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이해와 감상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어느 ‘중년의 노동자’이다. 그것은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에서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는 평생을 가난하게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의 차분한 어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소리를 기대하겠지만 이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강물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자세는 외부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내면적 성찰로 일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지나온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슬픔과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체념적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샛강에 뜨는 달을 보며 언젠가 희망이 생길 것을 막연하게나마 기대한다. 이러한 희망마저 없다면 시적 화자는 더 이상 가족이 있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구체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얻은 삶의 경험을 ‘강’이라는 자연물의 이미지와 결합시켜 깊은 시적 의미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 시절을 넘긴 중년의 노동자가 흐르는 강물에 삽을 씻는다. 그에게 있어서 극복될 수 없는 슬픔도 삽을 씻는 동안만은 사라진다. 그러나 힘든 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보잘것 없다. 육체적 노동은 항상 천시당하기만 하고 노동자에겐 그런 현실에 정면으로 대결할 용기가 없다. 적극적인 현실 극복 의지가 없는 그에겐 강가에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돌아가는 일이 고작이다.
9-12행은 젊음의 나이를 한참이나 지나 중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동자 생활이 아무런 발전 없이 반복되어 왔음을 말해 준다. 그 세월 동안 세상은 계속 썩어 왔음을 ‘썩은 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도 시간이 되면 ‘달’이 뜬다. 뜬 달은 날이 어두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고, 그것은 가난한 집이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덧붙일 것은 ‘우리가 저와 같아서’라는 구절의 모호성이다. 위치로 보아 이것은 ‘우리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라는 의미와 ‘우리가 반복해서 뜨는 달과 같아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핵심 정리
성격 : 비유적, 성찰적
제재 : 노동자로 살아온 삶
주제 : 노동자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성찰
표현
① 차분한 목소리와 감정의 절제를 통해 부정적 상황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인생에 대한 성찰과 관조를 드러내고 있다.
② 삶의 경험을 ‘강’이라는 이미지와 결합시켜 시적 의미를 얻고 있다.
◆작품 연구실 : 유사한 이미지와 대립적 이미지
‘담배’와 ‘달’은 모두 불빛의 속성을 지닌 ‘밝음’의 유사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시적 화자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대상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한편, ‘썩은 물’과 ‘달’은 어둠과 밝음의 대립적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전자는 시적 화자가 처한 ‘암울한 상황에서 겪는 고통’을 암시하며, 후자는 그런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작은 ‘희망’을 암시하는 시어이다.
(나) 고재종 <면면함에 대하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시련을 견디며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느티나무의 속성을 통해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노래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추운 겨울의 시련을 견뎌 내고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내뿜는다. 화자는 이렇게 시련 속에서 희망을 품고 새로운 생명력을 꽃피우는 모습을 인간의 삶과 연결 지으며 면면함의 의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주제 :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면면한 삶의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