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는 1949년 27쪽 짜리 논문 하나로 150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신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천재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다루고 있다. 당시 20살이던 존 내쉬는 기존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제 2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었던 인물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존 내쉬가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재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50년 동안의 정신분열증을 이겨내고 94년 노벨상을 수상, 영화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천재들은 늘 조금 미쳐있는 것 같다. 천재와 광기는 등가물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뷰티풀 마인드의 도입부에서도 내쉬는 "강의는 창조력을 파괴시킨다"며 수업을 멀리하고, 화려한 넥타이를 맨 동료를 향해 "네 값싼 넥타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볼까"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우등생 친구의 논문을 "독창성이 없다"고 깎아내리는 오만함과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그는 주위로부터 한마디로 '왕따' 당한다. 늘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그의 유일한 친구는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친구 찰스 뿐이다.
사실 찰스 또한 그가 만들어낸 허공의 인물에 불과했다. 그의 내적인 외로움과 소외감이 이러한 허상을 만들어 낸 듯하다. 그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졸업 후 그는 정부 비밀요원으로 투입되었는데, 소련 스파이의 미행으로 점점 불안하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반전된다. 비밀 요원으로 수천개의 암호를 해독하고 소련의 스파이로 쫓기는 현실이 모두 정신분열로 인한 것이었다. 망상에 사로잡힌 존은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하면서 정신분열이 극도로 치닿게 된다.
천재 이야기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속의 가치 질서와 부합하지 못하는 천재 곁에는 언제나 강한 모성으로 그를 보살펴주는 현명하고 헌신적인 여성이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도 물론 등장한다. 존 내쉬의 아내인 알리샤! 영화 속에서 알리샤는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남편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내쉬의 증세는 매우 심각해서 아들을 죽일 뻔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의사는 내쉬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것을 권했지만 알리샤는 거절하고 남편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끝에 결국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자타가 인정하는 대학자로 키워내었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강인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알리샤가 아닐까 싶다. 사실 미친 사람보다 더 괴로운 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제 정신인 사람일 것이다. 본인이야 미친 상태니까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가 있을까? 그녀는 오만한 존 내쉬의 모습 뒤로 천재의 여린 영혼을 발견하는 여인이다. 그리고 천재이기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천재이기에 외로운 인간 존 내쉬를 사랑한 그녀는 정신분열증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에 불을 밝힌 촛불같은 존재였다.
천재로 살아간다는 게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쉬는 기존의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일컬어지고 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의 평생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살았다. 인간의 천재성이라는 정신적 활동이 한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할 수도 있었다. 그의 일대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단지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재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일 것이다.
천재성과 정신병이라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고 태어난 존 내시는 주어진 여건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아내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마음은 존 내시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닥쳐온 불행을 피하고 싶은 인간적 욕망이 있었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자이다. 영화 속에서, 내시와 그의 아내뿐 아니라, 프린스턴의 동료들도 모두 내시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내시와 샤인과 같은 천재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에게 불행과 고통은 찾아 온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슬기롭게 받아들이고 극복하지는 못한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은 자가 그에 상응하는 큰 고통의 받는다는 것이 공평한 지도 모른다. 고통의 의미는 그것을 저주가 아닌 축복의 일부로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진정한 이해가 가능해 진다. 자신이 극복하기 힘든 절망의 상황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