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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선생, 「북경 유람(俊游)」에 나타난 고목사회(枯木死灰)의 자아 발견
2022년 12월 15일
이건창(1852-1898) 선생은 23살(1874) 7월에 서장관(書狀官)으로서 동지사(冬至使)를 따라가서 10월에 연경(燕京, 현재 북경)에 도착하였고 이듬해(1875) 귀국하는 길에 평양 대동강 강가에도 들러 봄꽃 구경도 하고 4월에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귀국한지 열흘 뒤에 연경에 다녀온 기억을 회고하며 지은 시입니다.
이건창 선생은 연경에 다녀온 뒤에 피곤하여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고 생각을 바꾼 것도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 세상에서 출세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문학에 전념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장자』 「제물편」에 나오는 남곽 자기(南郭子綦)가 몸을 말라죽은 고목(枯木)처럼 또 마음을 다 타버린 재(死灰)처럼 지칠 만큼 깊이 생각하여 결국에는 자아(selfness)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또 등우(鄧禹, 2-58)가 유수(劉秀, 5-57)를 부추기고 목숨을 걸고 전장을 돌아다니며 싸워서 유수가 후한(後漢)을 세운 데 크게 공헌하였던 장군의 공적도 하찮게 여겼습니다. 글 짓고 차 마시는 한가한 생활을 바랐습니다.
이건창 선생은 후한 시기 등우(鄧禹)처럼 과거시험 합격에 급급하거나 출세하겠다고 목숨을 바치는 욕심보다는 『장자』에 나오는 남곽 자기(南郭子綦)처럼 조용히 자신을 관찰하여 바람이 불면 구멍마다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처럼 자아(selfness)를 깨닫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문학에 전념하겠다고 발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 수양공부에 관심을 조금 가진 것 같습니다.
『장자』의 남곽 자기와 『후한서』의 등우를 인용한 것을 보면 고문(古文)을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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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俊游」, 『明美堂集』, 卷二, 「俊游餘草」 :
俊游回首卽前塵, 小病茅齋又一旬.
燕市酒闌懷舊雨, 浿江花好惜餘春.
子綦未必眞遺(遺 아니고 遣 옳음)我, 鄧禹如今解笑人.
還却書生風味澹, 筆牀茶竈自相親.
俊游回首卽前塵,
중국 연경에 따라가서 즐겁게 유람하고 돌아오니 유람은 지나간 추억(前塵)이 되었네.
小病茅齋又一旬.
유람에서 얻은 피곤 때문에 공부방(茅齋은 書房 또는 방안)에서 몸살을 앓은지(小病은 피곤하여 하루 이틀 앓는 몸살) 벌써 열흘이 지났구나.
燕市酒闌懷舊雨,
연경 시내 술집에서 술독을 모두 비우면서(酒筵) 만났던 친구들이 아직도 생각나서 그립고,
浿江花好惜餘春.
평양 대동강 강가에는 꽃이 활짝 피었던데 지금 마지막 늦은 봄날(餘春, 暮春)을 그냥 보내니 아쉽구나.
子綦未必眞遺(遺 아니고 遣 옳음)我,
『장자(莊子)』에 나오는 초나라 남곽 자기(南郭子綦)가 자아(selfness)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殫思竭慮) 지쳐서 몸과 마음이 식었더라도(枯木死灰) 자아까지 내려놓지는 않았고(다시 말해 자아를 깨달았다는 뜻),
鄧禹如今解笑人.
후한시기 등우가 목숨을 바쳐 유수에게 충성하였던 장군이었으나 지금은 조롱거리가 되었네.
還却書生風味澹,
과거시험 합격에 급급하였던 학생 시절의 출세하려던 마음(등우처럼)을 버리고 자꾸 버려서 담백하게 된 뒤에야(남곽자기처럼),
筆牀茶竈自相親.
책상 위의 문방구와 차를 다리는 화로가 내 마음에 저절로 가까이 들어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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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南郭子綦의 枯木死灰 모습
본문의 문맥 뜻을 번역하면, 마음에서 무엇을 생각하다가 지치면 다시 온힘을 다하여 생각하고 이러기를 반복하면 결국에는 몸은 살이 빠져 바짝 말라 마치 고목처럼 되고 마음에서도 타고 남은 재처럼 아무런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는 쇼크 상태를 말합니다. 도교의 삼보(精氣神)을 넣어 이해하면, 생각하다가(思慮) 지치면 다시 온몸의 힘(精力)을 다하여 생각하고 이러기를 반복하면 결국에는 정신(神)마저 지쳐서 생각이 저절로 멈춘 쇼크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몸이 고목처럼 바짝 마르고(살〔肉, 氣〕이 빠지고 또 근육〔筋, 精〕마저 빠져서 고목처럼 된 것을 말함) 마음에서는 다 타버린 재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멍청(懵懂)한 쇼크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파생된 말들이 많이 나왔는데 예를 들어 殫精竭力, 殫精竭慮, 竭精盡志, 殫思極慮, 竭精神勞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위진시기와 당나라시기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정교한 해석을 시도하였습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선정(禪定) 상태의 단계를 고목사회 말을 빌어 설명하였습니다. 진(晉)나라 시기 곽상(郭象, 약252-312)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고목사회(枯木死灰)를 풀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목사회가 한마디로 “적막무정(寂漠無情)”이라고 설명하였는데 불교 유식학에서 말하듯이 제6식이 꺼지고 제8식(情識)이 없다는 뜻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6식의 사량(是非)이 사라지고 제6식이 바뀐 묘관찰지(妙觀察智, 天眞) 운행에 맡기는 것이며 더 이상 높은 경지가 없다고 풀었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사의(四儀 : 行住坐卧)를 인용하여 지동좌행(止動坐行) 자세를 들어 지동(止動)이 각기 고목(枯木)과 고지(枯枝), 좌(坐)가 사회(死灰), 행(行)이 두타행이라고 풀었습니다. 사의에서 정식(情識)이 사라진 무심(無心) 단계를 깨달아야 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또 곽상은 원만하게 깨달은 성인은 제7식(物我 구분)과 제6식(是非)를 꺼서 마치 고목사회처럼 아무런 사량(分別)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따라서 곽상은 고목사회 상태를 빌어 좌망(坐忘)을 이해하였습니다. 참선하여 내관하다보면 몸이 사라지는 단계에 이르러 어떤 감각(前五識)의 느낌도 거짓이며 무상(無常)하다고 아는 단계가 있고 마음에서는 심식(心識, 情識)이 사라져서 제6식이 꺼진(無知) 단계가 총명(聰明 : 전오식과 제6식)을 벗어났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목사회 단계는 전식성지(轉識成智) 단계이며 이것이 좌망(坐忘)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중국 옛날 의학에서도 고목사회 말을 인용하여 남자 56살 이후에 일어나는 정갈(精竭) 증상을 설명하였습니다. 도교 의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 원기(元氣) 384수 곧 1斤(銖, 24銖=1兩, 384銖=1斤)을 타고 나며 남녀 나이에 따라 각기 증가하다가 감쇠한다고 봅니다. 남자는 56살에 이르면 간(肝)의 선천지기(先天之氣, 元氣)가 감쇠하여 근육을 쓰지 못하고 정자(精子, 天癸)도 사라져서 정(精)도 줄어들고 또 콩팥(腎)의 선천지기도 감쇠하여 몸 전체가 아주 피곤하다(肝氣衰,筋不能動,天癸竭,精少,腎藏衰,形體皆極。)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간의 선천지기는 근육(筋)의 성장을 담당하기에 기운이 감쇠하면 근육의 힘이 없어 노동하지 못하고 콩팥의 선천지기는 뼈(骨)의 성장을 담당하기에 기운이 감쇠하면 몸(形體)가 조금만 움직여도 아주 피곤하며 정자도 고갈되어 정(精)도 크게 줄었다고 말합니다.(肝氣養筋,肝衰,故筋不能動;腎氣養骨,腎衰,故形體疲極。天癸已竭,故精少也。) 그래서 양생술에서도 신수(腎水)를 증가시키는 수양공부를 권장하였습니다.
『莊子、齊物論』,「齊物論」第二:
南郭子綦隱机而坐,仰天而噓,荅焉似喪其耦。
顏成子遊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机者,非昔之隱机者也。”
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女聞人籟而未聞地籟,女聞地籟而不聞天籟夫!”
子遊曰:“敢問其方。”
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爲風。是唯無作,作則萬竅怒呺,而獨不聞之翏翏乎?山林之畏佳,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窪者,似汙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宎者,咬者,前者唱於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眾竅爲虛。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
子遊曰:“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
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己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초나라 성곽 남쪽 밖에 사는 자기(子綦)가 힘이 없어 작은 궤(几)를 끌어안고 억지로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숨을 가늘게 내쉬고(噓) 있었다. 멍청(懵懂 : 불교에서 정좌할 때 정신줄 놓은 상태)하게 풀 죽은 모습이 마치 짝을 잃은 것(喪妻)과 같았다.
(荅을 嗒이라고 보면 정신이 나가서 멍청한 모습입니다. 答이라고 보면 대답하는 모습입니다. 마치 짝을 잃은 사람과 같이 풀이 죽어 멍청하다는 것입니다. 耦는 耦耕의 耦이며 부부 두 사람이 쟁기를 끌어 밭을 갈아엎는 농법입니다. 噓는 힘이 없어서 숨을 가늘게 내쉬는 것이며 숨을 가늘게라도 내쉬어야 숨을 들여마시게 됩니다.)
안성 자유(顏成子遊, 成이 城과 통용 글자라고도 봄)가 남곽 자기 앞에 서서 있다가 말하길 “무슨 일이 있습니까? 몸(形)이 정말로 말라죽은 고목(槁木)처럼 되고 마음(心)이 정말로 타버린 재(死灰)처럼 되도록 생각하여야 되겠습니까? 지금 궤를 끌어안고 있는 당신은 예전에 궤를 끌어안고 활기찼던 당신과는 아주 다릅니다.”(또는 생각을 많이 깊이 하다가 지쳐서 몸을 서서히 고목처럼 만들었기에 마음마저 재처럼 만들었는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또는 몸을 고목처럼 만들었어도 마음마저 재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함.)
남곽 자기가 대답하길 “언(偃)아! 몸과 마음(刑神)을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만드는 뜻을 잘 아니까 물었구나! 지금 나(吾)는 나 자신(我)을 버리고 있는데 너는 알아보겠느냐? 너는 사람의 소리(人籟)는 들어 뜻을 알았어도 땅 소리(地籟)는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설사 네가 땅 소리를 들어 뜻을 알았을지라도 하늘 소리(天籟)는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안성 자유가 여쭙기를 “땅 소리(地籟)와 하늘 소리(天籟)를 듣고 뜻을 이해하는 방법을 여쭙니다.”
남곽 자기가 대답하길 “커다란 땅덩어리(大地)가 공기(氣)를 세게 불어대는 것을 바람(風)이라고 부른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괜찮지만 불기 시작하면 모든 구멍에서 소리가 크게 나는데 너도 높은 하늘에서 바람이 세게 부는 소리(飂飂)를 들었을 것이다. 나무가 우거지고 높고 험한 산에는 큰 나무에 구멍 둘레가 아주 큰 것도 있는데, 크고 작은 구멍마다 모양이 콧구멍처럼 생기거나 입, 귀, 빗장나무를 끼우는 대문의 구멍, 여물통, 절구통, 얕은 웅덩이, 작은 늪지(汙는 圩와 같은 뜻)를 닮은 것들이 있다. 모양마다 나는 소리가 다른데 물결이 치는 소리, 화살이 날며 내는 소리, 큰소리로 욕하는 소리, 공기를 들여 마시는 소리, 누구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 슬프게 우는 소리, 물어뜯은 소리 등이 앞에서 소리가 나면 뒤따라 창화(唱和)하는 소리가 나고, 작은 바람이 불면 창화 소리도 작고 크고 센 바람이 불면 창화 소리도 크며, 강력한 바람이 그친 뒤에는 모든 구멍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텅 비었다. 너도 바람이 불어 나무가 다다닥 흔들리거나 두두둑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연성 자유가 대답하고 여쭙길 “땅 소리는 모든 구멍에서 나는 소리가 맞군요, 사람 소리가 악기를 늘어놓고 나는 소리이듯이요. 그러면 하늘 소리는 무엇입니까?”
남곽 자기가 대답하길 “바람이 불어 구멍마다 내는 소리마다 다른데 구멍마다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이다. 모든 구멍이 자기 소리를 내도록 노력하는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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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郭象,『莊子注』,卷一,「齊物論」第二:
注:死灰槁木,取其寂漠無情耳。夫任自然而忘是非者,其體中獨任天眞而已,又何所有哉?
故止若立枯木,動若運槁枝,坐若死灰,行若遊塵,動止之容,吾所不能一也,其於無心而自得,吾所不能一也。
晉、郭象注,唐、成玄英疎,『南華眞經注疏』,
卷三:聖人懷之。:
注:以不辯爲懷耳,聖人無懷。
疏:夫達理聖人,冥心會道,故能懷藏物我,包括是非,枯木死灰,曾無分別矣。
卷八:離形去知,同於大通,此謂坐忘。:
注:夫坐忘者,奚所不忘哉?既忘其跡,又忘其所以跡者,內不覺其一身,外不識有天地,然後曠然與變化爲體而無不通也。
疏:大通猶大道也,道能通生萬物,故謂道爲大通也。外則離析於形體,一一虛假,此解隳肢體也;內則除去心識,悗然無知,此解黜聰明也。既而枯木死灰,冥同大道,如此之益謂之坐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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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王冰,『重廣補注黃帝內經素問』,卷第一,「上古天眞論」:
丈夫八歲,腎氣實,髮長齒更。
(老陰之數,極於十;少陰之數,次於八。男子爲少陽之氣,故以少陰數合之,『易系辭』曰:“天九地十”,則其數也。)
二八,腎氣盛,天癸至,精氣溢寫,陰陽和,故能有子。
(男女有陰陽之質不同,天癸則精血之形亦異,陰靜海滿而去血,陽動應合而泄精,二者通和,故能有子。『易系辭』曰:“男女搆精,萬物化生”,此之謂也。)
三八,腎氣平均,筋骨勁強,故眞牙生而長極。
(以其好用故爾。)
四八,筋骨隆盛,肌肉滿壯。
(丈夫天癸,八八而終,年居四八,亦材之半也。)
五八,腎氣衰,髮墮齒槁。
(腎主於骨,齒爲骨餘,腎氣既衰,精無所養,故令髮墮,齒復乾枯。)
六八,陽氣衰竭於上,面焦,髮鬢頒白。
(陽氣,亦陽明之氣也。『靈樞經』曰:“足陽明之脈,起於鼻,交頞中,口下循鼻外,入上齒中,還出俠。環唇,下交承漿,卻循頤後下廉,出大迎,循頰車,上耳前,過客主人,循髮際,至額顱。”故衰於上,則面焦,髮鬢白也。)
七八,肝氣衰,筋不能動,天癸竭,精少,腎藏衰,形體皆極。
(肝氣養筋,肝衰,故筋不能動;腎氣養骨,腎衰,故形體疲極。天癸已竭,故精少也。匪惟材力衰謝,固當天數使然。)
八八,則齒髮去。
(陽氣竭,精氣衰,故齒髮不堅,離形骸矣。去,落也。)
腎者主水,受五藏六府之精而藏之,故五藏盛,乃能寫。
(五藏六府,精氣淫溢,而滲灌於腎,腎藏乃受而藏之。何以明之?『靈樞經』曰:“五藏主藏精,藏精者不可傷。由是則五藏各有精,隨用而灌注於腎,此乃腎爲都會關司之所,非腎一藏而獨有精”,故曰:五藏盛乃能寫也。)
今五藏皆衰,筋骨解墮,天癸盡矣。故髮鬢白,身體重,行步不正,而無子耳。
(所謂物壯則老,謂之天道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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