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기행 6. 파라오의 저주를 받아....
첫날 (3월 10일) 오후 기자의 피라미드로 갔지요. 가장 큰 쿠푸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3개가 있는 곳이죠. 고대 지중해 세계의 7대 불가사의(wonders)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로 이집트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 꼭대기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게 쿠푸 왕 아들의 피라미드인데 아버지 것보다 높지는 않지만 높은 지대에 세워 멀리서는 더 높아 보입니다. 얄팍하게 잔머리를 굴렸다는 겁니다. 세 번째 제일 작은 것은 손자의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이 글의 주제인 세 번째 피라미드가 크게 보이도록 찍은 것인데 여기서도 두 번째가 높아 보이네요. 다음 회 기자의 피라미드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명당(?)에서 찍는 단체사진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쿠푸 피라미드는 높이가 147m로 프랑스가 1889년 324미터 높이로 에펠탑을 세우기 이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1311년 완성된 영국의 링컨 대성당(Lincoln Cathedral)이 첨탑을 포함해서 160m로 알려졌는데 의심스럽고 현재는 83m에 불과하군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군요. 상형문자가 해독되기 전에는 인류의 기록 역사가 없었다고 믿었던 아득한 옛날입니다. 기원전 2,560년에 지었답니다. 4,5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셈입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이 기록이 갱신되죠. <역사>의 저자인 헤로도토스가 피라미드를 찾았을 때는 이 거대한 건축물이 완성된 지 2,000년이 지난 뒤라 안내인들의 이야기를 적었다고 합니다. 피라미드는 그 뒤 또 2,500년을 버텨 지금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2,0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알렉산더 대왕, 시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악티움 해전, 그리고 19-20세기 근-현대 이집트와 관련된 인물들만 떠올리네요. 아마도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 중 ‘이집트’ 편에서 주요한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원칙은 자기가 본 것은 분명히 보았다고 하고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말을 하면 그대로 기록합니다.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과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의미입니다. 공자의 말은 성인의 말을 그대로 옮길 뿐 자(子)가 들어가는 성인(聖人)급이 못되는 우수마발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보태지 말라고 경계한 것입니다. 헤로도토스는 들은 대로 적을 뿐 지어 보태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러 다른 이야기들을 적은 후에 ‘나의 견해’라는 밝히면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것이 서양 역사 서술의 첫 이정표입니다. 그래서 그를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1798년 7월 나폴레옹의 전투도 여기에서 있었지요. 나폴레옹은 영국을 견제하고 인도와의 연락을 차단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 아래에서 ‘4,000년의 역사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는 명연설로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킵니다. 실제로 전투는 피라미드에서 제법 떨어져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났지만, 정치선전-선동의 귀재인 나폴레옹이 피라미드라는 호재를 놓칠 리가 없지요. 그는 이집트를 지배하던 맘루크 정권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곧 달려든 영국해군 넬슨제독의 공격을 받아 프랑스 함대는 전멸되고 나폴레옹은 측근 몇 명만 데리고 몰래 귀국합니다. 그리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죠. 로제타스톤도 이 원정 중 발견된 것입니다.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는 모두 118-138개 정도로 추산됩니다. 당연히 고대 왕조들의 수도 근처에 모여 있겠지요. 이집트 아래 수단에는 약 240-250개 정도가 있다고 하네요. 피라미드의 건축 방법이나 변화 등을 알려면 이집트 전역을 누비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파라오들은 죽은 뒤 자신의 궁궐인 피라미드를 건설하여 자신의 미라를 깊숙이 보관하면 영생을 맞을 것이라던 믿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쿠푸 피라미드도 인간이 방치하면 5,000년 후에는 사막의 모래에 묻혀버릴 것이라 합니다. 스핑크스는 이미 묻혔다가 다시 발굴된 케이스죠. 더구나 후세의 집권자들이 피라미드의 석재를 빼내어 새 건물을 짓는데 활용했다고 하니 파손은 급속도로 진행된 셈입니다. 석회암이나 사암으로 매끈하게 장식했다는 피라미드의 표면은 2번째 아들 피라미드의 윗부분만 남아 있지요. 기단에서 보면 엄청난 크기의 돌들을 약간 끼어 맞춘 듯 게 불안해 보입니다.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인간의 건축물은 얼마나 오래 갈까요? 이 세상에서 인류가 사라지면 5년 후에는 거리의 아스팔트는 잡초가 자라면서 균열이 시작하고 창문은 깨지고 집이나 동물원, 야생에 살던 짐승들이 거리를 장악할 것이라 하군요. 25년 뒤에는 곤충들 세상이 될 것입니다. 35년 쯤 지나면 옛 건물들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해안의 도시들부터 시작하여 공장이나 가옥들이 폐허로 바뀐답니다. 그런데 인간이 없어져도 인간의 언어는 제법 오래 동안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군요. 집에서 키운 앵무새들이 인간의 말을 배워 계속 지껄일 것이라는 겁니다. 앵무새의 수명이 60년 정도이니 이 정도까지는 우리가 사용한 말도 남아 있을 것이라 하군요. 정말 그럴까요? 야생으로 돌아간 앵무새가 실습할 대상이 없는데 뜻도 모르는 이상한 ‘소리’들을 조잘대며 날아다닐까요? 희망사항이겠지요. 영화로 나온 군함도를 보면 인조건물은 수명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75년이 지나면 케이블이나 철교 등 가장 견고한 물건들도 파괴되고 150년 뒤 도시의 높은 건물들은 잡초들의 위력 앞에 맥없이 무너져 도시가 정글로 바뀐답니다. 1만년이 지나면 지구상에 인간의 흔적은 거의 없어진다고 합니다.
피라미드는 대단한 물건입니다. 지구상에 인간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수명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쿠푸 피라미드는 건설에 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수 십 만이 동원되어 석 달 간격으로 작업에 투입되었다고 하네요. 헤로도토스의 말이죠. 그런데 피라미드를 지을 당시 이집트의 인구는 100만에서 150만 정도로 추정합니다. 11,000전 인류가 농업을 시작했을 때 전 세계 인구가 1백만이었으나 농경생활이 정착되면서 인구는 늘어 1만 년 전에는 3백만, 기원전 5,000년에는 1,500백만, 기원전 3,000년에는 2,500만, 기원전 2,000년이 3,500만입니다. 기원전 3,000-2,500년 이집트 인구가 1백만 내지 150만이라면 세계인구의 2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최근의 연구는 쿠푸 피라미드 건설에 2-3만 정도가 동원되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러나 노예들을 강제로 사역한 지은 것은 아닙니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군인들이 노예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돌을 끌게 하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이건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대부분이 임금 노동자였다고 합니다. 피라미드 주변에 이들이 가족들과 살아가는 집단 생활터가 발견되어 이 학설이 굳어지고 있답니다. 그러니 3달 간격으로 교대로 투입되었다는 건 신빙성이 있겠죠.
숫자놀이는 이 정도로 합시다. 저는 왕조시대에 지은 거대한 건축물을 보면 놀랍다기보다는 분노가 솟습니다. 중국의 역대 임금들도 즉위하면서 곧 자신들의 능을 축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국가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진시황 능은 만리장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고 하죠.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궁궐들을 볼 때 비슷한 감정을 처음 느꼈지요. 시골의 향교나 통영 세병관 정도를 큰 건물로 알고 있었는데 어디에 쓸려고 이렇게 큰 집을 지었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럽의 궁전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양의 유명하다는 건물들도 그렇지요. 모두 국민들을 마음대로 강제로 동원하여 부려먹었으니까요.
199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집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에 갔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포토맥 강을 굽어보는 광활한 영지 내에 있지만 집은 유럽의 궁전에 비해 아담하다 못해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영지는 202 헥타르(ha)라니 1ha=10,000㎡라 2,020,000㎡(2.02㎢)이니, 2,000m x 1,000m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엄청난 크기입니다. 그러나 집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에는 당시 사용했던 나무들이 노출되어 소박해 보였습니다. 사실 백악관도 유럽의 웅장한 건축물에 비하면 초라한 편입니다. 이게 민주주의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국가의 힘이란 독재자가 권력을 폭압적으로 행사하여 과시적 성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일 겁니다. (사진 한 장 올립니다. 1993년 초 마운트 버넌 앞에서)
엄청난 역사(役事)를 강행한 군주들은 결국 망국의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국력을 소진시킬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을 황폐화시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건설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기 마련이죠. 물론 이들 대역사들은 당대의 신념체계와 맞물려있어 주민들이 추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라미드 역시 신인 파라오의 집을 짓는 영광스러운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기원전 2,500년 이후 정치적 혼란과 함께 재정적 파탄으로 피라미드 건설은 중단되고 파라오의 미라는 ‘왕들의 계곡(valley of kings)이라는 곳에 깊숙이 묻혔습니다. 남태평양 이스트 섬(Easter Island)에 귀가 큰 거석 인물상을 남긴 주민들은 이 작업을 위해 주변의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여 섬을 황폐화시키고 결국 섬을 떠났다고 하죠. 멕시코의 마야문명이 남긴 피라미드들도 석고를 만들기 위해 주변을 황폐화시켜 더 이상 그곳을 근거지로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시황도 능이나 만리장성, 아방궁, 직도 등을 건설하다 망한 케이스라 해야겠지요.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보면 한 재벌의 재력이면 지을 수 있겠지만 당시 조선의 한심한 국력으로 경복궁을 재건한 뒤로 조선의 재정 상태는 내리막길을 걸어 합방 때까지 회복되지 않습니다.
가이드 하젬은 제일 작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면서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일행들은 모두 가지 않겠다고 하군요. 그런데 집사람만 들어간다고 하네요. 나는 단번에 그 의도를 알아차렸지요. ‘철호 때문이지?’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철호는 2004년에 죽은 막내처남 화가의 본명입니다. 미국에서는 ‘박모’, 한국에 와서는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마지막 10년을 우리와 같이 살았지요. 워낙 예민해서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한동안 거실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텐트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자더군요. 우주의 기가 여기에 모여 정신이 안정되어 숙면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0살 차이인 막내를 업어 키웠다는 집사람은 피라미드를 보면서 죽은 동생을 떠올린 겁니다. 그리고 그 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는 김동건 판사 내외를 꾀어 같이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허리를 굽혀야 될 정도로 낮고 가파릅니다. 경사가 30도 정도? 허리가 좋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내려갈 곳은 못되지요. 내부인지라 다행히 무덥지는 않았습니다. 바닥은 나무 판을 깔고 30cm 정도 간격으로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나무 막대가 있네요. 밑에 아무것도 없다는데 뭐하려 내려가는지.....한쪽 레일을 잡고 조심스럽게 끝까지 내려가니 직각으로 5m 정도 밑에 약 2x3m 정도의 방이 있는데 휑하니 비었습니다. 그 앞에는 이집트인 2명이 사진을 찍어 준다느니 하면서 손을 내미네요. 사진을 찍으려면 티켓을 사서 들어와야 하는데 그냥 찍어준다는 거죠. 돈은 자기들이 챙기고 또 무슨 해코지를 하려는지....
허리는 아프고 돈 달라는 애들은 보기 싫고, 파라오라는 신 아닌 인간들이 자기의 무덤을 위해 주민들을 속여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겠지만) 이런 걸 지었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코를 풀어 벽에 발라 버릴까, 침을 뱉어줄까, 이 나이에 그러지는 못하겠고, 또 뱉을 곳이 마땅치 않네요. 벽에 욕이나 써둘까, 그러나 분필이 없네요. 에라, 이거나 하자면서 가져간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해 확 뿌렸습니다. 이 순간 머리를 앞쪽 천장에 부딪쳐 꽈당 뒤로 넘어졌습니다. 올라가면서 앞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기 때문에 머리를 박은 겁니다. 모두들 놀랐지만 다행히 엉덩방아만 찍고 아래로 구르지는 않았습니다. 미끄럼 방지 턱에 걸렸던 겁니다. 며칠 동안 이마가 얼얼하더군요. 밖으로 나와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파라오의 저주를 받았다’, ‘파라오의 벌을 받았다’고 박수를 치네요.(2018.4.18.)
사진 1. 1993년 초 마운트 버넌 앞에서 우리 식구가
사진 2.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참사가 일어난 것은 오른쪽 제일 작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