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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감사의 마음을
로마서 1:21-23
롬 1:21-23 /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는커녕 날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시는데도 감사조차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또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어리석은 생각마저 품고, 그 어리석은 생각에 아둔해져 분별력조차 잃어버렸습니다. 22) 하나님 없이도 현명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와는 반대로 완전히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23) 그들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영광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대신에 나무나 돌로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형상을 본뜬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숙도(成熟度)를 측정할 때 감사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성숙자는 그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감사는 성숙한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아무나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많이 주어져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나이를 먹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줄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미성숙-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
반면 작게 주어져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양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삶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19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보이셨다(인간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20절에서는 ‘이미 창세 때부터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줘 알게 하셨다(세상이 창조된 이래 인간들은 땅과 하늘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고 그분이 어떠한 분이며 또 얼마나 위대하고 능력이 영원한 분인가를 알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을 모른다.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감사하지도 않는다.’고 우려를 하고 있다.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하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부모가 어떤 분인지는 자식이라면 아는 것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부모에 감사하는 일은 자식이라고 해서 다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와 은혜를 모르는 자식이 많다. 어려서는 부모를 의지하는 것이 본능이겠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자신이 독립하려는 의지는 좋은 것이겠지만 부모나 형제에 대하여 존경이나 우애를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의무로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으니 ㅠㅠ.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한다는 것은 그림의 떡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일까? 은혜를 체험했다고 하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언제 은혜를 베풀어주셨느냐며 원망과 불평만 하는 것이 본능처럼 되어버렸으니 ㅠㅠ.
사실대로 표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어려움이 100이라면 우리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20-30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원망 죄
불평ㆍ원망하는 것이 큰 죄가 아닌 줄 알지만 멸망과 불행을 가져오는 무서운 죄가 된다.
▶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2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광야를 맴돌다가 불평하던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남녀를 합치면 광야에서 약 100만 명 이상이 죽었을 것이다.
유 1:15-16 /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앞에 세우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의 무서운 반역 행위가 밝혀지고 또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온갖 불손한 말이 백일하에 드러나 그들은 응분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16) 이런 자들은 언제나 불평만을 늘어 놓을 뿐 결코 만족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만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떤 악한 일이라도 태연하게 해내며 큰소리를 치고 자기를 내세웁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때라곤 무엇인가 얻으려는 속셈이 있을 때뿐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여 불평하고 원망한 강퍅한 말(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출애굽 해 나왔는데도 앞에 홍해가 가로 막히고 뒤에 애굽 군사가 쫓아온다고 금방 울부짖으며 원망하기를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겠노라”고 악한 말을 했다. 물론 급박한 상황이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엄히 구분해야 했는데 … ㅠㅠ
그 때에 위대한 지도자요 하나님의 종인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있어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하고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 때 홍해가 갈라지며 육지가 되어 그 가운데로 건너가 구원을 받고 애굽 군사는 뒤따라오다가 모두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다.
▶ 민수기 11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또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애굽 군사들이 병거와 함께 수장 지낸 것을 보았고,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보면서도 그리고 아침마다 맛있는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으면서도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민11:4-6)라고 악한 말을 하였다. 이 만나는 갓씨와도 같고, 진주와 같이 생겼으며, 기름 섞은 과자맛 같다고 했다. 얼마나 맛있겠나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들은 해야할 감사는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원망과 불평을 했다.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기를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주어 먹게 한 다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
▶ 민수기 13장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두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는 모두 백성 앞에 불신앙적인 말,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성읍은 견고하고 아낙 자손들은 얼마나 대장부들인지 우리는 그 앞에서 메뚜기 새끼와 같다고 보고하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였다(민 14:1)고 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불평과 원망을 했다. 그 말 그대로 40년 동안 광야를 맴돌면서 다 죽게 한 다음 불평 대신 믿음의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이 원망 죄는 생각이 없어서 짓는 죄이다. 보면 특별히 원망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입만 열면 원망하고 탓하고 불평을 한다. 그것은 생각이 짧아서 그렇다. 소망을 가지고 멀리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축복을 바라보아야 할 터인데 영안의 시력이 1치 앞도 보지 못하는 맹인에 불과하여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뜻만 주장하고 있으니 어찌 주시려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마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좀 깊이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감사하고, 자족(自足)하는 마음을 가짐으로 원망할 이유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런데 놀부처럼 입만 열면 원망을 하는 것은 분명 생각이 짧아서 그렇다.
원망 불평은 전염성이 강해서 유행병처럼 퍼져나간다. 처음에 애굽을 떠날 때에 섞여 사는 무리가 불평하기 시작하니까(민 11:4) 온 백성에게 퍼져서 온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했다.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원망 불평하는 자를 극히 조심해야 된다. 그리고 열두 정탐꾼 중에 10명이 불평의 말을 하니까 온 백성이 밤새도록 곡하며 울부짖었다.
웃지 못 할 일은 불신인들보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원망을 더 잘 한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원망의 대상이 세상 사람을 향한 것이며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원망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체념하여 운명으로 돌려버린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니까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새벽기도도 했고, 십일조도 드렸는데 그런데 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 왜 잘 안 해주느냐? 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이 성장하지 않거나 설익어서 나오는 행동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원망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도 성도라고 다 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는 은혜에 감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욥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을 몇 사람이나 찾아볼 수 있는지? 아니 옆 사람보다 내 자신을 놓고 볼 때에 몇 %나 닮으려고 노력이라도 해 보았는지 ….
욥 1:21 / 어머니 뱃속에서 빈 몸으로 나온 이 몸 다시 빈 몸으로 돌아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가져가지는 분도 여호와시라.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라.
이어서 욥에게 오는 두 번째 시련에서는 함께 살아왔던 욥의 아내도 손을 들어버렸지만 욥은 그러나 순전한 믿음을 지켰다.
욥 2:7-10 / 사단은 하나님 앞을 물러 나오자 곧 욥을 내리쳐 그의 몸에 심한 종기가 나게 하였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말할 수 없이 심하게 번졌다. 8)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 도자기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다. 9)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그래,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믿음을 지키고 있단 말이에요. 참, 속 터지는 양반 다 보겠네. 차라리 하나님에게 욕이나 퍼붓고 죽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10) 욥이 대답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아요. 당신조차도 어리석은 여자같이 말하는구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때 우리가 얼마나 좋아했소. 그런데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어찌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겠소' 욥은 이렇게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말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강조하였다.
약 5:10-11 /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로 이겨 낸 주님의 예언자들을 본받으십시오. 11) 그들은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끝내 주께 진실했으므로 지금 하늘나라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욥은 슬픔을 이기며 끝까지 주님을 믿은 사람의 모범입니다. 욥이 겪어 낸 일을 보고 우리는 주님의 계획이 축복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한없는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욥을 본받으라고 하면서 모두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엘리야의 실례를 들어 권면을 하였다.
약 5:17-28 / 엘리야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다시 비가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자 비가 쏟아져서 초목이 다시 푸르게 되고 들의 곡식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욥의 아내와 같이 중도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편에게 불평을 퍼붓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되지 말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권고를 마음에 되새기자.
살전 5:16-18 /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야고보 사도도 믿음의 형제들에게 인내력을 키우라고 권면하였다.
약 1:2-5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3) 험난한 길은 여러분에게 인내를 기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4)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5)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알고 싶거든 하나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후하게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결코 여러분을 꾸짖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무조건 욥이나 엘리야처럼 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신다. 초등학생에게 대학생처럼 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작은 겨자씨를 예를 들어 이렇게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막 4:30-32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31)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 겨자씨는 모든 씨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지만 32) 땅에 뿌려진 다음에는 어떤 식물보다도 크게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진 가지에 깃들일 만큼 무성하게 된다.
그러나 감춰진 보화처럼 또는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처럼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냥 도깨비 방망이처럼 두드리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마 13:44-46 /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흥분하여 그 밭을 사기 위해 있는 것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밭을 살뿐만 아니라 보물까지도 얻는다! 45) 또 하늘나라는 값진 진주를 구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장사꾼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믿고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주사 모든 욕과 핍박에 굴하지 않고 자기에 주워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여 주신 계명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것처럼 내 속에 있는 원망과 불평의 쓴뿌리들을 제거하여야 한다.
교만 죄
교만이 죄이다. 교만은 자만하고 자기 과신 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교만죄를 잘 짓는다. 사람이 자기 과신이 크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부분이 그만큼 작아지게 된다. 자신을 과신하는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는 부분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내가 배제되고 작아지고 겸손한 만큼 하나님의 부분이 커지고 의존도도 높아진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자신을 과신하면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뢰기반이 작아진다. 그래서 ‘교만이 죄’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믿음이 좋은 줄 알고 살아가는 것도 교만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정죄하고, 탓하고, 남에게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우를 범하고 스스로 의롭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기 쉽다.
그런데 이런 교만은 어설픈 사람에게 찾아온다. 생각이 깊지 못해서 발생하는 마음이다. 매사가 그렇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어설픈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운동도 어느 경지에 이르도록 깊이 연마한 사람은 운동하는 표를 내지 않는다. 표 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입문단계에 들어가 초단을 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돌아다니며 주먹 자랑하다가 사고를 치게 된다.
그렇듯이 학문을 깊이 연구한 사람도 표를 내지 않는다. 겸손하다. 그런데 학문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다 보니까 교만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부자는 티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검소하다. 그런데 졸부들이 부자행세를 하며 나타내고 돌아다닌다. 정치인도 보면 초년생들이 막말을 쏟아낸다. 무안하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말을 막 한다.
오늘날 정치하는 분들 보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막말을 막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옛말이 틀림없다. 옛말에 적당히 무식한 사람이 가장 용기 있다고 했다. 이 교만이 죄이다.
교만 : 자신의 뜻과 판단을 따라 사는 삶이다.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고 자신의 판단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성경은 ‘교만’이라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배경에 의지해 마음대로 살며 다른 이를 무시하는 사람을 교만하다고 한다. 신명기는 성공했을 때 교만한 마음이 틈타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신 8:17 / 여러분은 평안해지더라도 ‘이 모든 재산은 내 손으로 일해서 모았고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 하고 착각하지 마십시오(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고 말할 것이라.).
‘내 능력’과 ‘내 손’으로 ‘내가’ 성공을 이룬 걸 세상은 자수성가(自手成家)라고 좋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신앙인에게는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마 23:12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교만의 결과를 명확하게 말해준다.
신 8:2-3 /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난 40년 동안 저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신 그 여정을 모두 돌아보십시오. 그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한편, 여러분이 과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여 알아보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3)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으실 때에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여러분도 몰랐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주께서 여러분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했을 때에 주의해야 할 말씀은 우리의 눈길을 꾼다.
8:14-18 / 여러분은 절대로 교만해지지 마십시오. 바로 그때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마십시오. 주께서는 여러분을 애굽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15) 저 끝없이 넓고 위험한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셨고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물 한 방울 없이 메마른 곳에서 여러분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바위에서 물을 먹여 주시고 16) 광야에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조상들도 모르던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의 고집을 꺾고 여러분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시려고 굶주리고 목마른 고생길로 인도하셨으나 이것은 나중에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7) 여러분은 평안해지더라도 `이 모든 재산은 내 손으로 일해서 모았고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 하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18) 오히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모든 재산을 얻었다는 것을 아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부강하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이에 반해 하나님을 뵈옵는 분들 모두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됨을 고백하였다.
사 6:5 / 그때에 내가 외쳤다. `이제 나는 죽었구나. 입술이 더러운 이것이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임금님을 눈으로 직접 뵙다니! 아, 이제 나는 저주받은 몸이 되었구나.'
눅 5:8 /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오 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주님을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특히 욥의 고백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참 크다고 할 수 있다.
욥 42:1-6 / [하나님께 꿇어 엎드리다] 그러자 욥이 여호와께 이렇게 아뢰었다. 2)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는 줄을 나는 잘 압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모든 일을 다 이루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3) 주께서는 말씀하셨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내 계획을 가리는 자 그 누구냐고 말입니다.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깨닫지도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 댔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해댔습니다. 4) 주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듣고만 있으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질문하실 때 대답해 보라고 말입니다. 5) 전에는 내가 소문으로만 주님에 대해서 들어 왔습니다만, 이제 이 두 눈으로 주님을 똑똑히 뵙고 있군요. 6) 이렇게 내가 꿇어 엎드립니다. 먼지바닥 위에 앉아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
위선 죄
신앙생활 하다보면 이 위선 죄를 짓게 된다. 위선자를 영어로 히퍼크릿트(hypocrite)라고 한다. ‘가면, 배우’란 뜻이다. 배우는 ‘가면 쓴 사람’이다. 배우는 연극할 때 속마음이 쓰려도 웃는다. 왜냐하면 연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선이다. 킬케골이 쓴 ‘가면’이라는 작품을 공연하기에 앞서 선전하기 위해서 배우들이 동네에 들어가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며 광대짓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들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데 그만 극장에 불이 났다. 그래서 불이 났다고 떠들어댔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연극 참 잘한다고 박수를 더 크게 쳐 주었다. 나중에는 진짜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를 하니까 사람들은 더 잘한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 이것이 가면이다. 위선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때로 이렇게 위선자가 될 때가 있다. 마음에도 없는데 좋은 체하고, 아는 체하고, 잘 믿는 체하고, 선한 체하고, 경건한 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는 이웃을 위하여 체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하기보다 선을 위한 희생이라고 한다면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체하는 것은 악한 위선이다.
바울이 한 말의 뜻을 되씹어보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야 한다.
고전 9:20-23 / 나는 유대인과 같이 있을 때는 유대인처럼 행동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대교의 관습과 의식을 따르는 이들과 같이 있을 때는 그들의 의식에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논쟁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21) 이방인과 같이 있을 때도 될 수 있는 한 그들과 잘 어울리려 노력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당한 일은 반드시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들의 신뢰를 얻게 되어 결국 그들을 돕는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22) 사소한 일에도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내가 다 아는 것처럼 나서거나 그들을 어리석다고 탓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깨우치게 하여 나의 도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려고 애쓰는 것은 그들이 자진해서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를 청하게 해서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23) 이 모든 것은 그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하신 경고의 뜻도 되씹어보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야 한다.
마 6:1-3 / 칭찬을 받으려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베푸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아무런 상도 받을 수 없다. 2)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의 자선행위를 드러내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분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그러니 네가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 6:5 / 또 기도할 때 경건한 체하는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큰길 모퉁이와 회당에서 드러나게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마 6:7 /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그들은 자꾸 되풀이해야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줄로 생각한다.
마 6:16-18 / 금식할 때 위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침울한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얼굴을 창백하고 텁수룩하게 하여 보는 사람에게 측은한 생각이 들도록 한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17) 너희가 금식할 때에는 얼굴을 깨끗이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고운 옷을 입어라. 18) 그리하여 모든 비밀을 아시는 너희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왕이면 마태복음 23장의 책망의 말씀의 뜻을 되씹어보면서 고쳐나가도록 하자.
마 23:25-33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은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26) 눈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속을 깨끗이 닦으라. 그래야 잔 안팎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27)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아름답게 장식한 무덤 같아서 겉은 좋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위선과 죄가 가득 차 있다. 29) 화가 있으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너희 조상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인들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워 놓고는 30) `우리는 조상들이 저지른 행동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31) 이것은 너희가 예언자들을 죽인 악한 자들의 자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32) 그리고 너희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밟아 가고 그들의 악을 다 채우고 있다. 33)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피하겠느냐?
결국 위선의 대표자격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뱀들이며, 독사의 자식들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 오히려 매서운 경고를 더 하셨다.
마 5:20 /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보다 더 의롭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잠시 마태복음 5장 20절 말씀을 되새겨 보면 유익할 것이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은 그리스어로 ‘그람마튜스’인데, 모세의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율법학자’ 또는 오늘날 ‘성서학 교수(특히 구약학 교수)’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당시의 서기관들은 선생님들로서 율법을 연구하고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잘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바 자신들이 먼저 율법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대다수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자주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이러한 서기관들과 비교해 볼 때, 바리새인들은 매우 신앙심이 좋은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으며, 율법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실천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자랑할 정도였다. 바리새인들은 세리나 죄인들을 경멸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더욱이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눅 18:11-12).
바리새인들은 지극 정성으로 십일조를 철저히 실천하기 위해 밭에서 나는 소량의 농작물인 박하, 근채, 회향의 십일조까지 꼼꼼히 챙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박하와 근채와 회향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인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버렸다고 지적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질책하셨다(마 23;23). 바리새인들도 결국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위해 겉치레에 열심히 했지, 속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꾸짖으셨다(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종교 지도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늘나라의 문을 가로막고 서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하고 있다 / 마 23:1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예수님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폐지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씀을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 해명을 해 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던 것이다(마 5:20).
서기관의 의는 무엇인가? 서기관의 의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율법을 실천하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생활을 했다. 공부 좀 했다는 사람, 소위 지식인들이 이러한 잘못에 빠지기 쉽다. 우리 ○○○신학대학도 선지학교가 아니라 서기관 학교라고 평하는 유행어가 생겼다.
바리새인의 의는 무엇인가?남보다 믿음이 좋고, 경건한 생활을 남보다 앞장서 실천하였다. 저들은 특히 기도하고, 금식하며, 십일조하는 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매우 사소한 문제까지 문자적으로 따지며 시비를 가리면서도 정말로 중요한 본질은 간과하였다. 겉모양은 그럴듯한데 그 속 내용은 썩은 회칠한 무덤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 저들의 주 관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리새인은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은 정죄하고 멸시하였다.
조심할 것은 에스라와 같은 학사도 서기관 중에 한 사람이었다. 바울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매우 모범적이었다. 그럼에도 저들의 뒤를 좇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하향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것은 왜일까?
▶ 요한복음 2:13-22을 묵상하면서 “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자 했던 저들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지 못하고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예수님께 ‘화 있을진저!’라는 무서운 책망을 들어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거울로 삼아 늘 들여다보아야 한다.
신 9:7-8 / 여러분은 광야에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얼마나 자주 격노케 하였던가를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항상 여호와께 불평하며 거역하였습니다. 8) 호렙산에서는 여러분이 어찌나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던지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진멸시키려고 결심하실 정도로 진노하셨습니다.
신 32:7 / 먼 옛날을 기억해 보고 대대로 내려 온 시대를 더듬어 보며 본래 너희가 어떤 족속이었던가를 너희 부모에게 물어 보고 너희가 어떻게 선민이 되었는가를 노인들에게 물어 보아라.
바울의 지적은 당시 고린도교회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하신 충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전 10:10-14 / 또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하거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대하시는 일에 불만을 늘어놓아서도 안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들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 11) 그들에게 일어났던 이러한 일들은 모든 사람에게 경고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됨으로써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12) 그러므로 조심하십시오. 누가 언제 같은 죄를 범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3) 여러분에게 파고드는 악한 욕망은 새로운 것도 별다른 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들도 여러분보다 앞서 같은 문제에 부딪쳐 싸워 왔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유혹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물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한 유혹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약속해 주셨고 또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십니다. 유혹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실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은 인내로써 그 유혹을 극복해야 합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조심하여 우상숭배를 피하십시오.
이에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 8:31-59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자신들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며 예수님께 대항했다. 이에 예수님은 저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을 하셨다(요 8:44).
나와 우리 모두의 의는 어떠한 의(義)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의를 길러야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기관의 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순종하려는 열의를 보이는 바리새인의 의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금식하며, 십일조 생활에도 힘써야한다. 이웃 사람들에게 특히 믿는 이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마 23:23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율법에 따라 바치면서 정의와 자비와 믿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무시하고 있다. 물론 십일조를 바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마 23:25-26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은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26) 눈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으라. 그래야 잔 안팎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서기관의 의나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의이겠는가? 그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이다. 그것은 내가 만든 의가 아니며, 사람들이 내게 만들어준 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의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을 보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1-4, 7-8)
부모형제도 모르고, 심지어 같이 사는 부부지간에도 모르고 만나는 교인들도 모를 수 있으나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모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언행심사를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의이다.
좀 길지만 누구보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서기관 중에 서기관이었던 사도 바울이 자기를 모델로 하여 기록한 빌립보서 3장을 읽도록 하자.
빌 3:4-6 / 그러나 만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에 충분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만을 본다면 확실히 나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5) 나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아 오랜 전통의 베냐민 가문에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유대인의 표지를 받기 위해 할례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진짜 유대인입니다. 게다가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관습을 지키기를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는 바리새파 회원이었습니다. 6) 얼마나 그악스러웠던지 교회를 모조리 핍박했고 유대교의 모든 규칙과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려 온 힘을 쏟았습니다.
빌 3:7-11 /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9) 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0)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1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빌 3:15-16 / 나는 여러분이 모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점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생각을 달리하는 점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16)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됐든지간에 이제는 같은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우리 모두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다’(행 13:22)라고 칭찬하셨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참으로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
감사하지 않는 죄
그런가 하면 우리 같은 교인들이 짓는 죄 가운데 또 감사하지 않는 죄를 짓는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감사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지금은 감사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배신(背信)과 배은(背恩)과 망덕(亡德)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한다. 배은망덕 시대라 부르고 감사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라고들 우리 역시 그렇게 말한다. 부모를 버리고, 스승을 버리고, 자기직장에 불을 지르고, 부수고, 친구를 버리고, 신세진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시대이다. 심지어 풍년이 든 것과 같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배고프지 않고 살이 찔까 염려까지 하며 사는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들이 없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잘 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호언장담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어른들이 감사하는 삶이 없으니까 그 영향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 그래서 아이들은 감사와 은혜와 보답이라는 정신은 물론이고, 말까지도 듣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학생들을 보십시오. 부모, 스승에게 감사할 줄 아는지?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부모가 뭐라 말을 하면 곧 바로 대든다. 그러니 학교에서 교사가 이웃어른들이 남의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부족하고 적은 것에 불만하고, 불평은 해도 만족해하거나 감사할 줄 모른다.
안 믿는 사람들은 상관하지 말고 믿는다고 하는 우리를 보면 하나님을 알기는 알고 있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분이고, 은혜를 주시는 분이며, 실제로 우리 모두 은혜를 조금이라도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도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은 마음에 없다.
한 마디로 경건을 추구하는 믿음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감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원망하고, 시비하고, 불평에 가득 찬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모두 깊은 생각이 없어서 짓는 죄이다.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깊은 신앙에 들어가지 않고 살면 누구든지 원망부터 나오게 되어 있다.
베드로 사도가 노년에 성령님으로 인한 묵직한 충고를 한 권면을 읽어보자.
벧후 1:2-4 /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더욱더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십시오. 3)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4) 그리고 그 같은 권능으로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욕과 부패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품성을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벧후 1:5-12 / 그러나 이런 은사를 받아 간직하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6) 더 나아가 여러분은 욕망을 버리고 인내와 경건을 몸에 익히며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7)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사귈 수 있고 친밀해지며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9) 믿음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장님이든지 심한 근시안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 강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죄에 물든 옛 생활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10)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더욱더 힘써 여러분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고 11)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접하시고자 우리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실 것입니다. 12) 이런 일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어서 잘 지켜 나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여러분이 잠시라도 잊어버리는 일이 있을까 염려되어 당부해 두는 것입니다.
감사할 이유
원망, 불평, 불만은 모두 은혜가 식어지거나 믿음이 떨어져서 짓게 되는 죄이다. 이러한 죄는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게 된다. 반면 감사하는 마음은 배우고, 성숙해지고, 묵상하고 간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마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이 이렇게 감사하라고 강조하시는 데는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이다.
■ 어느 실업가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했다. 그런 결단을 하고 나서 얼마 뒤, 그는 많은 월급을 받는 중역의 지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다른 직장을 구하려했지만 쉽지 않았습. 그의 가족은 재정이 궁핍하게 되었고, 빚도 늘어났다. 더구나 그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 같아 날로 걱정이 늘어갔다. 그는 1년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그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설교를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업을 주지 않은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날 실직으로 인해 그와 가족들이 겪어야하는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주일에는 하루 종일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그러자 그는 이런 환경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신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다른 회사 중역이 같이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새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 새 직장은 봉급도 많았다. 그러나 더 감사할 것은 그가 매일 사원모임에 나가 사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를 증거하며 영접시켰다는 것이다. 그 실업가는 “제가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축복한 계획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께감사하고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축복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무조건 감사하면 축복의 문이 열린다. 우리가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작은 일도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고난 중에도 감사할 때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한 칼빈은 무려 25가지의 병이 있었다. 밤에는 몸이 아파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가 잠을 못 이루고 병고에 시달릴 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기도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다가 칼빈은 큰 은혜를 받게 되었고, 영감을 받아 <기독교 강요>라는 훌륭한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이다.
질병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겸손과 감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뉴욕의 부룩클린 교회를 담임했던 에반스 목사님은 2년 동안 결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투병생활을 할 때 투병신조 4개 항목을 정해놓고 그대로 지키면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 나는 결코 불평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나는 집안 분위기를 밝게 유지할 것이다.
3.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 감사할 것이다.
4. 나는 질병을 유익한 것으로 바꿀 것이다.
■ 믿지않는 남자와 결혼생활을 시작한 한 여집사님이 있었다. 이 남편은 신혼 초부터 술을 먹었는데, 10년이 넘도록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아 가슴앓이를 많이 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늦은 시간에 남편은 술이 취해서 현관 입구에 쓰러져 있어 간신히 남편을 방으로 끌어다 눕혔다. 그녀는 매일 술이 취해 들어오는 술주정뱅이 남편과 씨름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밤낮으로 기도했는데, 남편은 왜 변하지 않을까요? 이제 저도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하고 10년 동안 힘들게 살아온 설움에 북받쳐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 아닌 기도를 하다가 지난 주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는 감사할 거리를 애써 생각해 보았다. 옆에서 정신없이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쳐다보며, 한심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되겠지 싶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그래도 남편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겠다 싶어 감사했다. 저렇게 술은 취해 있지만 다른 곳으로 안가고 집으로 찾아와서 잠을 자니 감사, 술 마시면 손찌검하며 식구들을 괴롭히는 남편들도 있다는데, 그런 주사가 없으니 감사, 술은 좋아해도 여자는 아내 밖에 모르니 그것도 감사, 술은 많이 마시지만, 병원에 안다니는 것도 감사, 술 먹은 다음날도 결근 안하니 감사, 토요일에는 술을 더 많이 마셔 주일은 어김없이 잠만 자서 교회가는 것 방해 안하는 것도 감사 등등 감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생각이 들었지만 불평보다는 감사를 하고 나니 기쁨이 생겼다. 그래서 자는 남편을 내려다보며 웃으면서 감사기도를 읊조리고 있는데, 자다가 목이 말라 잠이 깬 남편은 웃으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아내에게 의아해서 물었다. “여보, 한 밤 중에 잠도 안자고 뭐가 좋아서 싱글벙글이야?” 그랬더니 아내는 “당신과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기도했던 감사의 내용을 모조리 말해 주었다. 심각하게 듣고 있던 남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여보, 내가 술을 먹고 그렇게 당신 속을 썩였는데도 나와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하니 고맙소. 이제 부터는 술 끊으려고 노력도 할 것이며, 당신이 소원이라면 당장 교회도 다니겠소.” 10년을 울면서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더니, 감사하니까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이다.
■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이라는 박사가 있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다. 척추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척추암은 수수로도 약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탠리 탠은 “아! 네, 전 하나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살려주시면 살고, 죽이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매순간마다 감사하고 감사했더니 암세포는 없어지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요즘 미국의 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치료보다는 소위 ‘감사’치유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감사한 일을 무엇일까를 찾아내게 하고 감사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물치료보다도 이 감사치유법이 훨씬 더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감사채료법은 단지 정신과적인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탠리 탠의 경우와 같이 육체의 질병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신경과민증 환자 1천명을 조사했더니 그들 가운데 95%가 남을 비판하고 원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모였다 하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누구 욕하고 누구 걸고 넘어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신경과민증이 생길 수 있다. 반면에 날마다 감사하면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해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다(살후 2:13).
결 론
물질의 풍요시대 속에서 오히려 요즘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인색해졌고 섬김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왜 감사가 없을까? 있는 것은 보지 않고 없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것은 망원경으로 작게 보고 남에게 있는 것은 현미경으로 크게 보며 비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잘 안 되는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모두 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린다. 사업이 망하게 된 것,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 질병에 걸린 것, 이혼한 것도 다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한다. 이렇게 삐뚤어진 마음을 갖게 되면 이웃도 불행하게 만들지만 가장 먼저 내 자신이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남을 탓하지 말고 누구누구 덕분에 내가 잘 되었다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 인생도 행복해진다. 직장인은 사장 덕분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거꾸로 고용주는 사원들 덕분에 회사가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한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탓하는 대신에 누구누구 덕분에 건강하고 잘 살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사실을 감사하면 우리 모두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 전기 한 가지만으로 570개 계열사와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일본의 세계적인 경영인이 있다. 마쯔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자전거 점포의 점원으로 출발해서 대기업가가 되었다. 마쯔시다는 사업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세 가지 감사할 조건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첫째는, 11살에 부모님을 잃었기에 남보다 일찍 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제 학력의 전부였기에 평생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셋째는, 어려서부터 늘 몸이 약했기에 자연 건강에 신경을 썼더니 이렇게 건강하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마쯔시다 회장이야말로 남들이 보기에 억세게 불우했지만 그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불평하는 자식을 좋아할 부모는 없다. 불평하는 것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자식이 어떻게 부모에게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 부하가 늘 상사를 뒤에서 욕하고 불평할 때 그런 소리를 듣고 부하 직원을 좋아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항상 즐겁고 쾌활하고 명랑한 직원을 거느린 상사는 마음이 즐겁고 그 직원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보통 20대 이전의 얼굴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지만,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 말은 살면서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얼굴 모습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불평의 습관을 버리자.
■ 미국에서 하루는 멋쟁이 숙녀가 고급 밍크코트에 번쩍번쩍 하는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머리에는 근사한 모자를 쓰고 기차를 올라탔다. 기차에 올라와 앉자마자 불평을 늘어놓는데, “기차간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역무원들은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음식은 왜 이렇게 형편없느냐?”는 등 계속 불평만 늘어놓았다. 보다 못해 옆에 있던 신사가 그 여자를 ‘불평을 만드는 공장’(complain factory)이라고 하였다.
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이다. 불평은 마귀를 기쁘게 하는 삶이요,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서 그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관은 어떤 행위를 하고 또 하고 반복할 때 생긴다. 불평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고 불행한 일이 찾아오게 되고, 감사의 습관을 갖게 되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행복한 날이 찾아오게 된다. 불평은 한 번, 두 번 자꾸 해 버릇하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사탄의 노예가 되고 불행하게 된다. 모든 불평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키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감사의 습관을 키우자.
불평의 습관은 무슨 고통이 있을지라도 벗어버리도록 하고 대신에 감사의 습관을 키워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 아래 살기 때문에 감사의 습관이 몸에 베어있다. 어려서부터 “Thank you” 혹은 “I appreciate(고맙게 여기다)” 이런 말이 몸에 베어있어 있는데 동양 사람들은 감사의 습관이 안 되어 있다. 큰일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 생길 때만 아니라 고난을 당하고 슬픔을 당할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요셉은 시기하는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다가 애굽 상고들에게 팔아먹었는데 그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라고 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인가? 종으로 팔려갈 때가 축복의 시작이었고, 억울하게 감옥살이할 때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요셉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은 우리 생활 전반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좋으신 하나님은 나중에 좋게 해주시는 분이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해야 됩니다’(always for all things). 하나님이 보내신 축복이 어떤 때는 저주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것도 모르고 조금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고 괴롭겠는가?
슬픔과 실패까지도 가장 좋은 선물로 바뀌는 때가 온다. 의사가 우리의 병을 치료해주려고 아픈 주사를 놔주고 쓰디쓴 약을 먹이려고 하는데, 의사에게 불평하고 욕하고 멱살을 붙잡으면 얼마나 고약하고 무례한 행동이겠는가?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참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분이 ‘모든 것이 좋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했다. 감사는 하나님의 문을 여는 방법이고, 불평은 하나님의 문을 닫는 방법이다.
▶ 구약 시대에 세 가지 큰 명절이 있다. 이 3대 절기는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다. 봄에 지키는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이며, 여름에 지키는 맥추절은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들이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가을에 지키는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 가을 곡식을 다 거두어들이고 광야에서 고생하던 때를 상기하면서 들에 나가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지키는 세 가지 큰 절기는 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다. 감사하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가르쳐주셨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습관은 벗어버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키워나가시기 바란다.
과거 일에 감사하고, 현재 일에도 감사하고, 앞으로 주실 은혜를 믿고 감사해야한다.
골 3:15-17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짧은 구절에 ‘감사하라’는 말이 3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 감사 충만한 사람(골 3:15-17) / 미국 버지니아 주에 가난한 모자가 살았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가난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남의 집 세탁, 재봉, 청소 등으로 아들의 학비를 조달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고를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어 졸업생을 대표하여 졸업연설까지 하게 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그를 우등생이 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큰 고민이 생겼다. 아들 졸업식에 입고 갈 변변한 옷 한 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수석졸업생인 아들의 명예에 오점을 남길까 염려했다. 아들의 간절한 권유로 겨우 졸업식에 참석하여 뒷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들은 연설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이처럼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의 결과이며 또 나를 가르쳐주신 교수님들의 덕택입니다. 또한 특별히 저 때문에 고생을 거듭하시면서 학비를 조달해 주신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총장님으로부터 받은 금메달을 자신의 가슴에 달지 않고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 청중 속에 앉아 계신 어머니에게로 걸어가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렸다. 그리고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은혜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받을 것이 아니고 어머니께서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를 표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동석했던 청중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 젊은이는 뒤에 변호사가 되었고, 모교인 프린스톤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고, 1902년 그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8년 후 뉴저지 주지사가 되었으며, 다시 2년 후에는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바로 민족자결주의를 제의한 우드로우 윌슨대통령이다. 그 후에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렇다.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다. 감사는 항상 더 큰 복을 불러와 더 큰 감사 제목을 만들어낸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더 큰 일로 감사하게 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작은 감사로 영광을 받으신 후 더 큰 감사로 더 크게 영광을 받으시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살전 5:16-18 /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교인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18절 하반절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하는 실천적 이유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을 오가며 폭넓게 설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무조건 실천하라고 강권한다. 그 어느 설교를 들어도 감동과 결심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하는 물음 앞에 멈추어 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때, 단수 표현인 ‘이것’이 가르키는 것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가깝게는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 혹은 16-18절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를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아멘하지만, 특별한 이유나 설명 없이 불쑥 명령이 나타난 것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좀 더 범위를 넓혀 근접 문맥을 살펴보니 12-18절의 마지막 권면을 가리킬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5장 전체를 다시 읽으며 핵심 단어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았고, 15-21절에 나오는 ‘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는 일, 주일을 지키고 설교에 감동 받는 일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가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서로서로의 관계 속에서 실천적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교회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시당하고, 오해 받는 고난의 삶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현실을 돌파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권면하였을 것이다.
기뻐하자! 우리의 선한 의도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기뻐하자. 기도하자! 끝날 것 같지 않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자. 감사하자! 악한 자들의 형통, 선한 자들의 고난,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자. 모든 일을 테스트하여, 선한 일이면 굳게 지키고 악한 일이면 어떤 것이라도 버리자(21절). 그리하면 우리 모두는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분 앞에 흠 없이 설 수 있을 것이다(23절).
이제라도 감사하라. 더 큰 감사 제목이 이어질 것이다. 불평의 옷을 벗어 버리고 감사의 옷을 입자. 옷 입는 것은 버릇이요 습관이다. 감사도 그렇게 일상적인 습관이 되어야 한다.
빌 4:11-13 / 내 처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고 부유를 누릴 줄도 압니다. 배가 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13)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절정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어떤 상황과 처지들이 나를 흔들어 놓을 수 없는 태도를 갖춘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상황에 따른 변덕스러운 태도가 아니라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감사와 하나님께 대하여 영광을 돌리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을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가 믿음이고 감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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