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을 때 여러권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있다.
퇴근해서 잠들기 전까지가 책을 읽는 main시간인데 그날 그날
땡기는 주제에 따라서 손이 가는 책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소에 따라서도 틀린데 집에서 누워서 보는 책,지하철 탈 일이 있을때 챙겨가는책, 큰 일 볼 때 보는 책이 그때마다 틀리다.
그러나....
조정래의 소설만큼은 2004년도 1월 한달동안을 숨가쁘게 읽었다.
회사다녀오면 씻자마자,화장실에서,지하철에서,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저녁 시간이 되면 퇴근도 빨리 하고싶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10권을 다 본 지금,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태백산맥과 한강을 강력,적극 추천하는바이다.
한국사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소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조정래의 소설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생생한 사투리와 당시 유행했던 제품, 유명했던 건물들은 아주 사실적이며 특히 다양한 인물의 시각으로 본 역사적 사건들은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읽은 조정래선생의 소설이 이 둘밖에 없어서 다른 책은 논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천천히 다 읽어보고 싶다.아리랑을 비롯한 다른 단편 소설들도..
대한민국 현대사 50년만큼 불안하고도 역동적이며 변화무쌍한 세상이 있었을까.
아니 분명 있었을게다.
왕권이 교체되고 전쟁이 터지고 남자는 노예가 되고 여자는 강간당하고, 왕자는 볼모로 잡혀가고 양코배기들이 몰려오는등 갖은 혼란이 있어왔던 우리 역사의 매 순간을 어찌 비교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난 유독 대한민국 현대사에 관심이 간다.
몇 천년,몇백년전은 몰라도 기껏 50년밖에 되지않은 이 가까운 과거는 꼭 알고 싶다.
이상하게도 우리들은 가까운 과거를 오히려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태백산맥을 통해 알게 되었었고
그 과거를 아는것이 곧 우리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엄마를 이해 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한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렸을적만 해도 나이드신 분을 보면 괜히 유교적 권위주의와 타성에 젖어있는 한물 간 세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는 직장에 목매어 아둥바둥하며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여자들은 왜 그렇게 독립적이지 못하여 남편,자식들에게 의존하려 하는지 불만스러웠다.
그에 비해 1978년도에 태어난 나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인생을 내 의지대로 좀 더 고차원적으로 사는것같아 '한물간 세대'와는 차별된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살수 있는건 그 '한물간 세대'들이 과거에 피땀 흘려 일한 댓가라는걸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다.
시절을 잘 골라 태어났기에 난 운이 좋은거야..라고 쉽게 말하기엔
그들도 나만할 떄가 분명 있었을텐데 그 고생스러웠던 젊은 시절에게 너무 미안하다.
오빠,동생을 위해 하고싶은 공부 중단하고 가발공장,버스 차장,술집에서 일했던 내 또래의 여자아이,
식구들 호강 시키겠다고 서울로 상경하여 움막집에서 기거하며 하루하루를 춥고 힘들게 보냈던 시골 아저씨,
찬 바람 숭숭 들어오는 골방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하겠다고 입술을 깨무는 까까머리 학생,
독립 투사였던 할아버지때문에 가세가 기울어 가난에 찌들어 사는 자손들,
연좌제에 발목 잡혀 희망과 꿈을 하나 둘씩 접어야 했던 사람들,
부정 부패,독재에 맞서 몸 사리지 않고 데모했던 학생과 시민,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어서 월남,서독,중동등 굳은 환경과 노동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 이 책의 주인공들이자 한국을 이만큼 살게 만들어준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할머니,할아버지,아버지와 엄마인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체감할 수(비록 직접 경험은 아니지만) 있었던 건 전반적인 삶의 수준(여기서 말하는 수준이란 함은 경제적 측면 중점)이 조금씩 높아지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가 옛날엔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는데(소말리아.에티오피아 난민수준 정도로 보면 무방할듯하다.)
어느새 성장을 이루어서 지금은 그래도 자칭 중산층이 대부분이고,
옛날엔 쌀밥, 짜장면 한 그릇 먹어보는게 아이들의 소원이라던데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70~80년대) 어느새 짜장면은 그런데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21세기인 지금은 넘치는게 음식이 아닌가
또한 해방 후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싸우다가 결국 북한은 공산주의,남한은 자유주의를 택했고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가 훨씬 더 잘 살고 있다.
이런 것을 성장의 한 부분이라 본다면,
구세대들(평범한 소시민을 말한다)이 피땀흘려 이루어 놓은 것은 인정하면서
그 시대와 사람을 이끌었던 leader 박정희에게 공을 돌리지 않는건 어쩌면 모순이오 그에게 너무 인색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얻은 것이 있는 반면 잃은 것이 너무 많기에 난 박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공간에 일일이 나열하기엔 적절하지 않을듯해서 박대통령 논쟁은 여기서 하지 않겠다.
(그 이유중의 하나가 밑에서 언급된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지금 현재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는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며 실제 인물도 간략하게나마 몇 명 만날 수 있다.
바로 전태일,임종국 선생님,포철맨 박태준, 김진홍 목사님이다.
난 그중에서도 임종국 선생님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매체가 바로 이 책 ‘한강’과 KBS의 ‘인물현대사’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선 어처구니없게도 친일파가 친미파로 둔갑되어 여전히 정치 권력의 중심 혹은 그 주변부에 기생하며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계,문학,언론,음악등에서 당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소위 1인자라는 사람들은 친일경력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세상에서 임종국 선생님은 ‘친일문학론’이라는 친일파 명단 및 그에 관한 보고, 연구서를 편찬하셨다.
잘만 보이면 평탄한 앞길을 보장해주는 지도급 인사들을 앞에 두고 그들의 과오를 솔직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거다.
내 스승,부모님이 잘못한 것을 과감하게 지적하는 것..
내가 생각해도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닐 거 같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여 은근슬쩍 콩고물처럼 묻어 살길 바랄뿐,
지금 당장 내 밥줄에 문제가 없는 한 근본적이고도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를 굳이 부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부정은 하더라도 스스로 뭔가 바꾸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평범한 사람축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임종국 선생님을 아주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평소에 특이한 사람 구경(?) 좀 해 봤으면 하는 나의 바램이 책으로나마 이루어지게 되어 참 영광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깨달은 것은
1인자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수하에 영향을 받게 될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떄문이다.
그 사람들 밑에, 또 밑에 피라미드처럼 거대하게 증식되어 사회가 구성되기 때문에
스승 혹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리더들의 역할은 단순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판단되어선 안된다.
그들은 원하든 원치않든 이미 타인에게 삶의 방향,인생관등을 제시하고있기 때문에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과거 친일 경력이 있는 사람의 제자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나서였다.
‘그땐 다 그랬다. 안 그런 사람 어딨냐 ‘
‘뭘 그렇게 지난 일 가지고 따지냐’
시종일관 그 따위 소리였다. 아 젠장 열받아..
‘살만큼 산거 같은데 이제 그만 좀 사시지’ 라는 생각이 막 들었다.
내가 너무 심한거가..-.-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표정이 보인다면 누가 잡아먹는건가.. 왜 그렇게 솔직하지 못한걸까..
흔히들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라는데….
그러나 나로선 정말 이해가 안가는,하고싶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제자들에게 대의,도덕적 가치,사회 정의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느냐?
그 때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너희들도 그렇게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칠건가
그러나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런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갈등의 양상을 심각하게 보여주려고 어쩌면 일부러 그런 사람을 골라서 인터뷰 했을수도 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희망컨대..-.-
화가 솟구치게 만드는 사람도 있는 반면,
친일파 사전 편찬과 백범 김구 암살 배후를 추적하는 권중희 선생의 미국행 경비를 모아주는 우리 네티즌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참으로 희망찬 나라임은 분명하다.
다음번엔 나도 보탬이 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아...길었다. 이제 쓸 말이 없다.
-끝-
글을 쓰다가 갑자기 어렸을 때 데미안에서 읽은 구절의 몇 토막이 생각나서 검색한 후 옮겨 적어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떄는 이 말을 비롯하여 소설 전체에 대해서 도통 이해를 못했었다.
그러나 이 구절만큼은 어느때부턴가 이해가 가고 멋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