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대되는 작가의 책은 그 다음날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안드레 듀버스 3세의 [모래와 안개의 집]은 방송에 소개되기 이전부터 평론가들과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오프라 윈프리 쇼는 결정적으로 책의 판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22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National Book Award를 비롯해서 [올해의 도서상] 등이 상업적 성공의 뒤를 이었다. 그리고 로마 공항의 책꽂이에서 나이키, 파나소닉,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TV 광고와 뮤직 비디오를 연출했던 바딤 페렐만의 손에 들어간다.
구소련의 키에프에서 태어나 망명자 신분으로 어머니와 함께 유럽에 도착해 힘겹게 살다가 캐나다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던 바딤 감독은, 이민자의 서러움이 짙게 배어 있는 [모래와 안개의 집]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고 원작자에게 영화화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내 작품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바딤은 나보다 더 깊게 이야기에 공명했다. 난 누구보다 이민경험이 풍부한 그가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느꼈다] 영화감독 경험이 없는 바딤에게 원작자가 제작권을 넘긴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간디]의 벤 킹슬리가 이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베라니 대령 역에 캐스팅되었고,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제니퍼 코넬리가, 베라니 대령에게 경매로 넘어간 집을 찾으려는 캐시 역에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집과 흡사한 배경의 북부 캘리포니아 절벽 위에 셋트를 짓고 촬영에 들어갔다. 바딤 페렐만 감독의 데뷔작 [모래와 안개의 집]은 지난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 여우조연, 작곡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뉴욕비평가협회와 LA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나디 역-소레 아그다시루)을 받는 것으로 원작자의 기대에 화답을 했다.
[모래와 안개의 집]은 이혼 후유증으로 알콜 중독에 빠져 있던 캐시가, 밀린 세금 5백 달러를 내지 않으면 집을 경매에 붙이겠다는 시 당국의 경고장을 보지 못해 집에서 쫒겨난 뒤, 항의할 틈도 없이 이란 출신 이민자인 베라니 대령에게 집이 팔리자 그 집을 되찾으려고 투쟁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는 절대 악인도, 절대 선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순한 이분법적 선악 구도로 이야기를 몰고 갔다면 지금과 같은 공감대는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민자를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싸늘한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집을 찾으려는 캐시의 정당함이 집을 돌려줄 수 없는 베라니 대령의 절박함보다 강조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베라니 대령의 부인 나디의 시선을 통해 따뜻한 화해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란 출신의 세계적 배우인 소레 아그다시루는 낯선 미국 땅에서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캐시의 절박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나디 역으로 미국 우월주의에 균형감각을 부여한다. 또 캐시를 도와주다가 사랑에 빠진 뒤 가정적 시련을 겪는 보안관 역에 론 엘다드가 캐스팅되었다.
[모래와 안개의 집]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스스로의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먹이 운다]의 대사처럼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캘리포니아 해변의 뛰어난 풍광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아름답다. CF 감독 출신답게 바딤 감독은 말 없는 자연 풍광을, 말 많은 인물의 내면 속으로 절묘하게 끼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