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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삼상 23:1-29)
1.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고랜)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타작마당은 농작물을 추수하는 곳을 의미한다. 농민들은 무장한 군인이 아니므로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로서 타작마당은 성전이 세워지는 곳이다. 실제로 솔로몬이 성전을 여기에 세웠다. 룻기를 보면 룻이 보앗스를 만난 곳이 타작마당이었다. 타작마당은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곳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곳을 블레셋이 탈취하는 것이다.
2-5.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케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케일라는 둘러싸다 라는 의미가 있으나, 어원은 칼라에서 유래되었으며, 물매로 던지다 라는 의미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바로 물맷돌이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했는데, 정상적으로 말을 하자면 사울에게 전해야 하는데, 다윗에게 전한 것이다. 이 말은 정신적 왕은 이미 사울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드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다윗이 앞장서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다윗의 사람들은 전쟁을 두려워했으나,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도 이와 같이 보기에는 미미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전쟁은 구원과 관계있다. 구원은 인간이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가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싸워서 승리를 넘겨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이다. 누가복음 18장 25-27절『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6.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사울은 대제사장을 죽이고, 그 밑에 제사장을 팔십오명이나 죽였는데, 다윗은 에봇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윗에게는 갓이라는 선지자가 오게 되고, 에봇을 가진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오므로,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7.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나카르)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나카르는 알게하다 인식하다 분별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울이 자기 생각으로 분별하여 하나님이 마치 자기에게 넘겨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넘겨준다는 말은 나탄인데, 23장 14절에서 사용되고 있다. 신약에서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려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 구약시대 사울도 하나님의 제사장을 85명을 죽였다. 오늘날도 하나님(신)의 이름으로 전쟁과 악행을 저지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울이 믿는 하나님이라는 신은 자기를 위한 신에 불과한 것이다.
8-12.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 일행이 성읍 안에 있으므로, 성읍의 문을 지키면 갇히게 된다. 그래서 성읍의 주민들이 다윗을 잡아 사울에게 넘겨줄 것으로 사울이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다윗 일행은 도망을 간 것이다. 다윗은 그릴라 주민들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했는데, 다윗을 넘겨주려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 왔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13-14.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나탄) 아니하시니라
다윗의 일행이 사백명 정도에서 육백명 정도로 늘어났다.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도망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다윗의 도망생활의 고통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시편 142편 1-7절의 이야기이다. 다윗이 굴에 있을 때 지은 마스길 곧 기도의 내용이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시아크)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시아크는 원통이라기 보다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마음 속에서 짓누르는 그 무엇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다윗이 자신이 처한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오직 여호와는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15-18.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호레쉬)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미쉬네)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십 광야 수풀(호레쉬)은 다윗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다. 호레쉬는 요새로 되어 있는 지명 이름이다. 요나단이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23장 19절에서도 호레쉬가 등장한다.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히브리어로 볼 때, “다윗 호레쉬 하자크 에트 야드 엘로힘” 호레쉬에 있는 다윗을 하나님 안에서 손을 강하게 했다”라는 말이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위로했다는 말이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요나단이 다윗에게 왕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네 다음(미쉬네)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미쉬네는 두번째라는 의미도 있으나, 여기는 두배라는 의미다.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요나단의 입장에서는 두배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미쉬네는 헬라어 나탄과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도에게 권능을 넘겨주는(나탄)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1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울도 이와 같이 다윗이 왕이 된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사무엘상 24장 20-21절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19-21.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여쉬몬) 남쪽 하길라 산 수풀(호레쉬)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하말)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십 사람들이 다윗의 상황에 대해서 사울에게 밀고를 한다. 여쉬몬은 호레쉬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이름(고유명사)이다. 사무엘상 15장 3절에서『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하말)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하말은 남기다 라는 말이다. 사무엘상 15장 15절에는『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하말)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사울은 사무엘이 진멸하라고 했는데, 남겼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울이 십사람들이 다윗에 대해서 밀고를 하므로,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하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전의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받는 모습이다. 그래서 사울은 십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기복신앙의 전형이다. 이사야 29장 13절『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22-23.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아르몬)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사울은 다윗에 대해서 동향을 살펴서 보고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이 지혜롭게(아르몬) 행동한다고 보고했다. 아르몬은 교활하다, 간교하다, 지혜롭다라는 의미의 아람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창세기 3장 1절에서 뱀에 대해서 유사하게 말한다.『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아룸)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사울이 보기에 다윗이 보통 지혜스럽게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확실하게 그를 포획하려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발자취를 파악해서 실제 상황을 보고하라는 것이다.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유다 지역을 샅샅히 뒤져서 찾아내겠다는 마음을 표현한다.
24-26.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울과 다윗이 대치하게 된다. 사울은 두 갈래로 나누어서 다윗을 잡으려고 공격하게 되고, 다윗은 최대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다윗은 거의 잡히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뀐다.
27-29.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사울이 거의 다윗을 잡는 상황까지 왔는데, 블레셋 군대가 침략하므로 사울이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셀라하마느곳은 셀라(바위)와 하마흐레코트(도망가다)의 합성이다. 셀라는 거대한 바위위가 아니라 홈이 파여져 갈라진듯한 작은 바위를 의미한다. 바위는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명기 32장 4절『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시편 18편 2절『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신약성경에서는 바위를 그리스도로 비유한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마흐레코트는 “함 마할로케트”로서 마할로케트(말라크)는 분배하다, 분리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바위가 분리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윗이 사울의 추격으로 포위되었다가 블레셋으로 인하여 도망가게 만든 바위가 되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면 분리의 바위이지만, 영어 성경은 도피의 바위로 되어 있다.
여호수아 18장 10절에서『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마할로케트)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마할로케트는 분리, 반열, 반차로 사용되었으며, 레위인인 제사장 무리의 반차라고 할 때, 그 반차가 여기에 해당된다. 바위는 특별히 구별되어진 반차인 것이다. 분리되고 구별되는 것이 거룩의 의미로 사용된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오늘날로 말을 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마할로케트가 되는 것이다. 다윗을 사울과 분리하게 만든 바위는 바로 세상과 분리된 성도를 상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