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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태후를 수하로 삼다 태후는 깜짝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조금전 위소보가 펼치던 수법은 신 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초로 자기를 제압한 것을 보면 바로 교주의 수단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혹시 교주께서 친히 전수하신 것이 아닙니까?" 위소보는 웃었다. "교주께서는 삼십 초의 살수를 나에게 전수하셨고 홍부인께서는 나에게 삼십 초의 금나수법을 전수해 주셨소. 비교한다면 교주의 수법이 더 무 섭지. 하지만 그 어르신의 초식은 손을 쓰기만 한다면 사람 목숨을 빼 앗는 것이오. 내가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부인이 전수한 비 연회상(飛燕廻翔)이라는 일초를 썼을 뿐이외다." 흰소리를 하는 데 밑천이 드는 것은 아닌지라 그는 초식을 십 배로 불 려서 이야기했다. 태후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홍부인이 펼치는 많은 초식 은 확실히 고대 미녀들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그만 등줄기에 흐르고 있는 식은땀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홍부인이 전수한 초식으로 나를 상대했기에 망정이지 교주가 전 수한 초식으로 나를 상대했다면 지금쯤 나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태후는 조금도 위소보를 해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 어 공손히 말했다. "백룡사께서 저를 죽이지 않은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소보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내가 그대의 눈알을 뽑지 못한 것은 부인이 전수해 준 초식에서 삼 푼 쯤 손에 힘을 뺏기 때문이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 위소보는 태후의 눈알을 뽑을 수도 있었 다. 그러나 그녀도 전력을 다해 방어했다면 역시 위소보의 목숨을 빼앗 을 수 있었다. 태후는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치솟아 말했다. "손에 사정을 두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속하는 매우 감격하고 있 으며 반드시 백룡사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위소보는 본래 태후를 보기만 하면 쥐가 고양이를 보듯 전신을 바들바 들 떨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그녀를 고분고분하게 제압하게 되었 을 뿐 아니라 그녀가 당황하고 황송하다는 듯 자기면전에 서 있는 걸을 보니 마음속으로 느끼는 의기양양한 기분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지경 이었다. 그는 왼다리를 들어 몇 번 흔들흔들 하다가 나직이 말했다. "이본에 본사(本使)를 따라 신룡도에서 서울에 온 사람은 반두타와 육 고헌 두 사람이오." 태후는 대답했다. "네, 네" 그녀는 속으로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신룡교 내의 고수인데 놀랍 게도 위소보의 조수가 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리고 속으로 조금 전 경솔하게 행동해서 만약 그를 때려 죽인 사실을 교주가 알고 나중에 따지고 든다면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반두타와 육고 헌 두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그녀 자신은 죽는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 고 조금 전 손을 쓰지 않았던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보니 위 소보의 뺨에는 손가락 자국이 완연했다 바로 자기가 조금 전 때린 두 대의 따귀 때문에 남겨진 손자국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속하가 과거 여러 가지 저지른 죄는 정말 만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백 룡사 대인께서 너그럽게 아량을 베푸셨으니 후에 무궁한 복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룡사 종지령이 교주를 배반했기 때문에 교주와 부인은 이미 그를 죽 였소. 그리고 나보고 백룡문을 이끌어 가도록 명했소. 흑룡사 장담월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힘을 기울이지 않아 교주와 부인께선 매우 화를 내고 있소. 그래서 경서를 취하는 일을 나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한 것 이오." 태후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 네." 그녀는 몇 권의 경서를 얻었다가 다시 잃어버린 사실 때문에 이 며칠간 조바심을 치고 있었는데 끝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일을 이야기하자면 길지요. 백룡사께서는 자녕궁으로 옮기도록 하시지 요. 속하가 자세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는 속으로 이 일 가운데는 모르는 곳이 무척 많아 정히 알아보지 않 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 태후는 몸을 돌려 빗장을 뽑아 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옆으로 비켜서서 그가 먼저 나가도록 양 보하려고 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태후께서 나가시오!" 태후는 나직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먼저 문을 나갔다. 위소보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수십명의 태 감들과 궁녀들은 멀리서 따라왔다. 두 사람은 자녕궁에 이르렀다. 태후는 그를 와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궁녀들을 물리치고 문을 닫았다. 그녀는 친히 한 그릇의 인삼탕 을 따라서는 두 손으로 바쳤다. 위소보는 그 삼탕을 받아 몇 모금 마시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나의 위치는 과거 순치 노황야와 비교할 수 있겠군! 살사 소황제 라 하더라도 태후는 이토록 공손하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크게 우쭐해졌다. 태후는 상자를 열어젖히더니 조그만 비단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상자 뚜껑을 열고 한 조그만 자기병을 꺼내더니 입을 열었다. "백룡사께 말씀드리죠. 이 병에는 서른 알의 설삼옥섬환(雪參玉蟾丸)이 들어 있는데, 아주 신기하기 이를 데 없으며 복용한 이후에는 몸을 건 강하게 하고 백독이 침범하지 못하게 된답니다. 이 가운데 열 두알은 교주에게 올리시고 열 알은 교주 부인에게 올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여덟 알은 백룡사께서 잡수시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이것 은 속하가 보여 드리는 조그만 성의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그러나 이 알은 표태역근환(豹胎易筋丸)과 상충되지는 않소?" "실로 상충되는 점은 없습니다. 백룡사께서 교주로부터 표태역근환을 하사받으신 데 대해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그런데 속하가 금년 에 복용할 해약을 교주께서는 백룡사를 통해 보내시지 않으셨나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금년에 먹을 해약이라고?" 그러나 곧 알아차렸다. 태후 역시 표태역근환을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교주가 매년 해약을 내리는 것을 보면 그 해약이 철저하지 못해 반드시 매년 그 해약을 복용해야 약기운이 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 으면 그녀가 깊은 궁궐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시위들이 많이 있으니 교 주가 아무리 재간이 높다 해도 그녀를 제압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와 나는 모두 표태역근환을 먹었으니 해약을 자연 내게 맡겨 보낼 순 없지 않겠소?" 태후는 말했다. "네, 하지만 백룡사께서는 교주의 은총을 입고 계신데 어찌 속하와 견 줄 수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이토록 무섭게 겁을 집어먹고 있으니 그녀에게 몇 마디의 위로 의 말이라도 해줘야겠다.) 그는 입을 열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그대가 진심으로 교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다른 마 음을 품지 않은 채 정성을 다해 일을 처리하면 결코 그대에게 소홀히 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소. 그 점에 있어선 안심하시오." 태후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교주의 은덕은 태산과 같습니다. 속하가 만 번 죽는다 해도 보답할 길 이 없군요. 교주께서는 홍복을 영원히 누리실 것이고 수명은 하늘처럼 영원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본래 황후이고 이제는 황태후이다. 당금 천하에서 황제외에 네가 가장 큰 대인이다. 교주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결코 너와는 비할 수도 없는데 너는 어째서 신룡교에 가입을 하고 교주의 명을 받고 있는 것이 지? 이것이야말로 지독히 천박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그렇군, 십중팔구 너ㅓ는 너의 딸처럼 천박한 뼈다귀라서 남에게 욕을 얻어먹고 짓밟힘을 당해야만 기분이 좋아지는가 보구나.) 그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역시 세상에 대해 아는 바에 한도가 있었 다. 따라서 일시에 그 부녀의 문제점이 어디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태후는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다음에 경서를 손에 넣 는 일에 대해서 물어 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먼저 말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 세 권의 경서는 속하가 등병춘과 유연에게 줘서 교주에게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이미 받아 보셨겠지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가짜 궁녀 등병춘은 도고모님에게 살해되었고 유연은 방소저의 검 아 래 죽음을 당했는데 무슨 경서가 있어 교주에게 바친단말인가?) 그는 그녀가 말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세 권의 경서를 교주에게 바쳤다고 했소? 그 일에 대해서는 들 은 적이 없는데, 교주께서는 흑룡사가 이토록 오랫 동안 일을 했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매우 화를 내시며 하마터면 그로 하여금 자살하 도록 할 뻔했소." 태후는 얼굴에 의아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속하는 분명히 등병춘과 유연 두 사람에게 세 권 의 경서를 가지고 신룡도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유연이 백룡 사께 죽음을 당하기 전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아, 그런일이 있었소? 등병춘이라고? 바로 그대의 그 대머리 사형 말 씀이오?" "그렇습니다. 백룡사께서 이후 신룡도에 돌아가게 되셨을 때 물어 보시 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위소보는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구나. 등병춘이 도고모에게 죽음을 당한 사실에 대해 이 늙은 갈 보는 내가 전혀 사정을 모르고 있는 줄 안다. 그녀가 세권의 경서를 잃 어버리게 되어 교주에게 책벌을 당하게 될까봐 모든 책임을 죽은 두 사 람에게로 미루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죽어서 대질할 사람이 없으니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헌데 세 권의 경서가 바로 나의 수중에 들어 있으니 그 누가 알겠는가? 이 같은 거짓말로 다른 사 람을 속인다면 그야말로 통하겠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지. 나는 잠시 동안 너의 그 간계를 들춰내지 않고 덮어 두기로 하겠다.) 그는 말했다. "그대가 이미 세 권의 경서를 손에 넣었다면 그 공로는 적지 않은 것이 외다. 나머지 다섯 권도 다시 정성을 다해 찾아보도록 하시오." "네. 속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나 어떻게 하면 다른 다섯 권의 경 서를 손에 넣어 교주의 은덕에 보답할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매우 훌륭하오. 기실 그대가 그토록 충성심을 다한다면 그 표태역근환 가운데 숨어있는 독성을 해독시켜 주어도 무방할 것이오. 얼마 후 내가 교주를 만나게 될 때 반드시 그대를 위해 좋은 말을 해드리리다." 태후는 크게 기뻐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말했다. "백룡사의 은혜, 속하는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속하가 백룡문으로 들 어가 백룡사로부터 직접 가르침과 직위를 받는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거야 쉬운 일이오. 하지만 그대가 교에 들어가게 된 모든 경위를 나 에게 상세히 말하되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할 것이오." "네. 속하는 본문의 좌사에게 결코 반 마디의 거짓말도 드리지 못할 것 입니다......" 갑자기 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 궁녀가 기침을 한 번 하 더니 입을 열었다. "태후께 알립니다. 황상께서 계공공을 부르십니다. 급한 볼 일이 있다 고 즉시 달려오라는 분부이십니다." 위소보는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대는 모든점에 있어 안심하시오. 이후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태후는 나직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어 그녀는 낭랑히 소리쳤다. "황상께서 그대를 부르니 그대는 가보도록 하오." "네. 태후께서는 편안하시길 빕니다." 문을 나서자 여덟 명의 시위가 자녕궁 밖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는 속으로 약간 놀랐다. (무슨 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재빠른 걸음으로 강희의 서재로 들어섰다. 강희는 기뻐서 말했다. "좋아. 별일 없었군! 나는 그대가 늙고 천한 것에게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혹시 그녀가 그대를 해치게 될까봐 정말 걱정했다네." "사부님께서 걱정을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 늙은...... 늙 은...... 그녀는 그 동안 어디를 갔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노황야의 일을 절대 말씀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산서성과 오대산도 들먹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도 제대로 할 수 없 었지만 그녀에게 다그침을 받게 디자 갑자기 떠오르는 김에 황상께서는 소신을 강남으로 보내어 무슨 재미있는 물건이 있는가 알아보라고 했으 며 있으면 사서 궁안으로 가져오라고 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황상께서는 태후께서 황상이 황제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의 성질 을 버리지 못했다고 하실 것이니 절대 말씀을 올리지 말라는 분부가 있 었다고 했습니다." 강희는 껄걸 소리내어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네. 그 늙고 천한 것이 여전히 내가 어린애처럼 놀기 좋아하는 줄로 여긴다면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 런데 그대는 거짓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퍽 근사하게 잘하는구 만." "그런 대로 잘 하는 것입니까? 소신은 그같이 말씀드렸다가 황상께서 불쾌히 여기지 않을까 두려워서 조마조마했습니다." "좋아 좋아. 조금전 나는 그 늙고 천한 것이 그대를 해치게 될까봐 이 미 여덟 명의 시위를 자녕궁 밖으로 보내 지키도록 했네. 만약 늙은 것 이 그대를 보내 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로 하여금 안으로 달려들어가 그대를 빼앗아 오도록 할 참이었네. 정말 그녀와 얼굴을 붉힌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황제 사부님께 태산과 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신하이며 제자인 저는 몸 이 가루가 된다해도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대가 노황야를 잘 시중들기만 한다면 바로 내가 그대에게 베푼 은혜 를 보답하는 것이네." "네, 알겠습니다." 강희는 탁자 위에서 한 통의 밀봉된 누렇고 큰 봉투를 들며 입을 열었 다. "이것은 소림사 뭇승려들에게 내리는 유시일세. 그대는 사십 명의 어전 시위를 뽑고 이천 명의 효기영(驍騎營)관병을 데리고 소림사로 가서 유 시를 알리고 일을 처리하도록 하게.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은 유시 에 씌어 있으니 소림사로 간 이후 뜯어서 그대가 그 유시를 받들어 행 하기만 하면 된다네. 이제 나는 그대의 벼슬을 올려서 그대를 효기영 정황기부도통(正黃旗副都統)에 임명하네. 이것이야말로 정이품의 대관 일세. 그대는 본래 한나라 사람이었으나 나는 그대를 만주 사람으로 만 든 것이네. 정황기는 황제가 친히 거느리는 기병(旗兵)일세. 효기영으 로 말하면 황제의 정예 친위병이지. 그리고 어전시위 부총관의 벼슬도 여전히 겸임하게나." 그는 위소보가 글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재간도 없고 또 나이도 어리고 해서 정말 커다란 벼슬아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 두 차석의 지위를 내린 것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저 황제 사부를 곁에서 언제나 모시게 된다면 벼슬이 크고 작고 간 에 이 신하 제자는 결코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힘주어 큰절을 올리며 은혜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멀쩡한 한나라 사람인데 이제부터 만주오랑캐가 되고 말았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황제 사부께서는 나에게 서둘러 청룡사로 가서 소화상이 되도록 하지 않고, 먼저 군사를 이끌고 소림사로 가서 노황야를 구하느라고 공을 세 운 여러 승려들에게 상을 내리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거드름을 피 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게다. 이것이야말로 처음은 달콤하고 뒤에 는 쓰디쓴 맛이로구나. 먼저 나리의 행세를 한 이후 나중에는 볼기짝을 치는 격이군!) 강희는 효기영 정황기도통 찰이주(察爾蛛)를 불렀다. 그에게 소계자는 기실 태감이 아니고 어전시위 부총관이며 진짜 이름은 위소보라고 하는 데 오배를 잡아 죽이기 위해 가짜 태감 노릇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기인(旗人)이라는 신분을 내렸으니 바로 정황기에 속하는 사람일 뿐 아 니라 효기영 정황기부도통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찰이주느 오배가 정권을 쥐고 흔들 때 크게 곤혹을 당하곤 했었다. 본 래는 옥에 갇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는데 다행히 오배의 일이 들통 나게 되고 그가 옥에 갇히자 그제서야 찰이주는 석방되었다. 그렇기 때 문에 오배를 잡아 죽인 위소보에 대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황상으로부터 그를 자기의 부장으로 삼는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 즉시 축하의 말을 했다. "위형제, 우리 형제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다시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 않구만! 그대는 과연 영웅ㅇ니 우리 효기영 은 이제야 크게 위엄을 떨칠 수 있게 되었네." 위소보는 겸손의 말을 했다. 찰이주는 이미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위 소보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만큼 직위는 자기의 부장이라ㅏ고 하 나 기실 자기가 그의 부장 노릇을 해야 된다고. 그래서 그의 환심을 사 두면 나중에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강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위소보에게 시킬 일이 있다네. 그러니 두 사람은 가서 인마를 점 검하도록 하게. 위소보는 오늘밤 즉시 북경에서 떠나되 작별 인사를 하 러 올 필요는 없네." 그는 효기영의 병마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금패령(金牌令)을 위소보에 게 건네 주었다. 위소보는 금패를 받아들고 큰절을 한 다음 작별을 고했다. (늙은 과부가 어째서 신룡교로 가야 했는지 이유를 아직 조사해 내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겠지. 아마도 천한 짓을 하고 싶어서 였겠지. 다 음에 다시 궁으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물어봐야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어제 공주에게 얻어맞는 바람에 전신이 아파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자느라고 도고모님을 만나뵈러 가지 못했구나. 도고모님은 궁에서 어떻 게 지내고 계시는지 다음에 궁으로 되돌아오면 꼭 그녀를 한 번 만나봐 야지.) 그 즉시 위소보외 찰이주 두 사람은 어전총관 다륭을 만났다. 위소보는 먼저 어전시위 부총관에 임명한다는 황제의 유시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다륭 역시 연신 축하의 말을 했다. "위형제, 시위들을 뽑으려면 얼마든지 뽑게나. 황상께서 고개만 끄덕인 다면 나까지도 그대를 모시고 함께 가도 괜찮네." "그거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황상을 보호하는 일을 책임지셔야 합니다. 총관께서 경성을 나서 놀러가는 것은 아마 그리 쉽지 않을 것 이오." 다륭은 웃었다. "다음에 황상께 청을 드려 우리 형제들끼리 한 번 교대를 하자구. 그대 가 정부통관이 되고 내가 부부통관이 되어서 경성을 나가 매부 좋고 누 이 좋은 일을 벌여 보자구!" 위소보는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의 시위를 뽑았다. 그리고 두 사람에 게 친근한 시위들을 불러모으게 했다. 찰이주는 이천 명이나 되는 효기 영들을 모았다. 각 참령(參領)과 좌령(佐領)이 부도통에게 문안을 드렸 다. 황제는 소림사 승려에게 내리는 하사품을 모두 갖추어서 수십 개의 수레에 싣게 했다. 황제가 무슨 일을 할 때는 물론 즉시 호령을 내려 거행하도록 했으니 두 시진도 되지 않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 위소보는 본래 효기영의 융장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그토록 치수가 적 은 장군의 융복은 즉시 준비하기가 힘들었다. 찰이주는 생각이 매우 치 밀했다. 자기의 융장 한 벌을 그에게 주었으며 네 명의 솜씨 좋은 재봉 사들을 딸려 보냈다. 그리고 수레 안에서 재빨리 고치도록 명하여 재봉 사들은 저녁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옷을 다 만든 이후에야 다시 경성으 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게으름을 피운다면 무거운 벌을 내 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 위소보는 여가를 틈타 골목길로 들어가 육고헌과 반두타에게 말했 다. "오늘 이미 궁안으로 잠입하게 되었소. 경전을 훔치는 일은 어느 정도 단서가 보이오." 그는 두 사람에게 조용히 집안에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분부하고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함부로 바깥 출입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육고 헌과 반두타 두 사람은 그가 일을 순조롭게 처리했을 뿐 아니라 이틀만 에 어느 정도 단서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하나같이 기꺼워하며 연신 고 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서동으로 옷차림을 바꾸고는 자기와 동행하도록 했 다. 위소보가 출발을 하게 되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강희는 그날로 떠나야 한다고 했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북경성에 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영정문(永定門)을 나서서 이십 리 를 간 이후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묵었다. 효기영은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병(親衛兵)이었다. 모두 다 만주 귀족들의 자제였으며 먹는 것이나 입는 것도 여느 병사들보다도 십 배는 많았다. 모두들 경성에서 오랫 동안 지체했기 때문에 경성을 나서서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하나같이 기뻐했다. 더군다나 싸움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남으로 공무를 띠 고 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조정에서 돈을 써가며 그들에게 산 천 유람을 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위소보는 술과 밥을 먹은 이후 너무 일찍 자기도 뭣하여 장강년과 조제 현 등의 뭇시위들을 불렀다. 그리고 효기영의 참령과 좌령 중에서 뽑은 군관들을 일제히 중군장(中軍帳)에 모았다. 뭇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황상께서는 위부통에게 어떤 큰일을 맡기셨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우 리들을 불러모은 것은 반드시 어떤 특별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겠구 나!) 각자 인사를 나눈 연후에 위소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제들, 할 일도 없고 하니 빌어먹을, 모두들 노름이나 한 판 벌이도 록 합시다. 내가 전주가 되지." 뭇군관들은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여전히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품 속에서 네 알의 주사위를 꺼내더니 나무상자 위에 던지 지 않는가? 주사위는 데구르르 굴렀다. 뭇사람들은 그제서야 우뢰와 같 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릇 군사들 가운데 노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행군을 하거나 출정을 하게 되었을 때는 도박을 금하여 군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아 큰일을 그릇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소보가 그같은 일 을 어떻게 알 리가 있겠는가? 효기영의 참령과 좌령들은 군율을 알고 있었으나 이번 일은 싸우는 것도 아니니 부도통의 흥취를 돋구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다시 품 속에서 한 묶음의 은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족히 오륙 천 냥이나 되는 은자였다. "어느 누가 재간이 있다면 따가도록 하시지?" 뭇군관들은 다투어 자기의 천막으로 달려가 은자를 가져왔다. 효기영의 군사들은 직위가 낮은 사람도 대부분 집안의 재산은 매우 풍 족한 편이었다. 위부도통이 전주가 되어 도박을 한다는 말을 듣고 모두 다 중군장 안으로 들어왔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노름판에 끼어드는 데 있어서 크고 작음을 상관하지 않으며, 그저 은 자나 원보만을 따기로 하지. 영웅호걸은 잃으면 잃을수록 웃음을 짓고 후레자식은 돈을 따면 도망을 치는 것으로 하자구!" 그리고 네 알의 주사위에 훅 하고 숨을 한 번 내불고는 냅다 주사위를 던졌다. 그는 양주에 있을 때 도박장에서 전주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고 얼마 나 부러워했던가? 무슨 부총관이고 부통관이고 하는 것은 대수롭게 여 기지 않았다. 그는 오늘 수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전주가 되는 대노름판을 벌 리게 된 데 대해서 그야말로 한평생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 다. 뭇군관들은 다투어 돈을 걸었다. 어떤 사람은 땄고 어떤 사람은 잃었 다. 한참 동안 노름을 하니 흥취가 일었고 거는 돈도 점차 커지게 되었 다. 그리고 뒤쪽으로 물러섰던 군사들까지도 슬금슬금 앞으로 나와 은 자를 꺼내서 돈을 걸기 시작했다. 시위 조제현과 한 명의 만주 좌령이 위소보의 곁에 서서 그를 도와 내기돈을 거두어들이든가 진 돈을 내주 든가 했다. 중군장 안은 그야말로 땡이니 뭐니 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고 땄다 망했다 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완전히 커다란 도박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반 시진 가량 노름을 하게 되었을 때 도박판 의 탁자 위에는 이미 이만여 냥이나 되는 은자가 쌓였다. 어떤 사람은 돈을 모조리 잃고는 자기의 천막으로 가서 노름을 하지 않는 동료들에 게 돈을 빌어와 다시 밑천을 찾으려고 덤벼 들기도 했다. 위소보는 주사위를 내던졌다. 네 개의 주사위가 모두 붉은 점이 나왔 다. 이렇게 된다면 모조리 잡아먹는 셈이었다. 뭇사람들은 무척이나 낙 담하는 표정을 지었고 어떤 사람들은 신음소리를 입에 담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제현은 손을 뻗쳐 그가 건 돈을 모조리 거둬들이려고 했다. 이때 위소보가 부르짖었다. "잠깐! 오늘 처음으로 군사들을 이끌고 전주가 되었으니 이번에 건 돈 은 내가 먹지 않고 뭇친구들에게 돌려 주기로 하지." 뭇군사들은 크게 환호를 내지르며 일제히 부르짖었다. "위부통은 정말 영웅이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자, 걸 사람은 거시지." 각자는 한 번 걸었던 몫이 영락없이 빼앗길 돈인데 자기 수중으로 되돌 아온 것을 보고 하나같이 운수대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투어 돈 을 걸게 되었고 탁자는 은자로 가득 차게 되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낭랑한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천문(天門)에 걸도록 하지!" 그리고 수박 같은 둥그런 물건을 천문 쪽에 걸었다. 뭇사람들은 자세히 쳐다보는 순간 그만 놀라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도박판위에는 놀랍게 도 피와 살로 얼룩져 있는 머리가 놓여 있었다. 그 머리 위에는 관모 (官帽)가 씌워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 명의 어전시위가 아닌가? 조제현은 놀라 부르짖었다. "갈통(葛通)!" 원래 이 머리는 갈통이라는 어전시위의 머리통이었다. 그는 당직이 되 어 초막 밖에서 순시를 돌고 있었는데 상대방에 의해 목이 잘려진 것이 었다. 뭇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사방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중군장 한구 석에 남삼을 입은 사람들이 각기 장검을 들고 서 있었다. 뭇 군관들은 한결같이 노름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라 그 누구도 이 사람들이 언 제 들어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중군장의 뭇군관들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 도박판 가운데 이십 오륙 세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서 있었는데 두 손은 맨손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고 물었다. "도통대인, 건 것을 받으시겠소? 안 받으시겠소?" 조제현은 부르짖었다. "쳐라!" 대뜸 몇 명의 어전 시위가 그 젊은이에게 달려들었다. 그 젊은이는 두 팔을 벌리더니 두 사람의 가슴팍을 와락 잡고 한 가운데로 모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머리가 서로 부딪치더니 두 사람은 즉시 기절해 버렸다. 곧이어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두 자루의 장검이 뻗어나가 다른 두 명의 시위를 찔렀다. 두 명이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 며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검을 떨친 남삼을 입은 사람은 중년 사내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검을 뽑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쌍검 을 일제히 날려서 팍!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도박판 위에 꽂았다. 중년인은 검을 꽂으며 부르짖었다. "상문(上門)에 걸겠소!" 도사가 부르짖었다. "하문(下門)에 걸겠다!" 두 자루의 장검은 영락없이 상문과 하문에 나뉘어 꽂혔다. 그 젊은이는 왼손을 휘둘렀다. 네 명의 남삼인이 앞으로 달려나오더니 네 자루의 장검으로 위소보의 좌우 요혈을 겨누었다. 조제현은 떨리는 음성으로 일갈했다. "당신들은 뭣 하는 사람인가? 당...... 당돌하다. 관리를 죽이고 군영 안으로 뛰어들다니. 머리를 참수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검으로 위소보를 겨누고 있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쳇 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두렵지 않소. 당신은 두렵소?" 듣고 보니 그것은 간드러진 여자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보니 십 오륙 세 되는 소녀였다. 얼굴은 약간 둥근 편이었고 얼굴 모습은 매우 예쁘게 생겼다. 한 쌍의 커다란 눈망울은 칠흙 같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입가에는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본래 그는 이미 놀라 혼이 달아난 듯한 상태였으니 아 름다운 소녀를 대하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자연히 용기가 크게 일어나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저 한 사람이 검으로 나를 겨누기만 해도 나는 큰 두려움을 느꼈을 텐데......" 소녀는 장검을 약간 뻗어내며 검의 끝을 그의 어깻죽지에 대고 말했다. "그대는 두렵다면서 왜 웃죠?" 위소보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나는 여자의 말을 매우 잘 듣는 편이라오. 소저가 웃지말라면 나는 웃 지 않겠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얼굴에 조금도 웃음을 띄우지 않았다. 그 소녀는 그가 하는 양을 보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쳇 하고 웃었다. 그 사람들을 인솔해 왔던 젊은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냉소했다. "만주 오랑캐들도 이제 운수가 다 된 모양이다. 이 같은 젖비린내 나는 꼬마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게 하다니. 이것 보시오. 두 자루의 보검과 하나의 머리통이 걸리지 않았소? 그런데 어째서 그대는 주사위를 던지 지 않지?" 위소보는 곁에 아름다운 소저가 있고 또 그로부터 주사위를 던지라는 말을 듣고 놀란 가슴을 약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내가 지면 무엇을 물어내야 하는 것이오?" 그 젊은이는 말했다. "그것을 물을 필요가 있소? 검을 잃게 된다면 검을 내놓으시고 머리를 잃게 된다면 머리를 내놓도록 하시오." 그러면서 그 젊은이는 이 나이어린 장군이 반드시 용서를 빌며 투항하 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소보는 싸우거나 무공을 겨루는 데 있어서 는 투항을 하면 했지 도박판에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허수아비나 멍 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곁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지 않은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찌 아름다운 소저 앞에서 창피스런 꼴을 당하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저 사람들 네 명은 검으로 이미 나룰 겨누고 있다. 나를 죽이려고 하 는 판이니 지든 이기든 죽이려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입으로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는 즉시 주사위를 들고 말했다. "좋소. 검을 잃게 된다면 검을 내놓고 머리를 잃게 된다면 머리를 내놓 지. 그리고 바지를 걸고 지면 바지를 벗기로 하지. 먼저 그대가 던지시 오!" 그 젊은이는 소년 장군이 이토록 담이 큰 것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 해 졌다. 중년의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대군이 밖에 있으니 너무 지체하지 말라. 다른 변고가 있을지 모르 오." 그러니까 그 젊은이에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얘기였 다. 이천 명이나 되는 만주의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면 그렇게 쉽게 처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젊은 위소보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자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와 더불어 이 한판 노름을 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승복할 수 없겠지?" 그는 주사위들 받아서 던졌다. 여섯 점이 나왔다. 도사와 중년사내도 각기 던졌다. 모두 8점이 나왔다. 위소보는 주사위를 들고 그 소녀의 앞으로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소저 입김을 한 번 불어 주시오." 그 소녀는 미소했다. "무얼 하자는 거죠?" 그러나 숨을 한 번 훅 내뿜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됐다. 미녀가 입김을 불어 주었으니 오로지 모조리 다 잡아먹는 일만 남았을 뿐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주사위를 몇번 흔들었다가 던지려고 했다. 이때 조제현이 입을 열었다. "잠간! 위도통, 그들에게...... 그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보시구려." 그는 위소보가 주사위를 던졌다가 6점 이하가 나오게 된다면 목숨을 잃 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 위소보가 자기의 머리를 내놓지 않고 이 조제현의 머리를 내놓겠다면 어찌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다. 그 젊은이는 냉소했다. "만약 무섭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시지." 위소보는 말했다. "후레자식만이 두려워하는 것이오." 그는 손으로 약간 수작을 부리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로 놀라 간이 떨 리는 판이라 속임수를 그렇게 매끄럽게 쓸 수가 없었다. 네 알의 주사위가 던져지고 몇 번 데구르르 구르더니 멈추었는데 한 쌍 의 천패는 나오지 않고 바로 6점이 나왔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6점은 6점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이겼고 상문과 하문은 내가 졌다." 그리고 그는 갈통의 수급을 들어서 자기 앞에 놓은 후 다시 입을 열었 다. "조형,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와 상문과 하문에 건 사람들에게 주시 오." 조제현은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는 중군장 입구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명의 남삼을 입은 사내가 검을 뽑더니 그의 가슴팍을 찔러대 며 소리쳤다. "게 서시오." 위소보가 말했다. "검을 가지러 가지 말라는 뜻이오? 그것도 괜찮지. 한 자루의 보검마다 천 냥의 은자로 계산합시다." 그는 앞의 은자 무더기 중에서 2천 냥을 꺼내 나누어 장검 곁에 놓았 다. 이 한떼의 호걸들은 중군장으로 뛰어들어 주장을 제압했는데도 군관들 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무공이 고강하기도 했거니와 단번에 사람을 죽이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지라 자기 쪽의 군사들이 많다고 하나 모두 다 중군장밖에 있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나중에 혼전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중군장 안의 뭇사람들은 아무래도 모조리 목숨을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벌벌 떨고 있는데 위소보 는 적과 목을 걸고 주사위를 던지면서 태연히 담소를 하지 않는가? 그 들은 그의 용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린애니까 땅이 얼마나 두텁고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이 비 적들이 너와 장난질을 치고 있는 줄 아느냐?) 이때 그 젊은이가 다시 냉소했다. "우리가 두 자루의 보검이 겨우 그대의 2천냥밖에 딸 수 없다는 말인 가? 노름판에 나온 모든 은자를 거두어들이시오." 육칠 명의 남삼을 입은 사내들이 다가오더니 노름판의 은자와 은표를 모조리 거둬들였다. 그 젊은이는 한 자루의 장검을 잡아들더니 위소보 의 목을 겨누며 호통을 내질렀다. "이 나이 어린 종놈아! 너는 만주 사람이냐? 한나라 사람이냐? 이름은 뭐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투항을 하려 했다면 당신네들이 들어왔을 때 이미 항복을 했을 거다. 이제 굴복을 한다는 것은 너무 용두사미격으로 앞에서 세운 공을 모조리 저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냐? 사내 대장부는 버틸려면 끝까지 버 티는 거야.) 그는 껄걸 소리내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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