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크게는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 백남기 어르신의 부검 영장 청구를 겪으며 그러했고,
작게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에 관한 뉴스를 볼 때, 음식점에서 ‘갑’질하는 손님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접하게 되는 것은 사건이지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그 사건의 맥락과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세월호 사건이 단순한 사고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여있던 여러 문제들의 총체적 참사였던 것처럼 말이다. 맥락과 이유가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된다. 그렇기에 역사는 진실과 닿아있다.
소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건에도 속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알고 싶었다. 배우고 싶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잘못된 맥락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수 있겠다는 우려도 들었다. 그래서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소식은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역사위에 서다” 첫 시간에는 역사 탐방을 했다.
연일 파란 하늘이 가슴을 울리는 이 가을, 배움을 함께하는 이들과의 역사탐방은 오랜만에 가는 소풍 같았다.
수원제일교회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는 전망대였다.
전망대에 오르니 수원시 일대가 내려다 보였다. 수원화성이 한눈에 보였다. 수원화성은 조선 후기에 정조와 실학자들이 지은 성곽인데, 위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은 군사시설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되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강의를 해주실 유순혜 교수님의 “수원화성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작품(그림) 앞에 모였다.
그림이 무려 2m 높이의 기둥에 그려져 있었다. 교수님께서 직접 작품에 대해, 수원화성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수원화성을 보고,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벅찬 마음이 들었다.
오늘의 내가 수원화성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옛날, 백성을 살핀 정조가 있었고, 그 마음에 화답하여 함께 힘을 모은 백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음이 벅찼던 것은 수원화성의 아름다운 뿐 아니라, 역사 속 그이들의 마음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니 역사 앞에 어찌 겸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사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가.
유순혜 교수님은 유명작가로 오랜 시간 일하신 베테랑이셨다. 우리가 방문한 수원의 지동마을은 유난히 사건과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교수님과 지동마을이 벽화를 통해 만났다. 교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과 근 5년간 지동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계셨다.
교수님을 따라 지동 마을 곳곳을 둘러봤다. 벽화를 설명해주시며, 이 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포도를 좋아하셔서 포도를 그렸다, 이 집에는 동화작가님이 살고 계셔서 동화 속 인물을 그려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니 그럼 누가 사는 지도 다 알고 그림을 그리셨다는 거예요?” 궁금증이 들어 교수님께 여쭤봤다.
지동 마을 주민들은 재개발을 원했다. 그것은 전쟁이후 판자촌 생활을 하던 주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픈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마을에 벽화를 그리겠다고 하니 주민들이 교수님을 반겼을 리 만무하다.
초반에는 교수님도 주민들과의 교제가 힘들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누가 사는지,뭘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며 어떤 벽화를 그릴지 상의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도 차차 마음을 열었다.
마음을 열게 된 건 비단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교수님도 처음에는 벽화를 그리고 얼른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마을이 바뀌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열게 되신 것이다. 지금 교수님께서는 수원으로 주거지를 옮기셨다고 했다. (띠용)
교수님의 벽화가 지동마을을 바꾸어냈지만, 마을 또한 교수님의 마음을 바꾸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만남은 혼자 이루어질 수 없다. 역사는 홀로 흘러갈 수 없다.
그 이야기를 듣고 벽화를 보니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하나의 그림으로도 충분히 멋있는 벽화 이지만, 그냥 그림이 아니었다. 지동마을과 유순혜 교수님(함께 그리는 분들)과의 만남 사이에 피어난 꽃이었다.
역사는 역동적이다. 어떤 말로도, 글로도 담을 수 없다.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던 나에게, 우리에게 오롯이 담긴다.
그래서 이 시간 함께하는 이들이 있음이, 이렇게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토록 감격스러운 것 아닐까.
탐방을 시작하며 봉실 선생님께서 나의 중요한 결정을 해나갈 수 있다는 각오로, 나의 걸음을 고민하는 간절함으로 함께 하자고 말씀하셨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 말이 다시금 마음에 다가왔다.
"글이라고 하는 것은 심정이 발로되어 쓰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극한 심정이 있어야만 글이 쓰여지는 것이다. 공자께서 천하에 왕도가 없어 사람들이 짐승처럼 되어 가는 것을 괴로워하여 <춘추>를 지어 후세에 전함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이 나타나면 이로써 바로잡을 수 있게 한 것이니 바로 이런 지극한 심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2016 교육문화연구학교 여는 기사에서 읽은 <한국통사, 박은식> 발(跋)문의 일부다.
2016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하며 마음 다해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이 각오와 간절함마저도 홀로 가질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글은 지극한 심정 없이는 이뤄질 수도, 쓰여질 수도 없다는 박은식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을 찌른다. 어디 글뿐이랴. 역사탐방을 통해 보았듯 역사도, 만남도 마찬가지리라.
지극한 심정, 각오와 간절함이 필요하다.
다행히 홀로 있지 않다. 배움의 걸음에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이건 서두에 말한 의미와는 다른, 감탄사이다!
이렇게 함께 만들어갈 역사를, 이루어갈 기적을 기대한다.
부디 남은 여정도 ‘지극한 심정’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후기를 쓰고자 다짐했다.
함께 해준, 함께 해주실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도 함께해요, 금요일에 만나요~
첫댓글 우리의 한 결단결단들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었던 유일하고 소중한 우리의 그 걸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잘 읽었어요. 문득문득 툭툭 저를 깨우는 문장들이 있어요. 만남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요 기다려져요! 첫 시간에는 인사를 못했네요 다음 시간에는 반가운 인사 나눠요~^^
첫 만남, 만나서 반가웠어요~! ^ ^
나...나 이거 영화 봤는데!!!
오~ 맞아 영화제목이야! 한글이가 알아봐줬네- 이모도 이 영화봤어 또 보고 싶은 영화중에 하나야
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이 좋은 게 많더라구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이게 영화제목이에요?
네 일본영화예요.
아이들이 기적을 찾아 떠나는 내용의 따뜻한 영화랍니다 :D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설레임을 느낄 수 있겠지요? 한 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