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세상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겨울밤의 어둠은 마당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 어머니는
벌써 하루를 시작하고 계셨다.
식구들이 먹을 아침밥을 준비하고
집안의 살림을 살피신 뒤
어머니는 다시 채소를 머리에 이셨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길.
찬바람은 옷깃을 파고들고
얼어붙은 흙길에는 밤새 내린 서리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그 길을 걸어 시장으로 향하셨다.
머리 위에는 채소가 담긴 다라이가 있었고
가슴속에는 여덟 식구의 하루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얼마나 무거운 삶을 지고 가시는지
그 무게를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었다.
칼날처럼 차가운 미나리꽝
아침 일찍 채소를 팔러 나가신 어머니는
오전 열 시가 넘어서면 다시 미나리꽝으로 향하셨다.
칼날처럼 차가운, 물속에 손을 담그고
미나리를 캐기 시작하셨다.
물은 손끝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시렸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손을 물속에 넣을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을 테지만
어머니는 미나리를 캐고 또 캐셨다.
그렇게 캐낸 미나리를 광주리에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셨다.
오전 열 시가 넘도록
제대로 아침 한 끼 드시는 모습을
나는 좀처럼 본 기억이 없다.
아들은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랐다.
어머니도 사람인데,
어머니도 배가 고프고 추우실 텐데,
어머니의 손도 아프고
어머니의 허리도 견디기 힘드실 텐데.
왜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는
그토록 작은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으셨을까.
어린 아들의 마음에는
그 물음이 말없이 쌓여 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고단함을 길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저 다시 일하셨다.
가족이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자식들이 자라야 했으므로.
내일도 살아가야 했으므로.
저녁에 돌아온 다라이, 다시 시작되는 노동
오후 늦은 시간.
어머니는 미나리를 듬뿍 담은 다라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새벽부터 이어진 하루였지만
어머니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미나리를 다듬기 시작하셨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이 둘러앉아
미나리를 다듬는 모습을 보곤 했다.
나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그 곁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미나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시든 잎을 떼어 내고,
지저분한 부분을 골라내고,
팔아도 좋을 만큼 깨끗하게 손질했다.
아버지도 계셨고, 어머니도 계셨고,
동생들도 함께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미나리 더미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
낮에는 밭과 시장에서,
밤에는 집 안에서
우리 가족의 손은 쉴 줄을 몰랐다.
시간이 흘러도 미나리는 줄어들지 않는 듯했고
졸음이 밀려와도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긴 손질이 끝나는 날이 많았다.
그제야 우리는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조차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채소를 이고 시장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하루는 하루가 아니었다.
새벽과 낮과 밤이 한데 이어진
끝없는 노동의 시간이었으며,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자식들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어머니의 삶이 보이기 시작하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대략 육칠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는 어머니의 고된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어머니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셨다.
아침을 준비하고,
채소를 이고 시장으로 나가고,
찬물 속에서 미나리를 캐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미나리를 다듬고,
밤 열두 시가 넘도록 가족과 함께 일하셨다.
그 생활은 한두 번의 고생이 아니었다.
하루의 고생이 다음 날로 이어지고
겨울의 고생이 또 다른 계절로 이어졌다.
나는 그 곁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배운 글과 숫자보다
더 깊이 내 마음에 새겨진 공부가 있었다.
그것은 부모님의 삶을 바라보며 배운
가난과 책임, 노동과 사랑에 대한 공부였다.
아들은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미나리를 다듬는 손을 보태고
집안일을 거들고
부모님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려 애썼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보면
내가 보탠 것은 부모님의 고통에 비하면
먼지만큼 작은 도움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뼈가 저리도록 아팠을 노동,
가슴 깊이 쌓였을 근심과 슬픔을
어린 아들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내 몫의 일을 하며
부모님의 곁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때 부모님 곁에 앉아
미나리를 다듬던 그 시간도
내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었던
작지만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염소 세 마리, 그리고 소 한 마리
어느 날 아버지는
키우던 염소 세 마리를 파셨다.
그리고 그 돈에 조금 더 보태어
마침내 소 한 마리를 사셨다.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 것이다.
염소를 키우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소를 먹일 풀을 베어야 했다.
내게도 새로운 일이, 주어졌다.
염소 꼴을 베던 일에서
소 꼴을 베는 일로 바뀌었다.
소 한 마리가 먹어야 할 풀은
염소에게 주던 풀과는 달랐다.
더 많은 풀을 베어야 했고
더 무거운 꼴망태를 채워야 했다.
들판을 돌아다니며 풀을 베고
소가 먹을 만큼 넉넉히 모아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나는 부모님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고
어머니는, 장사를 하셨으며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집안의 일을 함께 짊어지려 애썼다.
그때의 나는 아직 학생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금 덜 힘드시지 않을까.
내가 풀을 더 베어 오면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편히 쉬실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어린 아들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었던
나름의 효도였다.
부모님의 삶은 내 인생의 교과서, 였다
세월은 흘렀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 역시 나만의 인생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새벽 다섯 시의 어머니가 남아 있다.
차가운, 물속에서 미나리를 캐던 어머니.
다라이를 이고 눈보라를 헤치던 어머니.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자식들과 미나리를 다듬던 어머니.
그리고 염소 세 마리를 팔아 소를 사시며
가족의 살림을 이어 가려 하셨던 아버지.
두 분은 가난을 이겨 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살아 내셨다.
나는 그 삶을 보며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은 내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산을 남기셨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자세,
남에게 기대기보다 내 손으로 살아가려는 의지.
그것들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부모님의 거친 손과 굽은 허리에서
내가 직접 배운 삶의 가르침이었다.
어머니, 이제야 그 무게를 헤아립니다
어머니.
그때 저는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시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그 길이 얼마나 춥고 멀었는지 몰랐습니다.
얼음물 속에 손을 담그시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그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 알지 못했습니다.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온 가족이 미나리를 다듬던 그 시간이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길고 고단했는지도
이제야 조금씩 깨닫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도와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제가 보탠 것은 작은 손길이었고
부모님이 감당하신 것은 가족의 생애 전체였습니다.
아버지는 땅과 가축을 돌보셨고
어머니는 시장과 부엌을 오가셨습니다.
두 분의 하루는 고단했지만
자식들의 내일을 향한 마음만은
한 번도 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그때 제가 조금 더 자랐다면,
조금 더 철이 들었다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 이제 그만 쉬세요.
오늘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그 시절의 풍경과
뒤늦게 깨달은 사랑과
가슴 깊이 쌓인 고마움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억합니다.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집에서
하루를 준비하시던 어머니를.
밤 열두 시가 넘어도
미나리를 다듬던 가족의 손을.
그리고 그 곁에서
부모님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려고
소꼴을 베던 어린 아들의 마음을.
부모님은 자신의 청춘을 내어
우리의 어린 날을 지켜 주셨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다 갚지 못했지만
적어도 잊지는 않으려 합니다.
어머니의 얼어붙은 손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지게를 기억하고,
밤늦도록 이어지던 가족의 노동을 기억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 합니다.
어머니.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이고 가신 것은
미나리, 광주리 하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안에는 여덟 식구의 끼니가 있었고
자식들의 미래가 있었으며
어머니 자신의 청춘과 눈물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도
어머니는 끝내 쓰러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저는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하루는 자정을 넘어 끝났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오늘도 제 가슴속에서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