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점심 시간에 맞춰 오산 공군 기지 앞으로 가서 전도했습니다. 여기는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할 때 에어포스원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제가 토요일을 골라서 간 이유는 이 날이 공휴일이어서 부대 밖으로 나온 군인들이 많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역시 가족 단위로 외출한 사람들이 적지 않더군요. 인형같은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그래서 저도 귀엽다며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럴 경우 부모들은 다 좋아합니다.
먼저 부대 앞 작은 꽃밭에 계시는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 꽃도 예쁘지만 천국에 있는 꽃은 훨씬 아름답다고 했죠. 예수 믿어 천국에 가시라고요. '예'하며 대답하셨습니다.
부대 정문에서 작은 테이블에 시계를 진열해 놓고 팔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전도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신앙생활을 하셨다고요. 이제는 늙어서 교회도 못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했죠. 이 시계들처럼 인생 시계도 빨리 돌아가고 있으니 속히 교회에 다니시라고 했습니다. 꼭 천국에 가셔야 한다고요.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이 사령관도 정문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부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말을 듣고 우리 기독교인들도 어떤 직분이나 신앙 연륜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 신분증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군과 미군 가족들을 전도할 때 늘 느끼는 것은 반응이 좋고 감동을 잘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그들은 목사라면 얼굴이 펴지고 존경한다는 듯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수양관에서 미군 부대까지는 편도가 약 20km 정도인데 그래도 이곳에 몇 번 다녀온 이유는 그들이 한국 전쟁 때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보답은 오직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는데 있다고 봅니다. 미국인들도 예수를 안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들의 영혼을 살려야죠.
제가 영어 실력이 뛰어나서 외국인들을 전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시키시니까 감당하는 것 뿐이지요. 저는 오늘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 봉헌에서도 밝혔지만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부 아들 출신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공부는 하는 편이었어도 대학을 진학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최고의 소원은 면서기가 되어 밥 굶지 않고 사는 것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영어 공부만큼은 거의 독학을 하다시피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20대 시절 서울에서 단칸방 살이를 할 때 잠깐 남산 국립 도서관에 가서 영어에 매달렸는데요. 그때 기억 나기는 도서관 앞 마당에서 열심히 전도하는 성도님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어떤 청년이 그분들에게 다가가더니 복음 전하는 아주머니의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아스팔트 위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저는 의분이 끓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청년에게 거세게 항의했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요. 물론 이로 인해 저를 죽여버리겠다는 공갈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폭력을 당한 그 아주머니는 이미 천국에 가셨을 것이고 얼마나 큰 상급을 받으셨을까요?
그런데 저 역시 그런 거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노방 전도자가 되었네요. 지금도 전도를 할 때는 온갖 일을 겪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가시밭길이기에 묵묵히 순종하며 따라갈 뿐입니다. 전도는 아픔도 있지만 기쁨도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입시를 치를 때 3대 1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 시험을 보고 잠깐 화장실에 갔을 때 갑자기 출석하고 있던 교회의 장로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깜짝 놀랐죠. 그분은 연세대학교 영어 영문학과 교수님이셨고 마침 대학원 시험 감독관으로 오셨더군요. 분명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분이 제게 후한 점수를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유추를 해 보기도 합니다. 당시의 시험 문제는 토플이 아니고 독해였으니까요. 문장이 무척 난해하기는 하더군요. 그 장로님은 별세를 하신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굳이 이 히든 스토리를 꺼낸 이유는 제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오늘의 영어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키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리고 목회 사역을 하면서도 토요 청년 집회에서는 영어 회화 순서를 가지기도 했죠. 그들이 오늘 같은 날 함께 전도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아직까지 free talking은 잘 안 되거든요. 앞으로 제가 은퇴를 하면 종종 미군 부대에 가서도 전도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들 2명, 미국인들 15명을 전도했고요. 제 서툰 영어를 모두 알아들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고 성취감도 느꼈습니다. 다들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제 전도 보고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은혜 충만한 예비일 되십시오. 샬롬.
김대경 목사의 감사 봉헌 (173)
1.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밭일도 해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2.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논일도 해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3.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호롱불을 켜고 어두운 밤을 지내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4.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산에 가서 땔나무를 채취하여 어깨가 빠지는 지게 운반의 고통도 맛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5.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쌀밥 대신 고구마를 먹어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6.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영양 실조에도 걸려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7. 제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지만 TV도 못 보고 순수하게 자라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