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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조리 파주삼릉(坡州三陵)을 찾아서 ③
-장순왕후(章順王后)의 공릉(恭陵) 그리고 회향-
제9대 성종(成宗)의 원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순릉(順陵)을 탐방하고 나서 우리는 마지막 으로 공릉(恭陵)으로 향했습니다.
공릉은 조선 제8대 예종(睿宗)의 원비(元妃)인 장순왕후(章順王后 1445~1461) 한씨(韓氏) 의 능입니다. 장순왕후는 세종 27년인 1445년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민씨는 고려의 문하시중 민지(閔漬)의 5대손인 가정대부 (嘉靖大夫) 한성부윤(漢城府尹) 민대생(閔大生)의 딸입니다. 당대의 문벌 가문에서 태어난 장순왕후 한씨는 아름답고 정숙하여 세조 6년인 1460년 4월 11일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습 니다. 그러나 세자빈에 책봉된 지 1년 7개월 만인 세조 7년인 1461년 11월 30일, 인성대 군(仁城大君)을 낳고 산후병으로 그해 12월 5일 안기(安耆)의 집에서 세자빈 신분으로 춘 추 17세에 승하했습니다. 그녀의 아들인 인성대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유년 시절에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장순왕후가 세조 7년(1461) 12월 5일 세자빈의 신분으로 승하하자 세조는 이듬해 2월 17일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2월 25일 파주 남쪽의 언덕에 안장하였습니다. 그후 성종 1년(1470년) 1월 22일 능호를 공릉(恭陵)이라 했고, 성종 3년(1472) 1월 11일에 장순왕후(章順王后)로 추존했습니다. 그러나 왕후로 추존된 후에도 세자빈묘로 조영한 능 에 더 이상의 상설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공릉의 모습
순릉에서 공릉으로 이동하면서 공릉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낯익은 풍경에 놀랐습니다. 공릉의 지형과 들어선 모든 것이 저 서울의 정릉(貞陵)과 유사함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저리도 똑같으냐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정릉의 능의 위치나 정문의 모습, 주위환경이 너무 흡사한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능침에 있어 정릉보다는 경사도가 낮을 뿐 이었습니다. 이런 기이한 일도 다 있습니다. ^^
공릉 진입공간의 모습입니다.
순릉에서 공릉으로 건너오니 처음에 정문부터 들어간 것이 아니라 비각이 있는 쪽에서 들 어갔습니다. 탐방순서가 역순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역시 파주삼 릉은 공릉, 순릉, 영릉으로 탐방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만 역사를 더 듬기도 좋습니다. 정문쪽부터 사진을 올립니다.
공릉의 정문(旌門)입니다. 일명 홍살문(紅箭門)입니다.
이 정문을 세우는 것은 이곳이 영혼이 잠들어 있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의 공간이므로 신성한 지역임을 알려 마음을 경건히 갖도록 한 것입니다. 신성한 제향공간으로 들어서 는 문입니다.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을 두 개 세우고 위에는 화살모양의 살을 박아 놓았 습니다. 그래서 이 문을 홍문(紅門) 또는 홍전문(紅箭門)이라 합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삼 태극 문양을 달아 놓아 신성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 삼태극은 모든 정문에 다 있습니다. 삼태극은 천ㆍ지ㆍ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을 담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문양입니다. 빨강 은 천(天), 파랑은 지(地), 노랑은 인(人)을 상징합니다.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이 조화 를 이루어야 우주질서가 조화롭습니다. 이에는 심오한 사상이 내포되었는데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니라 넘어갑니다. ^^
이곳의 참도(參道)는 정릉과 같이 ㄱ자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참도는 영릉과 순릉이 일직선인데 반해 정릉처럼 ㄱ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영릉과 순릉의 참도가 신도(神道)와 어도(御道)가 모호한데 비해 이곳은 신도와 어도의 구 별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문 앞의 미소님
공릉과 순릉의 주인공은 모두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의 따님입니다. 불 행하게도 각각 17세와 19세라는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한명회는 너무나 유명하고 드 라마틱한 생애를 살다간 인물이기에 역사드라마에 자주 나온 인물이기에 잘 아실 것입니 다. 공릉과 순릉을 다루면서 한명회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파 주삼릉 홈페이지>의 글을 옮겨 봅니다.
궁지기로 시작한 벼슬
충성공(忠成公)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는 1415년(태종 15)에 예문관 제학 한상질(韓尙質)의 손자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한기(韓起)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ㆍ사우당(四友堂)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소 년 시절을 보냈으며 과거에도 늘 실패하여 공신의 자손을 관리로 특채하던 문음(門蔭) 제 도에 의해 38세 때인 1452년(문종 2) 궁을 지키는 일로, 다소 보잘 것 없는 경덕궁직을 맡 게 되었다.
궁지기에서 일등공신으로
그가 말단관직에 간신히 올랐을 때에는 이미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나이의 단종이 즉위하 였을 때이다. 이 때 그는 지인 권람(權擥) 등을 이용하여 단종의 삼촌이었던 수양대군과 결탁, 정치적 야망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며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亂)을 성공시켰다. 계유정난이 성공하여 수양대군이 실권을 잡은 후 한명회는 1등 공신에 올랐으며,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 승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두 차례의 단종 복위 사건을 좌절시키며 승진에 승진을 거 듭하였고, 1466년(세조 12)에는 영의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일개 궁지기에 불과했던 그가 13년 만에 최고의 관직에 오른 것이다.
자매를 나란히 왕비로 올린 한명회
한명회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녀들을 모두 왕가의 며느리로 들여 더욱 권력의 기반을 공고 히 했다. 주지하듯이, 그의 슬하의 1남 4녀 중 맏딸은 세종의 사위 영천부원군 윤사로(尹 師路)의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딸은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맏아들과 혼인하였으며, 셋 째 딸은 예종(睿宗)의 비(妃), 넷째 딸은 성종(成宗)의 비(妃)가 되었다. 자매가 나란히 왕 비에 오른 예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 다’는 당시 한명회의 권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딸의 이른 죽음
한명회로 하여금 두 번이나 왕실의 장인어른으로서의 권세를 누리게 한 그의 딸들은 꽃다 운 나이에 모두 요절하였다. 공릉에 잠든 예종비(睿宗妃) 장순왕후(章順王后)는 세자빈일 때 원손 인성대군(仁成大君)을 낳고 일주일이 채 안되어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순릉 에 잠든 성종비(成宗妃) 공혜왕후(恭惠王后)는 왕비의 자리에 오른지 5년 만에 열아홉의 나 이로 승하한 것이다.
당대의 권력가 한명회의 최후
세조(世祖) 이래 성종조(成宗朝)까지 절대권력을 행사해 온 한명회는 네 차례에 걸쳐 1등 공신으로 책록되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두 딸을 먼저 보내고 1487년(성종 18)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연산군의 생 모 윤비(윤비)의 폐사(廢死)에 찬성했다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는 변을 겪기도 하 였다. -파주삼릉 홈페이지에서 인용했는데 약간 더 보충하였음. -
정자각(丁字閣)의 모습
앞에 보이는 계단을 서계(西階)라고 합니다. 서계(西階)는 축관(祝官)이 축문(祝文)을 소전 대(燒錢臺)에서 태우기 위해 오르내리는 계단입니다. 정자각 좌측에 비각도 보입니다.
정자각(丁字閣)의 정면의 모습
정자각(丁字閣)의 측면의 모습
공릉의 신계(神階)와 어계(御階)
공릉의 신계(神階)의 문양이 다른 능의 신계문양에 비하여 아름답다고 합니다.
공릉의 모습입니다.
정자각 뒤로 능상(陵上)이 약간 보입니다. 그리고 정자각 옆으로는 아담한 비각(碑閣)이 한 채 보일 뿐 수복방(守僕房)을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국 장순왕후공릉(朝鮮國 章順王后恭陵)
세조가 세자빈 한씨(韓氏)에게 내린 시호는 장순(章順)인데, 장(章)이란 온순하고 너그러우 며 아름답다는 뜻이고, 순(順)이란 어질며 자애롭다는 뜻입니다.
후면의 비문(碑文)
비문내용
능침공간으로 갈 수 없어 멀리서나마 바라봅니다.
저 언덕 위에 능침이 있습니다.
공릉의 능침(陵寢. 陵上) 참고사진입니다.
장순왕후(章順王后)는 세자빈(世子嬪)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자빈묘로 간략히 조영하였습니다. 봉분에는 병풍석(屛風石)과 난간석(欄干石)도 없으며, 일반적으로 왕릉 에 세워지는 망주석(望柱石)도 생략되었습니다. 그러나 석양(石羊)과 석호(石虎)가 호위하 고 있는 봉분은 그 크기가 크며 혼유석(魂遊石)과 장명등(長明燈), 문인석(文人石)과 석마 (石馬)가 놓여 있습니다. 석물은 조선시대 초기 형태인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석양(石羊)은 네 발을 모으고 곡장(曲墻)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석호(石虎)와 같이 악귀를 쫓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이 석양은 얼굴과 뿔은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몸 통은 단순하게 처리하였습니다. 한편 석호는 석양과는 달리 앉은 자세로 되어 있습니다. 봉분 뒤 좌우에 1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위엄이 있고 용맹한 호랑이라기보다는 귀여운 고 양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곡장 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악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합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법우님들은 해설사분과 공릉을 내려갔고, 염화님과 미소님만 남아 마무 리 사진을 담고 내려오다가 영릉으로 가기 전에 스쳐지나갔던 재실을 둘러보았습니다. 법우님들이 모두 재실에 들어갔거니 했는데 그마저 그냥 지나친 듯합니다. ^^
염화ㆍ미소님과 재실(齋室)을 둘러 보았습니다.
재실 정면 모습입니다.
재실(齋室)이란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했던 공간입니다.
여기가 능을 관리하는 이들의 숙소 수복방인 듯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찬방인듯합니다. 능 제사를 지내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제수를 장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많은 찬방과 고방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능참봉을 비롯한 능지기 관노들이 기거하는 곳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재실을 나서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파주삼릉 역사문화관
이곳에 염화ㆍ미소님과 잠깐 들어가 능조성 동영상을 감상하고 나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입니다.
덕명님께서 가져오신 양갱과자, 사탕 등을 나누고, 정수님께서 가져오신 과일, 미소님께서 챙겨 오신 음료수 등을 나누며 파주삼릉의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날 날씨가 좀 싸늘했지요?
파주삼릉을 탐방을 마치고 인근 음식점이나 찻집을 가려했으나 정수님께서 이후 일정이 있으셔서 가셔야 하기에 느긋하게 앉아서 있을 수 없어 서서 이렇게 정담을 나누고 있습니 다.
즐거웠던 시간은 짧고 아쉬운 별리는 시간을 재촉합니다.
3시 20분경에 도착하여 1시간 만에 세 곳의 능을 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능침공간을 가지 못해서 시간 단축이 많이 되었습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능침공간까지 갔더라면 5시까지 도 어려웠을 지도 모릅니다. 보광사나, 용암사를 순례하면서 많이 늕어지면 어찌하나 하 는 우려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뜻하지 않은 일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법우님들이 모두 즐거워하시고 뜻깊은 순례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 습니다.
파주삼릉 주차장에서 정수님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우리는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음 식점을 찾다가 적당한 곳을 찾다가 세검정 우리동네로 안내하여 민속집에서 뒷풀이를 마 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회향(廻向)
다음은 이번 순례를 위하여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선 순례의 발이 되 어 주신 문산의 정수님 감사합니다. 멀고 먼 문산에서 달려와 주셨습니다. 또 언제나 친 근한 이웃으로 향불교를 생각해 주시고 염화거를 안전하게 운행해 주신 염화님 감사합니 다. 또한 시종 백우거를 몰아 주신 비니초님 감사합니다. 또한 순례를 위하여 미리 보시 해 주신 보화님의 보시금으로는 보광사에 과일공양을 올렸습니다.
멀리 인천에서 오신 덕명님, 또 멀리 남양주에서 오신 대각화님, 좀더 먼 수원에서 오신 텅 빈충만님, 서울 남산 밑에서 오신 묘법님, 도봉에서 오신 화광님, 그리고 모두 세검정에서 오신 염화님과 미소님, 그리고 여여님, 비니초님 감사합니다.
이번 순례를 위하여 보화님 외에도 회비 외에 많은 보시금을 주신 덕명님, 해사랑님, 여여 님, 염화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욱 넉넉한 순례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미소님께 서 올려 주신 삼사순례 결산보고에 내역이 상세히 밝혀져 있습니다.
또 순례를 함에 있어서 입을 즐겁게 하는 낙구식(樂口食)은 또하나의 즐거움인데 이런 즐 거움을 주신 미소님은 커피와 음료수를 가져오셨고, 정수님은 커피와 과일, 덕명님은 사탕 과 양갱 등을 푸짐하게 가져오셔서 입을 즐겁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더욱 훈훈하게 하셨습니다.
이 순례에는 이렇듯 많은 분들의 넉넉한 마음이 모아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몸은 함께 하시지 못하셨지만 마음은 함께하시어 성원해 주신 모든 법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공덕으로 불보살님의 가피를 듬뿍 받으시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며 도업이 새롭기를 축원 올립니다.
다음의 성지순례는 전남 화순의 운주사와 쌍봉사를 하고자 하오니 이 순례를 보시는 분들 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정월 사찰순례 후기를 모두 마침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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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릉은 정릉과 너무나도 똑 같아 보였습니다. 공릉 능침이 정릉 능침보다 조금 낮다는것만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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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길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함께하신 법우님 감사합니다. 세세한 설명 잘 보았습니다. 백우님 감사합니다.
공릉은 정릉과 거의 완벽하게 똑같아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하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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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양주에 있는 태조 이성계 건원릉(健元陵)을 한 번 가 보았으면 합니다.
잘보았습니다.공,순,영릉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되었습니다. 상세히 올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_()_
저도 이번 순례로 공순영
릉에 대해서 새롭게 알았습니다. 이제 누가 물어 본다면 상세히 설명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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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수 있을 듯합니다.
여기는길옆으로 지나가는봤습니다 여러군대가보셨내요
그러니가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지나가셨군요. 이번에 함께하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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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법우님들과 만나고 제일 아쉬운 게 헤어져야 할 시간이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즐거운 순례였습니다. 백우님, 감사합니다. ^-^ _()_
회자정리는 어쩔 수 없지만 늘 그것이 빠르죠
저녁을 함께하고 헤어졌어야 했는데... 
릉을 다녀와서
거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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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다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아무튼 이번 순례를 통하여 함께 보광사와 용암사, 파주
기분이 좋습니다. 또 정수거에 올라 함께함도
법사님 수고가많으셔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읽으면서 사진을 보니 더 좋습니다. 재실은 못보고 그냥왔는데 자세히 챙겨오셨네요.구경 잘 했습니다._()_
앞으로 앞서 가지 마시고 제 옆에 계세요. 그러면 이것저것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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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에 보시도 많이 해주셔서 순례가 넉넉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공릉을 비롯한 파주
릉 순례기 감사합니다. 다음 순례지인 운주사와 쌍봉사 순례에 많은 법우님들이 함께하시길 합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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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와 위치가 정릉과 닮은 공릉을 끝으로 파주
릉 순례가 끝났네요. 비운의 주인공들 명복을 누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숙세의 업이 다하여 명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운주사와 쌍봉사 순례자가 조금만 더 많으면 가능한데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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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릉의 마지막은 공릉이군요. 공릉을 통하여 역사적인 인물 한명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따님들은 교육을 잘 시켜 정숙한 성품을 지녔군요. 그러나 두 따님이 단명을 했으니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강했던 세도도 딸의 목숨은 건지지 못했네요. 비운의 두 자매 나란히 묻히어 무엇을 후인에게 보여주는가 생각해 봅니다. 성지순례를 위하여 차량보시, 먹거리보시, 금전보시를 하신 분들이 많군요. 감사드립니다. 후기를 자세히 올려 주신 백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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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역사드라마를 그간 여러 번 봤는데 긍정적인 묘사와 부정적인 묘사가 있더군요. 역사는 그렇게 흘러흘러 갑니다. 한명회 본인은 그래도 장수하여 천명을 다했으나 두 따님은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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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순례기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운주사와 쌍봉사 순례가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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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거 안전하게 몰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주사 쌍봉사 有求必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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