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사람의 속마음 / 김태길
동서남북을 헤아리는 방향감각이 그믐밤처럼 어두우니, 길눈에 관해서는 당연히 천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을 때, 그 집이 그 집 같아서, 남의 집 현관문 열쇠 구멍에 우리 집 쇳대를 넣으려고 시도하다 깜짝 놀라서 달아난 전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나의 딱한 처지를 잘 아는 친구들은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합니다. “조물주는 공평무사한 존재여서 한 가지 일에 관하여 극도로 무능한 사람에게는 다른 일에 대한 능력을 후하게 배정함으로써 균형을 얻도록 한다”는 것이 그 위로하는 말의 요지입니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지껄이는 헛소리라기보다는 분명히 일리가 있는 말로서 다가옵니다. 나에게도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 비슷한 것이 생겼습니다.
내가 가진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러저리 생각한 결과로 얻은 대답은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보통은 넘는다’였습니다. 눈가림과 거짓말을 몹시 미워한 어머니가 “내 눈은 못 속인다”는 말씀을 힘주어 하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쩌면 나는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고, 추측은 믿음으로 굳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내 눈은 못 속인다’고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대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기색입니다.
연기력이 남달라서 속마음을 감쪽같이 숨기는 데 성공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살피는 시선으로 경계하는 사람을 속인다는 것은 대체로 어려운 일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욕심이나 감정이 앞서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한, 남의 언행을 관찰하고 그의 내심을 헤아리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요컨대, 사람의 언행을 살펴보고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반적 능력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능력에 있어서 남보다 탁월하다는 착각을 품고 살아갑니다. 나 역시 그런 착각에서 위안을 찾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겉볼안이라’고 하는 속담까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겉모습과 그의 언행을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에도 실은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고 ‘하늘이 무너져도 변심하지 않을 진국’인 줄 믿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딴사람이 되어 다가오는 것을 체념한 독자들은 지금 내가 말하는 그 ‘의심’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립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와 ‘겉볼안이라’는 두 속담은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나, 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저 두 속담은 인심의 서로 다른 두 측면에 대하여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인심 전체를 두고 그 변화하는 측면에서 조명을 맞춘 속담이요, ‘겉볼안이라’는 말은 한 사람이 일정한 시점에서 갖는 마음의 단면에 조명을 맞춘 속담입니다.
‘일정 불변한 마음’을 의미하는 ‘항심’이라는 한자어가 있기는 하나, 개인의 마음은 그가 놓인 상황을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과연 ‘마음’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람의 심리는 그가 받는 자극 여하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작용합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도 샌다’는 속담은 흠이 있는 사람을 평가할 때 흔히 쓰는 말이지만, 바가지와 사람은 다릅니다.
애인이 “나 정말 당신을 사랑해요” 하며 눈물을 글썽일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말은 그 순간의 진심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는 말한 그 사람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이 변했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좋지 않은 뜻으로 씁니다. 한자어 ‘변심’이라는 말을 좋은 뜻으로 사용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실은 마음이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주색과 잡기 등으로 인생을 낭비하던 젊은이가 마음을 고쳐먹고 성실한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도 사실은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다만 마음이 좋게 변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나쁘게 변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므로, ‘마음이 변했다’는 말의 쓰임이 나쁜 쪽으로 기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발효나 숙성의 경우가 그렇듯이, 맛이 좋게 변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개 나쁘게 변하므로, ‘맛이 변했다’ 또는 ‘맛이 갔다’는 말이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생각됩니다.
상황이 크게 변하면 마음도 따라서 크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하는 이 사실로 인하여, 삶의 길에는 암흑 같은 절망과 반딧불 같은 희망이 교차하고, 천만 길 바다 속 같은 고독과 이른 아침 참새 소리 같은 위안이 공존합니다.
[김태길]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 수필집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 마음 흰 마음』 외 다수
사람의 속마음이나 마음 속 계산을 읽어내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좋은 이웃 만나기를 바랄 뿐이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고, 사람의 행동 눈빛 제스처만 보고도 0.2초 만에 그 사람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요.
보이는 만큼, 느껴지는 만큼이 어떨까요.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간접적인 시사인 몸의 언어로 짐작되는 정도만 알아도 좋겠지요.
첫댓글 상황이 크게 변하면 마음도 따라서 크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저하다가 한 표 던집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첫 마음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을 듯 해서요.
동감입니다.
늘 읽어주시고 댓글로 격려해주시니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