
출생 1926.10.28~ 사망 2008.5.5 |
1926 |
10월 28일 통영 명정리에서 박수영씨 장녀로 출생(본명 박금이). |
1945 |
진주여자고등학교 졸업. |
1946 |
1월 30일 김행도씨와 결혼. |
1950 |
12월 남편과 사별. |
1955 |
《현대문학》8월호에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 초회 추천. |
1956 |
《현대문학》 8월호 단편 《흑흑백백》으로 문단 활동 시작. |
1957 |
《만주신보》에 첫 장편 《애가(연가)》 연재. 8월 단편 《불신시대》발표. 제 3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1959 |
《표류도》로 내성문학상 수상(《현대문학》 2월호~11월호에 연재). |
1962 |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발표. |
1966 |
장편 《시장과 전장》으로 한국 여류문학상 수상. |
1969 |
《현대문학》에 대하소설 《토지》 1부 연재 시작. |
1972 |
《토지》로 월탄문학상 수상. |
1980 |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 |
1994 |
8월 15일 집필 26만에 《토지》탈고.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 |
1995 |
연세대 객원교수 임용. |
1996 |
3월 제6회 "호암예술상" 수상. |
1996 |
《토지》 전 16권 출간. |
1997 |
연세대 석좌교수 임용. |
2002 |
1월 《토지》 전 21권 재간행. |
2008 |
5월 5일 타계. 고향 통영에 안장. |
연표에서 보듯이 결혼 5년만에 남편이 타계하였고, 어린 아들조차 병으로 어린시절 세상을 떠났을 뿐만아니라 사위 김지하는 결혼전부터
중앙정보부에 끌려다니고 투옥되는등 선생의 평생은 고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는데도 토지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기셨으니 그 의지와
정신이 대단하시다 할것이다.
사진기자가 우연히 찍은 사진이 대표사진이 되었다

젊은시절

원주 단구동 문학공원내에 있는 문학의집

영상물시청

전시물

박경리 선생이 원주에서 머무르시던 가옥, 여기서 토지 4,5부가 집필되었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들




토지의 주무대. 하동 악양 평사리



토지 1~5부





선생이 쓰시던 소품들

국어 사전

토지 1~16부

본인이 쓰시던 재봉틀

아끼시던 달항아리

농사도구



연표








첫댓글 질곡의 삶을 살아냈던 박경리 대 작가님의 터전을 잠시나마 들여다 본것 같습니다.
생전의 그분의 모습이 새삼 그립네요 ^^
너무나 감격적인 박경리문학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