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발 ‘아사자 속출’ 뉴스가 우려스럽다
: 무거운 정세 인식과 공신력 있는 정보분석 선행돼야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최근 북한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농업 생산 저하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 1990년대 식량난 이후 ‘최악’의 식량난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의 폐쇄성은 ‘소식통’에 기댄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해 왔다. 위기는 극대화되고 상황이 나아진다는 이야기는 없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주장’이 외신을 거치며 공신력을 얻고, 다시 국내로 유입되며 ‘글로벌 뉴스’로 역수입되는 촌극도 벌어진다.
이 글은 최근 통일부로부터 시작된 북한의 ‘아사자 속출’ 뉴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팩트(fact)로 가공되는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려 한다.
북한의 식량 위기, 어느 정도인가?
북한의 식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이 스스로 식량 상황을 발표하지도 않을뿐더러, 발표하더라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에 관한 한 ‘김정은도 모른다’는 말이 푸념처럼 회자될 정도다.
다만 작년 12월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은 451만 톤으로 2021년도 469만 톤보다는 18만 톤(3.8%) 감소했으며 2020년도 439만 톤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은 매해 북한 지역의 기상 여건과 병충해 발생, 비료 수급 상황, 국내외 연구기관의 작황 자료, 그리고 위성영상 정보 등을 종합 분석해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을 발표해 왔다.
2022년 북한의 식량 생산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수해 등으로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일부에서는 300만 톤대로 급감할 것이라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선방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2020년도 생산량에 비하면 증가한 수치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가 추정하는 북한의 곡물 생산 수요량이 550만 톤이란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북한의 식량은 99만 톤 정도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북한의 2000년대(2000년~2009년) 식량 생산량은 연평균 416만 톤이었다. 2022년 식량 생산량 451만 톤은 이를 꾀나 상회하는 수치이다.
또한, 북한은 자력갱생 기조에 따라 생산 단위마다 자체적으로 텃밭을 가꾸고 주민들도 주택 주변이나 야산의 텃밭을 통해 남새(채소)나 밭작물을 기르며 식량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먹거리 생산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통일부 대변인이 쏜 ‘아사자 속출’ 뉴스
새해 들어 일부 북한 뉴스매체가 ‘소식통’을 근거로 북한의 아사자 발생을 타전하긴 했으나 통일부는 이 뉴스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또한 지난 2월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지금 아사자가 속출하고 ‘고난의 행군’처럼 그런 정도는 아직 아니라고 본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그런데 통일부 대변인이 북한의 ‘아사자 속출’을 기정사실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통일부 장관이 신중론을 견지한 지 며칠 안 된 2월 20일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특별한 근거 제시 없이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야기를 팩트(fact)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는 우리 언론에 북한에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통일부발 뉴스로 퍼져나갔다. 또한 CNN 등 외신들이 한국 정부발 뉴스로 북한의 아사자 발생 가능성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위 북한에 ‘소식통’을 가진 관찰자들이 모두 북한의 아사자 발생을 같은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북한의 식량 부족은 만성적인 현상이며 꽃제비나 취약계층에서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늘 북한의 위기를 말하는 언론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북한의 식량문제, 아사자 발생 문제는 다소 부풀려져 이슈화되기 쉬운 뉴스다. 다만 이를 정부 당국자가 특별한 근거 제시 없이 장관의 신중론에서 벗어나 발표한 것은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체계적인 정보분석 통해 북한 상황 관리해야
통일부는 2021년 이후로만 북한 정보분석 관련 예산으로 200억이 넘는 돈을 투입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 경제사회 심층정보 수집, 정세분석 역량 강화, 북한정보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구축, 북한 종합 DB 운영 등의 사업이 포함돼 있다. 국가정보원과의 북한 정보공유도 유지되고 있다.
통일부의 북한 정보 공개, 특히 아사자 발생과 같은 북한의 체제 안전과 직결된 민감 이슈의 공개는 단순히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던질 수 있는 뉴스가 아니다. 북한 정보분석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분석과 논리적인 근거가 수반돼야 한다.
예를 들어, 김정은 시대의 식량 부족은 김정일 시대의 식량난과 다른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국가의 중앙공급체계에서 식량 배급이 중단되며 아사자가 발생했던 김정일 시기와 달리, 김정은 시대에 북한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아사자가 발생하더라도 국가의 대응이 과거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쌀이나 옥수수 가격의 변동에 대한 해석 또한 단순히 가격의 등락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국가와 시장의 역학관계를 관찰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의 <애국미헌납운동>이 시장에서 곡물 가격 상승을 추동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주민들이 애국미를 바치기 위해 시장에서 쌀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의 위기를 이슈화하기보다는 지속되는 위기 속에서도 유지되는 북한체제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잦은 '북한붕괴론', 그럼에도 견고한 북... 시각을 바꿔야 한다, https://omn.kr/212h1) 통일부는 이러한 북한의 특성,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을 준비하는 부서이다. 앞으로 통일부의 무거운 정세 인식과 공신력 있는 정보분석을 기대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