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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음식디미방팸 포스팅 스크랩 영양군 지훈 문학관과 시공원
하늘타리 추천 0 조회 248 14.06.11 09:1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마을입구에서 차에서 내려

 

다리를 넘어 장군천을 건너가면

 

지훈문학관이 눈앞에 보입니다.

지훈시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 답게 안내를 위해 만든 조형물에도

시인이 쓰던 안경, 파이프, 부채, 장갑, 넥타이등의 사진과

각 사진아래 여러 수상록속의 쓰인 사색의 단편들을 적어두었습니다.

 

 

 

지훈문학관입니다.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지훈 조동탁을 후세에 길이 기리기 위해 2007월 5월 건립하였습니다.

 

문학관에 들어서기전 잠깐!

 

멋설을 읽습니다.

 

매천이 절명의 순간에도 "창공을 비추는 촛불"로 자신의 죽음을 관조하였듯이

조지훈은 나라를 잃은 시대에도 "태초에 멋이 있었다"는 신념을 지니고 초연한 기품을 잃지 않았습니다.

조지훈에게 멋은 저항과 죽음의 자리에서도 지녀야 할 삶의 척도였습니다.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현판입니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170여 평 규모에 단층으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이 'ㅁ'자 모양으로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문학관 동선을 따라 지훈시인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훈시인의 소년시절 자료들, 광복과 청록집 관련 자료들, 격정의 현대사 속에 남긴 여운, 지훈시인의 가족 이야기,
미망인 김난희 여사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작품, 지사로서의 지훈 선생의 삶, 지훈의 시와 산문,
학문 연구의 핵심 내용, 지훈선생의 선비로서의 삶의 모습 등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지훈의 흉상을 만납니다

 

조지훈 연보


보다 간추리면
1920년 : 음력 12월 3일 영양군 일월면 주실에서 조헌영과 유노미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39년 : 《문장》3월호에 <고풍의상>, 12월호에 <승무>가 추천됨. 동인지 《백지》발간.
1940년 : 《문장》 2월호에 <봉황수>가 추천됨. 김난희와 결혼.
1941년 : 3월 혜화전문 졸업. 4월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 외전 강사. 12월 상경.
1946년 : 3월 전국문필가협회 중앙위원. 4월 청년문학가협회 고전문학부장.《청록집》간행.
1948년 : 고대 문과대 교수
1952년 : 첫 시집 [풀잎단장] (창조사) 간행
1953년 : 평론집 [시와 인생] (박영사) 간행, 평론집 [시의 원리] (산호장) 간행
1956년 : 시집 [조지훈 시선] (정음사) 간행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 시집 [역사앞에서] (신구문화사) 간행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1961년 :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시인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
1962년 : 수상집 [지조론] (삼중당) 간행
1963년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한국문화사대계》 기획.
1964년 : 시집 [여운] (일조각) 간행, 수필집 [돌의 미학] (고대출판부) 간행, 평론집 [한국문화사서설] (탐구당) 간행
1967년 :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8년 : 5월 17일 새벽 5시 40분, 기관지 확장으로 영면.
1972년 : 남산에 조지훈 시비 건립.
1973년 : [조지훈전집] (일지사) 전7권 간행
1982년 : 경북 영양군 주실에 지훈 조동탁 시비 건립.

 

지훈의 소년시절

피터팬, 파랑새등 어린시절 지훙이 읽었던 소설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쓴 "나의 역정"이라는 책에

"글이라고 쓰기 시작한 아홉 살에 동요를 처음 지었고, 동화를 창작해 보기도 했다."라 회고했습니다.

지훈은 당시 아이들이 대하기 어려웠던 동화 "피터팬, 파랑새, 행복한 왕자"와 같은 동화를 읽으면서 서구 문학을 만났습니다.
11살이던 1931년에 마을아이들과 "꽃담"이라는 문집을 엮었고, 1935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에 들어갑니다.


지훈의 형 세림

 

 

청년 조지훈

 

청년 지훈은 열일곱이 되던 1936년 상경하여 고향 선배인 오일도(吳一道)의 '시원사'에 머무르며

보들레르, 오스카 와일드에 빠져 탐닉하였습니다.
보들레르의 상징주의가 정통이라고 믿게 되고, 오스카와일드의 희곡 "살로메(Salome)"도 번역하였습니다.
열일곱나이인 1937년 지조를 지키다가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한 김동삼(金東三)의 시신을 만해가 거두어

심우장(尋牛莊)에서 장례를 치를 때 문상을 가기도 했습니다.

혜화전문(현. 동국대)에 입학하고, 마침내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으로

열아홉 살 되던 1939년 3월에 '고풍의상(古風衣裳)'으로 문단에 첫발을 내 딛었습니다.
그해 10월에는 불후의 명작 '승무(僧舞)'를 발표하고 이듬해 2월에 '봉황수(鳳凰愁)'가 추천됩니다.
그의 데뷔작인 '고풍의상, 승무. 봉황수'는 출세작이 되고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일제말 자아갈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붓을 꺽습니다.

 

광복과 청록집

 

광복후 문학의 뜻이 같은 박목월, 박두진과 "청록집"을 발간합니다.


청록집은 1930년말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3명의 시인이

1946년 3인 시집 "청록집"을 을유문화사에서 펴내면서 '청록파'라고 부르게 됩니다.
박목월은 '임, 청노루. 나그네' 등 15편,

조지훈은 '승무, 완화삼(玩花衫) 등 12편,

박두진은 '묘지송(墓地頌), 도봉' 등 12편 등

총 39편을 수록하였습니다.

 

 

 

 

 

종군 문인단 활동

 

당대의 지식인으로 변모한 모습

 

 

 

 

지훈의 가족

 

부인 김난희의 서예작품

 

노블리스 오블리제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론(志操論) : 변절자(變節者)를 위하여'(조지훈, 《지조론》, 조지훈전집5, 나남출판, 1996, p.93)


이어지는 1960년 3월 새벽지에 실린 지훈의 글 중 일부입니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 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伯夷)나 숙제(叔齊)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거나 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도 한 번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지훈의 시와 산문에 대한 설명

 

 

지훈의 학문과 사상

 

 

 

 

유물과 유품 전시코너

 

 

 

추모

 

지훈의 걸작
승무와 봉황수

 

주실마을에 관한 사항도 보너스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세미나 등을 하는 다용도실.

부인 김나희여사의 작품전을 돌아 봅니다.

 

 

 

 

 

 

 

문학관을 나와 광장에 서 봅니다.

 

지훈시공원으로 갑니다.

 

입구에 지훈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공원에 새겨져 있는 시 27편의 제목알림

그리고 지훈이 생각하는 시에 대하여 쓰여져 있습니다.

지훈은 "시는 천계(天啓)다. 그러나 그 천계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시는 천벌이다. 그러나 그 천벌도 시인 스스로 마련한 것이더라." 라고 하면서
"나 아닌 것에서 찾은 나의 생명(生命), 나에게서 찾은 나 아닌 것의 모습,

나 아님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진 그대와 나의 생명에의 향수(鄕愁). "이며 
"지·정·의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천계인지 천벌인지 그것은 해당되는 이들만의 이야기입니다.

이어령이 이야기 한 바처럼 "시는 현실 이상의 현실, 운명 이상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항상 경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그 경이로움울 다시 느끼기 위해 시비에 새겨진 27편의 시를 베껴 써 봅니다.


영상(影像)

이 어둔 밤을 나의 창가에 가만히 붙어 서서
방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

 

아물 말이 없이 다만 가슴을 찌르는 두 눈초리만으로
나를 지키는 사람은 누군가.

 

만상萬象이 깨어 있는 칠흑의 밤 감출 수 없는
나의 비밀들이 파란 인광燐光으로 깜박이는데

 

내 불안에 질리워 땀 흘리는 수 많은 밤을
종시 창가에 붙어 서서 지켜 보고만 있는 사람

 

아 누군가 이렇게 밤마다 나를 지키다가도
내 스스로 죄의 사념思念을 모조리 살육하는 새벽에

 

가슴 열어 제치듯 창문을 열면 그때사 저
박명薄明의 어둠 속을 쓸쓸히 사라지는 그 사람은 누군가.


묘망(渺茫)

내 오늘밤 한오리 갈댓잎에 몸을 실어
이 아득한 바닷속 蒼茫(창망)한 물굽이에 씻기는
한 점 바위에 누웠나니.

 

生(생)은 갈수록 고달프고 나의 몸둘 곳은 아무데도 없다.
파도는 몰려와 몸부림치며 바위를 물어뜯고 넘쳐나는데
내 귀가 듣는 것은
마지막 물결소리
먼 해일에 젖어오는 그 목소리뿐.

 

아픈 가슴을 어쩌란 말이냐
허공에 던져진 것은 나만이 아닌데
하늘에 달이 그렇거니
수많은 별들이 다 그렇거니
이 廣大無邊(광대무변)한 우주의 한 알 모래인
地球(지구)의 둘레를 찰랑이는 접시물
아아 바다여 너 또한 그렇거니.

 

내 오늘 바닷속 한 점 바위에 누워
하늘을 덮는 나의 사념이
이다지도 작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완화삼(玩花衫)-목월木月에게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숫닭의 근엄한 모습

"실상은 하늘에 오르기를 바라지도 않는 괴롬을 쪼아먹는 한마리 닭이올시다." 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시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절정(絶頂)

나는 어느 새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이 벼랑 끝에 구름 속에
또 그리고 하늘 가에
이름 모를 꽃 한송이는 누가 피어 두었나,
흐르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칠 때 튀어 오르는 물방울처럼
이내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꽃잎이 아니었다

 

몇만 년을 울고 새운 별빛이기에
여기 한 송이 꽃으로 피단 말인가.
죄지은 사람의 가슴에 솟아오르는 샘물이 눈가에 어리었다간
불붙는 심장으로 염통 속으로 스며들어 작은 그늘을 이루듯이
이 작은 꽃잎이 이렇게도 크낙한 그늘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 점 그늘에 온 우주가 덮인다.
잠자는 우주가 나의 한 방울 핏속에 안긴다.
바람도 없는 곳에 꽃잎은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을 부르는 것은 날 오라 손짓하는 것,
아 여기 먼 곳에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꽃나무 가지에 심장이 찔린다.
무슨 야수의 체취와도 같이 전율할 향기가 옮겨 온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한 송이 꽃에 영원을 찾는다.
나는 또 철모르는 어린애도 아니었다.
영원한 환상을 위하여 절정의 꽃잎에 입맞추고
길이 잠들어 버릴 자유를 포기한다.
 
다시 산길을 내려온다.
조약돌은 모두 태양을 호흡하기 위하여 비수처럼 빛나는데
내가 산길을 오를 때 쉬어가던 주막엔 옛 주인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이마에 주름살이 몇 개 더 늘었을 뿐이었다.
울타리에 복사꽃만 구름같이 피어 있었다.

청댓잎 잎새마다 새로운 피가 돌아 산새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문득 한 마리 흰 나비 ! 나비 ! 나를 잡지 말아 다오.
나의 인생은 나비 날개의 가루처럼 함께 절명하기에 -
아 눈물에 젖은 한 마리 흰나비는 무엇이냐.
절정의 꽃잎을 가슴에 물들이고 사(邪)된 마음이 없이 죄 지은 참회에
고요히 웃고 있다.

 

고풍의상(古風宜裳)

하늘로 날을듯이 길게 뽑은 부연끝 풍경이 운다
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 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나라의 古典을 말하는 한마리 蝴蝶
蝴蝶인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娥眉를 숙이고......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곳줄 골라보리니
가는 버들인양 가락에 맞추어 흰손을 흔들어지이다 .

 

추일단장 (秋日斷章)

1
갑자기
산봉우리가 치솟기에

 

창을 열고
고개를 든다.

 

깎아지른 돌벼랑이사
사철 한 모양

 

구름도 한오리 없는
낙목한천(落木寒天)을

 

무어라 한나절
넋을 잃노.

 

2
마당 가장귀에
얇은 햇살이 내려앉을 때
장독대 위에
마른 바람이 맴돌 때

 

부엌 바닥에
북어(北魚) 한 마리

 

마루 끝에
마시다 둔 술 한 잔
뜰에 내려 영영(營營)히
일하는 개미를 보다가

 

돌아와 몬지 앉은
고서(古書)를 읽다가.....

 

3
장미의 가지를
자르고

 

파초(芭蕉)를 캐어 놓고


젊은 날의 안타까운
사랑과

 

소낙비처럼
스쳐간

 

격정(激情)의 세월을
잊어버리자.

 

가지 끝에 매어달린
붉은 감 하나

 

성숙(成熟)의 보람에는
눈발이 묻어 온다.

 

팔짱 끼고
귀기울이는
개울
물소리.

 

지옥기(地獄記)

여기는 그저 짙은 오렌지빛 하나로만 물든 곳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사람 사는 땅 위의 그 黃昏(황혼)과도 같은 빛깔이라고 믿으면 좋습니다.

무슨 머언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숨막히는 하늘에 새로 오는 사람만이 기다려지는 곳 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여기에도 太陽(태양)은 있습니다. 太陽(태양)은 검은 太陽(태양), 빛을 위해서가 아니라 차라리 어둠을 위해서 있습니다.

죽어서 落葉(낙엽)처럼 떨어지는 生命(생명)도 이 하늘에 이르러서는 눈부신 빛을 뿌리는 것,

허나 그것은 流星(유성)과 같이 이내 스러지고 마는 빛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곳에 오는 生命(생명)은 모두 다 파초닢같이 커다란 잎새 위에 잠이 드는 한 마리 새올습니다.

머리를 비틀어 날개쭉지 속에 박고 눈을 치올려 감은 채로 고요히 잠이 든 새올습니다.

모든 細胞(세포)가 다 죽고도 祈禱(기도)를 위해 남아 있는 한 가닥 血管(혈관)만이 가슴 속에 촛불을 켠다고 믿으십시오.

 

여기에도 검은 꽃은 없습니다.

검은 太陽(태양)빛 땅 위에 오렌지 하늘빛 해바라기만이 피어 있습니다.

스스로의 祈禱(기도)를 못 가지면 이 하늘에는 한 송이 꽃도 보이지 않는다고 믿으십시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첫사랑이 없으면 救援의 길이 막힙니다.

누구든지 올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는 없는 곳,

여기엔 다만 오렌지빛 하늘을 우러르며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祈禱(기도)만이 있어야 합니다.

 

병에게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 ?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度)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종소리

바람 속에서 종이 운다. 아니 머리 속에서 누가 종을 친다.

 

낙엽이 흩날린다. 꽃조개가 모래밭에 딩군다.

사람과 새짐승과 푸나무가 서로 목숨을 바꾸는 저자가 선다.

 

사나이가 배꼽을 내놓고 앉아 칼자루에 무슨 꿈을 조각한다.

 계집의 징그러운 나체가 나뭇가지를 기어오른다.

혓바닥이 날름거린다.

꽃같이 웃는다.

 

극장도 관중도 없는데 두개골 안에는 처참한 비극이 무시로 상연된다.

붉은 욕정이 겨룬다.

검은 살육이 찌른다.

노오란 운명이 덮는다.

천둥 벽력이 친다.
아-

 

그 원시의 비극의 막을 올리라고 숨어 앉아 몰래 징을 울리는 자는 대체 누구냐.

 

울지 말아라 울리지 말아라 깊은 밤에 구슬픈 징소리.

아니 백주 대낮에 눈먼 종소리.


월광곡(月光曲)

작은 나이프가 달빛을 빨아드린다.

달빛은 사과익은 향기가 난다.

나이프로 사과를 쪼갠다.

사과속에서도 달이 솟아오른다.

 

달빛이 묻은 사과를 빤다.

소녀가 사랑을 생각한다.

 흰 침의(寢衣)를 갈아 입는다.

소녀의 가슴에 달빛이 내려 앉는다.

 

소녀는 두 손을 모은다. 달빛이 간즈럽다.

머리맡의 시집(詩集)을 뽑아 젖가슴을 덮는다.

사과를 먹고나서 '이브'는 부끄러운 곳을 가리웠다는데 시집(詩集)속에서 사과 익은 향기가 풍겨 온다.
달이 창을 열고 나간다.

 

시계가 두 시를 친다.

성당 지붕 위 십자가에 달이 달려서 처형된다.

낙엽 소리가 멀어진다. 소녀의 눈이 감긴다.

 

달은 허공에 떠오르는 구원(久遠)한 원광(圓光).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달이 되어 부활(復活)한다.

부끄러운 곳을 가리지 못하도록 두 팔을 잘리운 '미로의 비너스'를 생각한다.

머리 칼 하나 만지지 않고 떠나간 옛 사람을 생각한다.

 

소녀의 꿈속에 달빛이 스며든다.

소녀의 심장이 달을 잉태(孕胎)한다.

소녀의 잠든 육체에서 달빛이 퍼져나간다.

소녀는 꿈속에서도 기도한다.

 

팬스 넘어로 몇몇의 군상들과 함께 지훈선생이 서 있습니다.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그대로 한 떨기 우주 宇宙 무슨 꿈으로 태어났는가 이 작은 태양계 한 줌 흙에-

 

차운 계절(季節)을 제 스스로의 피로써 애닯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향방(向方)없는 그리움으로 발 돋음하고 다시 학(鶴)처럼 슬픈 모가지를 빼고 있다.

붉은 심장(心臟)을 뽑아 머리에 이고 가녀린 손길을 젓고 있다

 

코스모스는 허망(虛忘)한 태양(太陽)을 등지고 돌아 앉는다.

서릿발 높아가는 긴 밤의 별빛을 우러러 눈뜬다.

'카오스'의 야릇한 무한질서(無限秩序)앞에 소녀(少女)처럼 옷깃을 적시기도 한다.

 

신(神)은 '사랑'과 '미움'의 두 세계(世界)안에 그 서로 원수된 이념(理念)의 영토(領土)를 허락(許諾) 하였다.

닿을 길없는 꿈의 상징(象徵)으로 지구(地球)의 한모퉁이에 피어난 코스모스 -----

코스모스는 별바래기 꽃, 절망(絶忘)속에 생탄(生誕)하는 애린(愛燐)의 넋. 죽음앞에 고요히 웃음짓는 순교자(殉敎者).

아아 마침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잊어버린 우주(宇宙).

육체(肉體)가 정신(精神)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코스모스가 종잇장보다 얇은 바람결에 떨고 있다.

 

코스모스는 어느 태초(太初)의 '카오스'에서 비롯됨을 모른다.

다만 이미 태어난 자(者)는 유한(有限)임을 알뿐,

우주(宇宙)여 너 이미 생성(生成)된자(者)여 !

유한(有限)을 알지 못하기에 무한(無限)을 알아

마지막 기도(祈禱)를 위해서 피어난 코스모스는 스스로 경건(敬虔)하다.

 

... 코스모스는 하염없는 꽃, 부질없는 사랑. 코스모스가 피어난 저녁에 별을 본다.
 내가 코스모스처럼 피어 있을 어느 하늘을 찾아 억조광년의 한없는 령 零을 헤아려본다.
코스모스는 이 하얀 종잇장 위에 한 줄의 시가 쓰여지지 않음을 모른다.

산방

닫힌 사립에
꽃잎이 떨리노니

 

구름에 싸인 집이
물소리도 스미노라

단비 맞고 난초잎은
새삼 차운데

 

볕받은 미닫이를
꿀벌이 스쳐간다

 

바위는 제자리에
움직 않노니

 

푸른 이끼 입음이
자랑스러라

 

아스림 흔들리는
소소리 바람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린다.


왼쪽으로 가면 네편의 시가 시에 적합한 형상의 조각작품과 함께 새겨져 있고

지훈의 동상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게 됩니다.

 

 

먼저 계곡 다리 건너 11편의 시를 보러 갑니다.

 

계림애창(鷄林哀唱)

임오년(壬午年) 이른봄 내 불현듯 서라벌(徐羅伐)이 그리워 표연(飄然)히 경주(慶州)에 오니

복사꽃 대숲에 철 아닌 봄눈이 뿌리는 4월일레라.
보름 동안을 옛터에 두루 놀 제 계림(鷄林)에서 이 한 수(首)를 얻으니

대개 마의태자(麻衣太子)의 혼(魂)으로 더불어 같은 운(韻)을 밟음이라.
조고상금(弔古傷今)의 하염없는 탄식(歎息)일진저!

1
보리 이랑 우거진 골 구으는 조각돌에
서라벌 즈믄 해의 수정 하늘이 걸리었다

 

무너진 석탑 위에 흰구름이 걸리었다
새 소리 바람 소리도 찬 돌에 감기었다.

 

잔 띄우던 굽이물에 떨어지는 복사꽃잎
옥적(玉笛) 소리 끊인 골에 흐느끼는 저 풀피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첨성대 위에 서서
하늘을 우러르는 나의 넋이여!

2

사람 가고 대(臺)는 비어 봄풀만 푸르른데
풀밭 속 주추조차 비바람에 스러졌다

 

돌도 가는구나 구름과 같으온가
사람도 가는구나 풀잎과 같으온가

 

저녁놀 곱게 타는 이 들녘에
끊쳤다 이어지는 여울물 소리

 

무성한 찔레숲에 피를 흘리며
울어라 울어라 새여 내 설움에 울어라 새여

 

다부원에서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功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多富院)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自由)의 국토(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荒廢)한 풍경(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姿勢)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傀儡軍) 전사(戰士)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多富院)

 

진실로 운명(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는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죽은 자(者)도 산 자(者)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산상(山上)의 노래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에 못박힌듯 기대여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싸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위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 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역사 앞에서

만신에 피를 입어 높은 언덕에
내 홀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찬란히 틔어 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패자의 영광이여 내게 있으라.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
허공에 못박힌 듯 서서 부른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한 나의 보람이여

 

묘막한 우주에 고요히 울려 가는 설움이 되라.


앵음설법(鶯吟說法)

벽에 기대 한나절 조을다 깨면 열어제친 창으로 흰구름 바라기가 무척 좋아라.
노수좌(老首座)는 오늘도 바위에 앉아 두 눈을 감은 채로 염주(念珠)만 센다.
스스로 적멸(寂滅)하는 우주 가운데 먼지 앉은 경(經)이야 펴기 싫어라.
전연(篆煙)이 어리는 골 아지랑이 피노니 떨기나무에 우짖는 꾀꼬리 소리.
이 골 안 꾀꼬리 고운 사투린 범패(梵唄) 소리처럼 낭랑(琅琅)하고나.
벽에 기대 한나절 조을다 깨면 지나는 바람결에 속잎 피는 고목이 무척 좋아라.

 

석문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 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희 슬픈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뜻한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화체개현(花體開顯)

실눈을 뜨고 벽에 기대인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짧은 여름밤은 촛불 한 자루도 못다 녹인 채 사라지기 때문에
섬돌 우에 문득 석류꽃이 터진다.

 

꽃망울 속에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파동(波動)!
아, 여기 태고(太古)적 바다의 소리없는 물보라가 꽃잎을 적신다.

 

방 안 하나 가득 석류꽃이 물들어온다.
내가 석류꽃 속으로 들어가 앉는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범종

무르익은 과실(果實)이
가지에서 절로 떨어지듯이 종소리는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
종소리 우에 꽃방석을
깔고 앉아 웃음짓는 사람아
죽은 자가 깨어서 말하는 시간
산 자는 죽음의 신비에 젖은
이 텅하니 비인 새벽의
공간을
조용히 흔드는
종소리
너 향기로운
과실이여!

 

정야1

별빛 받으며
발 자취 소리 죽이고
조심스리 쓸어 논 맑은 뜰에
소리없이 떨어지는
은행 잎
하나

 

고사(古寺)2

목련木蓮꽃 향기로운 그늘 아래
물로 씻은듯이 조약돌 빛나고

 

희 옷깃 매무새의 구층탑 위로
파르라니 돌아가는 신라천년의 꽃구름이여

 

한나절 조찰히 구르던
여흘 물소리 그치고

비인 골에 은은히 울려 오는 낮종소리.

 

바람도 잠자는 언덕에서 복사꽃잎은
종소리에 새삼 놀라 떨어지노니

 

무지개 빛 햇살 속에
의희한 단청丹靑은 말이 없고......

 

고사(古寺)1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萬里ㅅ 길
눈 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정상을 넘어 옥천종택 가는 길을 만났습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 보고

 

몸을 돌려 내려 갑니다.

  봉황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들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 正一品 종구품 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지는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腦는 별빛이라

 

휘여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은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양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자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초우(琶焦雨)

 외로이 흘러간
한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촛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조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 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시인의 동상앞에 섰습니다. 


"해방 후에 곧바로 시단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지도자적인 시인으로 자리잡게 되고

때로는 좌파와 대결하고

때로는 독재 정치와 대결하면서 마침내 지사(志士) 또는 마지막 선비라는 호칭도 받았지만,

그러나 그에 대한 영원한 호칭은 '시인'이었다고 해야 옳다."는 
 오탁번의 글이 생각납니다.

 

시인의 고향을 떠나는데...

문득 ...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 있는

찾는 이 드문 그의 묘소가 떠 오릅니다.


그의 작품 "이력서(履歷書)"를 옮겨 적으며 시인을 다시 생각합니다.

 

본적(本籍)
차운 샘물에 잠겨 있는 은가락지를 건져 내시는 어머니의 태몽(胎夢)에 안겨 이 세상에 왔습니다.

만세(萬歲)를 부르고 쫓겨나신 아버지의 뜨거운 핏줄을 타고 이 겨레에 태어났습니다.

서늘한 예지(叡智)의 고향(故鄕)을 그리워하다가도 불현듯 격(激)하기 쉬운 이 감정(感情)은

내가 타고난 어쩔 수 없는 슬픈 숙명(宿命)이올시다.

 

현주소(現住所)
서울특별시 성북동(城北洞)에 살고 있읍니다.

옛날에는 성(城) 밖이요 지금은 시내(市內)---

이른바 '문안 문밖'이 나의 집이올시다.

부르조아가 될 수 없던 시골 사람도 가난하나마 이제는 한 사람 시민(市民)이올시다.

아무것이나 담을 수 있는 뷘 항아리,

아!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없는 몸짓 이 나의 천성(天性)은 저자 가까운 산골에 반생(半生)을 살아온 보람이올시다.

 

성명(姓名)
이름은 조지훈(趙芝薰)이올시다.

외로운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늘 항상 웃으며 사는 사람이올시다.

니힐의 심림(深林) 속에 숨어 있는 한오리 성실(誠實)의 풀잎이라 생각하십시오.

거독(孤獨)한 향기(香氣)올시다.

지극한 정성을 오욕(汚辱)의 절(折)과 바꾸지 않으려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탓이올시다.

 

연령(年齡)
나이는 서른 다섯이올시다.

인생(人生)은 칠십이라니 이쯤되면 반생(半生)은 착실히 살았나 봅니다.

틀림없는 후반기(後半期) 인생(人生)의 한 사람이지요.

허지만 아직은 백주(白晝) 대낮이올시다.

인생(人生)의 황혼(黃昏)을 조용히 바라볼 마음의 여우(餘裕0도 지니고 있읍니다.

소리 한가락 춤 한마당을 제대로 못 넘겨도 인생(人生)의 멋은 제법 아노라 하옵니다.

 

경력(經歷)
평생(平生) 경력(經歷)이 흐르는 물 차운 산이올시다.

읊은 노래가 한결같이 서러운 가락이올시다.

술 마시고 시(詩)를 지어 시(詩)를 팔아 술을 마셔---

이 어처구니 없는 순환(循環) 경제(經濟)에 십년(十年)이 하로 같은 삶이올시다.

그리움 하나만으로 살아가옵니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림---

묘막(渺漠)한 우주(宇宙)에 울려 가는 종소리를 들으며 살아 왔읍니다.

 

직업(職業)
직업(職業)은 없습니다.

사(詩) 못 쓰는 시인(詩人)이올시다.

가르칠 게 없는 훈장(訓長)이올시다.

혼자서 탄식(歎息)하는 혁명가(革命家)올시다.

꿈의 날개를 펴고 구민리(九萬里) 장천(長天)을 날아오르는 꿈,

욱척(六尺)의 수신장구(瘦身長軀)로 나는 한마리 학(鶴)이올시다.

실상은 하늘에 오르기를 바라지도 않는 괴롬을 쪼아먹는 한마리 닭이올시다.

 

재산(財産)
마음이 가난한 게 유일(唯一)의 재산(財産)이올시다.

어떠한 고나(苦難)에도 부질없이 생명(生命)을 포기(抛棄)하지 않을 신념(信念)이 있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넘어질 사람이지만 폭려(暴力) 앞에 침을 뱉을 힘을 가진 약자(弱者)올시다.

패자(敗者)의 영광(榮光)을 아는 주검을 공부하는 마음이올시다.

지옥(地獄)의 평화(平和)를 믿는 사람이올시다.

속죄(贖罪)의 뇌물(賂物) 때문에 인적(人跡)이 드문 쓸쓸한 지옥(地獄)을 능히 견디어 낼 마음이올시다.

거짓말은 할 수 없는 사람이올시다.

 

참말은 안 쓰는 편이 더 진실(眞實)합니다.

당신의 생각대로 하옵소서

--- 공자일생(孔子一生) 취직난(就職難)이라더니

이력서(履歷書)는 너무 많이 쓸 것이 아닌가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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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11 21:37

    첫댓글 지훈문학관 문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 14.06.18 10:55

    이런곳들을 언제 다 보고 다니셨는지...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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