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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說卦傳-제1장(第一章)_4-5/5절
*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주역대전 : 說卦傳:제1장(第一章)_4절
p.521 【經文】 =====
和順於道德而理於義, 窮理盡性以至於命.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하며,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른다.
中國大全
p.521 【小註】 =====
程子曰, 和順於道德而理於義者, 體用也.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한다”는 것은 本體본체와 作用작용이다.
○ 和順於道德而理於義, 義卽是天道也. 易言理於義一也. 求是卽爲理義, 言理義不如且言求是易曉. 求是之心, 俄頃不可忘. 理於義, 此理云者, 猶人言語之間, 常所謂理者, 非同窮理之理.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한다”는 말에서 義의는 곧 天道천도이다. 『周易주역』에서 “義의에 맞게 한다”고 말한 것이 한 곳이다. 옳음을 求구하면 곧 理義리의가 되니, 理義리의라고 말하는 것은 옳음을 求구한다고 하는 것이 알기 쉬운 것만 못하다. 옳음을 求구하는 마음은 暫時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義의에 맞게 한다[理於義리어의]”고 할 때, 여기에서 理리라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에 恒常항상 말하는 ‘順理순리’라는 것으로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한다고 할 때의 理리와 같은 것이 아니다.
○ 所務於窮理者, 非道須盡窮了天下萬物之理, 又不道是窮得一理便到, 只是要積累多後自然見去.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데 힘쓴다는 것은 天下천하‧萬物만물의 理致이치를 다 窮究궁구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또한 하나의 理致이치를 끝까지 窮究궁구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니, 다만 많이 쌓은 後후에 저절로 보게 되는 것이다.
○ 窮理盡性矣. 曰以至於命, 則全无着力處, 如成於樂, 樂則生矣之意同.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한다. “命명에 이른다”는 것은 全전혀 힘을 쓸 곳이 없으니, “音樂음악에서 完成완성한다”[주 5]거나 “즐거우면 생겨난다”[주 6]는 뜻과 같다.
5) 『論語논어‧泰伯태백』: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
6) 『孟子맹자‧離婁이루』:樂則生矣, 生則惡可已也, 惡可已, 則不知足之蹈之手之舞之. |
○ 窮理盡性以至於命, 三事一時竝了, 元无次序, 不可將窮理作知之事, 若實窮得理, 卽性命亦可了.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르는 것’은 세 일이 한꺼번에 進行진행되어 原來원래 次序차서가 없으므로, 窮理궁리를 앎의 일로 해서는 안 되니 萬若만약 實際실제로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할 수 있다면 性성과 命명도 可能가능하다.
○ 如言窮理以至於命, 以序言之, 不得不然, 其實只是窮理, 便能盡性至命也.
萬一만일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여 命명에 이른다”고 말한다면, 順序순서로 말하자면 그렇지 않을 수 없지만, 實際실제로는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면 곧 本性본성을 다하고 命명에 이른다.
○ 窮理盡性至命, 一事也. 才窮理便盡性, 盡性便至命. 如木可以爲柱理也, 其曲直者性也, 其所以曲直者命也. 理性命, 一而已.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고 命명에 이르는 것은 한 가지 일이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면 곧 本性본성을 다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면 命명에 이른다. 例예를 들어 나무가 기둥이 될 수 있는 것은 理致이치이고, 굽거나 곧은 것은 本性본성이고, 굽거나 곧게 될 수 있는 까닭은 命명이다. 理致이치와 本性본성과 命명은 하나일 뿐이다.
○ 理也性也命也三者, 未嘗有異, 窮理則盡性, 盡性則知天命矣. 天命猶天道也, 以其用言之, 則謂之命, 命者, 造化之謂也.
理致이치와 本性본성과 命명, 세 가지는 다른 적이 없으니,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면 本性본성을 다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면 天命천명을 안다. 天命천명은 天道천도와 같다. 作用작용으로 말하면 命명이라고 말하니, 命명이란 造化조화를 말한다.
○ 理則須窮, 性則須盡, 命則不可言窮與盡, 只是至於命也.
理致이치는 窮究궁구해야 하고 本性본성은 다해야 하며, 命명은 窮究궁구하거나 다한다고 할 수 없고 다만 命명에 이른다.
○ 張子曰, 程子說, 只窮理便是至於命, 亦是失於大快. 此義儘有次序, 須是窮理便能盡得已之性, 則推類又盡人之性, 旣盡得人之性, 須盡倂萬物之性, 一齊盡得如此, 然後至於天道也. 其間煞有事, 豈有當下, 便理會了. 學者須是窮理爲先, 如此則方有學. 今言知命與至於命, 儘有遠近, 豈可以知, 便謂之至也.
張子장자가 말하였다. “程子정자는 窮理궁리하면 곧 命명에 이른다고 說明설명했는데, 너무 빨리 連結연결 지은 데에서 잘못하였다. 이 뜻은 次序차서가 있는 듯한데, 반드시 窮理궁리를 하면 곧 自己자기의 本性본성을 다 할 수 있고, 같은 種類종류를 推論추론하여 또한 다른 사람의 本性본성도 다하며, 이미 다른 사람의 本性본성을 다했다면 반드시 萬物만물의 本性본성도 아울러 다하여 한결같이 이와 같이 다한 다음에 天道천도에 이른다. 그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있는데 어찌 곧장 바로 理解이해하겠는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을 于先우선으로 삼아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배울 수 있다. 命명을 아는 것과 命명에 이르는 것은 멀고 가까운 差異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안다고 해서 곧 이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或問, 窮理盡性以至於命, 程張之說孰是. 朱子曰, 各是一說, 程子皆以見言, 不如張子有作用. 窮理是知, 盡性是行, 覺程子是說得快了. 如爲子知所以爲孝, 爲臣知所以爲忠, 此窮理也. 爲子能孝, 爲臣能忠, 此盡性也. 能窮其理而充其性之所有, 方謂之盡. 以至於命, 是拖腳, 說得於天者. 蓋性是我之所至者, 命是天之所以與我者也. 如舜盡事親之道, 至天下之爲父子者定. 知此者, 窮理者也, 能此者, 盡性者也.
어떤 이가 물었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르는 것’에 對대해 程子정자와 張子장자의 說설이 어느 것이 옳습니까?”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各各각각 하나의 說설이지만, 程子정자는 모두 보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張子장자가 作用작용을 말한 것만 못하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은 앎이고 本性본성을 다하는 것은 行행함인데, 程子정자가 너무 빨리 連結연결 지어 說明설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例예를 들어서 子息자식이 되어서는 孝道효도해야 하는 까닭을 알고, 臣下신하가 되어서는 忠誠충성을 하는 까닭을 아는 이것이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이다. 子息자식이 되어서는 孝道효도할 수 있고 臣下신하가 되어서는 忠誠충성할 수 있는 이것이 本性본성을 다하는 것이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여 本性본성에 있는 것을 擴充확충할 수 있어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命명에 이르는 것은 時間시간이 걸리는 일로 하늘에서 얻는 것을 말한다. 本性본성은 내가 이르는 것이고, 命명은 하늘이 나에게 賦與부여해준 것이다. 例예를 들어 舜순임금이 父母부모를 섬긴 道理도리는 天下천하의 父母부모와 子息자식이 安定안정되는데 이르렀다. 이를 아는 것은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이고,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本性본성을 다하는 것이다.”
p.523 【本義】 =====
和順, 從容无所乖逆, 統言之也. 理, 謂隨事得其條理, 析言之也. 窮天下之理, 盡人物之性, 而合於天道, 此聖人作易之極功也.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은 自然자연스러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바가 없는 것이니 統통틀어 말한 것이다. 理致이치는 일에 따라 그 條理조리에 맞음을 이르니 나누어 말한 것이다. 天下천하의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사람과 事物사물의 本性본성을 다하여 天道천도에 合합하니, 이는 聖人성인이 『周易주역』을 지은 至極지극한 功공이다.
p.523 【小註】 =====
或問, 和順於道德而理於義, 是就聖人上說, 是就易上說. 朱子曰, 是說易. 又問, 和順是聖人和順否. 曰, 是易之和順道德而理於義. 如吉凶消長之道, 順而无逆, 是和順道德也. 理於義, 又極其細而言, 隨事各得其宜之謂也. 和順道德, 如極高明, 理於義, 如道中庸.
어떤 이가 물었다.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한다”는 것은 聖人성인에 對대해 말한 것입니까? 易역에 對대해 말한 것입니까?”
朱子주자가 答답하였다. “易역에 對대해 말한 것입니다.”
또 물었다.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은 聖人성인이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입니까?”
答답하였다. “이는 易역이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하는 것입니다. 例예를 들어 吉凶길흉‧消長소장의 道도를 따라서 거스르지 않는 것이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義의에 맞게 한다”는 것은 또한 가장 細密세밀하게 말한 것이니, 일에 따라 그 마땅함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른다”는 것은 至極지극히 높고 밝게 하는 것이고 “義의에 맞게 한다”는 것은 中庸중용을 따르는 것입니다.”[주 7]
7) 『中庸중용』: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
○ 和順道德而理於義, 是統說底, 窮理盡性至命, 是分說底. 上一句是離合言之, 下一句以淺深言之. 凡卦中所說, 莫非和順那道德, 不悖了他. 理於義, 是細分他, 逐事上, 各有箇義理. 和順字理字最好看, 聖人這般字, 改移不得.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한다”는 것은 統통틀어 말한 것이고,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른다”는 것은 나누어 말한 것이다. 위의 한 句節구절은 나누고 合합하는 것으로 말하였고, 아래 한 句節구절은 얕고 깊은 것으로 말하였다. 卦괘 가운데서 말하는 것은 모두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고 따라서 그것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義의에 맞게 한다”는 것은 그것을 細分세분하여 일에 따라 各各각각 義理의리가 있게 하는 것이다. ‘和順화순’이라는 글―字자와 ‘理리’라는 글―字자가 보기에 가장 좋으니, 聖人성인의 이러한 글―字자는 바꿀 수 없다.
○ 和順於道德, 是默契本原處, 理於義, 是應變合宜處. 物物皆有理, 須一一推窮. 性則是理之極處, 故云盡, 命則性之所自來處, 故云至.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은 本原본원에 맞는 것이고, ‘義의에 맞게 하는 것’은 變化변화에 應응하여 마땅한 것이다. 事物사물마다 모두 理致이치를 갖고 있으니 하나하나 미루어 窮究궁구해야 한다. 本性본성은 理致이치의 至極지극한 곳이므로 다한다고 하였고, 命명은 本性본성이 그로부터 나온 곳이기 때문에 이른다고 하였다.
○ 窮理, 是理會得道理窮盡, 盡性, 是做到盡處. 如能事父然後盡仁之性, 能事君然後盡義之性.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은 道理도리를 理解이해하여 다 窮究궁구하는 것이고, ‘本性본성을 다하는 것’은 行행해서 至極지극한 곳에 이르는 것이다. 例예를 들어 父母부모를 섬길 수 있은 다음에 ‘仁인’이라는 本性본성을 다할 수 있고, 임금을 섬길 수 있은 다음에 ‘義의’라는 本性본성을 다할 수 있다.
○ 窮理, 是知上說, 盡性, 是仁上說, 言能造其極也. 至於範圍天地, 是至命, 言與造化一般. 又問, 窮理盡性至於命. 曰, 此本是就易上說, 易上盡具許多道理, 直是窮得物理, 盡得人性, 到得那天命. 所以通書說, 易者性命之原, 此只言作易者如此, 後來不合將做學者事看.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은 앎의 側面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本性본성을 다하는 것’은 仁인의 側面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그 至極지극함에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天地천지를 아우르는데 이르는 것이 ‘命명에 이르는 것’이니, 造化조화와 一般일반이라는 말이다.
물었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答답하였다. “이는 本來본래 易역에 對대해 말한 것이니, 易역에는 許多허다한 道理도리가 다 갖추어져 있는데, 다만 萬物만물의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사람의 本性본성을 다하여 天命천명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通書통서』에서 易역이란 性命성명의 根源근원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다만 易역을 지은 것이 이와 같다는 말이고, 後世후세에 배우는 사람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 窮理盡性至命, 本是就易上說, 易上皆說物理, 便是窮理盡性, 卽此便是至命也. 諸先生把來就人上說, 能窮理了, 方至於命. 聖人作易時, 固是其得許多道理, 人能體之而盡, 則便似那易. 他說那吉凶悔吝處, 莫非和順道德, 理於義, 窮理盡性之事. 這一句本是說易之書如此, 後人說去學問上, 卻是借他底. 然這上也有這意思, 皆是自淺至深.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고 命명에 이르는 것은 本來본래 易역에 對대해 말한 것이니, 易역에서 萬物만물의 理致이치를 說明설명하고 있는데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면 곧 이것이 命명에 이르는 것이다. 여러 先生선생들이 그것을 사람에 對대한 것으로 하여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할 수 있으면 곧 命명에 이른다고 說明설명하고 있다. 聖人성인이 易역을 지을 때 本來본래 許多허다한 道理도리를 얻었으니, 사람이 그것을 體得체득하여 다할 수 있으면 그 易역과 같다. 거기에서 說明설명하는 吉凶悔吝길흉회린이란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 義의에 맞게 하며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는 일이 아닌 게 없다. 이 한 句節구절은 本來본래 易역의 冊책이 이와 같다는 것인데, 後世후세 사람들이 學文학문에 對대한 說明설명으로 삼아 빌려 쓴 것이다. 그러나 이 句節구절에는 그러한 뜻도 있으니, 모두 옅은 곳으로부터 깊을 곳에 이른 것이다.
○ 雲峰胡氏曰, 蓍本自神明, 聖人幽贊之而已. 天圓地方之象, 自具一二之數, 聖人不過參之兩之而已. 其爲數也, 自有陰陽之變, 其爲變也, 自成剛柔之爻, 聖人不過觀其變而發揮之爾. 於蓍卦之德, 則和順之而一无所逆, 於六爻之義, 則條理之而各有其序. 窮天地之理, 盡人物之性, 聖人作易之功, 至是與天命爲一矣. 天命自然而然, 聖人之易, 亦非心思智慮之所爲也.
雲峰胡氏운봉호씨가 말하였다. “蓍草시초는 本來본래 神明신명으로부터 온 것이고, 聖人성인은 그윽하게 讚美찬미하였을 뿐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 象상은 저절로 一1과 二2의 數수를 갖추고 있는데, 聖人성인은 셋을 取취하고 둘을 取취했을 뿐이다. 그 數수는 저절로 陰陽음양의 變化변화를 갖고 있고 變化변화는 저절로 굳세거나 부드러운 爻효를 이루는데, 聖人성인은 그 變化변화를 보고서 發揮발휘하였을 뿐이다. 蓍草시초와 卦괘의 德덕에 對대해서는 造化조화하고 따라서 全전혀 거스르지 않고, 여섯 爻효의 뜻에 對대해서는 條理조리를 세워 各各각각 次例차례를 지운다. 天地천지의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사람과 事物사물의 本性본성을 다하니, 聖人성인이 易역을 지은 功공이 여기에 이르러 天命천명과 하나가 된다. 天命천명이란 저절로 그러한 것이고, 聖人성인의 易역 또한 생각과 智慧지혜로 한 것이 아니다.”
○ 進齋徐氏曰, 如乾爲天道而彖之元亨利貞則其德, 爻之潛見躍飛則其義. 以一卦而統言之, 所謂和順也, 就六爻而言之, 所謂理也. 善觀易者, 推爻義以窮天下之理, 明卦德以盡一已之性. 窮理盡性, 則進退存亡得喪之天道, 可以知而天命在我矣.
進齋徐氏진재서씨가 말하였다. “例예를 들어 乾卦건괘(䷀)가 天道천도가 되는데 彖辭단사에서 元亨利貞원형이정이라고 한 것은 德덕을 말한 것이고, 爻효에서 잠기고 드러나고 뛰고 나른다고 한 것은 그 뜻을 말한 것이다. 한 卦괘를 統통틀어서 말하면 이른바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이고, 여섯 爻효에 對대해 말하면 이른바 理致이치이다. 易역을 잘 보는 사람은 爻효의 뜻을 미루어 天下천하의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卦괘의 德덕을 밝혀서 自己자기 한 사람의 本性본성을 다한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면 進退진퇴‧存亡존망‧得喪득실의 天道천도를 알아서 天命천명이 나에게 있게 된다.”
○ 勉齋黃氏曰, 性命一也, 天所賦爲命, 物所受爲性. 性命係於氣, 則天之所賦吾之所受者, 剛柔通塞受制於不齊. 性命純乎德, 則天之所賦吾之所受者, 中正純粹, 皆原於固有之德. 窮理盡性, 則不但德勝其氣而已, 且將性命於天矣. 天德天理, 德以所得者而言, 理以本然者而言. 故性曰天德, 命曰天理, 亦一而已, 非二物也. 如此則氣之偏者, 變而正, 柔者變而强, 昏者變而明矣. 其不可變者, 死生壽夭, 有定數也.
勉齋黃氏면재황씨가 말하였다. “本性본성과 命명은 하나이니, 하늘이 賦與부여한 것은 命명이 되고 萬物만물이 받은 것은 性성이 된다. 性命성명이 氣기와 連貫연관되면 하늘이 賦與부여한 것과 내가 받은 것이 가지런하지 않은 氣기에 制御제어되어 굳셈과 부드러움, 通통하고 막힘이 있고, 性命성명이 德덕에 純粹순수하면 하늘이 賦與부여한 것과 내가 받은 것이 中正중정하고 純粹순수하여 모두 本來본래 가진 德덕에 根源근원을 둔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은 다하는 것은 德덕이 氣기를 이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本性본성이 하늘에게 命명을 받는 것이다. 天德천덕과 天理천리란 德덕은 얻은 것으로 말한 것이고 理리는 本然본연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本性본성을 天德천덕이라고 말하고 命명을 天理천리라고 말하니, 또한 하나일 뿐이지 둘이 아니다. 이와 같다면 氣기가 치우친 것도 變변하여 바르게 되고 柔弱유약한 것도 變변하여 强강하게 되며 어두운 것도 變변하여 밝게 된다. 變변할 수 없는 것은 삶과 죽음, 長壽장수와 夭折요절로서 一定일정한 運數운수가 있는 것이다.”
○ 南軒張氏曰, 義在我也, 命在天也. 天下之人, 皆知義命, 則聖人之易不作矣. 惟夫不知義不知命, 此聖人不得已而生蓍倚數立卦生爻, 凡以爲天下不知義命者設也.
南軒張氏남헌장씨가 말하였다. “義의는 나에게 있고 命명은 하늘에 있다. 天下천하 사람들이 모두 義의와 命명을 안다면 聖人성인이 易역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義의를 알지 못하고 命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聖人성인이 不得已부득이하게 蓍草시초를 내고 數수를 依支의지하여 卦괘를 세우고 爻효를 내었으니, 天下천하의 義의와 命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爲위하여 만든 것이다.”
韓國大全
【이만부(李萬敷) 「역통(易統)•역대상편람(易大象便覽)•잡서변(雜書辨)」】
窮理盡性以至于命.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른다.
朱曰, 窮理者, 窮其理以至無理, 盡性者, 盡其性以至無性. 理窮處便盡性, 盡性處便至命, 至命者與道一也. 與道一, 則理性皆剩語矣. 乃爲說曰, 理窮無理, 性盡無性, 性理俱盡, 方至于命.
朱氏주씨가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은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여 理리가 없는데 이르는 것이고, 本性본성을 다한다는 것은 本性본성을 다하여 本性본성이 없는데 이르는 것이다. 理致이치가 窮究궁구된 곳에서 곧 本性본성을 다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는 곳에서 곧 命명에 이르니, 命명에 이르는 것은 道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道도와 하나가 되면 理致이치와 本性본성은 모두 군더더기 말이 된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說설을 세워 말하기를 “理致이치가 窮究궁구되면 理致이치가 없고, 本性본성이 다하면 性성이 없으니, 本性본성과 理致이치가 모두 다하면 命명에 이른다”고 한다.”
愚按, 散在事物曰理, 總會一心曰性. 自天所賦曰命, 循性命之理而無違曰道, 其實一理而異目者也. 然理云窮者, 欲不迷於事物所以然與所當然也, 性云盡者, 旣明乎理, 則其於總會之體, 可以無不察無不由也. 命云至者, 理旣明性旣盡, 則天賦之本然者, 卽是而存, 無所假借也. 故大學言物格知至, 中庸言盡己之性, 盡人物之性. 物格知止, 則天下之理益著顯矣, 何可謂無理. 盡己盡人盡物, 則天下之性益立定矣, 何可謂無性. 苟無理無性, 則天命當益晦矣, 又何以至命. 性命之理旣晦, 則所行皆背道之事, 又何以與道爲一也. 果無理無性而方至於命, 亦何必窮理盡性爲哉.
내가 살펴보았다. 事物사물에 흩어져 있는 것을 理致이치라고 하고, 한 마음에 모여 있는 것을 本性본성이라고 하고, 하늘로부터 賦與부여된 것을 命명이라고 하고, 性命성명의 理致이치를 따라서 어김이 없는 것을 道도라고 하니, 實際실제로는 하나의 理致이치로서 名目명목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理致이치에 對대해서 窮究궁구한다고 한 것은 事物사물의 所以然소이연과 所當然소당연에 對대해서 迷惑미혹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고, 本性본성에 對대해서 다한다고 한 것은 이미 理致이치에 밝으면 모여 있는 몸-體체에 對대해서 살피지 않음이 없고 따르지 않음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命명에 對대해서 이른다고 한 것은 理致이치가 이미 밝고 本性본성이 이미 다하면 하늘이 賦與부여한 本然본연이 命명에 依의해 保存보존되고 다른 데서 빌릴 必要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大學대학』에서 物格격물‧致知치지를 말했고 『中庸중용』에서 自己자기의 本性본성을 다하고 사람과 萬物만물의 本性본성을 다할 것을 말했다. 事物사물이 窮究궁구되고 앎이 至極지극해지면 天下천하의 理致이치가 더욱 드러나는데, 어찌 理致이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自己자기를 다하고 사람을 다하고 萬物만물을 다하면 天下천하의 本性본성이 더욱 세워지고 定정해지는데, 어찌 本性본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萬一만일 理致이치가 없고 本性본성이 없다면 天命천명이 마땅히 더욱 어두워졌을 것인데, 또한 어떻게 至極지극한 天命천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性命성명의 理致이치가 이미 어두워졌다면 行動행동이 道도를 違背위배하는 일일 텐데, 또한 어떻게 道도와 하나가 되겠는가? 果然과연 理致이치가 없고 本性본성이 없어야 命명이 이른다고 말한다면, 어찌 반드시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겠는가?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觀變於數之陰陽而八卦立焉, 發揮於畫之剛柔而九六生焉. 包犧之始畫, 未必資於蓍, 而筮之揲蓍, 亦須有立卦, 方有吉凶之占. 一陰一陽之謂道, 天地之大德曰生, 和順於道德者謂易, 與此和調而不違逆, 如所謂範圍天地之道而不違也. 理如理財之理, 正其條貫也, 義卽禁民爲非之義. 理於義者謂易, 雖因避趨而作, 爲君子謀不爲小人謀, 其用求合乎天理之正也. 理者, 當行之道, 帖上道字, 性卽繼善而成者, 帖上德字. 窮之盡之, 則不止於和順也, 繼善成性, 則命在其中也. 至者, 如文言知至之至, 如人向一邉去, 更無可去之地, 方始爲至也. 至命者, 謂至到於所以命者也, 如人臣受命于君. 究極其事理者, 窮理也, 殫己而行不容餘憾者, 盡性也. 然而其心惴惴於所以命, 而惟恐失墜者, 至命也. 聖人之於天命亦如此.
數수의 陰陽음양에서 變化변화를 觀察관찰하여 八卦팔괘가 세워지고, 畫획의 剛柔강유에서 發揮발휘하여 九구와 六육이 생겨난다. 伏羲복희가 처음 畫획을 그릴 적에 반드시 蓍草시초에 힘입지 않았고, 占점에서 蓍草시초를 세는 것도 또한 반드시 卦괘를 세우기를 기다려 吉凶길흉의 占점이 있는 것이다. “한 番번은 陰음이 되고 한 番번은 陽양이 되는 것을 道도라 이르며”, “天地천지의 큰 德덕을 낳음이라 하며”,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을 易역이라고 하니” 이와 造化조화하여 어기지 않는 것이 이른바 “天地천지의 造化조화를 範圍범위 짓는 道도로서 어기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理리’는 ‘理財이재’의 ‘理리’이니, 바로 그 條理조리가 꿰뚫는 것이고, ‘義의’는 곧 百姓백성들이 잘못을 하지 않도록 禁금한다는 뜻이다. “義의에 맞게 하는 것을 易역이라고 하니” 비록 避피하였다 일어나더라도 君子군자를 爲위하여 圖謀도모하지 小人소인을 爲위하여 圖謀도모하지 않으며, 그 作用작용은 天理천리의 바름에 合합하기를 求구한다. ‘理리’란 마땅히 行행해야 할 道도이므로 위에 ‘道도’라는 글―字자를 붙였고, 性성은 善선은 이어서 이루어지므로 위에 德덕이라는 글―字자를 붙였다. 窮究궁구하고 다하면 造化조화하여 따르는데 그치지 않고, 善선을 이어서 性성을 이루면 命명이 그 가운데 있다. 이를 데란 「文言문언」에서 이를 데를 안다고 할 때의 이를 데와 같으니, 사람이 한 쪽으로 가서 더 以上이상 갈 데가 없는 곳이라야 비로소 이를 데라고 할 수 있다. 命명에 이른다는 것은 命令명령 받은 바에 이르는 것이니, 臣下신하가 임금에게 命令명령을 받는 것과 같다. 일의 理致이치를 다 窮究궁구하는 것이 ‘窮理궁리’이고, 自己자기를 다해서 行행하여 遺憾유감이 없는 것이 ‘盡性진성’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命令명령 받은 것에 對대해 두려워하여(惴惴췌췌) 失墜실추시길 것을 걱정하는 것이 ‘至命지명’이다. 聖人성인이 天命천명에 對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다.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窮理 [止] 至於命.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 命명에 이른다.
五峯胡氏曰, 命有窮通, 性無加損, 盡其性則至於命.
五峯胡氏오봉호씨가 말하였다. “命명에는 窮궁하고 通통하는 것이 있지만 性성에는 더하고 더는 것이 없으니, 性성을 다하면 命명에 이른다.”
小註, 張子說程子至太快.
小註소주에서 張載장재는 程子정자가 너무 빠른 데서 失手실수했다고 說明설명하였다.
案, 會通載程子說云云, 窮理, 便是至於命, 子厚亦是失於太快, 小註載張子說云, 程子失於太快, 二說不同. 今考二程全書第十一卷有曰, 二程解窮理盡性以至於命, 只窮理便是至於命, 子厚謂亦是失於太快, 小註實本於此. 朱子又有程子說得快了, 不如張子有作用之訓, 恐小註爲是.
내가 살펴보았다. 『會通회통』에 “程子정자가 ‘窮理궁리하면 곧 命명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張載장재 또한 너무 빠른 데서 失手실수했다”는 內容내용을 실었고, 小註소주에서는 “程子정자가 너무 빠른 데서 失手실수했다”는 張載장재의 說明설명을 실었으니, 두 說설이 같지 않다. 只今지금 『二程全書이정전서』 十一卷11권을 考察고찰해보면, 두 程氏정씨가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른다”는 말을 解釋해석하면서 但只단지 窮理궁리하면 곧 命명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張載장재 또한 “또한 너무 빠른 데서 失手실수했다”고 말했다. 小註소주는 實실로 여기에 根本근본하고, 朱子주자 또한 程子정자가 빨리 말하여 張載장재가 作用작용으로 풀이한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小註소주가 옳은 것 같다.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和於道, 順於德, 卦所以立, 理於義, 爻所以生也. 性者, 理之極處, 故曰盡, 命者, 性之所自處, 故曰至.
道도에 造化조화하고 德덕에 따르는 것이 卦괘가 세워지는 方法방법이며, 義의에 맞게 하는 것이 爻효가 세워지는 方法방법이다. 性성이란 理리의 至極지극한 곳이기 때문에 다한다고 하였고, 命명이란 性성이 거기에 根據근거하기 때문에 이른다고 하였다.
【서유신(徐有臣) 『역의의언(易義擬言)』】
此以占筮所用而言也. 卦爻旣定, 以之觀象玩辭, 觀變玩占而順其義命也. 和順處則是義, 義者道德之所由生也. 窮盡處則是命, 命者性理之所自來也. 義在人也, 命在天也.
이는 占점쳐서 쓴 것을 根源근원하여 말한 것이다. 卦괘와 爻효가 이미 定정해지고 그로써 象상을 보고 말을 吟味음미하며, 變化변화를 觀察관찰하고 占점을 吟味음미하여 義의와 命명을 따른다. 造化조화하여 따르는 것은 義의이니, 義의는 道德도덕이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窮究궁구하고 다하는 것은 命명이니, 命명은 性성과 理리가 由來유래하는 곳이다. 義의는 사람에게 있고, 命명은 하늘에 있다.
【윤종섭(尹鍾燮) 『경(經)-역(易)』】
或謂, 理字經書無稱焉. 謂之不多稱則近可, 謂之無稱可乎. 易大傳曰, 窮理盡性, 又曰順性命之理, 又曰易簡而天下之理得. 此大頭䐉也. 何必橫言竪說紛紜錯綜, 然後爲理字之稱耶. 是以洛建諸賢說理, 皆原於易傳.
어떤 이는 ‘理리’라는 글―字자를 經書경서에서 稱칭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많이 稱칭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런대로 말이 되지만, 稱칭한 것이 없다고 하면 되겠는가? 『周易大傳주역대전』에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한다”고 하였고, 또 “性命성명의 理致이치를 따른다”고 하였고, 또 “쉽고 簡略간략함에 天下천하의 理致이치가 얻어진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核心的핵심적인 곳이다. 어찌 반드시 이리저리 말한 다음에야 ‘理리’라는 글―字자를 稱칭했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性理學者성리학자들이 理리를 말한 것은 모두 『易傳역전』에 根源근원을 두고 있다.
【심대윤(沈大允)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窮, 窮盡也. 窮理, 格致之極而至明也, 盡性, 誠意之極而至誠也. 先儒以窮理爲初學之事錯矣. 命, 才位時之有定數者也, 不可爲也, 故曰至.
‘窮궁’은 다한다는 것이다. 窮理궁리는 格物致知격물치지가 極극에 이르러 至極지극히 밝은 것이고, 盡性진성은 誠意성의가 極극에 이르러 至極지극히 井星정성스러운 것이다. 以前이전의 學者학자들이 窮理궁리를 처음 배우는 사람의 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命명’은 才能재능과 地位지위와 때에 一定일정한 數수가 있어서 人爲的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른다고 하였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觀變於陰陽而立卦發揮於剛柔而生爻者, 卽言揲蓍而筮卦者也. 筮卦之法, 以老少陰陽, 定六爻之剛柔, 而以不變之爻言之, 則少陽進而不極, 少陰退而不極. 此二少陰陽所以不變其剛柔者也. 以互變之爻言之, 則陽進而極, 進極必變, 故老陽變爲少陰之爻, 陰退而極, 退極必變, 故老陰變爲少陽之爻, 此二老陰陽極於進退而互變爲動爻者也. 故以策數言之, 則百九十二陽爻, 皆得乾三十六之策而用九, 百九十二陰爻, 皆得坤二十四之策而用六. 此皆立卦生爻, 皆出於乾坤之門, 而旡非參天兩地者也. 和者, 言不乖也, 順者, 言不逆也. 道德者, 卽所謂顯道神德行也. 理者, 言不亂也, 義者, 卽所謂陰陽之義也. 窮理者, 卽所謂通神明之德類萬物之情也. 盡性者, 卽所謂與天地相似者也, 至命者, 卽所謂範圍曲成者也.
“陰음과 陽양에서 變化변화를 보아 卦괘를 세우고, 굳셈과 부드러움에서 發揮발휘하여 爻효를 낳는다”는 것은 蓍草시초를 세어서 卦괘를 占점치는 것이다. 卦괘를 占점치는 方法방법은 老노‧少소, 陰음‧陽양으로 六爻육효의 剛柔강‧柔유를 定정하는데, 變변하지 않는 爻효로 말하면 少陽소양은 나아가도 至極지극함에 이르지 않고 少陰소음은 물러나도 極극에 이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두 少陰소음과 少陽소양은 그 굳셈과 부드러움을 變변하지 않는다. 變변하는 爻효로 말한다면 陽양은 나아가 至極지극함에 이르는데, 나아감이 至極지극함에 이르면 반드시 變변하기 때문에 老陽노양이 變변하여 少陰소음의 爻효가 되고, 陰음은 물러나 至極지극함에 이르는데 물러남이 至極지극함에 이르면 반드시 變변하기 때문에 老陰노음이 變변하여 少陽소양의 爻효가 된다. 이 두 老陰노음과 老陽노양은 나아가고 물러남을 至極지극히 하여 서로 變변하여 움직이는 爻효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策數책수로 말하면 百九十二192 陰爻양효는 모두 乾卦건괘(䷀) 三十六策36책을 얻어 九9를 쓰고, 百九十二192 陰爻음효는 모두 坤卦곤괘(䷁) 二十四策24책을 얻어 六6을 쓴다. 이는 모두 卦괘를 세우고 爻효를 낳으니, 모두 乾건과 坤곤의 門문에서 나오고, 하늘에서 셋을 取취하고 땅에서 둘을 取취하지 않음이 없다. 造化조화는 어긋나지 않음을 말하고, 따름은 거스르지 않음을 말한다. 道德도덕은 곧 이른바 道도를 드러내고 德行덕행을 神妙신묘하게 하는 것이다. 理致이치는 어지럽지 않음을 말하고, 義의는 이른바 陰陽음양의 義의이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한다는 것은 이른바 神明신명의 德덕에 通통하고 萬物만물의 實情실정을 分類분류하는 것이다. 本性본성을 다한다는 것은 이른바 天地천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命명에 이른다는 것은 이른바 넓게 包括포괄하고 仔細자세하게 이룬다는 것이다.
【채종식(蔡鍾植) 「주역전의동귀해(周易傳義同歸解)」】
窮理盡性以至於命.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른다.
程子曰, 窮理盡性至命一事也. 才窮理便盡性, 盡性便至命.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本性본성을 다하고 命명에 이르는 것은 한 가지 일이다.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면 곧 本性본성을 다하고, 本性본성을 다하면 命명에 이른다.
朱子曰, 窮天下之理, 盡人物之性, 而合於天道.
天下천하의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고 사람과 事物사물의 本性본성을 다하여 天道천도에 合합한다.
蓋程子旡論知行以實見得言之. 若窮得此理實見得, 是則便是盡性至命. 如爲子實見得孝之理, 爲臣實見得忠之理, 則便是盡孝盡忠, 而以至於天之所以命我也. 朱子以窮理作知上說, 以盡性作行上說. 如爲子知孝爲臣知忠, 此窮吾之理, 而推以窮天下之理. 爲子能孝爲臣能忠, 此盡己之性, 而推以盡人物之性, 以至於天之命物之道也. 然則兩說只是一而已也.
程子정자는 知지와 行행을 莫論막론하고 實際실제로 攄得터득한 것으로 말하였다. 이 理致이치를 窮究궁구하는 것을 實際실제로 攄得터득한다면 곧 性성을 다하여 命명에 이르는 것이다. 例예를 들어 子息자식이 爻효의 理致이치를 實際실제로 攄得터득하고 臣下신하가 忠충의 理致이치를 實際실제로 攄得터득한다면, 그것이 곧 爻효를 다하고 忠충을 다하는 것이며, 하늘이 나에게 命명한 데에 이르는 것이다. 朱子주자는 窮理궁리를 知지의 側面측면에서 說明설명하였고 盡性진성을 行행의 側面측면에서 說明설명하였다. 例예를 들어 子息자식이 爻효를 알고 臣下신하가 忠충을 아는 것은 나의 理리를 窮究궁구하고 미루어 天下천하의 理리를 窮究궁구하는 것이다. 子息자식이 孝道효도할 수 있고 臣下신하가 忠誠충성할 수 있는 것은 自己자기의 性성을 다하고 미루어 사람과 萬物만물의 性성을 다하여 하늘이 萬物만물에게 命명한 道도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說설은 다만 하나일 뿐이다.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
鄭曰, 昔者聖人, 謂伏羲文王也.
鄭玄정현이 말하였다. “옛날의 聖人성인이란 伏羲복희와 文王문왕을 말한다.”
按, 以此篇爲孔子託古之辭, 則誠如所喩, 如係述大傳者據實之辭, 則當指孔子而言也. 蓋作易者實孔子而揲蓍之法始於孔子. 孟曰, 蓍蒿屬, 生千歲三百莖. 龜策傳曰, 蓍根一叢百莖. 凡天地之數五十有五, 而蓍莖自應其數. 蓍如三百, 則爲五十者六, 而虛五取一, 可衍爲五十之數, 一百莖, 則爲五十者兩, 而虛五取五, 可衍爲五十之數矣. 分之則五也, 合之則一也. 虛而不用, 以象昊天共公之太極. 大衍之數五十, 虛一而不用, 則以象地之太極. 其用四十有九, 初次掛一者, 無與於奇偶之分, 則留一而不數, 以象人之太極. 三極之道立而四營之道可行, 故曰六爻之動三極之道也. 參天, 謂一三五爲九, 兩地, 謂二四爲六, 皆以生數言之也. 馬曰, 倚, 依也.
내가 살펴보았다. 이 篇편이 孔子공자가 옛날에 假託가탁한 말이라고 한다면 참으로 깨우쳐준 바와 같이 鄭玄정현이 말한 바와 같겠지만, 「繫辭傳계사전」을 이어서 敍述서술한 實際실제에 根據근거한 말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孔子공자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周易주역』은 지은 사람은 實際실제로 孔子공자이고, 蓍草시초를 헤아리는 法법도 孔子공자에게서 始作시작되었다. 孟喜맹희는 “蓍草시초는 쑥의 一種일종이고 千年천년에 三百삼백 줄기를 낸다”고 하였고, 『龜筴傳구책전』에는 “蓍草시초는 뿌리 하나에 百백 個개의 줄기가 난다”고 하였다. 天地천지의 數수는 五十五55이고 蓍草시초의 줄기도 저절로 그 數수에 應응한다. 蓍草시초가 三百삼백이라면 五十50이 여섯인데, 다섯을 비우고 하나를 取취하여, 敷衍부연할 수 있는 것은 五十50의 數수가 된다. 一百일백 줄기라면 五十50이 둘인데, 다섯을 비우고 다섯을 取취하여 敷衍부연할 수 있는 것은 五十50의 數수가 된다. 나누면 다섯이 되고 合합하면 하나가 된다. 비우고 쓰지 않는 것은 하늘의 公的공적인? 太極태극을 象徵상징한 것이다. 大衍대연의 數수 五十50에서 하나를 비우고 쓰지 않는 것은 땅의 太極태극을 象徵상징한 것이다. 四十九49를 쓰는데, 처음과 두 番번째에 하나를 걸어 奇數기수, 偶數우수의 區分구분에 들지 않는 것은 하나를 남겨 두어 세지 않아서 사람의 太極태극을 象徵상징하는 것이다. 三極삼극의 道도가 세워져서 네 番번 헤아리는 道도가 行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여섯 爻효의 움직임은 三極삼극의 道도이다”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셋을 取취한다는 것은 一1, 三3, 五5가 九9가 되는 것을 말하고, 땅에서 둘을 取취한다는 것은 二2, 四4가 六6이 되는 것을 말하니, 모두 生數생수로 말한 것이다. 馬融마융은 “倚의’는 依支의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역대전 : 說卦傳:제1장(第一章)_5절
p.526 【經文】 =====
右 第一章
以上이상은 第一章제一1장이다.
中國大全
p.526 【小註】 =====
漢上朱氏曰, 此章自昔者聖人 [止] 倚數, 說策數也, 觀變於陰陽而立卦, 說揲蓍分卦也, 發揮於剛柔而生爻, 說爻有變動也. 和順 [止] 至於命, 說所係爻彖之辭也.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이 章장은 ‘옛날에 聖人성인이’부터 ‘數수에 依支의지하여’까지는 策數책수를 說明설명하고, “陰음과 陽양에서 變化변화를 보아 卦괘를 세운다”는 말은 蓍草시초를 헤아려 卦괘를 나누는 것을 說明설명하고, “굳셈과 부드러움에서 發揮발휘하여 爻효를 낸다”고 한 것은 爻효에 變動변동이 있음을 說明설명하고, ‘道德도덕에 造化조화하여 따르고’부터 ‘命명에 이른다’까지는 關聯관련된 爻辭효사와 彖辭단사를 說明설명하였다.”
○ 雙湖胡氏曰, 此章大抵論伏羲作易後, 欲敎天下後世用易, 故示人以因蓍求卦之法, 无非欲使斯人安於義命之天而已. 聖人雖專指伏羲, 然文王周公繫辭, 初不出義命之敎, 亦在其中矣.
雙湖胡氏쌍호호씨가 말하였다. “이 章장은 大體대체로 伏羲복희가 易역을 지은 後후 天下천하 後世후세 사람들에게 易역을 쓰는 方法방법을 가르치고자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蓍草시초를 따라 卦괘를 求구하는 方法방법을 보여주었으니,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義의와 命명의 하늘에 便安편안하도록 하고자 한 것뿐임을 論논하였다. 聖人성인이 비록 伏羲복희만 오로지 指稱지칭하였지만, 文王문왕과 周公주공이 글을 붙인 것도 애-初초에 義의와 命명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고 또한 그 가운데 있다.”
韓國大全
【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
第一章章下註漢上朱氏說, 揲蓍分卦之卦疑掛.
‘第一章제一1장’의 章장 아래에 있는 註釋주석에 나오는 漢上朱氏한상주씨의 말 가운데, ‘說揲蓍分卦설설시분괘’라고 한 곳에서의 ‘卦괘’字자는 ‘掛괘’字자의 誤字오자인 듯하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右第一章, 言文王周公用蓍筮卦之義, 而極贊易之功用也.
以上이상의 第一章제一1장은 文王문왕과 周公주공이 蓍草시초를 써서 卦괘를 헤아린 뜻을 말하고, 易역의 功用공용을 至極지극히 讚美찬미하였다.
* 出處: daum, Naver, Google, 바이두, 한국주역대전(韓國周易大全)DB, 한국경학자료시스템 等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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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