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중세철학 - 신학의 시녀가 된 철학
좁은 의미의 중세철학은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를 중세로 보는 역사학상의 시대구분을 따라 5세기 말에서 15~16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의 서양철학을 말한다. 이 좁은 의미의 중세철학은 스콜라 철학과 거의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이라고도 할 만큼 그리스도교 신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교부시대(敎父時代, 교회의 아버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원시 그리스도교 시대까지 중세철학에 포함시켜 볼 수 있다.

중세의 기조는 기독교세계를 통한 권위에의 굴복이었다. 중세활동의 모든 부분에서 지배적 요소였던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현실에 대하여 지적 세계도 같은 처지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결정하고 교리를 규정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권위였다. 윤리의 내용을 정하고 자연의 본성을 설명하고 이웃에 대한 기독교인의 의무를 규정하고 그리고 선악의 기준을 세운 것도 바로 교회였다. 또한 교회는 경제의 영역도 관활했는데, 상업과 산업이 수행되는 조건을 독자적으로 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레위기 법률’에 따라 화폐의 사용과 적절한 가격, 임금 수준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세 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된 철학으로, 종교라는 블랙홀 속으로 사라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철학은 크게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으로 나뉜다. 교부철학은 4세기에서 8세기까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회의 사도와 신부들이 주로 전개하였으며,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새롭게 정리하여서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스콜라철학은 8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철학과 신학이 서로 논쟁하면서 전개된다.
1. 중세철학과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세철학은 그리스·로마 초기의 철학과 당연히 이질적인 관심과 요구에서 출발하였다. 그 발단은 예수의 탄생과 복음의 선포, 사도들의 선교활동, 초대교회의 형성이라는 종교적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철학은 우선 그리스도교가 자기의 신앙이 진리임을 증명하고 지적인 반대자의 공격이나 비웃음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한 변증(辨證)의 도구로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중세철학의 근본 주체는 그리스도교와 그 모태가 된 유대교의 종교적 세계관 속에 그 싹을 볼 수 있다.

이 세계관은 이미 구약성서의 <창세기> 가운데 신화적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다. 기독교의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그리스적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명확히 자각되면서 처음에는 ‘이 세상의 지혜’인 그리스적 자연관이나 합리주의와의 대립으로서 나타났다. 이 자각은 그의 논리적 심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리스 철학을 방법으로서 채용하게 되고, 신앙적 세계의 이해는 점차 신학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교부철학에서 스콜라철학에 이르는 중세철학의 걸음은 신앙적 세계관의 논리화, 체계화라고 볼 수 있다.
2. 기독교의 확대와 아우구스티누스
로마 역사뿐 아니라 서양사의 가장 큰 분기점은 예수의 탄생과 기독교의 공인이다. 기독교가 나날이 확대되면서 신에 대한 온갖 교리와 해석들로 혼란이 일어나자, 기독교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 체계와 기독교의 접목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신플라톤주의를 선택함으로써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위치한 로마의 한 자치 도시에서 태어나 카르타고와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교도인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17세에 동거를 하는 등 쾌락적 방탕한 탕아였다. 그는 밀라노에서 수사학과 변론술 교수로 있으면서 마니교를 믿는 등 방황을 하다가. 나이 32살에 ‘밀라노 정원’에서 한 체험을 통해 완전히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당시 밀라노의 사상적 풍토는 신플라톤주의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었다. 이 정신적 변화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 철학의 아버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의《고백론》은 많은 고민과 반성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중세 철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저술이다.
신플라톤주의란 플라톤을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한 로마 공화정 말기에 흥행한 유파로, 그 정점에 이집트 태생의 철학자 플로티노스(205~270)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땅으로 끌어내렸다면,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유일한 일자(一者)로 바꾸어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에 비유했으며, 이는 이성으로써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격상시켰다. 그에게서 일자야말로 모든 물질적인 것과 구별되는 참 실재였으며 불변의 존재였다. 이에 그는 ‘유출’사상을 제시했다. 불변의 일자가 태양이 쏟아내는 빛처럼 만물에 그 선함과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유출하면서 세상이 이루어지고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유출사상은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 더없이 적합한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인간 정신을 초월한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는 논리를 펼 수 있게 되었으며,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인생의 바깥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당연히 그에게 있어서 영원한 진리이며 유일신의 존재와 같은 것이었고, 일자로부터 빛처럼 나오는 유출은 신에게서 계속 흘러나오는 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그는 당시 마니교가 가지는 선악 이원론과 그노시스주의가 가진 지상을 지배하는 악의 신까지도 그 해석 범위 안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즉 신에게서 흘러나오는 절대적인 선은 빛처럼 세상을 비추고, 그 빛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두운 곳이 악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해석되어 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종말론을 내세우는데, 이로써 선과 악의 긴 싸움의 끝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로마의 멸망도 신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언젠가 심판의 날, 즉 신이 정한 시기가 도래하면 탐욕이 만연한 지상의 나라가 없어지고 신의 사랑으로 가득한 신의 나라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목적인을 통해 세계에 목적을 제시했다면, 이 종말론의 창설은 역사가 종말로 향해 가게 함으로써 역사에 목적과 의미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이후 진보 사상들이 이를 이어받아 역사에 진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3. 스콜라철학
중세 서구세계의 내부에서는 9세기 이후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중세의 독자적인 사상 형성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13~14세기에 스콜라 철학의 형성은 말하자면 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세에 있어서는 모든 학문이 가톨릭교회 및 수도원에 부속하는 ‘학교(schola)’를 중심으로 학습되고 연구되었다. 이러한 ‘학교의 교사(scholasticus)’에 의한 철학이라는 의미로 ‘스콜라 철학’이라고 부른다. 스콜라 철학자의 과제는 가톨릭교회 조직의 발전에 따라 그 교리의 학문적 조직화를 완성하는데 있었다.
12세기 ‘전기 스콜라 철학’은 신 플라톤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단편을 기초로 신앙의 이성적 논증을 시도한 실재론자로서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는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고 호칭된다.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13세기는 중세적 질서의 완성시대로 그 사상적 표현으로서의 스콜라 철학도 이때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이슬람 세계로부터의 지적 충격과 이에 따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수용이었다. 이때까지의 스콜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흡수한 플라톤주의적인 색체가 짙은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1225추정~1274)의 신학적 철학체계인 것이다. 사상사에서 토마스의 의의는 신앙과 이성을 분리한 후, 그 한쪽의 우월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들의 내적종합을 추구하고, 신앙의 초월성(신중심주의)과 인간 이성의 자율성(인간중심주의)을 긴장감을 가지면서 양립시킨다는, 일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시도를 성공시킨 점이다.
첫댓글 만촌 참으로 수고 많소이다.
서양철학사를 간결하게 마디지으며 요약하고 있네요.
키워드와 중심인물들을 놓지지 않고 스토리를 전개했네요.
가능하시다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간결하게 정리해주시면 더욱 좋겠어요.
제 주제를 넘은 듯하여 사실 부끄럽네요.
그리고 <구약성서>에 근거를 둔 헤브라이즘이라면
누구보다도 낙솔 님이 제일이지요.
언제 한 번 필을 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