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오아르패스
최원혜
누구에게나 사람이라면 작은 실수가 있는 것이다. NG 란“NO GOOD” 약자이다. 뜻은 영어로 Blooper(큰 실수)라고도 한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매력적이기보다 거리감, 부담을 준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인정하고 꾸준히 개선하는 태도가 건강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실수 나 약간의 빈틈이 인간적 매력과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찍을 때“CUT!”이라고 말하여 NG 내었던 장면 잘라 내어 다시 찍을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조금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수정하는 삶을 살아 보라는 듯하다. 나는 나날의 삶에서 사소한 어긋남을 마음에 남겨두기로 하였다.
어린 날 나는 위로 네 분의 언니 오빠가 아기때 모두 운명하였다. 그리고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고, 귀한 맏딸로 성장하였다. 순번이 바뀌어 막내가 맏딸이 된 것이다. 점쟁이는 내가 태어나던 순번에 딸이면 대가 이어지고, 아들 낳으면 대가 끊어진다고 하였다. 부모님은 노심초사하여 부처에게 백일 불공 올려 딸을 낳은 터라 너무도 귀하게 키워서 실수투성이의 딸로 성장하였다. 너무도 철부지 이어서 하는 일마다 덤벙대는 나의 행동에 온통 실수투성이의 딸이다. 그것마저도 아버지의 가정교육에서“CUT!”이라고 해나가며 성장하였기에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하였듯, 어릴 때 몸에 밴 버릇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고치기 힘들다고 하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성격 급하면서 덤벙대던 버릇은 조금은 남아 있는듯하였다. 때로는 경거망동(輕擧忘動)일 때마다 나는 곰곰이 아버지의“CUT!”이라고 하는 말을 기억에 떠올렸다. 두 아들 낳아 기르면서 나 자신을 늘 다스리었다. 침착하게 “CUT!”,“CUT!”을 염두에 두며 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CUT!”을 가끔 외칠 때도 있었다.
나는 중매 결혼하였다. 그 시절 선보는 장소가 주로 다방에서 만남 장소로 택하였다. 지금 기억으로 동인동 궁중 다방이었다. 그때는 이모의 지인이었던 시아버지와의 중매로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이모가 시부모 될분에게“우리 이질녀는 위로 넷이나 없애고, 간신히 붙들어 귀하게 키웠던 아이이어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심더. 잘 가르쳐 주이소.”라며 말을 건네었다.
어느덧 결혼하였을 때이다. 범어동 범어시장 부근에 신접살림 차리었다. 친정에서도 맏딸이듯, 시댁에서도 역시 맏며느리이다. 시댁 가족에게 식사 대접 하려던 참이었다. 시어머니가 음식솜씨 있던 분이라고 들었다. 그때는 시어머니는 종가 맏이 이어서 오랫동안 하였던 음식에는 연륜을 지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훌륭하신 주부이다. 나는 갓 시집온 새색시이어서 시부모 앞에서 엄청 떨리었다. NG 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며 음식을 장만 하였다. 물론 동갑 나이인 시누이의 도움이크게도 한몫하였다.
식사 후 시어머니가“야야! 너네 이모가 아무것도 못 한다더니 참 맛있네.”라고 하였다. 감불생심(敢不生心) 요리 솜씨 흉내를 잘 내지 못할 어머니의 칭찬받았던 순간 너무도 황홀하여 날아갈 듯하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말이 무척 실감 났다. 내가 조마조마하였던 것은 시어머니의“NG”OR“PASS”라는 말의 귀착에 서 있는듯하였기 때문이다. 소고기 국, 잡채, 소고기 불고기등 갖은 나물로 차리어 드렸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음식 레시피 보면 어떠한 음식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결혼 전 혼수로 사두었던 요리 백과사전에 힘을 빌리었다. 맏며느리로 사셨던 친정어머니의 영향도 한몫하였다. 그날은 다행히도 NG 없이 무사히 잘 해내어 새색시의 하루해가 너무도 행복하였다.
어느 날 성당에서 성경 독서를 하게 되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성서 읽기를 헤아릴 수 없이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듣고 있던 작은아이가“엄마 내일 독서 하세요? 라고 물어왔다.”“그래. 실수하면 안 되지? 독서에 자신감 있도록 연습하면 떨리지도 않제.” 하였다. 매번 거울 보고 성서 읽으면 아이가 내일 또 독서 하는구나 하며, 그때는 의례 묻지도 않았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본을 받아들면 읽고 또 읽어 드라마 찍을 때“CUT”횟수를 줄이어나간다. 그래서 나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독서할 때면 여러 수십 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다.
오십대 중반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기분 안좋던 어느 날 대구 살다가 시어른 돌아가시고 영천으로 이사하였던 같은 성당 형님에게서 안부 전화하였다. 영천 으로놀러 오라고 한다. 오라고 하던 형님의 목소리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마트에 들렀다. 돼지고기 삼겹살, 화장지, 1종주방세제 퐁퐁 등 사서 준비하여 가기로 하였다.
영천 금호강 부근 위치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나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비 오는 날 음악 들으며 운전하는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런대로 운전대 잡고 달리는 기분은 참으로 힐링 되었다. 신나게 흥얼거리며 달리던 중 도로에서 큰 실수를 하였다. 톨게이트에서의 일이일어나고말았다. 생뚱맞은 방향으로 빠져나왔다. 내비를 잘못 보아 헷갈리었던 것이다. 아뿔싸! 도로에서 이탈되어 반대편 도로로 달리고 있었다. 실수도 어찌 그러한 큰 실수를 하였을까? 대형 NG를 내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차량이 한 대도 오지 않아 사고는 없었다. 깜짝 놀라 정신 차리어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교만하였던 이 죄인 용서하소서.”라고 성호 그으며 기도 하였다. 생각할수록 소름 끼치었다. 그때는 “CUT!”이라고 하여주는 사람은아무도 없다. NG도 잘못 내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날의 일로 나는 남에게 들키지 않은 대신, 나 자신으로부터는 숨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비로소 나의 하루를 되짚었다. 완벽하지 못하였던 순간보다, 괜찮다고 넘겨버린 나의 태도를 떠올려보았다. 그 실수는 실패라기보다, 나를 멈춰 세운 작은 신호이었다.
나의 삶은 이런 여러가지“NG”로 나를 가르친다. 나는 그날의 어긋남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하루를 조금은 다른 얼굴로 맞이하기 위하여“NG OR PASS!”를 외치며 크게 되새길 일이다.
(20260126.)(20260129.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