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돌아봐도 시원한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계, 스포츠계 어디에도 말입니다. 거기다가 중국발 황사에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로 야외활동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고공행진을 지속하던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9주 연속 하락하여 취임 후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엄청난 재정을 쏟아붓고 상상 이상의 지원 정책을 펼쳤음에도 고용률은 개선될 줄을 모르고 소득격차는 더 커지는 상황, 지지부진한 북한 비핵화 등등 악재가 산적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노조의 비합법적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데도 정부, 경찰의 대응은 미온적인 상황까지 겹쳐 정말 총체적 난국입니다. 초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제가 최근 몇 개월 보내드린 주말편지를 다시 보면 예전과 달리 우리의 삶 속에서 느끼는 평범 속의 행복이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지도층, 정부야 어찌되었건 대부분의 민초들은 아직도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신문을 보아도, 뉴스를 들어도 신나는 얘기,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는 미담은 이제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경제 관련 기사들 중 마음 편하게 볼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재벌의 불법, 편법, 경영권투쟁, 어려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현실이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뉴스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이 올 연말을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경영권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회장은 “산업 생태계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면 도태된다,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 그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보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 회장은 “‘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는데 3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도 말했습니다. 외아들이 34세로 어릴뿐더러, 경영권 승계작업이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고 계열사 지분 또한 미미한 상태라 전문경영인체제로 가느냐, 어떻게 경영승계를 해나가느냐, 서둘러 회장직을 내놓을 이유가 있느냐 의문도, 설들도 많지만 저는 그냥,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지는 태도, 청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사업의 창업을 하겠다는 의지와 그 실행의 첫걸음을 높이 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를 이은 세습경영에, 은퇴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끝까지 경영권을 행사하려는 노력을 해온 모습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막에서 물을 만난 것 같은 이 회장의 퇴임선언에 무한한 갈채를 보냅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선진국처럼 경영권, 부의 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체제로 더욱 투명하게 성장하여 정부의 숙원사업인 고용창출에도 획기적 기여를 하였으면 하는 바람 큽니다.
대한민국이 오래 전부터 S.O.S를 치고 있습니다. 그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에겐 그게 느껴지지 않나 봅니다. 들리지 않나봅니다. 무언의 절규가 말입니다. 신호를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에 따른 조치가 따라야지요. 더 늦기 전에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고 근본부터 개선해야 할 때라 생각됩니다.
미세먼지가 심각함에도 자연을 찾는 발걸음은, 사진기와 함께 하는 나들이는 멈추질 않습니다. 자연의 S.O.S를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한 노력이라 해 두지요.
금오산 올레길에선 아직도 빨간 단풍이 가을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409653049
대구수목원에서 또한 그랬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408091093
낙동강체육공원 플라타너스 나목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잡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407062026
S.O.S(모셔온 글)===================
사람들은 의외로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한다. 그래서 말 대신 다양한 S.O.S를 친다. 그 신호를 잘 읽는 것이 사랑의 능력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의무다.
그는 자신의 힘에 부치는 일을 할 때에도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는 소리를 못한다. 사다리에 올라가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길을 잃어도 그는 길을 묻지 않는다. 결국 길을 잃고 기름도 떨어져야 주유소에서 길을 묻는다.
아내가 전에 없이 언제 집에 오느냐고 문자를 한다. 옆자리 동료가 말한다. 언제 오느냐고 전에 없이 자주 묻는다면 그건 아내가 힘들어요, 외로워요, 곁에 있어줘요 하고 사인을 보내는 거라고.
친구가 요즘 툭하면 짜증을 부린다. 무서워서 약속도 잡기 싫고 만나기도 두렵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유난히 짜증이 심해진 걸 보면 친구는 자신에게 S.O.S를 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도와달라는 신호는 참 다양하다. 눈빛으로도, 문자로도, 걸음걸이로도, 짜증을 내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도와달라는 그 다양한 신호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사랑의 능력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의무다.
-----김미라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