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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교회 진단과 평가
임 학 균
[등대 그리스도의 교회]
1. 그리스도의 교회, 진단(診斷)
1) 진단의 목적과 기준
다음(Daum) 어학사전은 ‘진단’이란 “1. 의사가 환자를 살피어 병의 상태를 판단함, 2.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자세히 판단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음 백과사전은 “환자의 병력·증상·증후를 고려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환자를 검사하여 질병이나 신체이상을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풀이하였다. 이처럼 의학에서의 ‘진단’은 ‘환자의 상태를 살펴 치료를 위한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는 의학 용어이지만, 일상에서의 진단은 특정 주제가 표준 기준에 대하여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살펴 그 주제의 건강도(健康度)를 측정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리스도의 교회 진단’이라는 의미는 분명해 진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인지를 원론으로 설명하는 ‘원형(原形) 그리스도의 교회’ 또는 ‘표준(標準) 그리스도의 교회’에 비추어 ‘역사·현실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거기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말이다. 이 진단의 목적은 ‘역사·현실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원형(표준) 그리스도의 교회’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도록 돕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모든 신학이 다 그렇듯이 여기에서 교회론의 원형과 표준은 당연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태동에서부터 발전, 완성 그리고 교회의 존재 이유와 건강한 운영방법 등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가장 완전한 교회의 모범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딤후 3:16, 벧후 1:21)
2) 그리스도의 교회 진단의 주제와 범위
‘그리스도의 교회 진단과 평가’라는 주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의 문제만 진단의 주제로 제시하지만, 실상 교회를 진단할 주제는 참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조만간 다가 올 선교 100년의 성공을 꿈꾸며 오늘의 선교 90년을 진단해야 한다면 이러한 모든 주제들은 그 무엇 하나 빠질 수 없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진단하느냐에 따라 해답도 달라 질 수 있기에 올바로 진단하고 평가하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간결하고 명확한 진단과 평가는 발전할 수 있는 약(藥)이 되겠지만 증명되지 못한 오진(誤診)은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진단과 평가’를 특정하기보다는 구성원 모두가 같은 시각으로 진지하게 접근하여 더욱 객관적이고, 더욱 구체적인 진단이 나올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첫 번째 진단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교회론 자체인 정체성’에 대한 진단이다.
이 주제는 ‘역사와 현실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교회다운지를 성서에 나타난 원형 그리스도의 교회에 견주어 진단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교회의 정의, 명칭, 목적, 조직, 행정 등, 원론적인 교회론을 살펴 비교해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교회의 질적인 수준에 치중하여 진단되겠지만 교회의 명칭, 조직, 예배, 침수세례 등을 살핀다면 형태의 진단일 수도 있다. 여기서 물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속한 교회는 성서에 나타난 원형교회의 표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근접해 있는 것은 무엇이며 멀어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일단 교회의 외형을 본다면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간판(명칭)을 고수하고 있고, 침수세례를 구원의 조건 중 하나로 보고 실행하고 있으며, 매주일 예배에 주의 만찬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대규모 교회 공동체에 비하여 양적으로 큰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주눅 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교회’ 명칭에 자부심을 갖고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자주의, 형식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께 책망 받은 바리새인들의 오류가 바로 그것이었다.
재고 해 보자. 내가 속한 교회는 얼마만큼 ‘그리스도의 교회다운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두 번째 진단의 주제는 ‘교회의 사명 실행여부’에 대한 진단이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진단해 보는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교회 존재의 목적을 파악해 보는 진단일 수도 있다. 크리스티안 슈바르츠(Christian A Schwarz)는 「자연적 교회성장」에서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은사 중심적 사역, 열정적 영성, 기능적 조직, 영감 있는 예배, 전인적 소그룹, 필요 중심적 전도, 사랑의 관계 등, “성장하는 교회의 8가지 질적 특성의 비밀은 명사(名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용사(形容詞)에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명사란 ’지도력, 사역, 조직, 예배, 소그룹, 전도, 관계 등이고, 그 명사들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역자를 세우는, 은사 중심적, 열정적, 기능적, 영감 있는, 전인적, 필요 중심적, 사랑의’ 등의 형용사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의 사명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진단되어야 한다. 시각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지겠지만 보통 ‘예배, 선교, 교육, 봉사, 교제’ 등 다섯 가지를(행 2:41-47, 6:1-7) 교회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교회 건강도의 진단을 위하여서는 교회가 그 동안 이 명사들을 어떠한 형용사와 동사로 이행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얼마나 영감 있게 예배하는가?, 얼마만큼의 시간과 재능과 재산을 투자하여 선교에 임하였는가?, 대학입시교육의 열정 같은 자세 이상으로 신앙교육에 힘썼는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봉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였는가?, 하나님과의 수직교제, 형제자매와 이웃을 향한 수평교제는 얼마나 밀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세 번째 진단의 주제는 ‘선교방법론의 적정성’에 대한 진단이다.
이 주제는 성공적인 선교를 위하여 그 동안 어떠한 방법으로 활동하였는지를 살펴 효율적인 방법론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이 진단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떻게 선교했는가?’이고 또 하나는 ‘어디에서 선교했는가?’이다. ‘어떻게 선교했는가?’의 구체적인 방법론은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는 직접 선교 방식과 교육, 의료, 산업, 복지, 문화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하여 선교하는 간접 선교 방법이 있다. 현대의 선교학은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운영하는 ‘통전적인 선교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어디에서 선교했는가?’는 피선교지의 선택 문제이다. 이상적인 거점 선택은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소도시에서 근교로 퍼져 나가는 방식이다. 피선교지의 전체 권역을 살펴 계획성 있게 선정하여 균형 잡힌 거점을 확보하여 선교의 지역 배분이 적정한지를 진단해 봐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 전인 1930년에도 수도 서울과 항도 부산, 그리고 평양은 한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였다. 만약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 에너지를 이곳에 집중 투자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기준으로 지난 90년간 시행된 선교방법론을 진단해 본다면 선교 100년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공적인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기 역사는 함경도 북청을 중심으로 한 북부의 동석기와 울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의 강명석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의 양대 산맥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 전에 그들에 의해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교회는 내수동교회와 울산교회 뿐이다. 안타깝게도 초기에 세워진 선교결과물들인 수십 개의 교회들은 거의 소멸되었다. 이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가 본격화한 시기는 한국전쟁 전후해서이다. 전통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인 서울청량리, 부여합송, 부산중앙, 부산서면, 부산청학동, 부산성지, 울산강남 교회들은 모두 이때를 전후하여 세워진 교회들이다. 그리스도의 교회 일꾼들을 배출하는 ‘그리스도신학대학(현 KC대학교)’도 전쟁이 끝난 지 5년 후인 1958년에 세워졌다.
찬찬히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속한 교회에서 선교방법론의 모범이 될 만한 방법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선교방법론은 무엇인가?
네 번째 진단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교회 토착화의 성공률’에 대한 진단이다.
이 주제는 피선교지 사회구성원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교인수가 몇 명인지, 피선교국의 전체 인구에 비하여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은 몇 %인지 증가율을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른 교회 공동체와 비교하여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를 살펴보는 상대적 성장률을 살피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진단은 1930년에 선교를 시작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선교를 시작한 타 교회 공동체와 통계를 통한 비교가 가능하기에 어느 정도는 수치로 확인이 가능하다. 선교 90년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현재 교인은 총 몇 명이며 우리가 속한 교회의 성도 수는 지역의 인구비 몇 %에 해당하는가? 또한 어느 정도의 사회기여도와 지명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역 토착화에는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가?
1930년도, 또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나 다른 종교의 교세는 어느 정도일까? 1907년에 한국에 전래된 성결교회는 선교100주년인 2007년에 약 70만 명 이상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1928년에 전래된 하나님의 성회(순복음교회)는 1986년 현재 특정지역의 단일 교회만의 교인수가 51만 명이라고 발표하였다. 기독교 외의 타종교나 이단 사이비 종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신흥종교인 ‘원불교’는 1916년에 창건되었는데 2000년도에 이미 신도 수 1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단으로 분류된 ‘여호와의 증인’은 1912년에 전래되었는데 2019년 현재의 신도 수가 약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 교인 수는 몇 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름’이다. 대충 짐작은 하지만 아직도 통계가 집계되지 않았기에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통계를 내고 싶지 않은 경우’일 수도 있다.
다섯 번째 진단의 주제는 ‘환원운동의 성공 또는 정착여부’에 대한 진단이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특별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주제는 첫 번째 진단 주제인 교회론과 큰 틀에서는 맥을 같이하지만 좁혀서 본다면 전혀 다른 주제이다. 기준서는「신약교회론」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환원운동은 두 가지의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교회로 일치와 말씀으로 환원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환원운동은 ‘교회일치’와 ‘성서회복’ 운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역사 현실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원형 또는 표준 그리스도의 교회’에 얼마나 부합하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이념과 신앙으로 일치되어 있을까? 말씀으로의 환원인 ‘성서회복’운동의 자세는 양호한 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 구성원들 중 그 누구에게서도 성서 외의 경전이나 장전을 신앙의 교본으로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기초와 모범은 성서라는 사실과 우리의 일상기준은 오직 성서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그 누구에게서든 이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자. 실제로 우리가 속한 교회는 성서의 가르침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일치 운동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2. 그리스도의 교회, 평가(評價)
평가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가치나 수준 등을 매기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를 평가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사회와 성도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으며, 어떤 수준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앞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서는 ‘선교시기를 단계별로 분류한 후 과정과 성과’를 살펴보고,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은 어느 정도의 완성을 이루었는가?’를 살펴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1) 단계별 평가
선교 90년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3단계 과정을 거쳐 왔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에 심어진 1단계-파종기,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그들과 협력하여 교회와 복음을 사방으로 확장시킨 2단계-성장기, 순수 한국인들에 의하여 삼자(三自)선교정책에 근접하여 발전한 3단계-정착기’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꿈꾸는 4단계-완성기는 계속하여 진행해야 할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지향의 과제이다.
(1) 1단계-파종기(1930-1950)
이때는 국내의 교역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환원운동을 배워 와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 전래한 시기이다. ‘1단계-파종기’에 세워진 교회의 위치는 함경도 북청, 경상도 울산, 그리고 서울이었다. 이 시기의 선교를 평가한다면 크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① 자체 선교: 한국인이 환원운동을 배워 와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스스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한국 기독교의 다른 공동체도 외국인 선교사가 입국하여 선교를 시행하기 전에 한국인이 먼저 외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후 귀국하여 스스로 교회를 세웠는데 이 일은 세계 선교역사상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교회도 동일한 과정으로 선교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만하다. 잘 알려진 두 명의 전도자들은 당시 기독교의 다른 공동체에서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이자 리더로서 충분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서회복을 위한 운동을 위하여 주어진 특권을 내려놓고 생소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작했다는 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② 선교지 선정: 선교지를 선정하는 원칙은 가장 먼저 대도시를 선정하여 실행한 후 그곳을 거점 삼아 가까운 중소도시와 주변지역으로 확장시켜 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1단계-파종기’에 세워진 교회들의 지역 분포를 보면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지방과 변두리였다. 이는 선교전략상 정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필자의 논문 「제주지역의 종교현황과 효율적인 선교 전략 방법론(그리스도의 교회를 중심으로), 2012)」에서도 ‘2단계-성장기’ 중에 시행되었던 제주 선교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지적하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선교 대상 지역이었던 구브로, 안디옥, 빌립보, 에베소, 데살로니가, 고린도, 로마 등은 모두 우선 선교지역인 당대의 대도시들이었다. 도시지역을 배제하고 주로 변두리나 시골을 우선한 선교는 결과적으로 비능률적일 가능성이 높다. 대도시에서 형성된 정치·경제·행정·문화적인 사회 인프라는 자연히 소도시와 시골로 옮겨간다. 대도시 선교가 당장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다면 대단히 큰 유익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적지 않은 시간과 힘을 투자하여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최초로 세워진 함경도 북청 지역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안타깝게도 모두 소멸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 역사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큰 아쉬움이다.
(2) 2단계-성장기(1951-1990)
이 시기에는 기존의 전도자들과 내한(來韓)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힘을 합해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함께 수고했던 시기다. 외국인 선교사들과 한국의 전도자들은 열정으로 활동하였고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교회는 물론이고 학교와 여러 기관 등을 세우면서 교회 발전을 위한 인프라(infra) 구축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고 이때에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교회는 물론이고 학교, 목장, 가축병원 등, 전문기관을 세워 전형적인 통전적인 선교를 시행하였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약 40-50여차에 걸친 선교대회를 통하여 교회를 세웠는데 제주지역의 현존 교회들 절반 이상이 그 시기에 세워졌다.
① 교회의 양적 확장: 교회도 꾸준히 발전하여 ‘1단계-파종기’에 10-20여 개였던 교회가 이 시기에는 약100여 개로 늘어났다. 김세복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사」에는 1969년 현재 38개의 교회가 소개되었는데,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협의회’에서 발간한 교회주소록을 보면 1990년대에는 약100여 개로 늘어나 약250%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상황을 보면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한국 전체의 종교 통계를 보면 기독교의 다른 공동체 대부분이 폭발적인 양적성장을 이룬 반면 그리스도의 교회의 양적성장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만했기 때문이다.
② 선교 인프라 구축: 이 시기에 선교기관(그리스도의 교회 선교회), 교육기관(그리스도신학대학=KC대학교, 등촌중학교), 문서선교기관(성경통신교육원, BCC 동계대학), 사회복지기관(승리모자원, 천혜경로원), 경제공동체(파주목장), 신앙잡지사(참빛사) 등이 세워졌다. 이 기관들은 나름 제 역할을 잘 감당하였고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함께 협업하였다. 학교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의 교회 일꾼들을 양성·배출하였고, 문서선교기관은 지역에 제한받지 않고 전국의 모든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일꾼들을 키워냈다. 복지기관에서는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을 향해 복음과 빵을 동시에 제공하여 많은 성과를 내었고, 언론기관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환원운동은 물론이고 다양한 주제의 글을 게재하여 신앙향상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프라 구축을 통해 열정으로 ‘통전적 선교’를 시행하여 많은 성과를 얻기도 하였으나 역기능(逆機能)도 만만치 않게 나타났다. 일례로 대학교의 경우 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신앙 상의)형제 간에 파벌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분쟁은 근 반세기를 넘기는 동안 반복되어 교회도 덩달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에 걸친 관선이사가 파견되어 사회적으로도 기독교 미션스쿨로서의 이미지에 큰 흠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일치를 목표하는 환원운동사에도 큰 오점을 남기도 말았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할 과제다.
③ 성경해석의 혼란: 이 시기에 양적으로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지금까지도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전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거의 다 이 시기에 세워졌다. 이때에는 선교사들의 의견과 가르침을 대부분 수렴하여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 방향은 미국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 방향과 유사하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환원운동 자체가 순수한 성서회복과 교회일치 운동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이에 대하여 제기할만한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미국 교회의 강한 영향력 때문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많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경제적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와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의 신앙을 의심하거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후원이 줄어들 즈음 눈에 띄는 몇 가지 성서해석 상의 차이가 생기면서 일부교리에 대한 시각에도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즉, ‘목회자의 안수제도와 호칭, 예배시의 악기사용, 여자 일꾼’ 등의 문제가 모두 이 시기에 대두되어 교회에 혼란을 주었는데 이 또한 교회일치와 발전에 장애가 아닐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 주제는 2020년인 현재에도 아직 일치가 되지 않아 형제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 3단계-정착기(1990-현)
한국전쟁 이후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 시기에 세상을 떠났거나 본국으로 출국하였다. 이로 인하여 1990년 이후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인 스스로 교회를 책임져야할 상황이 되었으며, 실제로 어느 정도 정착된 시기이다.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선포하고, 각 분야의 일꾼들을 키우고 세워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다시 분열되는 아픔도 겪고 있는데 이 일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완성시켜 가는 환원운동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① 삼자(三自)원리: 이 시기에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인 삼자원리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삼자원리는 ‘현지인들이 스스로 다스리고(自治), 스스로 세우고(自立), 스스로 전도하는(自傳) 것을 목표로 하는 선교방법론’인데 좋은 이상과 높은 효율성으로 인하여 현대선교학의 고전으로 정착되었다. 1990년 이후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본국으로 귀국하여 현재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기관은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회’ 하나뿐이다.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또 다른 기관으로는 ‘성경통신교육원’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관이 현재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기에 삼자원칙의 정착은 ‘3단계-정착기’에 와서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는 한국인 스스로 교회를 책임져야한다.
② 무조건 교회 일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하나의 교회’가 깨어져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협의회는 2017년 이후 둘로 분리되어 양자 간의 교류가 중단된 상태다. 실상 이 경우는 몸살 정도가 아니라 몸이 찢긴 수준이기에 매우 중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물론 교역자협의회는 교회연합체나 총회가 아닌 교회 소속 교역자들만의 협의체이지만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았을 때 이는 교회 분열 수준의 아픔과 후유증이 동반된다는데 이의가 없다. 슬프게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3년에 교역자회 몇몇 임원들이 ‘크리스천 처치(유악기 측 그리스도의 교회)’와 통합을 추진하였는데 기독교언론에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통합하였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이 하나 되지 못한 이러한 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 형제들이 남아서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 교역자회’를 구성하였다. 와중에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협의회’로 명칭만 개정한 것 외에는 2017년까지 하나 된 그 전통이 이어져 왔다. 훗날 크리스천 처치와 통합한다고 떠났던 교역자들도 결국에는 대부분 되돌아왔지만 그 사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겪은 시련과 아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미 아픔을 겪고도 다시 반복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현재의 교역자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라고 기도하셨고, 성령께서는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4)”,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9)”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2-3)”라고 분부했듯이 하나 됨은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다.
또한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에서 보듯이 분열은 다른 모든 죄악과 동일한 선상에 있는 죄로서 부인할 수 없는 마귀의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답은 ‘무(無)조건’이다.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은 어느 정도의 완성을 이루었는가?’
어느 세미나에서 발표하던 형제가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는 충실한데 그리스도는 충실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용어에는 ‘그리스도, 〜의, 교회’ 등 세 가지의 단어가 들어 있다. 그 동안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의 명칭, 예배, 조직 등을 다루는 ‘형식적 교회론’에 치중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주체(主體)가 되어야 할 그리스도가 객체(客體)인 교회에 밀려나신 것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구성원들의 만족과 완성을 위하여 교회론 숙지는 필수·권장사항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회의 중심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과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죄와 불의를 책망하시는 뜨거운 정의로움, 그 누구든지 품어 주실만한 따스한 가슴, 친구를 위하여 아끼지 않고 흘리신 눈물,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놓으신 사랑,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와 용서와 잊지 않으셨던 자애로움···, 이 모두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담아야 할 그리스도시다.
기준서는 「동석기 전도자의 선교방법론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환원연구회 제46차 세미나 발표논문, 2014)에서 초기선교방법론을 논하며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질문들은 대단히 과감하되 진솔하고 실질적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초기뿐 아니라 현재, 미래의 교회를 향해서도 발전지향적인 방안에 핵심이 될 힌트를 주고 있기에 여기에 옮겨 실으며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로,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신학과정을 이수하였기에 충분히 사도행전 적 선교방법과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의 경성(京城), 평양(平壤) 대도시 중심의 선교방법을 숙지하고 있음에도 변방 오지인 북청에 교회를 세운 이유는 무엇인지?
둘째로, 기존의 기독교단들이 교회성장에 크게 도움을 받았고 선교의 고전적 텍스트로 여기던 네비우스 선교정책(自力, 自治, 自給)을 차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셋째로, 선교기금 모금, 구호물자, 수집과 분배에 따른 사회사업에 치중함으로서 복음의 본질이 호도(糊塗)되어 선교의 역기능적 결과를 초래케 한 이유는 무엇인지?
넷째로, 교육중심지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함경도 지역은 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을 터인데,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기독교 교육 사역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다섯째로, 효율적인 선교와 개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지도자의 훈련과 양육이 중요한데,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없이 혼자서 교회를 개척하고 순회 목회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
여섯째로, 자유와 평등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환원운동에서는 개인 신앙의 자유와 개 교회 자율성으로 해석되어 중심적 표어가 되었는데 일제에 의하여 자유와 평등적 가치가 유린되는 아픔의 역사현장에서 많은 시간 침묵하였던 이유는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