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生의 라이벌
사람사는 데는 언제 어디서나 갈등과 다툼이 있게 마련인데, 시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의의 라이벌 관계는 오히려 서로 성장의 자극제가 되어 불후의 작품을 남기는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맨 앞에 올리는 이백과 두보는 좋은 시벗이면서 경쟁자인데, 詩 속에 언뜻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도 느껴집니다.

이백(李白) 초상 두보(杜甫) 초상
당(唐)나라, 이백(李白, 701-762) : 두보(杜甫, 712~770)
1. 한시가 만개했던 당나라
몇해전 필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업을 접으니 쩐(錢)도 떨어지고 건강도 여의치 않아 주막에 가는 일(?)도 접었습니다. 그러다 벗들의 성화를 핑게로 용두열 주당들의 아지트 라*에 들르게 됩니다. 주방을 드나드는 첨보는 키큰 여인이 있기에 웬 버금 주모(새끼마담^^)를 하나 두었느냐 물으니, 중국에서 유학 온 한족(漢族) 알바생이라네요. 당시 마땅이 맘둘데가 없어 한시나 뒤적이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 불러서 메모지에 '漢詩'라 쓰고는 말을 붙었지요. 그런데 먹물이 좀 배어있을 거 같은 샤오지에(小姐)가 고개를 갸우꿍하네요. 보충설명을 듣고(한족이지만 우리말을 좀 함)서야, '아하 당시(唐詩)요!' 하는 게 아닌가. 때국(大國)넘들은 漢詩를 唐詩라 부르는 걸 그때 첨 알았는데, 한(漢)나라 때가 아니라 당(唐)나라 때 한시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만개했기에 당연히 붙여진 거겠지요(당나라 때 과거시험 과목에 시(詩)와 부(賦, 산문에 해당)를 집어넣은 것과 무관치 않을듯..).
2. 시의 신선(詩仙)과 시의 성인(詩聖)
성당(盛唐)이라 부르는 시기(713~765)는 한시가 크게 융성하던 시절인데, 특히 '시의 신선(詩仙)'이라 칭하는 이백과 '시의 성인(詩聖)'이라는 두보가 이 때 등장합니다. 이들은 당대(唐代) 뿐만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 말할 수 있지요. 이들이 남긴 절창이 워낙 많기에 고려의 대시인 이규보(李奎報)도 '달을 바라보며(晩望 )'란 제하의 시에서, '이백과 두보가 시끄럽게 떠들고 간 후에 세상이 온통 조용해졌다(李杜啁啾後 乾坤寂寞中)' 라고 이죽거렸을까요. 이백은 두보 보다 11살이나 연상인데도 벗으로 격의없이 사귀면서 격려해주었고, 두보는 그의 호방한 기질과 시적 상상력을 부러워했지요. 그러나 두보는 내내 그의 유가적(儒家的)인 현실참여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이백은 도가적(道家的)인 초탈을 늘 시의 주제로 삼고 놓지 않았습니다.
두보는 삼십대 초반 관로에 뜻을 두고 장안에 머무는데, 이때 시(詩)와 함께 술(酒)에 대한 이백의 명성(?)을 듣게 됩니다. 이 시기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주당 8선의 노래(飮中八仙歌)' 중 이백에 해당되는 부분을 뽑아 붙입니다, 원래 이 시의 맨 앞줄엔 이백을 '하늘에서 귀양나온 신선(謫仙)'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당현종에 천거해준 대신 하지장(賀知章, 659~744)이 나옵니다만...
李白一斗詩白篇(이백일두시백편) 이백은 술 한말에 詩가 백편
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 장안 저잣거리 술집에서 골아 떨어지기 일쑤
天子呼來不上船(천자호래불상선) 황제가 불러 오라하여도 배에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자칭신시주중선) 스스로 말하길 '신은 술마시는 신선이오'
*이 시에서 다른 주당들 몫으로 2~3줄을 쓴 데 반해, 이백에게는 4줄을 割愛하여 특별한 애정을 표시?
이 불세출의 천재인 두 시인은 744년 드디어 첫 상면합니다. 이백은 황궁에 드나든지 몇해가 안 되어 황제와 궁안 분위기에 염증을 느껴 장안을 떠나게 됩니다(이백 나이 44세 때). 이 때 시인 고적(高適. 707~765) 그리고 두보와 함께 낙양(洛陽)으로 내려갑니다(두보 나이 33세 때). 이후 이백과 두보는 백년지기라도 되는 듯, 낙양을 떠나 여러 명승지를 유람하며 시를 짓고 통음(痛飮)합니다. 이백은 술을 즐기는 쪽이고 두보는 괴로움을 잊으려 대취하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 시유람은 다음해(745)겨울이 되기 전에 끝나는데, 두보는 출사에 향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위수(渭水)를 건너 장안으로 돌아가고 이백은 강동 지방을 정처없이 유랑하지요. 이백이 노군(魯郡) 동쪽 석문에서 두보를 보내고 쓸쓸한 심정으로 지은 시(魯郡東石門送杜二甫), *杜甫 중간에 二를 넣은 건 둘째 아들이라
醉別復幾日(취별부기일) 술에 취해 이별하고 다시 몇날인고
登臨編池臺(등임편지대) (풍광 좋은) 호수와 누대를 두루 다녔었지
何言石門路(하언석문로) 여기 노군 석문(石門의) 길위에서 언제나
重有金樽開(중유금준개) 다시 금술동이를 함께 열어 보나
秋派落泗水(추파락사수) 가을 물결 사수(泗水)에 쓸쓸하고
海色明徂來(해색명조래) 바다 빛은 조래산을 비추네
飛蓬各自遠(비봉각자원) 날리는 쑥처럼 각자 멀어져 가니
且盡手中杯(차중수중배) 손에 든 술잔을 또 비울 수 밖에
이 시는 그대로 현실이 되어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데.. 그러나 늘 서로 그리워하며 안부를 묻고 시를 지어 보내며 우정의 건재를 확인합니다. 헤어진 뒤 이른 봄날 두보가 이백를 그리며 지은 시(春日憶李白),
白也詩無敵(백야시무적) 이백이야 말로 詩에서 무적
飄然思不群(표연사불군) 질풍같은 표현이 뭇사람과 다르오
淸新庾開府*(청신유개부) 淸新함은 유신(庾信)이요 *庾開府 : 육조시대의 北周 문인 庾信
俊逸鮑參軍*(준일포참군) 뛰어난 재능은 포조(鮑照)라 *鮑參軍 : 육조시대 宋나라의 문사 鮑照
渭北春天樹(위수춘천수) 위수 북쪽에도 나무에는 봄기운이,
江東日暮雲(강동일모운) 강동에는 해저물고 구름 일겠지요
何時一樽酒(하시일준주) 어느 때나 한동이 술을 앞에 놓고
重興細論文(중흥세론문) 거듭 일어나 시를 세세히 논할런지..
강동 땅을 떠돌던 이백은 연주(兖州)에 있는 자신의 거처 사구성(沙丘城, 山東지방 서쪽)으로 귀향하는데, 돌아오자 다시 두보가 보고 싶어 시 한수 지어 부칩니다(沙丘城下寄杜甫).
我來竟何事(아래경하사) 내가 돌아와서는 무슨 일을 하느냐 하면
高臥沙丘城(고와사구성) 사구성(沙丘城) 높다란 곳에 누어 지내오
城邊有古樹(성변유고수) 성 주위에 서있는 고목에서는
日夕連秋聲(일석연추성) 낮과 저녁으로 (쓸쓸한) 가을 소리가 이어지오
魯酒不可醉(노주불가취) 이곳 노(魯)나라 술은 마셔도 취하지 않고
齊歌空腹情(제가공복정) 제(齊)나라 노래는 들어도 감흥이 들지 않소
思君若汶水(사군약문수) 그대 생각만이 문수(汶水)* 처럼 끊이지 않으니
浩蕩寄南征(호탕기남정) 도도히 흘러 그대 있는 곳(남쪽)으로 부치노라
*汶水 : 논어에 나오는 말로 길 떠나 북쪽에 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으로, 다음 句에 남쪽으로 부친다 는 말과 연관됨
두 시인이 헤어진지 몇해가 지난 후, 이백이 무척 고생하며 힘들어 한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오자 두보가 이를 걱정하며 지은 시(天末懷李白 하늘끝 이백을 그리며)입니다. 특히 뒷 부분은 멱라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고기밥이 된 초나라의 대시인 굴원을 빗대어 이백이나 자신과 같은 글쟁이들의 불우한 처지를 말하고 있지요.
凉風起天末(양풍기천말) 서늘한 바람 하늘끝에서 불어오는데
君子意如何(군자의여하) 그대의 마음 어떠하신지요
鴻雁幾時到(홍안기시도) 기러기는 언제나 오려나(소식 전하려나)
江湖秋水多(강호추수다) 강과 호수의 가을 물은 불어나는데
文章憎命達(문장증명달) 문장은 운명이 통달함을 싫어하고
魑魅喜人禍(리매희인화) 귀신은 사람의 과실을 기뻐하지요
應共冤魂語(응공원혼어) 응당 함께 (굴원의) 원혼과 이야기하고
投詩贈汨羅(투시증멱라) 시를 지어 멱라 강가에 던져버립시다
두 시인인 헤어진지 10년 후에 안록산의 난(755~763)이 일어나 서로 생사조차 모르게 되는데, 특히 이백은 현종을 이은 숙종의 반대편에 가담했다가 귀양가는 등 종적조차 묘연해집니다. 이 때쯤 두보가 이백을 그리며 지은 시 2수가 참으로 애절합니다. 꿈에 보이는 이백(夢李白).
(其一)
死別已呑聲 生別常惻測(사별이탄성 생별상측측) 죽어 이별도 목메이는데, 살아 이별 늘 슬프고 슬퍼
江南瘴癘地 逐客無消息(강남창려지 축객무소식) 강남 땅엔 풍토병이 많다는데, 귀양간 객(이백) 소식 없오
故人入我夢 明我長相憶(고인입아몽 명아장상억) 친구가 꿈속에 들어옴이, 내 오랜 생각이 나타남이리라
恐非平生魂 路遠不可測(공비평생혼 노원불가측) 평상시의 魂이 아니듯 한데, 길이 멀어 알 수가 없오
魂來楓林靑 魂返關塞黑(혼래풍림청 혼반관새흑) 혼이 들 땐 단풍숲 푸르더니, 혼이 날 땐 관문이 컴컴하오
今君在羅網 何以有羽翼(금군재라망 하이유우익) 지금 그대 법망에 걸렸으니, 무슨 날개가 있으리오
落月滿屋梁 猶疑照顔色(낙월만옥량 유의조안색) 지는 달 들보에 가득 비추니, 그대 얼굴 보는듯 하오
水深波浪闊 無使蛟龍得(수심파랑활 무사교룡득) 물 깊고 물결 크게 이니, 이무기에게 잡히지 마시길
(其二)
浮雲終日行 遊子久不至(부운종일행 유자구부지) 구름 종일 떠가는데, 나그네 오랫동안 오지않고
三夜頻夢君 情親見君意(삼야빈몽군 정친견군의) 사흘밤 자주 그대 꿈꾸니, 정깊은 그대 뜻 알겠오
告歸常局促 苦道來不易(고귀상국촉 고도래불이) 가겠다고 늘 조바심하고, 오는 길이 쉽지 않다 말하는데
江湖多風波 舟楫恐失墜(강호다풍파 주즙공실추) 강호에 풍파가 많아, 배 노젓다 뒤집힐까 두렵오
出門搔白首 若負平生志(출문소백수 양부평생지) 문을 나서며 백발 긁으니, 마치 평생 뜻 저버린듯
冠蓋滿京華 斯人獨憔悴(관개만경화 사인독초췌) 고관들 장안에 가득한데, 이 사람만 홀로 초췌하오
孰云網恢恢 將老身反累(숙운망회회 장로신반루) 뉘 하늘 그물 넓다 했나, 늙어서 몸이 도리어 연루되니
千秋萬歲名 寂寞身後事(천추만세명 적막신후사) 천년만년 이름 떨친다해도, 몸 죽은 뒤엔 적막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