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단기사회사업 성현동 김지수 선생님에게 쓰는 수료증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_박노해”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잎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가는 꽃.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서둘지도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꽃.
지수 선생님의 한 달이 꽃처럼 보였습니다. 지수 선생님이 꽃 같았습니다.
이미 실습 경험이 있던 지수 선생님. 필수 과정은 이수했으니, 하지 않아도 됐을 일입니다.
왕복 3시간 남짓의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던 지수 선생님. 집과 가까운 곳을 알아봐도 됐을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사업 바르게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지수 선생님을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마지막 학창 시절을 뜻있게 보내기 위해 스스로와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여러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녹록지만은 않았지요.
혼자 수행하는 과업 세 가지, 비대면 상황, 선생님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예상치 못한 일들,
생활복지운동의 참여 저조, 실무자의 갑작스러운 부재...
힘들고 어려운 이유를 꼽으라하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수 선생님은 한 걸음씩 꾹꾹 밟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저에게 묻고 또 물으며 선생님의 지경을 넓혀갔습니다.
선생님의 한 걸음을 내디디게 하던 그 힘이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 뜻이 있었습니다.
복지요결을 읽으며 선생님의 모습을 점검했습니다.
아이들이 활동의 주인 되게 돕고 있는지, 내가 아이들보다 앞선 건 아닌지.
아이들과 나의 관계가 어떠한지. 다 아는 것처럼 하진 않았는지.
나의 위치가 아이들을 제한한 건 아닌지. 문제가 아닌 강점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사회사업이 어떤 일이며 무슨 가치가 있는지. 어찌해야 바르게 했다 할 수 있을지.
당사자의 삶, 지역사회 사람살이에 시선을 두고 선생님의 언행을 살폈습니다.
우리 동네 가족들이 서로 안아주며, 곁에 있는 소중한 시간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고 싶다던 지수 선생님.
허그챌린지를 기획했지요. 그런데 기대함으로 준비했던 생활복지운동의 참여가 저조했습니다.
당황스럽고, 실망한 마음도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오히려 주민들의 여러 상황과 처지를 헤아리며,
부담감 없이 소소한 일상으로 즐겨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숫자 등의 실적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거나 낙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각 가정에서 소박하게 이루어주셨지요. 후기들도 참 따스합니다. 소박하지만 풍성해요.
선생님이 뜻을 두었던 대로, 가족이 서로 안아주며, 곁에 있는 소중한 시간을 근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수 선생님. 내가 선생님 활동 후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 단계에 왔을 때 이 사업을 왜 하고 있는지 점점 깨달아갔습니다.
내가 선생님 기획단 친구들의 세워지고 단단해지는 모습에 사업의 이유를 찾았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이루어가는 모습 속에서
선생님의 답을 찾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놀랍고 고맙습니다.
선생님에게 뜻이 있었습니다. 뜻이 힘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랑이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아이들 마음에 깊이 머물렀습니다.
혜리, 예진이, 태현이, 규민이, 서연이, 민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인격적으로 정성을 다해 만나는
선생님의 마음을 아이들도 느꼈습니다.
내가 선생님 수료식 날 선생님께 전하는 편지를 읽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말을 잇지 못하던 혜리.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이야기에 한 시간을 꼬박 기다리다 돌아갔던 규민이.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선생님이 좋다며, 나중에도 선생님을 잊지 않겠다고,
졸업하면 꼭 여기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서연이.
선생님이 남긴 부재중 전화 한 통에, 학원 끝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던 민서.
선생님과 오래도록 만나고 싶어 복지관에 선생님의 추천서를 전해줬던 예진이.
늘 신난 걸음으로 약속 시간보다 30분씩 일찍 와서는 선생님을 찾던 태현이.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내비치는 그 마음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지요.
작은 미소에 기뻐했고, 아이들의 작은 표현에 감동했습니다.
아이들과 사랑으로 만났습니다. 사랑이 힘이었습니다.
세 번째, 재미가 있었습니다.
각 활동은 아이들의 곳에서, 아이들이 주인되어서, 아이들이 내 일로 여기며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거듭해서 묻고 의논하고 부탁했지요.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주체의식과 역량이 살아나니, 수업을 진행할 때는 우리가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이들 마음속의 뿌듯함, 설렘, 초조, 떨림 등의 온갖 감정을 함께 느끼며,
그저 아이들이 잘 해내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었습니다.
어느새 서툶과 부족함은 가려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태현이의 주먹을 앞뒤로 흔들며 껑충껑충 뛰어가던 모습,
혜리의 뿌듯하다는 문자,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을 온전히 수업한 서연이 얼굴에 번지던 미소,
친구들의 응원 속에서 기뻐하던 민서,
추운 날씨에 잠바도 벗어두고 들킬 새라 지하실에 숨죽여 숨어있던 예진이,
노른자를 안터뜨리면 계란이 폭발한다는 설명과 동시에 펑 하고 터진 자신의 계란빵을 보며
학생들에겐 비밀로 해달라던 규민이.
생생하지요?
참말로 재미있었습니다. 재미가 힘이었습니다.
지수 선생님의 한 달이 뜻과 사랑과 재미로 빼곡합니다.
곁에서 그 순간을 함께하며 참 행복했어요.
애썼어요.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선생님의 땀과 열정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동네에, 저에게, 우리 기관에 복이 되었습니다.
돌아간 곳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지수 선생님의 타고난 빛깔과 향기로, 선생님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나기를.
꽃 같기를 응원합니다.
선생님의 사회사업 인생길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다시 만나요.
2021년 1월 29일,
단기사회사업 마지막 날을 앞두고 선생님과 같은 새벽을 보내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박세경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