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에 들어가며]
2725친구들은 6/2 아침부터 6/3 오후까지 1박2일 동안 총 12쌍 부부(24명과 4살박이 고영철 아들포함 총25명)금강산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빠듯한 관광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친구들 고생 많았고 한편 함께 하지 못한 동창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일정 중심으로 간단히 적겠습니다. 금강산의 신비롭고 경이로움을 필설로 표현하는 것은 나의 재주로 불가능 할 뿐 아니라 금강산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백문이불여일견이므로...
[6/1(금) 오후 서울 출발]
개인차량을 이용하거나 관광버스를 이용한 친구들은 육로관광의 집결지인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콘도에 밤 12시경에 도착하여 친구들과 상봉을 하고 가볍게 음주를 한 후 콘도에서 잠을 청한다.
[6/2(토) 아침 출입국 준비]
아침 일찍 일어나 콘도에서 밥을 먹고 화진포 휴게소에 들러 금강산 관광증(일종의 여권)를 교부 받아 버스로 동해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버스로 다시 이동하여 남방철책 통과 - 비무장지대 통과 - 북방철책 통과 - 천막으로 막사가 지어진 북측출입국사무소에 도착 입국수속을 마친 후 꿈에서 그리던 북녘 땅에 도착했다. 불과 몇십분 사이에 눈앞에 펼처지는 광경은 변화무쌍하다.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관광객들의 숙소와 식당이 모여 있는 온정각 부근의 외금강호텔에 여장을 풀고 간단한 등산복차림으로 구룡폭포가 있는 구룡계곡 등반(왕복 3시간 정도)을 했다. 발 빠른 기호철은 30여분을 더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구룡계곡의 산골짜기 신선들이 놀았다는 8개의 연못이 있는 상팔담에도 다녀왔다며 자랑이다.
하산하여 옥류관 북한 식당의 냉면과 만두국으로 식사를 했다. 옥류관 입구에서 안내를 하는 북한처녀의 맑고 곱고 상냥한 얼굴이 시방도 눈에 삼삼하다(나만 그런가?).
[6/2 오후]
점심 식사 후 버스로 10분을 이동하여 조선시대에 관동8경의 하나로 이름 높은 삼일포 관광. 삼일포의 단풍관(일종의 휴게소)에서 북한산 막걸리(거의 식초맛임)와 감자전(지름 8-9센티미터로 한입에 넣어도 됨. 남조선 빈데떡은 20세티이상은 되는데...)으로 한 순배씩 돌리고.........
다시 온정각으로 돌아와 오후 4시 30부터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서커스를 1시 30분 정도 관람을 했다. 서커스 단원들의 현란한 손놀림과 기예는 칭찬 보다는 연면의 정을 느끼게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얼마나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했을까?( 고운 한복을 단아하게 입은 여성 사회자는 교예단의 소개에서 세계 서커스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결코 허풍은 아닌 듯 했다). 공연이 끝나고 저녁은 김석종의 특별한 배려로 마련된 횟집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자연산 회(북한에서 양식은 경비가 많이 들어 엄두도 못냄)와 폭탄주는 산행으로 지친 피로를 한방에 날려버렸고 브라보의 구호는 “2-7-2-5 파이팅”으로 북녘 산천에 메아리 쳤다(주변에서는 저 소리가 뭔 소리 당가 하고 모두 처다본다).
식사를 마치고 외금강호텔로 돌아왔고 금강산에서 하루 밤을 마누라와 함께 맞이하는 친구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금강산 최고의 호텔 외금강호텔에서 부인과의 하루 밤은 너무 짧았다. 물론 밤을 무서워하는 친구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밤 10시가 안 되었는데 친구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일찍 시작하겠지........(뭣을아?)
[6/3(일)]
아침 6 : 30 분 호텔에서 제공하는 부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해금강을 갈 것이냐, 만물상을 갈 것이냐, 설왕설래 하다가 만물상 관광이 힘은 더 들어도 볼 것이 많다는 김석종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산행을 싫어하는 친구들도 할 수 없이 만물상 산행에 나섰다.
만물상에 가는 길은 노폭이 5미터 남짓(일방통행)한 시멘트 포장도로로 소위 문자로 구절양장이라고 하던가.... 구불구불하고 험난한 산길을 돌고 또 돌아 올라갔고 도로변의 맑은 계곡물과 하늘을 찌르는 수백년 묵은 금강송과 기암괴석을 보느라 벌어진 입이 닫혀지기도 전에 버스는 주차장에 당도했다. 여기를 바도 저기를 봐도 사방팔방 온통 동양화를 빙 둘러놓은 것 같은 비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오매 시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냐? 무릉도원이 따로 없으니 내가 신선이 되는 것 같다.
귀면암, 철부암, 안심대, 천선대.... 험난한 산행길은 산천을 보노라면 발길을 옮길 수 없었고, 발길을 옮기려면 산천을 볼 수가 없었다. 천선대에 오르는 길은 거의 70-80도에 이르는 경사여서 곳곳에 철계단를 만들어 놓았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겠지.... 가쁜 숨을 쉬고 정상에 오르니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천선대. 이미 몇몇 친구들이 올라와 있다. 기념사진 한방. 심호흡. 2 : 30 시간 남짓한 만물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산행으로 허기진 배를 시원한 김치찌개로 채웠다.
오후에는 2725 남자친구들은 족구를 하기로 하고, 부인들은 금강산온천장에 가기로 했다. 김석종 친구의 배려로 족구코트를 빌려서 개발(견:犬)(족:足)수준의 친구들과 30여분간 운동을 하고 온천장에 들러 몸을 푹 담궜다. 관광객으로 간 남한 주민이 북녘 땅에서 족구를 한 것은 아마도 역사상 최초로 기록될 것이다. 온천장의 입장료가 12달러인데 전액 무료입장을 시켜주었다. 누가- 김석종 금강산관광추진위원장님께서. 하긴 넘처 흐르는 물에 몇명 더 몽둥이 담궜다고 원가가 얼마나 추가되겠어...어떻든 다들 돈 내고 들어가는되 공짜로 때빼고 광내니 더 신 나더라고.. 노천탕에 누워 바라보는 금강산 상상하시라...
온천을 마치고 나오자 눈앞에 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이 펼쳐 지는데 산의 능선에 남근석이 가로로 누워 있었다. 왜 서 있지 않고 누워있당가? 전설인지 지어낸 구라인지 옆에 본처가 있어서 그런다나? 그럼 애첩이 있으면 서 있을 랑가?
[남쪽으로 귀환을]
오후 4시경 입출국을 위한 준비에 바쁘다. 버스에 올랐다 내렸다 수차례 한 후 5시 30경에 남녘땅에 도착했다.
[가깝고도 먼 길]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차량으로 불과 10분 거리를 두고 있는 남북한
모든 것이 너무 달랐다.
같은 것이 있다면 산천과 동포들이다.
[팬스를 사이에 두고]
관광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울타리가 처져 있다.
울타리 안에는 관광객이, 울타리 밖에는 북한 인민군과 인민들이 있다.
울타리를 경계로 우리는 인민을 보고, 인민은 우리를 본다.
마음은 경계를 넘고 있는데 몸은 경계를 두고 떨어져 있다.
비극이고 슬픔이다.
언제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보듬고 가야하는 한겨레가 아닌가?
[금강산의 비경을 담아왔습니다]
눈에 마음에 비친 아름답고 경이로운 금강산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아마추어들이 찍은 사진이지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기를 마치며]
이번 금강산 산행을 과감하게 결정하고 추진해 준 선순규 회장님, 특히,이번 산행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 현대건설 부장 김석종 친구에게 친구들을 대신하여 심심한 고마움을 표하며 (이 정도 아부를 해야 다음에는 더 신경을 쓸 것이므로.친구들의 능력이 대단함을 이야기한 것임) 어려운 산행에 함께 해준 사모님들께도 감사함을 표합니다. 다음 산행 기회가 있다면 더 많은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간단하게 산행후기를 이만 줄입니다.
첫댓글정비석 선생의 글보다 한수 위다. 더 말할나위가 전혀 없다. 아무나, 법률회사의 간부가 될수없슴을 이 글에서 확연하게 확인이 가능함. 멋지고 찰지고 간결하고, 넘치고,보이다가 ,느껴지는 글이다. 최 대장! 멋지다. 나는 절필하겠네. 자네의 글 앞에서면, 나는 쭈그러지는구만...,잉. 정말 거시기하게 멋있구만, 아름다운 글이였네...
급히 작성하다 보니 조장(가이드)의 언급이 빠졌네. 쌩콩 - 북한에서는 초보자를 그렇게 표현한 답니다- 이였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이드로서 금강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오직 몸으로 때운다는 것.... 담에 갈때는 좀 유익한 관광 정보를 들을 수 있을라나.
첫댓글 정비석 선생의 글보다 한수 위다. 더 말할나위가 전혀 없다. 아무나, 법률회사의 간부가 될수없슴을 이 글에서 확연하게 확인이 가능함. 멋지고 찰지고 간결하고, 넘치고,보이다가 ,느껴지는 글이다. 최 대장! 멋지다. 나는 절필하겠네. 자네의 글 앞에서면, 나는 쭈그러지는구만...,잉. 정말 거시기하게 멋있구만, 아름다운 글이였네...
급히 작성하다 보니 조장(가이드)의 언급이 빠졌네. 쌩콩 - 북한에서는 초보자를 그렇게 표현한 답니다- 이였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이드로서 금강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오직 몸으로 때운다는 것.... 담에 갈때는 좀 유익한 관광 정보를 들을 수 있을라나.
개인적인 일정때문에 동참하지 못해 무쟈게 아쉽네.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리얼한 최총장님의 후기를 읽고나니 금강산에 갔다온 느낌이 드네그려. 암튼 고생들 많으셨고 알찬 후기를 남겨주신 최총장님 감사혀유..
좀더 소상하게 쓰면 좋으련만 워낙 글 재주가 없는데다 노인들이 긴 글 읽을라면 눈이 피로하잔혀~
금강산 산행을 이렇게 흐뭇하고 감동적으로 마치고 온 친구들이 너무 부럽네. 그리운 금강산 언제쯤 갈 기회가 올련지....일행 전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려졌으면 더욱 좋겠네.
위에 올려놨네 - 고영철이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상존하는 곳이었다. 분실의 아픔과 습득의 기쁨이 있었다(고영철 카메라 사건). 억류에 대한 두려움와 석방의 기대감이 있었다(박상국 너 걸렸으면 아오지 탄광행에다가 2725 삼개월 억류깜이다. 계곡물이 조금 짭잘했을 것이다)냉온이 존재했다(온천). 발기와 발기부전이 존재했다(남근석). 2725는 기뻣고 또 미래를 기약했다.
새로운 경험과 멋진 추억을 갖게한 이번 여행을 계획, 주선,준비해준 선회장, 최총무,김석종, 모두모두 고맙다. 카메라 분실로 소란스럽게되어 미안하고....^^ 하지만, 추억의 순간들을 다시 찾을수 있음에 다행스럽다. 다음 산행에서 다시들 만나세.
손자(?)를 등에 업고 금강산을 간 고총무가 가장 부러웠다(사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 애까지 챙기다보니 카메라가 어디간 줄도 몰랐겠지. 고상했어. 친구
이번 금강산 관광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하신 선회장,최고 총무님,김부회장님 고맙습니다.친구들의 고생이 밑거름되어 여러친구들에게 즐거움과 진한 감동 그리고 모처럼 마누라에게 어깨 폇습니다.무지 감사허이.
부럽다. 부러워. 살아가는 동안 가보아야 할 곳을 좋은 벗들과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을 터, 이번 12인의 금강산행은 일생 좋은 기억으로 맘 한켠에 자리하겠다...부럽다...먹고 사는게 뭔지...ㅠㅠ
회장단이 사고를 잘치는 인사들로 주류를 이루다 보니 사고많이 친다. 좋은 사고! 잠이 확 깨는 느낌이 드는 2725다. 남자가 이정도는 밀어부쳐야 보는 재미도 있지!
아~ 부럽다는 말 밖에...누구는 시골에 제사 지내러 가는데 니들만 재미봤냐? 사고쳐서 붙들린 넘 없이 모두 무사 귀환하여 반갑다. 다음 산행 때 히든 스토리 좀 들어 보자. 석종이의 마음 씀씀이가 안 간 사람의 마음까지 흐뭇하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