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노래산 교우촌 (순례지/성지)
간략설명:험준한 태백산맥의 노래산에 세워진 교우촌
지번주소: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노래리 568(청송호 상부댐)
노래산(795m)은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노래리에 있다.
이 지방에는 1775-1785년 음력 1월까지 10년 동안 수덕자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이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칠극”(七克)에 의한 천주교 수계생활(守誡生活)을 함으로써 복음의 씨가 뿌려졌고,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후 상주의 이안면 · 배모기 등 몇몇 곳에 복음의 씨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나라에서 천주교를 박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곳이 다른 지방에 비해 폐쇄적이며 불교와 유교가 대단히 성행했던 지방이라 좀처럼 복음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아직 복음이 크게 전파되지 않아서 관헌들의 박해의 손길도 그다지 뻗치지 않았고, 또한 경상도 동북부가 험한 산악지대가 많았던 지리적 이유로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살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난 와서 숨어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태백산맥의 높고 험준한 산악지대에 자리한 청송의 노래산, 진보의 머루산, 일월산(1219m) 가운데 있는 봉화의 우련전(우련밭), 영양의 곧은정 등지에는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새로운 교우촌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다. 이때 신유박해의 손길이 뻗쳤던 상주의 배모기, 은재 등지에 살던 신자들도 문경의 한실과 청송의 노래산 등지로 피난을 와서 다른 지방에서 온 신자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유박해 중에 관청에 체포되었으나 죽음을 면한 신자들이 경상도의 언양(강이문), 김해(이학규), 고성(신흥권) 등지로 귀양을 감에 따라 이들 지방에도 자연히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결국 정치적 갈등과 당쟁이 큰 구실이 되어 일어난 이 박해로 300명 이상의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는 처참한 지경에 빠졌지만, 한편으로는 이 박해로 인해 경상도 지방에는 복음의 씨앗이 점차 확산 되어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청송군은 경상북도의 중동부 지역에 위치하며, 한반도의 동해안 쪽으로 치우쳐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들이 많은 산악지대이다. 특별히 안덕면에 있는 노래산은 “산의 형세가 네 신선(神仙)이 걸어가는 발모양 같이 생겨 늙은 보래(神仙)들이 오는 곳”이라 해서 노래산(老萊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