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막
피막
피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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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8 사순1주일 나해 – 유혹을 넘어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마르 1.12).
하느님의 사람 욥을 데치다가 시행착오한 마귀는 예지력도 담력도 좋아졌다.
예수님께서는 욥처럼 집에서 악마와 일대로 대결하지 않으시고 성령과 함께 광야로 가신다.
악마는 광야에 가상현실의 세트장을 꾸며 놓고 예수님을 후리기 위해 기술을 건다.
(마태오 복음의 유혹 이야기는 ‘초능력 구사’ → ‘세상 위 군림’ → ‘하늘을 부림’으로 구성하여 유혹이 심화·상승한다. 한편 루카는 마태오의 두 번째 유혹과 세 번째 유혹을 바꿔서 전하면서 다음 기회의 유혹, 곧 ‘남은 유혹’을 예고한다.)
악마의 유혹은 카드 세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악마의 유혹은 현실에서 가상현실로까지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무한대로 펼쳐진다.
(그 ‘남은 유혹’이 골고타 십자가상에서 극에 이른다.)
현실이 아닌데도 실제처럼 느끼게 하여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혼동하게 하거나
‘하느님은 안 계신다. 계셔도 나와 상관없다. 계신들 나를 어쩌지 못하신다.’ 식의 생각을 멋대로 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그 논리를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어 준다.
선한 지능이든 악한 지능이든,
인간의 자연적 지능이든 인공적 지능이든
지능은 그 끝을 알 수 없게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변이를 일으킬 것이다.
예수님을 엮으려는 마귀의 유혹에서 보듯, 그 지능은 ‘세상의 힘’인 돈이 되게 해준다.
실제, 돈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준다.
벼슬도 하게 해주고, 이웃이나 동료를 아랫것으로 만들어 종처럼 부리 게도 해준다.
돈이 두둑해질수록 두려움도 불안도 겁도 없어진다.
돈이 빠지거나 바닥나면 마귀의 유혹은 실패한다.
모든 유혹은 돈을 중심으로 계속되어 왔고 진화하였다.
모든 세상 일이 그렇듯이, 돈과 상관 없는 유혹도 없다.
(돈의 속성을 잘 아는 세리 출신 마태오가 전하는 ‘유혹 이야기’는 유혹의 시작을 ‘이 돌을 돈이 되게 해보시오.’로, 유혹의 마침을 ‘돈에 절하고 섬겨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세상의 유혹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는 言指를 느끼게 한다)
마귀는 ‘광야’에서 예수님께 맞섰다.
‘광야’는 땅과 하늘이 맞닿는 장소다.
오늘날 100세를 넘어 150세 수명 시대를 운운하며 기대한다.
‘코로나19’ 때 소심근신(小心謹愼)한 것도 100세도 못 채울까 봐 그랬나?
성당은 비어 가는데 공항은 넘쳐나는 것도 땅과 하늘이 닿는 광야(유혹의 장소)에서 손짓하는 ‘지평선 마귀’ 때문인가?
노아의 할아버지 므투셀라처럼 969살을 사는(창세 5,27) 시대가 오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창세 2,17; 3,19).
유혹의 지능을 끝없이 진화시키는 악마의 소임은 지옥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악마나 지옥은 부정해도 제 죽음은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은 한세상 속의 인간이다.
마귀의 낚시질에 코가 꿰어 요지경 세상을 헤매다 코가 빠지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벽 너머에 마을’이 있다.
유혹이 끝난 마을이다.
‘광야’의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은 그 마을로 가는 “문”이요(요한 10,9) “길”(요한 14,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