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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를 걷다
梅山 방 재 곤
숭악산악회 회원 12명(남6 여6)은 1년6개월의 준비 끝에 8박9일(2019. 8.5~8.13) 일정 으로 중국 운남성(雲南省 윈난성) 차마고도(茶馬古道)로 간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로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갔던 길이다. 이 길은 해발 3,000m에서 5,000m에 이르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길로 새와 쥐만이 갈 수 있다고 하여 조로서도(鳥路鼠道)로도 불렸고, 길이가 약 5,000km에 이른다. 만년설로 덮인 설산(雪山), 끝없이 흐르는 강, 아찔한 협곡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의 하나로 꼽힌다.
이 길을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馬幇)이라고 한다. 마방은 수십 마리의 말과 말잡이인 ‘간마런’으로 이루어지고, 교역물품은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 다양했지만 그 중 제일은 보이차(普洱茶)다. 보이현(普洱縣 푸얼현) 차시장에서 출하했기에 부르는 보이차는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이 마셨던 발효 흑차. 유목 위주의 사람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비타민의 공급원이었다.
차마고도는 2007년 KBS가 세계 최초로 6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그때 내레이션을 맡았던 최불암의 구수한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Ⅰ. 북경에서 여강으로
2019년 8월5일(월) 12시45분 김해공항 이륙, 2시간30분 비행하고 오후 2시15분 북경 공항에 착륙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시차가 1시간 늦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넓은 공항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시끌벅적하다.
북경에서 가장 오래된 900년 역사를 지닌 북해공원과 최대의 번화가 왕부정(王府井)거리를 둘러본다. 생각과 달리 공기가 맑아 상쾌하다. 대기오염 방지대책을 철저하게 실천한 결과라고 한다.
저녁 먹고 공항 근처 국도대반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북경에 가랑비가 내린다.
8월 6일(화)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샌드위치, 빵, 과일 등을 비닐주머니에 담은 아침도시락을 받고, 5시 전용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간다. 오전 8시 이륙, 3시간32분 날아 여강공항에 착륙했다. 조선족 엄광성 가이드가 반겨 맞는다.
여강(麗江 리장 Lijiang)은 해발 2,400m에 위치한 고원도시.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나시족들의 오랜 터전이다. 여강을 품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 남서쪽에 있고,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이 닿아있다. 인구는 4천6백만 명, 면적은 39만4천㎢로 남한의 4배다. 중국은 시골이라고 해도 인구가 보통 1백만이 된다고 하니 나의 숫자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럽다.
전용차량(29인승)은 교두진으로 이동한다.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저는 조선족 3세로 34살입니다. 여기 오면 세 가지 필수품이 있습니다, 차양모자, 선크림, 선글라스. ‘날씨 어때요?’는 금지된 질문입니다. 변화가 심함으로. 어머니가 서울에 계셔서 몇 달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좋았던 네 가지는 화장실, 대중교통, 네비게이션, 음식배달이었습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서, 인구는 공식통계로 13억7천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한(漢)족은 91.5%, 55개 소수민족은 8.5%입니다. 소수민족은 중국 전체 영토의 60%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을 알아두면 좋겠지요. 니 하오-안녕하세요, 시에시에-감사합니다, 씬쿨러-수고했습니다, 뿌 하오 이스-미안합니다, 짜이 찌엔-잘 가요“
Ⅱ. 가장 힘든 28밴드 걷다
교두진에 도착하여 현지식 점심을 먹고 짐을 정리한다. 사계절 옷을 갖고 왔으니 짐이 많다. 짐이 짐이다. 호도협(虎跳峽) 1박2일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짐은 배낭에 넣고, 보관할 짐은 캐리어에 넣어 전용차량에 맡긴다. 그리고 미니밴(일명 빵차) 2대에 나누어 타고 트레킹 시작지점으로 이동한다. 꼬불꼬불 오르막길로 20분쯤 달리더니 내리라고 한다. 오후 3시40분, 발길을 내딛는다.
이곳은 히말라야산맥이 끝나는 곳, 위도상 열대에서 아열대지역에 속하지만 고도가 높아 덥지 않다. 여름철 우기라서 걱정했지만, 구름만 많을 뿐 비는 내리지 않는다. 행운이다.
나시객잔(해발 2,100m)이 있는 마을을 지나 우리들의 트레킹 코스 중 가장 힘 든다는 ‘28밴드’를 올라간다. 28밴드는 28번 굽이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1999년 킬리만자로 등반 때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 그곳의 인사말을 생각한다. 빨리 걸으면 고산증에 걸려 트레킹은 실패로 끝난다. 우리 대원들은 고산 산행을 많이 했기에 경험을 잘 살려 경미한 증세를 보였을 뿐 고산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마방이 걸었던 길, 길 끝에 가면 또 길이 있고, 모퉁이를 돌아가면 다시 모퉁이가 기다리고 있다.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고갯마루(해발 2,670m). 조망을 즐긴다. 감탄 감탄!!! 신비롭고 아름답다.
눈앞에는 구름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옥룡설산(玉龍雪山 5,596m)이 있고, 깊고 깊은 계곡 아래는 금사강 황토물이 협곡을 휘돌아 흐른다. 우리들은 합바설산(哈巴雪山 5,396m) 중턱에 발을 딛고 있다.
왜 영국 BBC가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마추픽추 잉카 트랙과 함께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선정했는지 알 것 같다.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가 마치 한 마리의 은빛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서유기>에서 옥황상제가 손오공을 가두어 벌을 준 산이기도 하다.
금사강(金沙江)은 중국 양쯔강(揚子江, 長江)의 주요 상류 중 서쪽 끝에 있는 강으로 길이 2,308km.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은 원래 하나였는데 지각운동으로 둘로 쪼개져서 16km 협곡이 생기고, 그 사이로 금사강이 흘러들었다고 한다. 이 협곡은 ‘호랑이가 뛰어넘을 만큼 폭이 좁은 협곡’이라고 하여 호도협(虎跳峽)이라 부른다.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비탈길과 평탄한 길이다. 고산증은 전혀 염려 없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밤이 된다. 랜턴을 꺼내지 않고 핸드폰 손전등을 사용한다. 차마객잔에 도착한 시각은 밤 8시50분이었다. 안내서에는 4시간 소요된다고 했는데 5시간 10분 걸렸다.
차마객잔(茶馬客棧)은 옛날 차마고도를 넘나들던 마방들이 묵었던 숙소. 일정 중에서 가장 힘이 든다는 오늘 하루, 성공적인 트레킹을 자축하며 찡따오맥주와 소주로 건배를 했다. 보양식 오골계백숙이 나왔지만 너무 힘들고 지쳐 대부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2인1실, 배정 받은 방에 간다.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에 불을 켠다. 밤비가 내리는 산중 숙소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Ⅲ. 차마객잔→중도객잔→호도협
지난밤에는 비가 내려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의 향연을 즐기지 못했다. 비가 그친 아침, 눈앞 옥룡설산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경쾌한 음악과 같다. 공기가 무척 맑고 신선하다.
오늘 코스가 변경된다. 중도객잔(中途客棧)을 거쳐 관음폭포를 지나 장선생객잔(張先生客棧)까지 9.5km 거리를 3시간 30분 걷게 되어 있었으나 산사태 우려로 출입이 통제되어 관음폭포에 갔다가 중도객잔으로 돌아온다. 관리소에서 지시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마객잔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곳이어서, 음식이 우리들의 입맛에 맞다. 엊저녁 식사를 설친 탓에 아침을 넉넉하게 먹었다. 코스가 단축되어 갖고 온 봉지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고 길을 떠난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1시간40분 걸어가니 중도객잔(해발 2,500m)이다. 한국에서 단체로 왔거나 개인 자유여행 으로 온 사람들, 서양 사람은 서너 명, 중국 사람이 많다.
풍광이 좋아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厠)이라고 하던 화장실은 객잔 개축으로 사라졌다. 마당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난간 팻말에 ‘죽여주는 전망대’라는 뜻의 한자가 적혀 있다. 바로 눈앞에 설산이 있다. 장엄하고 신비롭다. 하늘이 내린 전망대다.
객잔에 배낭을 내려놓고 왕복 1시간 거리, 오락가락하는 가랑비를 맞으며 관음폭포로 간다. 길은 천 길 낭떠러지 옆이지만 다듬어져 있고 폭도 넓다. 폭포를 보고 물을 스쳐 맞는다. 만년설이 녹아 산허리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가 구슬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며 깊은 계곡으로 떨어진다.
객잔으로 돌아와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개발의 여파는 이곳까지 밀려들어 객잔까지 도로가 개설되고 자동차가 들어온다. 빵차를 타고 호도협에 도착하니 엄청난 사람들로 붐빈다. 거의 모두 중국인 관광객이다. 협곡 아래로 내려간다.
호도협은 세계에서 가장 깊고 큰 협곡 중의 하나. 강폭이 이곳에 이르러 갑자기 좁아져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어나 강물이 포효하며 흐른다. 이런 굉음을 내는 물소리는 처음 듣는다. 오늘 트레킹 중 압권이다. 지금은 우기라서 물이 황토색이지만, 건기에는 옥색이라고 한다. 눈 아래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어제 낮 식사를 했던 교두진으로 왔다. 대기하고 있던 전용차량(29인승)으로 갈아타고 샹그릴라로 간다.
Ⅳ. 샹그릴라를 스쳐가다
샹그릴라에 들어선다. 차창 밖으로 그림 같은 설산, 드넓은 목초지, 고즈넉한 강, 울창한 숲, 다랑이 밭, 깨끗하고 시원한 도로, 티베트불교의 상징인 백탑, 정겨운 마을을 본다. 여기는 해발 3,280m. 중심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상점 거리를 돌아본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 1900-1954)이 1933년에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비롯됐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로 유토피아, 이상향을 뜻한다.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 대공황으로 심신이 찌든 서양인들에게 소설 속에 묘사된 샹그릴라는 꿈에 그리던 지상낙원이었다.
이 소설은 출판된 뒤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의 틀에 박히고 물질문명에 중독된 삶을 벗어나 정신세계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중ㆍ장년층 사이에는 단조롭고 무색무취한 생활에서 탈피하여 젊고 활력 있게 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른바 '샹그릴라 신드롬'이 불어 닥쳤다. 원작에 힘입어 1937년과 1973년 두 차례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디칭티베트족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에 있는 중뎬(中甸)을 소설 속의 샹그릴라로 만들기 위해 2001년 12월 이름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바꾸고, 관광지 인프라를 구축했다. 200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래서 관광객이 해마다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갈 길이 멀어 잠시 머물고 샹그릴라를 떠나 더친을 거쳐 비래사(飛來寺)로 간다.
비래사는 티베트에서 석가모니의 불상이 날아와 내려앉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사찰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지명이기도 하다.
깜깜한 밤, 전용차는 산허리를 휘도는 아찔한 도로, 한 쪽은 절벽, 한 쪽은 천 길 낭떠러지 도로를 달린다. 가끔 떨어진 낙석을 피해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차 안에는 깊은 침묵이 흐른다. 옛날 마방들이 다니던 실핏줄 같은 길, 벼랑에 난 길을 어떻게 이런 차도로 넓혔을까.
오늘밤 숙소는 관경천당호텔(3성급). 밤늦게 도착하여 10시30분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메뉴는 야크 샤브샤브. 고기도 많고, 야채도 풍족하다. 방 벽에는 커다란 매리설산 일출 사진이 보기 좋게 붙어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 아침 7시40분 매리설산의 황홀한 일출을 기대하면서.
Ⅴ. 비래사→시땅→상위뻥→신폭
8월 8일(목) 6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한다. 매리설산(梅里雪山) 2박3일 트레킹에 필요한 짐은 카고백과 배낭에 넣고, 나머지 짐은 캐리어에 넣어 호텔에 맡겨둔다. 3,400m 고지대여서 아침 날씨는 조금 쌀쌀하다.
기대하며 기다렸던, 사진으로 보았던 황금색으로 빛나는 일출은 산 정상부가 구름으로 덮여 볼 수 없다. 왼쪽 한 편에 잠시 붉은 구름이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위대한 설산이 지나가는 길손에게 쉽게 일출을 보여 주지 않으리라 위로를 해본다.
전용차를 타고 높은 산허리를 돌아 시땅 마을로 간다. 낙석을 치우고 도로를 보수하는 곳도 있다. 이제 아슬아슬한 길도 조금 익숙해지는 듯했다.
10시40분 시땅 마을 도착. 여기서 7인승 짚차로 갈아타고 상위뻥(上雨崩 3,200m)으로 가야만 한다. 전에는 마방이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다니던 길이다. 그런데 세 그룹 마방들이 이권다툼을 벌이다 살인사건이 생기고 난 뒤, 중국 정부가 마방활동을 금지시키고 작년 11월에 도로를 넓히고 짚차로 대체했다고 한다. 마방은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중년의 기사는 산악오토바이가 다니는 길과 같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운전한다. 폭이 좁아 교행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비껴갈 수 있는 곳까지 후진을 한다. 40분 동안 이리저리 요동쳤다. 나는 아직 허리가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상위뻥 마을 입구에서 내려 조금 걸어오니 오늘과 내일 우리들의 숙소인 ‘설역장바락객잔’이다. 시땅 마을에서 걸어오면 6시간쯤 걸리는 길을 50분 만에 왔다.
위뻥 마을은 3년 전에 전기가 들어왔고, 작년 가을에는 비포장 차도가 개통되어 자동차가 들어온다. 전기는 공짜. 중국 정부가 티베트족(藏族 장족)의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베푸는 특혜의 하나일 것이다.
객잔에서 점심을 먹고 쉴 틈도 없이 1시25분 출발한다. 하위뻥(下雨崩 3,060m)을 지나 신폭(神瀑 3,660m)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다. 12km 거리, 예상 소요시간은 6~7시간.
오색 ‘타르초’가 가득하고 ‘룽다’가 있는 곳을 지나간다. 타르초는 티베트불교(라마교)의 경전을 빼곡하게 적은 오색의 천들을 긴 줄에 매달아 놓은 것. 오색 중 파랑은 하늘, 노랑은 땅, 빨강은 불, 하양은 구름, 초록은 강을 상징한다. 이 천이 바람에 날려 경전의 내용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낡고 찢어진 타르초들이 많이 보인다. 타르초는 신성시되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룽다’는 이 타르초를 긴 장대에 세로로 달아 놓은 것을 말한다.
침엽수림이 있는 오르막길을 1시간 정도 힘들게 올라오니 넓은 평지. 길이 빤해 잃을 염려가 없어 대원들은 자기 페이스대로 편안하게 걷는다. 이곳에 봄이 오면 철쭉꽃이 지천으로 핀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설산을 배경으로 넓은 분지가 있는 곳, 이름 모르는 야생화를 보며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분지가 끝나는 곳에 나무로 지은 집이 있고, 말들이 매여 있다. 여기 있는 말은 노새다. 노새는 말과 당나귀의 중간 크기. 힘이 세고 지구력이 강하여 많은 짐을 오래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말 구경하러 가까이 가니 한 마방이 “말 타~~말 타~~” 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는 증거다.
나는 여기서 아쉽지만 순례자들의 성지, 신폭 가기를 포기했다. 200m 더 고도를 높여야 하고 선두그룹과 시간 차이가 많아 돌아오기가 염려스러웠다.
신폭에 안 가기로 하니 한결 여유롭다. 같은 길을 걷건만 되돌아 내려오니 풍광이 새롭다. 하위뻥 마을 밭에는 청보리(칭커)와 옥수수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청보리 알곡은 볶아 빻아서 ‘짬바’라는 가루로 만들어 마시거나 빵으로 구워 먹는다. 껍질과 쭉정이는 말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다. 이곳에는 돼지를 방목하여 사람과 함께 길로 다닌다.
가이드는 우스개로 그랬는지 “비가 와서 산사태가 나면 뻥~하는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위뻥이라는 말이 지어졌습니다.”라고 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이 시멘트로 길 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자신들과 그들의 조상이 오가던 차마고도의 옛길이 사라지고 있다. 탐방객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다니는 마방들도 머지않아 없어지리라.
아랫마을 하위뻥에서 윗마을 상위뻥으로 오르는 길. 내려올 때는 달리듯이 왔는데, 올라갈 때는 무척 힘들었다. 고도차이가 140m밖에 안되는데. 마지막 후미는 출발 7시간 조금 지난 8시40분에 객잔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한 대원의 말. “여기 사람은 아예 영어를 몰라요. 숙소에 필요한 수건과 휴지를 번역기 어플을 사용하여 해결했습니다.” 와이파이가 되어 통화를 해보지만 상태가 좋지 않다. 사진은 아예 전송되지 않는다.
수유차를 마신다. 짭조름하고 그저 그렇다. 수유는 야크나 양, 소의 젖을 끓인 후 식혔을 때 생겨난 덩어리. 차에 수유를 넣어 소금을 쳐서 함께 끓여 만든 것이 수유차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가장 중요한 먹거리다.
Ⅵ. 10시간 걸어 삥후에 다녀오다
8월 9일(금) 짧은 밤이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 9시20분 출발. 오늘은 쇼능베이스(3,650m)를 거쳐 삥후(氷湖 3,860m)에 갔다가 여기 상위뻥(3,200m)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왕복 12km, 예상 소요시간 7시간. 구름 끼어 걷기에 좋은 날씨다. 마을을 지나니 눈앞 매리설산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매리설산은 만년설로 덮인 운남성에서 제일 높은 산. 해발 6,000m 이상의 고봉이 13개나 있고, 최고봉은 ‘설산의 신’이라는 뜻을 지닌 카와커부봉(伽瓦格博峰 6,743m)이다. 카와커부봉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봉우리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장엄하다. 아직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정상 정복을 위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1991년 1월 4일에는 중국과 일본 연합등반대가 눈사태로 조난을 당해 17명 모두 사망하기도 했다. 그 이후 티베트인들은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하여 극력 반대하였고, 중국 정부도 허락 하지 않아 정상 도전의 문은 굳게 닫혔다.
가이드는 “빨간 리본, 초록색 쓰레기통을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라고 한다. 1시간쯤 평지를 걷고 숲 속 가파른 길로 올라간다. 침엽수 거목과 이끼가 많은 분지를 지나 다시 오른다. 곳곳에 쓰러진 고목이 있고, 새로운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다. 자연의 순리이리라. 매리설산에 있는 원시림은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흑곰, 표범, 판다 등 113종의 동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힘들게 고갯마루에 올랐다가 내려간다. 세차게 흐르는 냇물에 놓인 통나무다리를 건너고, 대피소인 쇼능베이스 캠프를 통과하여 나아간다. 여기저기 야생화가 짧은 여름을 만끽하려는 듯 피어 있다. 정녕 아름다운 모습이다.
가까운 듯한데 먼 곳 삥후, 다시 오른다. 어제는 신폭 가기를 포기했는데, 오늘은 그러면 안 되지. 힘들지만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걷는다. 내려오는 중국 소녀에게 삥후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Forty Five,
짜요! 짜요!"라고 한다. 45분 남았으니 힘내라는 뜻이다. 함께 있던 나이 많은 분이 엄지척을 해주었다.
드디어 삥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삥후는 만년설이 녹아 여러 갈래의 하얀 물줄기로 흘러내려 생긴 작은 옥색빛 호수다. 한눈에 보이는 빙원은 아래위 길이가 2km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온난화로 인해 지난 30년 사이에 전체 빙원의 1/4이 사라지고, 대기오염으로 검게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곳곳의 만년설이 녹고, 빙산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데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갖고 온 주먹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마을이 보이는 곳에 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세 사람의 대원과 함께 객잔에 도착하니 어둠이 찾아오는 7시30분이었다. 오늘 저녁 가이드가 끓인 된장국은 정말 맛있었다. 다른 음식은 거의 손대지 않고 더 달라고 하여 많이 먹었다. 미팅하고, 더운 물로 샤워하고, 잠자리에 든다. 좋은 날씨 속에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10시간 걸어 삥후에 다녀온 오늘은 나에게 엄청난 날이었다.
Ⅶ. 여강에서 즐거운 관광
8월 10일(토) 시땅 마을로 가기 위해 올 때처럼 짚차를 타고 상위뻥 출발. 이른 아침 부터 여기저기에서 객잔을 새로 짓거나 보수를 하고 있다. 탐방객이 점점 많아지는가 보다.
고지대 난코스를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단체로 걷는 사람들도 있고, 젊은 남녀 트레커도 있다. 낡은 운동화에 일상복을 입고 아이들을 데리고 순례의 길을 걷는 가족인 듯한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시기가 아닌지, 장소가 아닌지 오체투지를 하며 걷는 순례자는 만나지 못했다.
시땅 마을로 내려와 전용차로 갈아타고 멀리 산 위에 있는, 이틀 전에 들렸던 비래사 마을로 되돌아간다. 비래사 백족(白族)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더친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깊은 낭떠러지가 있는 산허리를 통과한다. 며칠 전 한밤중에 이 길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생각하니 전율이 일어난다. 몰랐으니까 용감했나 보다. 황토물이 흐르는 계곡 옆으로 난 긴 도로를 지나간다. 가이드가 농장에 달린 도로 옆 판매대에서 포도와 수박을 사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마을마다 전신주나 건물에는 붉은 색 바탕에 노란 망치와 낫이 그려진 공산당 깃발이 많이 걸려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정부보다 위에 군림하는 나라 아닌가.
다시 큰 산을 넘어간다. 그런데 차에 문제가 생겨 3,900m 고개에서 정비하느라 1시간 지체되었다. 좋은 차는 아닌데 험한 길을 잘 다녔고, 또 굴러간다. 더친을 지나 교두진에 와서 저녁식사를 했다. 길목이어서 세 번째 들리는 곳이다.
여강으로 가는 길, 고속도로도 30분 달렸지만 길이 멀어 숙소인 화새호텔(和賽酒店)에 도착하니 밤 10시10분이었다. 깊은 산속 오지마을을 떠나 하루 종일 차를 타고 130만 명이 살고 있는 여강에 왔다. 숙소는 모두 2층 건물 15개동으로 된 궁궐 같은 곳이다.
다음 다음날은 여강에서 하루 반 관광을 즐긴다. 풍광이 아름다운 운삼평에 가고, 인상여강쇼를 감동 깊게 관람하고, 옥수채와 백사촌, 흑룡담공원을 구경하고, 밤나들이도 했다.
8월 12일(월) 중국인, 특히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 여강을 떠나 북경으로 가서 하룻밤 묵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길고도 짧은 여정이었다.
인구 세계 1위, 면적 세계 4위,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었다. 운남성에는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26개 민족이 살고, 해발 5,000m이상의 고봉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 나는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의 하나라고 하는 차마고도의 일부, 호도협과 매리설산을 걸었다. 옛날에는 마방들의 생존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험준한 산에서 여름철에 설산의 파노라마를 조망하며 아찔한 절벽과 깊고 깊은 낭떠러지 사이에 난 길을 걸었고, 순례자의 길도 걸었다. 단편적이었지만 중국 소수민족들의 삶과 문화도 접할 수 있었다. 여행길에 날씨는 얼마나 중요한가. 우기인데도 비다운 비를 맞지 않았으니 우리 일행은 참으로 복이 많았나 보다.
나의 9번째 해외산행, 이번 차마고도 트레킹은 이제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 지난날의 추억에서 마음의 풍요를 누리며 살고 싶다.
약력
부산 출생. 2004년《시와 수필》 신인상 등단
숭악산악회 고문. 남양방씨종친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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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귀한 여행기를 보면서 참 부럽습니다.
귀한 자료들까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