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청주를 공략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에 있던 한 왜장이
청주로 들어오다가 서쪽 동화산에서
황홀한 황금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필경 산 속에 보물이 있을 것이라 단정하고
부하 군졸들을 데리고 동화산으로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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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동화산에 자리잡고 있는
동화사 경내에 안치되어 있던 석불좌상 한 분이
왜장이 들어오기 3일 전부터 몸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가끔 한숨 소리가 절 안에 들려 왔으므로,
주지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모여서
불길한 징조라고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던 차에,
말발굽 소리도 요란하게
왜병 일당이 사찰 경내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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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법당에 앉아 있던 주지 스님이 나와,
“불전 앞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일갈(一喝)하자
왜장은 주춤하더니,
“이곳을 지나다 보니 절 안에서 후광이 비쳐오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 왔소.” 하면서 불당문을 열었다.
왜장이 보았다는 후광은
석불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왜장이 법당문을 열자
석불에서 비치고 있던 후광이 사라지면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석불의 얼굴이
서서히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왜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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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스님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숙여 합장배례를 했으나
왜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석불이 왜장이 보기 싫어 외면을 했기 때문이다.
화가 치민 왜장은
장검을 빼들어 석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한 칼에 목이 베어진 석불 머리는
그대로 불전에 떨어지며,
목을 벤 왜장의 발등을 때려
발목을 분질러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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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놀란 왜병들이
황급히 발목이 부러진 왜장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고분터(高隱里)를 향해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서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왜병들이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근처 고목나무 밑으로 들어가자
벼락이 고목을 때려
반수 이상의 왜병들이 현장에서 불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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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나머지 왜병들이
석불의 목을 쳤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 여기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국사봉(國士峰)에 은신했던 의병장 조헌(趙憲)이
군사를 이끌고 기습을 가해 몰살을 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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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동화사 주지는 떨어진 석불 머리를
다시 불당에 올려놓고 공양예불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머리는 사라지고
목 없는 석불만이 법당에 안치되어 있다가
근래에 다시 복원공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